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페라리는 항상 '최고의 성능'과 '최상의 밸런스'를 지향하는 스포츠카 제조사다. 특히 로드카 부문에서는 그들이 사용해 왔던 엔진의 기통 수에서부터 드러난다.
페라리의 로드카 부문은 창사 이래 공식적으로는 V12와 V8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외의 형식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페라리는 비록 자사의 차종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상당한 양의 V6 엔진을 생산해 다른 제조사에게 공급하기도 했다. 란치아(Lancia) 랠리 역사의 산 증인이었던 스트라토스(Stratos)가 대표적인 사례다. 란치아 스트라토스는 페라리 V6 엔진을 품은 채 WRC에서 3회 우승을 차지하며 란치아 랠리 역사에 굵직한 한 획을 그었다.
오늘날의 경우에도 페라리가 개발한 V6 엔진들은 여러 브랜드에서 사용되고 있다. 페라리 엔진의 직접적인 수혜자인 마세라티 브랜드가 대표적이다. 마세라티의 경우, 기블리와 콰트로포르테, 르반떼 등, 볼륨 모델들에 페라리의 F160 V6 엔진을 사용한다.
그리고 몇 해 전 등장한 알파 로메오의 초고성능 세단, '줄리아 콰드리폴리오(Giulia Quadrifoglio)'가 F154 계열의 최신형 V6 터보 엔진을 사용한다. 그리고 최근 발표된 296 GTB의 등장으로 드디어 당당히 페라리 배지를 단 V6 스포츠카가 드디어 탄생하게 되었다.
하지만 과거에도 페라리는 V6 엔진을 탑재한 스포츠카를 생산한 적이 있었다. 페라리 디노 206/246GT(Dino 206GT)가 그 주인공이다.
페라리는 과거부터 V6 엔진을 품은 로드카를 직접 생산하는 것을 극히 꺼렸다. 이 당시 페라리 로드카는 대부분이 V12엔진을 실은 고가/고성능의 차종들 뿐이었다. 그러나 60년대 등장한 포르쉐 911이 저렴한 가격과 뛰어난 성능으로 시장을 강타함에 따라, 고가의 하이엔드급 스포츠카 보다는 6기통 엔진을 사용하는 합리적인 가격대의 스포츠카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었다.
그러나 창업주인 엔초 페라리는 자사의 차량에 V6 엔진을 사용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항상 '최고의 성능'을 지향해 왔던 자사의 브랜드 이미지가 '장사'를 위해 소비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쟁사에 시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합리적인 가격대의 V6 양산차는 스포츠카 제조사로서 꼭 필요했다.
이에 엔초 페라리는 세르지오 피닌파리나에게 1965년 열리게 될 파리 모터쇼에 출품할, 보다 작고, 가볍고, 합리적인 가격대의 V6 엔진 스포츠카를 디자인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상 첫 V6 페라리라고 할 수 있는 '디노 206GT(Dino 206GT)'가 탄생했다.
페라리는 V6 엔진을 찹재한 자사 차종을 '디노(Dino)'라는 별도의 디비전으로 판매했다. 이는 앞서 언급한 '고성능'의 이미지에 손상을 줄 것을 우려한 엔초 페라리의 조치였다. 하지만 이 이름은 엔초 자신에게 있어서 큰 의미를 지닌 이름이었다. 바로 병으로 인해 일찍 세상을 떠난 맏아들, 알프레도 디노 페라리(Alfredo "Dino" Ferrari, 1932~1956)를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알프레도 디노 페라리의 존재는 엔초에게 있어서 너무나 특별했다. 엔초는 "아들이 태어난다면 경주차에 오르는 것을 그만두겠다"고 공언한 바 있는데, 실제로 그가 태어난 1932년부터 레이스 무대 일선에서 내려오는 한 편, 오늘날 페라리의 산실인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경영 및 관리에 전력을 다했다. 엔초는 디노를 처음부터 후계자로 점찍고 , 그에게 경제학, 기계 공학 등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리고 장성하게 된 디노는 마치 '부전자전'임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엔지니어로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가 설계한 750 몬자(750 Monza) 경주차와 여기 사용된 1.5리터 V6 엔진은 그의 능력을 보여 준 성공작이었다. 또한 그는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55년, 자신이 기획한 F2 경주차용 1.5리터 V6 DOHC 엔진 개발을 제안하기도 하는 등, 6기통 엔진 개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1956년, 그는 뒤셴 근위축증(Duchenne muscular Dystrophy)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병상에서도 동료 엔지니어와 함께 새롭게 개발할 F2 경주차를 위한 1.5리터 V6 엔진의 기술적 세부 사항에 대해 논의를 했을 정도로 열정을 보였다. 하지만 병세가 이미 상당히 진행된 탓에, 1956년 6월 30일, 향년 24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6기통 페라리의 브랜드로서 '디노'의 이름을 사용한 것은 단순히 그가 요절한 아들을 기리기 위한 것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6기통 페라리'의 초석을 닦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까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첫 V6 페라리는 '디노' 디비전의 206GT. 이 차는 피아트에서 공급한 2.0리터 V6 DOHC 엔진을 리어미드십에 장착한 형태의 스포츠카로, 컴팩트하면서도 날렵한 스타일의 외관과 합리적인 가격대로 1965년 파리모터쇼에 등장하자마자 폭발적인 관심을 이끌어 냈다. 디노 206GT는 1967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을 시작한 이래, 1969년도까지 152대가 생산되었다.
그리고 1969년, 206GT의 마이너체인지 모델로서 등장한 '246GT'는 원판인 206GT를 뛰어 넘는 대성공을 거둔다. 이 차는 '합리적인 가격'을 위해 차량의 프레임을 스틸로 제작하는 등의 비용절감을 가하긴 했지만, 건조중량은 1,050~1,100kg에 불과했으며, 한층 파워풀해진 195마력 2.4리터 V6 엔진을 탑재하여 206GT와 동일하게 235km/h의 최고속도를 낼 수 있었다. 246GT는 '아름다운 외관'과 '뛰어난 성능'이라는 206GT의 장점은 그대로 계승한 채, 합리적인 가격으로 큰 인기를 끌어, 1974년도까지 총 3,700여대가 판매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206/246GT의 후속차종으로서 등장한 308GT는 206/246GT와는 달리, 8기통 엔진을 탑재하여 출시되었다. 그리고 이 차는 페라리의 첫 8기통 엔진 탑재 모델이기도 하며, 훗날 페라리 슈퍼카 계보를 시작하게 되는 288GTO의 밑바탕이 된다.
그리고 디노 206/246GT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지난 2021년, 페라리는 새로운 V6 페라리인 296GTB를 내놓았다. 페라리 296GTB는 디노와 같은 합리적인 가격대의 경량 스포츠카가 아닌, 슈퍼카급 성능을 내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스포츠카로 태어났다.
새로운 시대의 6기통 페라리인 296GTB는 663마력의 최고출력을 뿜어내는 2.9리터 V6 터보 엔진과 총 167마력의 최고출력을 제공하는 강력한 전기모터의 힘을 합쳐 도합 830마력의 아찔한 퍼포먼스를 자랑한다. 이 차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엔진은 65도의 뱅크각을 가지고 있다. 이는 디노가 자신의 생명이 꺼지는 그 순간까지 개발에 임했던 1.5리터 F2 경주차용 엔진에 적용되었던 것과 같다. 아울러 각종 전자제어 장비들이 총동원되어, 과거의 페라리와는 전혀 다른 감각의 주행경험을 제공하도록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