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차]피아트 판다(Tipo 141) – 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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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했던차]피아트 판다(Tipo 141) – 상편
  • 박병하
  • 승인 2019.11.15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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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차나 마이크로카 보다 크고 중형차보다 작은 크기를 가지는 소형차는 승용차 부문에 있어서 그야말로 핵심으로서 기능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소형차는 자동차의 보급과 자동차 산업 역량을 육성함에 있어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해 왔다. 소형차는 경차나 미아크로카와는 달리, 가족용 자동차로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요소들을 충족시키면서도 낮은 가격으로 접근성도 좋아야 한다. 이러한 미덕을 갖춘 소형차들은 각국에서 자동차의 대중화를 선두에서 이끌어 왔다.

소형차는 대한민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은 물론, 자동차의 역사가 시작된 유럽에서도 모터리제이션의 주역으로서 활약했다. ‘비틀(Beetle)’이라는 이명으로 불리게 되는 폭스바겐의 카데프-바겐(KDF-Wagen), 초대 피아트 500, 로버 미니 등, 유럽에 본격적인 시대를 연 주인공들은 대부분 소형차들이었다. 자동차의 보급에 있어 소형차가 주축이 되지 않은 국가는 사실 상 미국을 포함한 일부 지역에 불과하다.

1899년 세워진 이탈리아의 피아트(FIAT)는 120년에 가까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자동차 기업으로, 마세라티, 알파로메오, 란치아 등의 브랜드를 거느린 이탈리아 최대의 자동차 제조사이기도 하다. 한 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이렇게 거대한 규모로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탄탄한 소형차 개발 경험이 뒷받침되어 있는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피아트의 창업주 '지오반니 아녤리(Giovanni Agnelli, 1866~1945)'는 "자동차는 결코 부자들의 전유물이거나 레이스만을 위한 존재가 되어선 안 된다"며, "대중을 위한, 저렴하면서도 우수한 성능을 내는 자동차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의 이러한 신념 하에서 나온 첫번째 대중차가 바로 1908년 등장한 피아트 티포(Tipo)다. 피아트 티포는 자동차를 원하는 대중에 큰 인기를 끌며 피아트의 급속한 성장의 밑바탕이 된다. 대중을 위한 소형차의 개발을 중시하는 피아트의 철학은 지속적으로 유지되며, 피아트가 직면했던 여러 위기들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그의 이러한 신념 하에서 나온 첫번째 대중차가 바로 1908년 등장한 피아트 티포(Tipo)다. 피아트 티포로부터 시작된 피아트의 명작 소형차 계보는 1차 대전 후 전간기(제 1차 세계대전부터 제 2차세계대전 사이의 기간)인 1936년에 등장한 피아트 500 토폴리노(Topolino)로 이어졌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승용차의 수요가 급감하여 위기를 맞았으나, 1957년에 등장한 피아트 500의 성공으로 위기를 넘겼다. 60년대에는 대한민국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에서 라이센스 생산한 걸작 소형차, ‘124’를 탄생시키면서 다시금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리고 1970년대 온 세상을 뒤흔들었던 2차 오일쇼크 이후 태어난 새로운 소형차는 지금까지도 명작으로 회자되는 ‘피아트 판다(Panda)’다. 피아트 판다는 피아트의 A세그먼트급 해치백 소형차로, 1980년에 초대 모델이 등장한 이래, 3대를 이어 오며 지금까지 피아트의 간판 소형차로 통하고 있다. 고향인 이탈리아에서는 작은 차체와 저렴한 가격, 탄탄한 품질의 3박자가 어우러져,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차종이다.

‘Tipo 141’로 분류되는 피아트의 초대 판다는 1970년대의 오일 쇼크 이후에 태어났다. 두 차례에 걸쳐 벌어진 오일 쇼크는 전 세계의 자동차 산업에 큰 변화를 강요했다. 중대형 차종을 위주로 하고 있었던 미국의 자동차 기업들은 이 때를 기점으로 소형차의 중요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이미 소형차를 주력 상품으로 내걸고 있었던 일본계 자동차 제조사들은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미 소형차의 전통이 있어 왔던 유럽조차도 더욱 경제적인 소형차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과 마주하고 있었다.

이 당시 피아트는 재정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피아트는 새로운 소형차를 원했지만 처음부터 새로운 소형차를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데에는 재정에 무리가 따를 정도였다. 이에 피아트는 이탈리아의 한 카로체리아에 신형 소형차의 개발을 전면 위탁하게 된다. 이 카로체리아의 이름은 우리에게도 친숙하면서도 20세기 자동차 디자인의 거장으로 불리는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가 이끌어 왔던 ‘이탈디자인’이었다.

초대 피아트 판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특유의 상자 같은 외형이다. 사방이 직선으로 이루어져 있고 심지어 휠아치 조차 직선에 가깝게 디자인되어 있다. 외형 전반에서부터 이미 ‘심미성’ 보다는 ‘생산성’ 쪽에 한참 무게가 실려 있는 디자인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자세히 보면, 차체 전반에 걸쳐 곡면으로 처리된 부분이 거의 없다시피하다. 심지어 측면 창과 테일게이트 창은 물론, 전면의 윈드스크린 마저 곡면 유리가 아닌 평면 유리로 되어 있다. 또한 일반적인 자동차의 차체는 상부로 갈수록 좁아지는 테이퍼드(Tapered) 형상을 취하는데 피아트 판다의 차체 상부는 거의 수직에 가깝게 치켜 올라간다. 이렇게 수직에 가깝게 올라가는 차체 상부의 구조는 공기역학적으로 불리해지는 대신 상부의 공간을 더욱 넓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상자 같은 디자인은 다름 아닌 주지아로의 작품이다. 주지아로는 피아트 판다의 디자인을 ‘청바지’에 비유했다. ‘단순함’과 ‘실용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아울러 “나는 특히 헬리콥터와 같이 가볍고 합리적이며 다목적성을 가진 군사 기계의 요소를 이 차에 투영하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투박한 생김새와 없다시피한 디테일을 가지고 있음에도, 초대 판다의 디자인은 나름대로의 미학이 있다. 특히 ‘간결함’의 극한을 보여주면서도 단단하게 잡혀 있는 양감과 절묘한 비례로 완성된 균형미는 절대 하루 아침에 나온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특히 측면에서 바라보았을 때의 형상은 가히 해치백의 정석과 같은 비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정석적인 비례는 80년대의 주지아로 디자인을 상징하는 요소 중 하나가 된다.

인테리어 또한 ‘간결함’을 극한으로 추구한 모양새다. 자동차를 운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 외에 불필요한 장식이나 기계장치는 모조리 배제한 모습이다. 스티어링 휠과 기어노브, 속도계 외에는 동그란 형상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대시보드는 숫제 수평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데다, 별도의 글러브 박스도 없으며, 대시보드 한가운데를 깊게 파낸 형상으로 수납공간을 만들어 냈다. 공조장치 조작부 조차 중앙이 아닌, 계기반과 하나의 모듈을 이루는 형태로 디자인되어 있다. 좌석 또한 매우 단순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반면 이렇게 극단적으로 단순한 디자인을 통해 차체 크기에 비해 상당한 수준의 실내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차량의 설계에서도 철저하게 ‘생산성’과 ‘저비용’을 중시한 점들이 보인다. 초대 피아트 판다의 후륜 서스펜션은 판스프링을 사용하는, 리지드 액슬 서스펜션 구조를 취했다. 상기한 창의 경우, 평면으로 제작되어 있는 덕분에 좌/우측 창이 서로 호환이 된다. 또한 곡면을 최대한 배제하여 설계된 도어 및 바디 패널 등은 생산성이 뛰어나 부품 단가도 매우 낮았고 유지/보수 측면에서 유리했다.

초대 판다는 1979년, 이탈리아 언론에 먼저 공개된 뒤, 이듬해 열린 1980 제네바 모터쇼에서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되어 판매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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