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이 일본 자동차 업계에 남긴 것, 3대 스포츠카 - 혼다 NSX 중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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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이 일본 자동차 업계에 남긴 것, 3대 스포츠카 - 혼다 NSX 중편
  • 박병하
  • 승인 2022.03.28 22: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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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부동산 붐으로부터 시작된 일본의 거품경제가 1990년대 들어 붕괴하면서 일본은 이른 바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잃어버린 20년', '잃어버린 30년'이라고 일컬어지는 초장기 경기 침체를 넘어, 디플레이션(물가와 소득이 동시에 떨어지는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거품경제가 극에 달해 일시적으로 엄청난 현금을 갖게 되었던 일본의 자동차 업계는 이 돈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참가하는데만 해도 어마어마한 비용이 드는 전세계의 모터스포츠 무대에 거침없이 뛰어 들었고, 1960년대 일본 자동차 산업의 중흥기부터 지속적으로 키워오고 있었던 자국 내의 모터스포츠 기반도 한층 단단하게 다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뿐만 아니라 투자 비용 대비 시장성이 지극히 낮은 고성능 스포츠카의 개발에도 아낌없이 돈을 쏟아 부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차들이, 오늘날에도 JDM(일본 내수차량)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일본의 3대 스포츠카들이다. 자동차에 대해 관심이 있으면서도 특히 2000년대 만화 '이니셜D' 시리즈나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초기 시리즈를 보고 자라 왔던 세대라면 적어도 한 번쯤은 눈에 들어 왔을 법한 그 차들이기도 하다. 지난 기사에서는 이번 연작 기획의 두번째 주인공인 혼다기연공업(이하 혼다)의 걸작 스포츠카, 초대 NSX의 탄생 배경을 짚어 보았다. 이번 기사에서는 NSX의 개발 과정을 살펴본다.

'인간 중심의 스포츠카'를 꿈꾸다
지난 기사에서 강조하였듯이, 당시까지만 해도 스포츠카는 '사람이 차를 고르는' 것이 아닌, '차가 사람을 고르는' 존재였다. 마치 자기 리듬에 맞춰주지 않으면 기수를 낙마시켜버리는 냉혈마와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즉, "성능은 특출나지만 그 성능을 통제하는 것은 어려운 차", "차량의 성능만큼, 운전자의 '성능'마저 요구하는 차"가 바로 당대 스포츠카의 표본이었다.

물론 이와 같은 경향은 스포츠카에도 일상용 승용차와 동일한 안전 기준과 그에 근접한 편의성 및 쾌적함이 요구되고 있는 오늘날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다. 그리고 혼다의 새로운 스포츠카, NSX는 당시로서는 시대를 앞선 컨셉트라고 할 수 있는  "쾌적한 F1(快適F1)"을 컨셉트로 개발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혼다의 연구진은 사람이 차에 맞추는' 것이 아닌, '차가 사람에 맞추는' '인간중심의 스포츠카'로 방향성을 잡고 개발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는 혼다가 창업할 때부터 내세웠던 "기술은 사람을 위해(技術は人のために)"라는 이념과 부합하는 것이었다.

'세계제일의 운동성능'을 향해
이와 같은 개발 이념을 확립한 혼다는 이어, 스포츠카의 본분이라고 할 수 있는 그것, '운동 성능'에 눈을 돌렸다. 혼다는 NSX를 개발하면서 '달리고, 돌고, 서는' 자동차의 기본기를 극한으로 끌어놀리는 것을 상정하고 개발에 임했다고 한다. 즉, "세계제일의 운동성능"을 목표로 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동력성능'이었다. 정확히는 "얼마만큼의 동력성능을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당시 혼다는 "파워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것도, 파워를 지나치게 배제해도 문제"라고 말했다. 동력성능을 올리기 위해서는 배기량을 늘려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몸무게가 무거워져 제어가 어려운 종래의 대배기량 스포츠카와 다를 바가 없게 되어버린다. 반대로 섀시를 더 중시하고 동력성능을 등한시하게 되면, 코너링은 빠를 지언정, 직선주로에서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종래의 경량 스포츠카와 다를 바가 없게 되어버린다. 

이에 혼다는 대배기량 엔진을 사용하는 고성능의 중량급 스포츠카와 코너링에만 올인한 경량급 스포츠카의 중간 지점을 파고들기로 하고, 최적의 동력성능 설정에 들어갔다. 이를 위해 혼다는 통상 스포츠카의 기준으로 정의되어 왔던 '중량 대 출력 비(Power to Weight Ratio)' 외에 '중량 대 축거 비(Wheelbase to Weight Ratio)'라는 지표를 새롭게 설정하고 연구에 들어갔다. 즉, 차량의 휠베이스를 성능의 지표로 삼으면서, 최적의 중량배분과 무게중심을 이끌어 냄으로써 그야말로 "도로 위를 달리는 포뮬러 원 경주차"를 구현하고자 한 것이다.

1마력 당 5kg, 200kg을 감량하라!
먼저, 혼다는 NSX를 개발하면서 '1마력(ps) 당 5kg'이라는 목표를 걸고 파워트레인 개발에 임했다. 이 수치는 당대 슈퍼카 수준에 상응하는 것이었다. 혼다는 세계 제일의 운동성능을 갖는 중형급 배기량의 스포츠카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당시에도 주특기로 일컬어졌던 직렬 4기통 엔진을 기반으로 개발에 들어갔다. 배기량은 2.0리터급으로 설정했으며, 과도한 중량증가를 막기 위해 과급기의 도움을 받지 않는 자연흡기 방식으로 동력성능을 끌어올리기로 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난관에 봉착했다. 당시 양산차에 적용되는 2.0리터급 4기통 엔진으로 뽑아낼 수 있는 출력은 배기량 1리터 당 100마력, 즉, 200마력 내외가 한계였던 것이었다. 이는 혼다가 당초 목표로 설정한 '1마력(ps) 당 5kg'를 실현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동력성능이었다. 만약 2.0리터급 엔진을 이용한다면, 차량에게 허용되는 중량은 엔진의 무게를 포함해 고작 1,000kg 남짓이기 때문이다. 당시 2.0리터 엔진을 사용했던 동사의 중형세단 어코드가 1,130kg이었는데, 이 보다 무려 130kg을 덜어내야 하는 것이었다.

난관에 봉착한 것은 엔진 뿐만이 아니었다. 섀시의 개발 역시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당시 혼다는 스포츠카에게 요구되는 차체강성 실현을 위해서는 아무리 못해도 최소 1,200kg 이상의 중량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니 2.0리터 엔진 사용을 밀어붙였다가는, 실질적으로 200kg 이상의 무게를 덜어내야 하는 상황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에 혼다는 새로운 스포츠카의 엔진에 알루미늄 합금 실린더 블록을 채용하는 한 편, 섀시 주요 부품들까지 알루미늄 합금을 적용하여 50kg에 달하는 경량화를 달성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150kg+@의 무게가 남아 있었다.

뼈를 깎는 노력
앞서 언급했듯이, 혼다는 NSX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개발 초기부터 알루미늄 합금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혼다는 이륜차 사업부에서 극한의 성능을 내는 고성능 스포츠 바이크들을 만들어 오면서 알루미늄의 경험을 차근차근 쌓아오고 있었고, 이후에 사륜차에도 적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스포츠카를 개발하게 되면서 이 시점을 매우 크게 앞당겨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혼다는 이 당시까지만 해도 알루미늄 합금의 적용을 차체(Body) 외판 정도에나 하는 것을 두고 검토하는 단계에 있었을 뿐, 실용화의 단계는 먼 훗날의 이야기였다고 말한다. 하물며 섀시 전반에 걸쳐 알루미늄을 적용하는 것은 완전히 미지의 영역이었다고 술회한다. 심지어 알루미늄을 이용해 차량의 뼈대에 해당하는 섀시(Chassis)를 구축하는 것은, 자동차 분야에서 가장 앞서나가고 있었던 유럽에서조차 실험적인 단계에 있었다.

하지만 혼다의 젊은 연구개발진은 NSX의 목표로 내세웠던 '1마력(ps) 당 5kg'을 실현하기 위해 뼈대는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을 사용하고 차체 외판은 합성수지 계열의 소재를 적극 사용하는 파격적인 조합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150kg+@라는, 실로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감량을 요구받고 있었던 NSX 연구개발팀에게 있어, 이 조합은 어쩌면 난관에 봉착한 프로젝트를 구원할 돌파구로 비춰졌다.

하지만 당시 NSX의 차체 설계를 담당하고 있었던 프로젝트 리더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신칸센(고속열차)도, 항공기도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지는데, 자동차에도 안 될 이유가 없다"며, NSX를 섀시부터 외판까지 풀-알루미늄으로 구성하는 것을 제안했다. 알루미늄은 비중이 철의 1/3에 불과하므로, 굳이 외판을 플라스틱으로 덮지 않고 풀 알루미늄 바디를 사용해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던 것이다. NSX에 풀-알루미늄 구조 적용을 주장한 이 프로젝트 리더는 훗날 혼다기연공업의 7대 사장을 지낸 이토 타카노부(伊東 孝紳)다.

이토의 주장에는 물론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현실에서 실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자동차는 항공기나 고속열차와는 전혀 다른 물성과 안전기준을 요구하기 때문이었다. 이 뿐만 아니라 프레스 가공, 용접, 그리고 도장 등, 제작 공정 상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 때문에 당시 혼다 기술연구소장이자 4대 혼다 사장을 지낸 카와모토 노부히코(川本 信彦)가 지적한 것이었다. 그는 "그래 가지고서야 알루미늄으로 가능하겠냐"며 이토를 질책했고, 이토는 이에 "해 보지 않으면 모릅니다!"라고 응수했다. 그러자 카와모토 (당시)소장은 난관을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그의 당돌함을 보고 이를 승인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마음껏 해봐. 실패한다고 회사가 망하는 건 아니니까."라고 연구진을 독려했다고 한다. 아울러 혼다 사장에게도 이 계획이 승인되어, NSX는 당시로서는 매우 선진적이었던,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을 채택하게 된다. 그리고 수 없는 기술적 난점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가며 가볍고도 단단한 알루미늄 차체구조를 완성시키기에 이른다.

이렇게 혼다 NSX는 2.0리터급 직렬 4기통 엔진을 리어 미드십에 적용하고 올-알루미늄 차체구조를 도입한, 가볍고 혁신적인 스포츠카로 개발이 진행되게 된다. 그리고 일찍이 먼저 진출한 미국 시장에서 고급 브랜드 아큐라(Acura)의 론칭과 맞물려 브랜드의 얼굴 역할을 해 줄 새 스포츠카의 개발을 서둘렀다. 그러나 새 차의 개발이 진전되어간다는 기쁨도 잠시, NSX의 연구 개발진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

글. 박병하 기자 / 사진. 혼다기연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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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PO 2022-09-18 04:04:49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이 아니라 알루미늄 모노코크 바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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