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스로이스를 능가하는 자동차 제조사가 스페인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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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를 능가하는 자동차 제조사가 스페인에 있었다?
  • 박병하
  • 승인 2022.10.1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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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파노-수이사(Hispano-Suiza)는 1904년 설립된 기업으로 올해로 118년째가 되는 기업이다. 이 기업은 기나긴 세월 동안 부침을 반복했고, 20세기 후반 들어서 회사가 없어지기도 했지만, 최근에 이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자동차 회사가 두 곳이나 등장하며 오늘날까지 기적적으로 존속하고 있다.

이스파노-수이사는 스위스 출신의 공학자인 마크 비르키트(Marc Birkigt)와 스페인의 자본가인 다미안 마테우(Damián Mateu)를 위시한 스페인 자본가 그룹의 자금 투자를 통해 설립되었다. 사명인 이스파노-수이사는 공동 설립자의 출신지인 '스페인(Hispano)'과 '스위스(Suiza)'를 각각 의미한다. 이스파노-수이사는 마크 비르키트의 뛰어난 기술력과 다미안 마테우의 자금력을 통해 뛰어난 성능의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스파노-수이사는 양산차 사업에 뛰어들기 전에 자동차 경주를 통해 이름을 알리고 기술력을 축적하기로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OHC(OVerhead Cam) 방식의 밸브트레인을 사용하는 엔진을 개발, 자사 경주차에 적용하기 시작한다. 이 OHC 엔진을 탑재한 경주차는 1909년 스페인과 프랑스 몽블랑 산악도로 등지에서 열린 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전 유럽에 '자동차 제조사' 이스파노-수이사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다년간의 레이스에서 거둔 실적으로 높은 명성과 검증된 기술력을 앞세웠다. 또한 이들은 스페인 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공장을 설립해 자동차를 생산했다. 1911년 프랑스 파리 근교에 세워진 이스파노-수이사 자동차 공장에서는 롤스로이스급에 해당하는 최고급 승용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최고급 자동차 시장은 독일이 주도하고 있지만, 이 당시까지만 해도, 최고급 자동차 시장은 프랑스가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이후 스페인에서는 대중 지향의 자동차를, 프랑스 공장에서는 최고급 자동차를 생산하는 이원화 체제로 운영되게 된다.

1910년대 초반 이들이 생산한 자동차들은 외관은 물론 성능 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1912년 출시한 '타입 15T'는 662kg에 불과한 차체에 64마력의 3.6리터(3,616cc) 4기통 엔진으로 무려 120km/h의 최고속도를 자랑할 정도였다. 이 차는 스페인 국왕이었던 알폰소 13세가 주문했는데, 이 때문에 이 차는 본명인 타입 13보다 '알폰소'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불리게 되었는데, 이는 왕의 허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2년 뒤인 1914년, 전 유럽이 전쟁의 화마에 휩쓸린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다. 이스파노-수이사는 스페인 내에서도 자동차 기술, 그 중에서도 뛰어난 성능의 내연기관을 생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업이었으며, 이 때문에 이스파노-수이사는 전쟁 중에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고 항공기 엔진 생산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의 자동차와 항공기들은 구조적으로 모두 동일한 방식의 왕복엔진을 사용하고 있었던 덕분에 자동차 제조사가 항공기의 엔진을 생산하는 일이 꽤 흔했다. 같은 예로, 영국의 롤스로이스가 있다.

이들은 연합국의 항공 세력들이 필요로 하는 엔진들을 생산해 공급했다. 그리고 전쟁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자, 이스파노-수이사는 다시금 본업인 자동차 제조업으로 복귀하게 된다. 이스파노-수이사는 전쟁이 끝난 직후였던 1919년, 항공기용으로 설계되었던 직렬 6기통 엔진을 자동차에 탑재한 신모델 H6를 파리 오토살롱에 내놓았다. 이 당시에는 이미 미국에서 V형 12기통 엔진을 탑재한 차량을 내놓고 있었지만, 완벽주의 공학자인 마크 비르키트의 눈에 V12 엔진은 상당히 비효율적이라고 보았다. 그 때문에 V12 엔진 대비 훨씬 효율이 좋았던 직렬 6기통 엔진을 탑재하는 것을 이상적으로 여겨, 이 엔진을 탑재한 것이다. 또한 그러한 면모를 직접 확인시키기 위해 마크 비르키트는 이 차를 모터스포츠 경기에 투입, 두 차례의 레이스에서 우승컵을 따내며 증명해내기까지 했다. 이스파노-수이사의 H6는 뛰어난 성능과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통해 롤스로이스를 능가하는 최고급/고성능 자동차를 제조하는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자사 양산차의 후드 탑 심볼로 특유의 황새 조각상을 사용했다. 이 황새 모양의 상징은 제 1차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에서 53기에 달하는 적기를 격추한 전설적인 에이스 파일럿 '조르주 기느메르(Georges Guynemer, 1894~1917)'가 이끌었던 비행 중대 마크 도안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이 도안은 본래 프랑스의 알자스 지방의 상징이기도 하다. 굳이 이 상징을 사용한 까닭은 그와 그의 중대원들이 탑승했던 스패드(SPAD) 전투기가 다름 아닌 이스파노-수이사에서 공급한 엔진을 사용하고 있었고, 이스파노-수이사 엔진과 함께 전쟁을 승리로 파일럿들을 기념하고 감사를 표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이스파노-수이사의 엔진은 예나 지금이나 극한 환경 그 자체인 공중전에서 뛰어난 성능과 신뢰성을 자랑해, 파일럿들의 신뢰를 받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1929년, 이른 바 '대공황'이라 불리는 미국발 경제위기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경기가 크게 위축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사치품' 격에 해당하는 최고급 자동차 시장마저 크게 위축되면서 이스파노-수이사 역시 경영 위기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 당시 회사의 '돈줄'을 쥐고 있었던 스페인의 투자자들이 머뭇거리는 틈을 타, 마크 비르키트는 스페인계 투자자들로부터 주식을 사들여버리면서 회사의 경영권을 수중에 넣게 된다. 그리고 전지구적인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자금을 아낌없이 쏟아부으며 더 '완벽한 자동차'를 만드는 데 몰두했다.

이렇게 태어난 자동차가 이스파노-수이사의 '타입 68(Type 68, J12)'다. 1931년 태어난 이 차는 9.4리터 배기량의 V형 12기통 OHV 엔진을 탑재한 최고급 승용차로, 최고의 성능과 기품이 넘치는 외관 등, 이스파노-수이사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이 차에 탑재된 V12 엔진은 항공기 엔진을 생산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토대로, 이를 대폭 소형화시켜 제작한 것이었으며, 이 덕분에 H6를 개발했던 당시에 비해서 훨씬 소형/경량의 고성능의 엔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 차에 탑재된 엔진은 기존 항공기에 사용했었던 20~27리터급 엔진을 축소한 형태이지만, 성능은 매우 훌륭해, 220마력의 최고출력을 낼 수 있었다. 이후 배기량을 약간(?) 늘려 250마력의 최고출력을 내는 11.3리터 엔진도 추가하게 된다.

이스파노-수이사가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집념으로 완성해낸 타입 68은 가격부터 남달랐다. 섀시 가격은 약 20만 프랑에, 차체 제작비는 5만 프랑에 달했다. 차체 제작비가 따로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첨언하자면, 이 당시의 자동차 산업의 구조가 지금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자동차 제조사가 직접 엔진과 차대(Chassis, 섀시)와 차체(Body), 그리고 시트 등의 각종 의장품들을 한 라인에서 조립하는 체계를 따르고 있지만, 이 당시까지만 해도, 자동차 제조사란, 엔진이 탑재되어, 주행이 가능한 상태의 롤링섀시(Rolling Chassis)를 제조하는 회사였다. 그리고 자동차 제조사는 이 롤링섀시를 코치빌더(Coachbuilder)', 내지는 '카로체리아(Carrozeria)'라고 불리는 제작사로 전달하고, 이들 업체가 차량의 차체와 시트, 인테리어 등의 의장 작업을 마무리 하는 방식이었다. J12의 유려하고도 호화로운 외관은 파나르(Panhard), 부가티(Bugatti) 등 프랑스계 최고급 자동차들의 마무리를 맡아 온 프랑스의 카로체리아 방부렌(Carrossier Vanvooren)의 작품이다.

이스파노-수이사가 야심차게 내놓은 타입 68은 한 대를 구입하는 데이만 25만 프랑 이상의 비용을 요구했다. 이는 당대 완성차들 가운데 가장 비싼 가격에 있는 차량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공황의 여파로 모두가 힘들었던 시기에 등장했기에, 제대로 세일즈가 이루어질지도 의심스러웠으나, 그러한 의심을 불식이라도 시키듯이, 이스파노-수이사의 신차는 유럽의 왕실과 부호들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통하며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가며 이스파노-수이사의 전성기를 열었다. 

그러나 그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1936년, 짧았던 전간기(戰間期, Interwar period)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던 그 시점에서 제 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 격에 해당하는 '스페인 내전'이 발발했기 때문이다.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자, 제 1차 세계대전 동안 항공기 엔진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었던 이스파노-수이사는 1938년, 타입 68의 J12 모델을 마지막으로 자동차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항공기 중심의 방위산업체로 전업하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스파노-수이사는 회사가 3개로 쪼개지게 된다. 그 중 한 축은 스페인 내전이 끝난 뒤인 1940년, 이들 중 자동차 생산을 담당하고 있었던 일부는 스페인 국영 은행과 함께 '이베리안 투어링 카 연합(Sociedad Ibérica de Automóviles de Turism)'이라는 합작 회사로 거듭나게 된다. 이 회사의 약칭은 'S.I.A.T'인데, 이 회사는 오늘날 스페인을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인 세아트(SEAT S.A.)로 발전하게 되었다.

또 다른 한 축은 스페인 남부 지역에 흩어져 있었던 자동차, 항공기 부문의 생산설비 등을 합쳐서 만들어진 이스파노 아비아시옹(Hispano Aviacion)이다. 이 기업은 온전히 방산업체로서 기능했는데,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나치 독일과의 절충교역으로 메서슈미트 Bf109 전투기의 설계 도면 일부를 넘겨 받았고, 이를 토대로 이스파노-수이사 엔진을 탑재한 'HA-1109'를 개발했으며, 1965년도까지 같은 계열기인 HA-1112까지 65기를 생산했다. 이 기체들은 Bf109의 설계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여러 면에서 유사한 까닭에, '덩케르크'를 비롯한 제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하는 영상 매체에서 Bf109 전투기의 대역으로 자주 출연한다.

나머지 한 축은 프랑스 지역에 남아 있었던 최고급 자동차 생산 공장이었는데, 이 공장은 제 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파괴되고 만다. 이 공장이 재건된 것은 제 2차세계대전이 종결된 이후였다. 이스파노-수이사는 1950년대, 프랑스 공장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이곳을 자동차가 아닌, 자사의 항공기 엔진 및 터빈 관련 공장으로 전환하여 사업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이 회사는 2차세계대전 이후 대대로 프랑스 공군의 전술기용 엔진을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한 프랑스계 항공엔진 기업인 스네크마(SNECMA, 現 사프란 그룹)社와 합병하게 된다.

이렇게 과거의 영광으로만 남을 것으로 여겨졌던 이스파노-수이사였지만 그 이름과 명성을 다시금 재건하려는 시도가 21세기 들어서 벌어지고 있다. 2010년 오스트리아에서 설립된 '이스파노-수이사 아우토모빌마누팍투어 AG(Hispano Suiza Automobilmanufaktur AG)'와 2018년 창업한 '이스파노-수이사 자동차(Hispano-Suiza Cars)'의 두 회사가 그 주인공이다. 전자는 2010년, 아우디 R8을 기반으로 제작한 슈퍼카를 선보인 바 있으며, 후자는 2019년, 독자개발한 전기 슈퍼카 카르멘(Carmen)을 선보이며, 서로가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다. 일단 상표권은 먼저 설립된 오스트리아계 회사가 소유하고 있지만, 후자에 해당하는 이스파노-수이사 자동차의 창립자는 미겔 수케 마테우(Miguel Suqué Mateu)로, 이 인물은 1백년 전 초대 공동 창업주인 다미안 마테우의 증손자이기에, 자사의 정통성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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