월드 랠리 챔피언십(World Rally Championship, 이하 WRC)은 포뮬러 1, 세계 내구레이스 선수권 대회(World Endurance Championship, WEC) 등과 함께 여전히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레이스다. WRC는 1973년, 국제 자동차연맹(FIA)에 의해 세계 각지에서 열리고 있었던 랠리 경기를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창설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WRC는 세계 각지의 일반 도로는 물론, 임도, 심지어 농로 까지 포함된 다양한 환경의 코스에서 경기를 치른다. 이 때문에 오로지 정해진 서킷 안에서만 진행되는 다른 온로드 레이스에 비해 한층 변화무쌍한 환경으로 인해 드라마틱한 장면들이 많이 연출된다. 이렇게 다양한 환경의 노면과 마주해야하는 만큼, WRC에 참가하는 경주용 자동차들은 노면 적응력이 뛰어난 사륜구동을 경주차에 적용하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WRC 경주차에 사륜구동을 탑재한 경우는 없었다. 1980년, '그 차'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바로 '아우디 콰트로(Audi Quattro)'다. 1980년 등장한 아우디 콰트로는 아우디의 중형세단 80(오늘날 A4의 전신)의 쿠페 모델에 메르세데스의 2.1리터 5기통 터보 엔진과 오늘날까지 아우디 그 자체를 상징하는 상시사륜구동 시스템, 콰트로(Quattro) 시스템을 적용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아우디 콰트로 WRC 경주차는 경쟁팀들에게는 그야말로 '치트키'나 마찬가지인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사륜구동 시스템은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승용차량에는 적용에 어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1g의 무게조차 줄이려고 모진 애를 쓰는 레이스 판에서 덩치도 크고 무게도 무거운 사륜구동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은 너무나 큰 모험이었다. 그런데 아우디는 이것을 경주차에 떡하니 품고 나와서는, 접지력이 극도로 떨어지는 악천후와 비포장 구간에서 두 바퀴만 굴리던 다른 경주차들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륜구동의 막강한 접지력에서 기인한 노면 적응력을 앞세운 아우디 콰트로는 WRC 무대에 크나 큰 충격을 안겼다.
그리고 1981년, 아우디 콰트로의 가능성을 확신한 아우디는 본격적으로 아우디 콰트로를 내세워 랠리판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같은 해에 열린 스웨덴 랠리에서 사륜구동 자동차 최초의 WRC 우승을, 그리고 산레모 랠리에서는 여성 드라이버 최초의 WRC 우승을 기록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1982년도에는 매뉴팩처러(제조사) 타이틀을 따내는 등,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렇게 '무적'에 가까운 존재로 여겨졌던 아우디 콰트로에게도 아킬레스건은 존재했다. 그것은 중형차급의 큰 덩치와 그로 인한 육중한 몸무게, 그리고 지나치게 앞쪽으로 쏠려있던 중량배분이었다. 이러한 탓에 아우디 콰트로는 포장도로 구간에서 끊임없이 언더스티어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이는 아우디가 WRC에서 아우디 콰트로가 퇴역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아우디 콰트로가 랠리판에서 공공의 적이 되면서 그 약점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할 무렵인 1982년, 이 아우디 콰트로를 쓰러뜨리기 위해 한 경주차가 등장했으니, 그 차의 이름이 바로 란치아 랠리 037(Lancia Rally 037)이다. 란치아 랠리 037은 지금은 없어지다시피한 자동차 제조사인 란치아가 만들어 낸 괴물 스포츠카다. 차명인 037은 피아트의 인하우스 튜너로 알려진 아바쓰(Abarth)의 프로젝트명에서 유래했다. 이 차의 정신적인 조상이 있다면 우주선 같은 디자인으로 유명한 란치아 스트라토스(Lancia Stratos)가 있으며, 스트라토스와 마찬가지로 오직 WRC에 출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델이다.
란치아 랠리 037의 외관은 당대의 스포츠카로서 미학적으로 접근한 구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선대에 해당하는 스트라토스가 보여주었던 극적인 스타일과 대조되는 특유의 어정쩡한 외관은 당시 란치아가 생산하고 있었던 양산형 쿠페 모델 '베타 몬테카를로(Beta Montecarlo)'를 이리저리 늘려 잡아 만든데서 기인한다. 실제로 랠리 037의 차체는 베타 몬테카를로의 것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쓰기도 했다. 그러나 껍데기만 몬테카를로의 것을 사용했을 뿐, 그 알맹이에 해당하는 부분은 완전히 다른 차로 설계되었다. 일단 베타 몬테카를로에 비해 윤거가 훨씬 넓고 차체 뒤쪽도 더 길어졌다. 여기에 강력한 대배기량 터보 엔진을 탑재하기 위해서다. 란치아 랠리 037의 양산형 모델은 WRC 호몰로게이션(양산차의 경기 참가 규정) 취득을 위해 단 200대만 만들어졌다.
WRC에 출전한 란치아 랠리 037은 기본적으로는 선대인 스트라토스가 보여주었던 승리 방정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차다. 극단적인 경량화와 더불어 극도로 짧은 휠베이스, 그리고 강력한 엔진을 리어-미드십에 얹는 등, 기본적인 설계 사상은 스트라토스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바로 '파워'다. 1982년 그 악명 높은 '그룹 B' 클래스의 신설과 함께 WRC에 출전한 란치아 랠리 037은 초기에는 람페르디가 설계하고 피아트 131 랠리카에 사용된 2.0리터 4기통 수퍼차저 엔진을 리어 미드십에 얹었다. 이 당시의 최고출력은 265마력. 후기형에서는 배기량이 2.1리터로 증가하면서 325마력까지 상승하게 된다.
란치아 랠리 037은 중량 면에서도 압도적이었다. 차량총중량(공차중량이 아니다!)이 고작 960kg에 불과한 란치아 랠리 037은 당대 그룹 B를 대표하는 차종의 특징들인 '막강한 파워'와 '깃털같이 가벼운 몸무게'를 겸비한 차량이었다. 또한 브레이크는 아예 아바쓰와 브램보 등과 공동개발한 전용의 디스크브레이크를 채용했다. 이렇게 완성된 란치아 랠리 037 랠리카는 아우디 콰트로가 가장 작아지는 순간인 포장도로 구간에서 가벼운 무게와 극단적으로 짧은 휠베이스, 그리고 후륜에 쏟아지는 강력한 수퍼차저 엔진의 파워를 이용해 아우디 콰트로의 가장 아픈 부분들을 후벼 팠다.
물론 랠리 037은 후륜구동 차량이었기에, 접지력이 떨어지는 비포장 구간에서는 아우디 콰트로에 열세를 면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포장도로에서 누구보다도 빠르게 코너를 공략할 수 있는 랠리 037은 포장 도로에서의 유리함을 적극 활용하여 무적일 것만 같았던 아우디의 우승행진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수로 떠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1983년, 037을 앞세운 란치아가 제조사 종합 우승을 차지하면서, 아우디의 2연속 제조사 종합 우승을 좌절시키기에 이른다. 이 차가 이른 바 '사륜구동 랠리카를 이긴 후륜구동 랠리카'로 불리는 데에는 이러한 배경에 따른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란치아 랠리팀이 당시 규정의 허점들을 이용해 이득을 취한 것도 크게 작용하기는 했지만 당시 규격 외의 괴물 취급을 받고 있었던 막강한 사륜구동 아우디 콰트로를 물리친 후륜구동 머신이라는 점으로 인해 극적으로 조명되었다.
막강한 아우디 콰트로를 상대하기 위해 극단적인 경량화와 짧은 휠베이스, 그리고 무지막지한 파워를 이용해 포장도로 구간에서 극심한 언더스티어 경향을 보였던 아우디 콰트로의 약점을 파고들어, 최종적으로 팀을 우승에 이르게 한 란치아 랠리 037은 이후 진행된 그룹 B 무대에서는 절치부심으로 등장한 아우디 콰트로 A2, 그리고 1985년 등장한 괴물, 푸조 205 T16/E2에 밀려 제조사 종합 우승과 월드챔피언 배출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그룹 B가 진행되는 내내 아우디 콰트로의 가장 위협적인 상대였으며, WRC에서 우승한 마지막 후륜구동 자동차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란치아는 1987년, 037의 후계자로 해치백 차체에 강력한 터보 엔진과 사륜구동을 적용한 델타 HF 4WD 계열의 경주차들로 1992년까지 6번 연속으로 제조사 종합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