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럭셔리 스포츠카 제조사 페라리(Ferrari N.V.)는 본래는 본가라고 할 수 있는 포뮬러 1 팀, 스쿠데리아 페라리(Scuderia Ferrari)의 자금조달을 목적으로 1939년 세워진 이래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동차 역사에 길이 남을 명차들을 빚어낸 기업으로 손꼽힌다.
페라리는 수많은 명차들을 만들어냈지만, 그 중에서도 백미가 있다면, 1980년대 중반에 시작된 하이퍼카 계보를 꼽을 수 있다. 이 차들은 자동차 애호가를 넘어, 일반 대중에게까지 페라리를 "최고의 스포츠카"이자, 선망의 대상으로 여겨지게 만들어 준 일등 공신이며, 페라리가 추구하는 철학과 가치, 그리고 빼어난 기술력으로 빈틈없이 꽉꽉 채운 마스터피스라고 할 수 있다. 근 40년 간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그들의 마스터피스를 시대 순으로 정리했다.
288 GTO
1984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된 이 차는 WRC(World Rally Championship, 세계 랠리 선수권 대회), 그 중에서도 광기에 물들었던 '그룹 B'에 출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페라리 308 GTB를 기반으로 개발된 이 차는 그룹 B에 출전할 희대의 괴물들과 난투극을 벌여야 했던 만큼, 당대 최강의 성능을 내도록 만들어졌다. 2.8리터 V8 터보 엔진은 400마력/7,000rpm의 최고출력과 50.5kg.m/3,800rpm에 달하는 최대토크를 뿜어 냈으며, 이 엔진은 리어 미드십으로 장착되었다. 288 GTO는 최고시속이 304km/h에 달해, 당시로서 가장 빠른 페라리의 양산차였다.
하지만 288 GTO는 그룹 B 호몰로게이션(인증절차) 규정인 200대를 넘은, 272대가 생산되었으며, 이제 그룹 B에 뛰어 들어 포르쉐 959, 란치아 랠리 037, 아우디 콰트로 등등의 괴물들을 상대할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그동안 수 차례 발생한 대형 인명사고들로 인해 그룹 B는 단 3년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고, 288 GTO는 출전할 무대가 없이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그룹 B를 위해 만들어진, 당대 가장 뛰어난 성능의 페라리였던 288 GTO는 페라리 슈퍼카 계보의 시조가 되었다.
F40
288GTO의 뒤를 이은 차는 페라리의 창업주이자, 일생을 모터스포츠에 투신한 엔초 페라리(Enzo Ferrari)의 유작, F40이다. 1987년 등장한 페라리 F40은 페라리의 창사 4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슈퍼카로, 페라리 역사 상 최고의 슈퍼카로 항상 거론되며, 괴물같은 퍼포먼스를 자랑하던 포르쉐 959를 눌렀다고 평가되는, 페라리 역사에 가히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페라리 F40은 288GTO에 사용했던 티포 120(Tipo 120) 엔진을 개량한 티포 120A 엔진을 탑재했다. 이 엔진은 478마력/7,000rpm의 최고출력과 58.8kg.m/4,000rpm의 최대토크를 발휘했다. 그리고 여기에 288GTO와 마찬가지로, 308/328의 섀시를 토대로 차체구조를 설계하여, 가볍고 빠른 발놀림을 가진, 진정한 의미의 스포츠카를 구현해냈다. 페라리 F40은 단 4초 안에 0-100km/h 가속을 해치울 수 있었고, 최고속도는 포르쉐 959보다 빠른 322km/h를 기록했다.
F50
1995년, 페라리 F40의 뒤를 이은 F50은 당시 물경 391km/h의 최고속도를 기록한 '괴물' 하이퍼카, '맥라렌 F1'을 이기기 위해 만들어진 차다. 이 차에는 페라리가 그동안 F1 등, 모터스포츠 무대에서 쌓아 올린 경험과 기술력을 총동원되었으며, 여러모로 페라리의 로드카 역사에서 새로운 시도가 많이 나타나는 모델이다.
페라리 F50은 심장부터 달랐다. 페라리의 F1 경주차에 사용된 3.5리터 V12엔진을 기반으로 한 엔진을 적용한 것이다. 물론 수명 확보를 위해 배기량은 4.7리터로 올리는 한 편, 최고 회전수를 8,500rpm으로 줄이는 등의 개량을 거친 이 엔진은 520마력에 달하는 최고출력을 자랑했다. 게다가 과급 엔진도 아닌, 자연흡기 엔진으로 배기량 1리터 당 100마력을 훌쩍 상회하는 초고출력 엔진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최고속도는 325km/h에 그쳐, 맥라렌 F1과의 속도경쟁에서는 밀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F50은 카본 모노코크 차체구조 등, 현대적인 하이퍼카의 방법론을 이루는 신기술들을 제시한 기념비적인 모델이다.
엔초 페라리
F50의 뒤를 이어 나타난 페라리 최강의 하이퍼카는 바로, 창업주의 이름을 딴 엔초 페라리다. 창립 60주년을 기념해 개발된 이 놀라운 슈퍼카에는 F50과 마찬가지로, F1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신기술들을 대거 적용했을 뿐만 아니라, F1 경주차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외관 디자인, 버터플라이 도어 등과 같은 외관적 특징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또한 엔초 페라리는 그동안의 페라리 로드카들 중에서 전자장비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도 특징이다.
엔초 페라리의 심장은 660마력의 최고출력을 자랑하는 V12 6.0리터 엔진이다. F50과 마찬가지로 자연흡기만으로 배기량 1리터 당 110마력의 출력을 내는 고성능 엔진이다. 여기에 F1 무대에서 습득한 에어로 다이내믹스와 카본파이버 차체, 가변식 리어스포일러 등과 같은 첨단 장비를 통해 F50의 두배에 달하는 다운포스를 생성 가능하여 완벽에 가까운 조종성을 갖춘 슈퍼카로서 평가 받는다. 엔초 페라리는 등장한 지 20년이 다 돼가는 오늘날에도 F40과 함께, 페라리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슈퍼카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라 페라리
엔초 페라리의 뒤를 잇는 모델로 태어난 라페라리는 페라리 슈퍼카 계보가 본격적인 '하이퍼카'로 넘어가는 이정표를 제공했다. FF와 F12에 사용되었던 V12 6.3리터 엔진을 극한으로 끌어내어 800마력의 힘을 낸다. 엔진 출력만 봐도 라페라리는 대단한 모델이다. 그러나 F1 기술을 집약한 엔초 페라리의 후속 모델답게 특별한 요소가 있다.
라페라리에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적용된다. 전기 모터의 힘을 받아 라페라리는 시스템 합산 출력이 1000마력에 가까운 963마력을 낸다. 최고시속은 350km를 상회하며 하이-커스(HY-KERS) 시스템을 더했다. KERS (Kinetic Energy Recovery Systems)란 운동에너지를 저장하였다가 힘이 필요한 시점에 추가 가속 에너지를 사용하는 장치로, F1 경주차에 적용된 기술이다. 현재까지 라페라리는 총 500대가 만들어졌으며, 본래는 499대까지 만들기로 했지만, 2016년도에 발생한 이탈리아 중부지역의 지진 피해를 돕기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1대를 더 제작했다. 아울러 페라리 창사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오픈톱 모델인 아페르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