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군대 출신의 상남자! - UAZ 헌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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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군대 출신의 상남자! - UAZ 헌터 이야기
  • 박병하
  • 승인 2020.05.15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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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러시아는 자동차에게 매우 가혹한 지역 중 하나다. 러시아의 도로 사정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열악한 편이다. 도로교통망의 부족은 광대한 영토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들의 공통된 고민거리지만 러시아는 이 정도가 훨씬 심한 편에 속한다고 전해진다. 그나마 제대로 포장된 도로는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도심지와 그 주변에나 존재하며, 도심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 비포장 도로가 이어진다.

그리고 해마다 해빙기와 장마철 사이에 이 비포장도로들이 '늪'이나 다름 없는 상태로 돌변하게 된다. 이를 '슬랴카트(Slyakot', Слякоть)' 현상이라고 한다. 슬랴카트 현상은 이는 기본적으로 매우 높은 연교차를 갖는 대륙성 기후인 러시아의 기후환경에 따른 것으로, 자동차 교통에 제약을 가하는 원인으로 작용해 구 소련과 러시아가 육상교통의 상당부분을 철도에 의존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혹서와 혹한이 공존하면서도 전반적으로 열악한 도로 사정으로 인해, 러시아에서 만들어지는 차량들은 대체로 지상고가 굉장히 높은 편이다. 또한 값싼 세단형 승용차 외에 SUV형 차량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그리고 러시아의 자동차 시장에는 소련 시절 만들어진 독자적인 SUV 모델인 라다 니바(Lada Niva, Lada 4X4)와 더불어, 민간으로 불하(拂下)하거나 아예 민수용으로 만들어진 군용차량들이 판매되고 있다. 이번에 소개하게 될 UAZ 헌터(UAZ Hunter) 역시 민간으로 불하되거나 민수용으로 만들어진 차량 중 하나다.

붉은 군대 출신의 상남자
UAZ 헌터는 1941년 설립된 울랴놉스크 자동차 공장(Ulyanovsky Avtomobilny Zavod, UAZ(УАЗ), 이하 UAZ)에서 만들어진 지프형 사륜구동 자동차다. UAZ는 현재 일반 승용 SUV차량과 상용차를 생산하고 있는 자동차 제조사이지만 소련 시절에는 다양한 군용 차량을 주로 생산했고, 지금도 러시아 군에 군용차량을 공급하고 있는 제조사 중 하나다.

이 차량은 한 눈에 보기에도 '군용'이라고 쓰여져 있는 듯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차는 구 소련군에서 기동차량으로 사용했던 'UAZ-469'를 거의 그대로 가져 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 차의 모태가 되는 UAZ-469는 1971년 처음 생산된 차량으로, 소련군이 2차대전 이후 20년 넘게 사용한 'GAZ-69' 차량의 대체품을 요구하면서 만들어졌다. 국내에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게임 배틀그라운드(Playerunknown's Battleground, PUBG)를 통해 알려졌다.

이 차량은 UAZ가 GAZ-69를 한창 생산하고 있었던 1958년도부터 개발을 계획하고 있었던 차량으로, 철저하게 당시 소련 육군의 요구 사항에 맞춰져 개발되었다. 당시 소련군의 요구사항은 40cm의 지상고와 4륜 독립식 서스펜션 사용, 그리고 7명의 무장 병력이나 800kg의 화물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소련군이 전통적으로 군용 차량에 요구해 왔던 '도하(渡河)'능력까지 포함되었다.

UAZ-469는 길이 4m남짓에 폭은 1.8m 가량의 크지 않은 체구를 가졌다. 이렇게 컴팩트한 몸집과 1.6톤 수준에 불과한 자체중량 덕분에 구 소련의 군용헬기 Mi-8에 적재하여 수송이 가능했다. 또한 소련의 혹독한 지형을 극복할 수 있는 든든한 하드웨어를 갖췄다. 지상고를 높이기 위해 포탈 액슬(Portal Axle)을 과감하게 채용하는 한 편, 코일 스프링 서스펜션을 포기하고 수직하중에 강한 리프 스프링과 토션 바(Torsion Bar) 구조를 채용했다. 

포탈 액슬이란, 차축과 바퀴 사이에 기어박스를 적용하여 차축을 바퀴의 중심축보다 위쪽에 위치시키게 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험로를 달려야 하는 군용 차량들에 주로 사용되는 방식이다. 토션 바는 주로 전차에 적용되는 서스펜션으로, 장력을 가진 토션 바 스프링이 뒤틀리고 풀리는 운동으로 완충 작용을 한다. 엔진은 2.4리터 가솔린 엔진을 사용했으며, 변속기는 완전 기계식 수동변속기를 사용했다.

UAZ-469는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는데, 험로주파를 중시하는 차량에 주로 적용되는 '차동기어잠금장치(Differential Lock)'는 사용하지 않았다. 이는 생산 단가를 낮추면서 야전에서의 정비성과 내구연한을 끌어 올리기 위함이라고 한다. 또한 변속기는 오늘날 승용차에 사용되는 싱크로매시는 커녕, 완전 기계식 수동변속기이기 때문에 구동축 전환, 저속 기어 레버, 변속레버 등이 모두 별도로 배치되어 사용이 까다롭다. 또한 전기를 사용하는 장치의 갯수를 극도로 줄여서 어지간한 침수에도 대응이 가능할 정도였다.

심지어 차량의 구조 또한 극단적으로 단순하게 설계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UAZ-469는 차체와 엔진, 섀시를 특수한 공구 없이도 빠르게 분해/조립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이는 비숙련 징집병의 비중이 높았던 소련군의 특성 상, 야전에서의 정비를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여기에 공차 상태에서의 최저 지상고는 무려 300mm에, 접근각은 52도, 이탈각은 42도에 달했다. 이는 현재 생산되고 있는 서방 세계의 오프로더 차량에 비해서도 훨씬 높은 것이다. 이 덕분에 UAZ-469는 소련의 혹독한 환경에 걸맞은, 우수한 험로 주파 성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UAZ-469는 1972년도부터 소련군에게 공급되기 시작했다. 또한 1974년도에는 러시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옐브루스 산을 4,000m까지 등반하는 데 성공하며 그 성능을 세상에 알렸다.

극단적으로 단순한 구조 덕분에 뛰어난 신뢰성과 정비성, 그리고 훌륭한 험로 돌파력을 가진 UAZ-469는 소련이 붕괴한 이후 러시아군에서도 꾸준한 개량을 거쳐 2011년까지 생산이 이어졌다. UAZ-469는 소련군 뿐만 아니라 동독과 폴란드,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등, 옛 소련의 위성국들에서도 퍼졌으며, 심지어 서방세계에 해당하는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서 라이센스 생산까지 될 정도였다. 또한 북한에서도 이 차량을 사용하고 있다.

UAZ-469의 뛰어난 신뢰성과 험로 돌파력은 민간에도 알려졌다. 군에서 사용 후 불하된 차량을 입수한 민간인들을 통해 입소문이 나게 된 것이다. 이에 UAZ는 2003년도부터 아예 민수 전용으로 만들어진 UAZ-469를 양산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의 UAZ 헌터다. UAZ 헌터는 UAZ-469를 보다 민수용에 적합하게 개량한 버전이다.

UAZ 헌터는 전자장비를 극도로 배제했던 원본에 비해 다소 현대화를 거쳤다. 편의성을 위해 변속장치를 일반 승용차에 사용되는 것과 같은 구조로 변경하고 시계, 라디오, 에어컨 등의 몇 가지 편의장비를 추가했다. UAZ 헌터는 라다 니바와 함께, 러시아의 저가형 SUV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모델이며, 지금도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UAZ 헌터는 현재 러시아에서 아직까지도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UAZ 헌터는 기본 모델과 스페셜 모델인 익스페디션(Expedition)이 존재한다.익스페디션 모델은 전면에 캥거루 범퍼를 추가하고 상부에 루프 캐리어를 적용했으며, 전용의 투톤 컬러로 독특한 감각을 뽐낸다. UAZ 헌터는 러시아 현지 가격을 기준으로 기본형 모델은 752,000루블(한화 약 1,265만원), 익스페디션 모델은 899,910루블(한화 약 1,514만원)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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