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이 일본 자동차 업계에 남긴 것, 3대 스포츠카 - 혼다 NSX 마지막 이야기
상태바
버블이 일본 자동차 업계에 남긴 것, 3대 스포츠카 - 혼다 NSX 마지막 이야기
  • 박병하
  • 승인 2022.05.06 19: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80년대 부동산 붐으로부터 시작된 일본의 거품경제가 1990년대 들어 붕괴하면서 일본은 이른 바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잃어버린 20년', '잃어버린 30년'이라고 일컬어지는 초장기 경기 침체를 겪고 있다. 

하지만 거품경제가 극에 달해 일시적으로 엄청난 현금을 갖게 되었던 일본의 자동차 업계는 이 돈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참가하는데만 해도 어마어마한 비용이 드는 전세계의 모터스포츠 무대에 거침없이 뛰어 들었고, 1960년대 일본 자동차 산업의 중흥기부터 지속적으로 키워오고 있었던 자국 내의 모터스포츠 기반도 한층 단단하게 다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뿐만 아니라 투자 비용 대비 시장성이 지극히 낮은 고성능 스포츠카의 개발에도 아낌없이 돈을 쏟아 부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차들이, 오늘날에도 JDM(일본 내수차량)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일본의 3대 스포츠카들이다. 자동차에 대해 관심이 있으면서도 특히 2000년대 만화 '이니셜D' 시리즈나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초기 시리즈를 보고 자라 왔던 세대라면 적어도 한 번쯤은 눈에 들어 왔을 법한 그 차들이기도 하다. 지난 기사에서는 이번 연작 기획의 두번째 주인공이자 혼다기연공업(이하 혼다)의 걸작 스포츠카, 초대 NSX의 마지막 이야기다.

1980년대부터 연구를 시작해, 1985년에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한 지 5년 만인 1990년, 혼다 NSX는 드디어 본격적으로 생산을 개시했다. 1990년 9월, 혼다는 양산형 NSX를 일본 내수시장에서 발매하고 판매에 들어갔으며, 미국 시장에서도 아큐라(Acura) 브랜드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혼다 NSX는 혼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일본계 자동차제조사에서 생산되는 양산차 중 가장 비싼 가격을 자랑했다. 5년에 달하는 개발기간과 더불어, 전(全)알루미늄제 차체구조 등, 다양한 신기술을 대거 투입했음은 물론, 자사 양산차량들과의 부품 호환을 거의 고려하지 않은 독자부품들을 많이 사용하는 등, 차량 전반에 걸쳐 단가상승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의 '성능 중심의 스포츠카'가 아닌, '인간 중심의 스포츠카'라는, 전례 없는 컨셉트와 이를 실현하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한 것이 가격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NSX의 1990년 출시 당시 차량 기본가격은 5단 수동변속기 사양을 기준으로 800만엔부터 시작했다. 이는 1990년 당시 엔-원 환율로 환산하면 약 4,259만원으로, 2021년 가치로 환산하면 약 1억 1,400만원 가량에 해당하는 고가였다. 4단 자동변속기 모델의 경우에는 860만엔(당시 환율 기준 약 4,578만원, 2021년도 환산가치 약 1억 2,200만원)부터 시작했는데, 자동변속기 모델은 전동식 파워스티어링 시스템이 옵션이 아닌, 기본 사양으로 포함되어 가격이 더 올라갔다.

파워트레인은 C30A형 3.0 V6 DOHC 가솔린 엔진에 수동5단, 혹은 자동4단 변속기가 짝을 이룬다. 최고출력은 5단 수동변속기 사양은 280마력/7,300rpm을, 4단 자동변속기 사양은 265마력/6,800rpm이고, 최대토크는 30.0kg.m/5,400rpm으로 동일하다. 

혼다 NSX는 데뷔 초기, 엄청나게 높은 가격과 함께, 파워트레인 성능이 경쟁차종 대비 성능이 뒤처진다는 평가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기리에 판매되기 시작했다. 특히 아큐라 브랜드의 론칭과 함께 진입한 북미 시장에서는 1991년 첫해에 무려 3천여대가 판매되었다. 

혼다는 NSX를 지속적으로 개량하면서 상품성을 유지하기 위해 힘썼다. 1992년도에는 주문제작을 통해, 최고급 가죽 내장재와 우드트림 등을 적용 가능한 커스텀 플랜을 내놓는 한 편, 1995년도에는 스티어링 컬럼에 장착된 전용 변속장치로 수동변속을 지원하는 F매틱을 추가하는 등, 상품성 개선을 꾸준히 진행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기본형 NSX는 830만엔으로 상승했고, 타르가 루프가 적용된 NSX 타입-T는 960만엔의 가격이 책정되었다. 

1997년도에는 2%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엔진의 성능이 드디어 업그레이드했다. C30A형 V6 엔진을 기반으로 개량된 C30B형 엔진은 총배기량이 3.2리터로 늘어나는 한 편, 북미(미국, 캐나다) 사양 기준으로 294마력의 최고출력을 내게 되었으며, 최대토크도 31kg.m으로 상승했다. 반면, 일본 내수시장의 경우에는 양산차량 출력규제로 인해 최고출력은 280마력으로 유지되었다. 5단이었던 수동변속기 또한 6단 변속기로 업그레이드를 진행하며 성능과 효율을 더욱 끌어 올렸다.

또한 새롭게 '타입 S(Type S)' 트림을 신설하는 등, 선택의 폭을 넓혔다. 타입 S는 NSX의 편의장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45kg 가량의 경량화가 적용된 것을 시작으로 전용의 서스펜션 튜닝과 전용 스티어링 휠 등을 적용해 더욱 즐거운 스포츠 주행을 추구하는 모델로 만들어졌다. 또한 후술할 NSX 타입-R과 같이, 편의장비 상당수를 제거해 96kg의 무게를 줄이고, 더욱 하드한 서스펜션을 사용해 서킷 주행용, 혹은 레이싱 팀의 튜닝 베이스 차량과 같은 형태로 구성한 NSX 타입 S 제로(NSX Type-S Zero)도 만들어져 판매되었다.

2001년도에는 디자인이 달라진 후기형 모델이 판매되기 시작했다. 후기형 NSX는 충돌안전 규제 충족을 위해, 팝업식 헤드램프를 버리고 일체형 헤드램프를 적용한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며, 이에 맞게 범퍼의 형상도 변화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더 우수한 공력특성을 얻게 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보닛과 휍더, 사이드 스커트, 후면부 디자인 등, 대대적인 페이스리프트 작업이 진행되었다. 여기에 CD체인저와 이모빌라이저 등의 편의장비를 기본적용하는 등, 상품성을 높였다.

NSX는 비싼 가격과 2% 부족한 카탈로그 스펙에도 불구하고 북미 시장에서는 1991년 한 해동안 3천대를 판매하는 등의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일본 내수시장의 경우에는 절정에 달했던 버블이 꺼지기 시작할 무렵에 등장하는 바람에, 출시 초기 1년 이후부터 판매량이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혼다 NSX는 2005년 완전히 단종되기까지 총 7,394대가 팔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11년 뒤인 2016년,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접목한 완전신형 2세대 NSX가 등장해 현재도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혼다 Type-R의 시발점
초대 NSX는 1990년 출시 이래로 2005년까지 무려 15년에 걸쳐서 생산이 이어진다. 물론, 이 과정에서 혼다는 NSX를 꾸준히 업그레이드하며, 성능을 조금씩 향상시켜왔다. 1992년도에는 일본 내수시장 한정으로 '타입-R(Type-R)'이라는 신규 모델을 출시하는 한 편, 1995년도에는 타르가 톱을 장비한 NSX 타입-T 등을 추가했다.

혼다 NSX는 앞서 언급했듯이 '인간중심의 스포츠카'를 지향하는 컨셉트로 만들어졌다. 이는 개발 초기 컨셉트를 잡는 과정에서 "하이테크 이미지를 상징하는 첨단 전자장비로 무장한 스포츠카"를 주장하는 '실버파(シルバー派)' 개발진의 주도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NSX 타입-R의 경우에는 그 반대였다. 개발 초기, "F1 머신과 직계되어 있으면서, 전자장비를 철저히 배제한 퓨어 스포츠카"를 주장하며 실버파 개발진과 최후까지 대립했던 '적파(赤派)' 개발진들이 차량의 개발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실버파 개발진의 주도로 완성된 NSX를 철저하게 다시 손봐서 그들이 지향하고자 했던, 'F1의 혈통을 이어받은, 퍼포먼스 중심의 퓨어 스포츠카'로 탈바꿈하고자 했다. 특히 일반도로보다는 트랙주행을 목표로 NSX의 여러 부분에 손을 댔다. 이들은 NSX를 더욱 경량화시키는 한 편, 일상운행에서의 편의성을 배제하고 오직 속도만을 추구하여, 트랙주행에서의 기록 단축과 퍼포먼스 향상에 모든 역량을 투입했다.

NSX는 기본 바탕부터 '경량화'를 최우선으로 개발한 차였다. 따라서 당대 양산형 스포츠카들과 비교했을 때 우수한 중량 대 출력비를 자랑했다. 하지만 사실 상 도로 위를 달리는 레이스카를 만들고자 했던 적파 개발진은 이마저도 무겁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NSX 타입-R은 일반도로 주행을 위해 탑재된 편의사양 상당수를 제거했는데, 여기에는 파워스티어링 시스템과 에어컨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즉, "달리는 데 딱히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모조리 덜어낸다"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정숙성 향상을 위해 차량 각부에 적용된 흡/차음재를 몽땅 제거하는 것도 모자라, 범퍼와 도어를 지탱하는 빔 구조물을 모두 알루미늄 합금으로 변경했다. 여기에 리어 스포일러와 뒷유리, 실내의 내장재들은 물론, 시트로 레카로(Recaro)제 초경량 버킷시트로 교체했으며, 스티어링 휠도 모모(Momo)의 경량 스티어링 휠로 변경했다. 심지어 변속기 레버로 티타늄으로 교체하는 등, 그램(g) 단위의 철저한 경량화 솔루션이 적용되었다. 이렇게 뼈를 깎는 철저한 경량화 설계의 적용으로 무려 120kg을 감량하는 데 성공한다.

적파 개발진의 설계 사상은 경량화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이들은 더욱 뛰어난 퍼포먼스를 위해서 경주차와 진배 없는 접근법을 취했다. 앞서 언급한 온갖 종류의 경량화 솔루션은 단순한 중량절감 뿐만 아니라 무게중심까지 낮추는 효과까지 고려한 것이다. 파워트레인의 경우에는 크랭크 샤프트의 밸런스를 더욱 정밀하게 조정하고 커넥팅 로드의 중량을 보다 정밀하게 맞춤으로써 한층 빨라진 응답성을 이끌어내는 한 편, 종감속기어의 기어비를 낮춰 운전자로 하여금 더욱 적극적으로 고회전 영역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서스펜션 세팅은 한층 단단하게 변경되었고, 브레이크 패드의 소재를 변경해 페이드 저항성을 높이는 등, 철저하게 트랙주행에 초점을 맞춘 차로 거듭났다.

이렇게 완성된 혼다 NSX 타입-R은 1992년 처음 출시되어 일본 내수시장 한정으로 단 3년간만 판매되었다. 초경량 고성능 스포츠카로 탈바꿈한 NSX 타입-R은 일본 내 아마추어 레이스 팀에서 사랑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드코어한 서킷 주행을 원하는 이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으며, 3년 간 총 400대가 판매되었다. 그리고 이 당시 사용되었던 '타입-R'은 오늘날 혼다의 고성능차를 상징하는 서브 브랜드로서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혼다는 2002년, 후기형 NSX를 기반으로 개발한 NSX-R을 선보였다. 이는 초기형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타입-R과 접근법은 동일하지만, 타입-R과는 달리, 공력성능 향상을 위해 다양한 에어로파츠를 적극 채용한 점이 다르다. 아울러 보닛과 리어 스포일러는 카본 파이버로 만들어졌으며, 타입 R보다 더한 경량화가 적용된다. 그리고 2005년도에는 이를 기반으로 하는 마지막 NSX-R 모델인 NSX-R GT를 선보였는데, 이 차는 일본 수퍼GT에 참가하기 위한 호몰로게이션 취득용으로 5대만 만들어졌고, 이들 중 단 1대만 일반에 판매되었다. 이 차는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에서 7분 56초의 기록을 세웠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