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차]대한민국 땅을 밟은 첫 번째 르노 자동차, 르노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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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했던차]대한민국 땅을 밟은 첫 번째 르노 자동차, 르노 25
  • 모토야
  • 승인 2020.05.1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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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쌍용자동차는 설립 이래 가장 중대한 전환점을 맞게 된다. 기존의 체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체계를 구축해야 했기 때문이다. 기업에게 있어서 기존의 시스템을 버리고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은 사람에 빗대면 '체질 개선'을 의미한다. 그만큼 힘겹고 고통스러운 과정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기업에게 있어서는 회사의 역사에 남을 '혁신'으로 기억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기의 쌍용자동차는 그 체질 개선의 기로에 서 있었다.

쌍용그룹에 인수되기 전이었던 시절의 동아자동차는 주로 일본계 제조사들과의 제휴를 통해 운영되고 있었다. 당시 동아자동차와 기술제휴 관계에 있었던 일본 이스즈자동차(いすゞ自動車,이하 이스즈)와 오늘날 스바루(Subaru Corporation)의 모태인 후지중공업(富士重工業株式会社)이었다. 특히 이스즈는 동아자동차가 가진 기술력의 거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던 핵심 제휴사였다. 당시 동아자동차의 주요 엔진공급선이 바로 이스즈였기 때문이다. 후지중공업과의 기술제휴 역시, 안정적인 엔진 및 차량 공급을 위해 확보한 제휴선 중 하나였다.

하지만 동아자동차가 1988년도에 쌍용그룹에 인수된 이후, 이 시스템이 송두리째 무너지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 쌍용그룹의 김석원 회장이 "일본 기업과는 기술제휴를 맺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세운 것이다. 이는 명분은 어땠을지 몰라도, 당시의 쌍용자동차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자체개발 엔진은 커녕, 신차 개발역량마저 부족했던 쌍용자동차의 입장에서 이스즈는 거의 유일한 엔진공급처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후지중공업과의 제휴 또한 끊어지게 되며 쌍용자동차는 큰 위기에 몰렸다.

총수의 지침에 의해 기껏 손잡은 제휴사를 내쫓게 된 쌍용자동차는 새로운 제휴사를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전혀 녹록치 않았다. 김석원 회장의 의중대로라면, 자동차 선진국인 미국이나 유럽의 기업들에서 제휴사를 찾아야 할 것이었다. 이 당시 쌍용자동차는 새로운 기술제휴선을 찾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고 전해진다. 이에 따라 쌍용자동차와 기술제휴를 긍정적으로 검토한 기업들 중 하나가 바로 프랑스의 '르노(Renault)'였다. 세간에 잘 알려진 메르세데스-벤츠와의 기술제휴는 그보다 뒤의 일이었다.

대한민국 땅을 밟은 첫 번째 르노 자동차
르노와의 기술제휴가 성사된 쌍용자동차는 계약 내용에 따라 당시 르노가 생산하고 있었던 승용차 '르노 25(Renault 25)'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르노 25는 르노가 개발한 대형 승용차로, 르노 사프란(Renault Safrane)의 전신에 해당한다. 1983년 처음 등장한 르노 25는 1988년 한 차례의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후 1992년도까지 생산되었다.

르노 25는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현대적인 디자인을 자랑했다. 차체는 통상적인 4도어 세단이 아닌, 오늘날 큰 인기를 끌고 있는 5도어 패스트백형 차체로 설계되었다. 외관 디자인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선과 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패스트백 형태의 날렵하고 스포티한 스타일이 특징적이다. 이 날렵한 스타일 덕분에 르노 25의 공기저항계수는 고작 0.28cd에 불과했다. 이 덕분에 르노 25는 비공식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공기역학적인 차'로 불리기도 했다.

르노 25의 스타일링에서 또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바로 그 뒷모습에 있다. 5도어 패스트백형으로 설계된 르노 25는 후방에 대형의 테일게이트를 가지고 있는데, 이 테일게이트의 뒷유리는 C필러의 라인을 따라 꺾여 있는 형상을 띄고 있었다. 이 독특한 곡면형 뒷유리는 스타일링 돋보이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공기저항을 줄이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르노 25의 차체 길이는 4,650mm, 폭은 1,770mm, 높이는 1,405mm이며, 휠베이스는 2,725mm였다.

인테리어는 미래지향적인 색채가 가득했다. 이 인테리어 디자인은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했던 이탈리아 출신의 디자이너, 마르첼로 간디니의 작품이었다.  르노 25의 대시보드는 자동차의 운전석이라기보다는 항공기의 조종석, 더 나아가 우주선의 조종석 같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르노 25는 당대 프랑스 자동차들 중에서 가장 다양하고 선진적인 편의사양을 갖췄다. 자동 개폐 기능이 적용된 파워윈도우를 비롯하여 도어 열림이나 보닛, 테일게이트 열림, 유압, 냉각수 및 엔진 온도 등의 경고를 음성으로 안내해 주는 기능을 제공했으며, 세계 최초로 스티어링 컬럼에 탑재된 오디오 리모컨을 적용했다. 스티어링 컬럼에 탑재된 오디오 리모컨은 오늘날의 르노 차종에서도 볼 수 있는 품목이다.

르노 25는 2.0리터 및 2.2리터 직렬 4기통 가솔린 엔진과 푸조-르노-볼보 3사가 공동개발한 PRV 2.7리터 V6 가솔린 엔진, 스포츠카 알핀(Alpine)에서 가져온 2.5리터 터보 V6 엔진, 그리고 2.1리터 디젤 엔진이 탑재되었다. 변속기는 엔진에 따라 수동 5단 변속기와 3단 자동변속기를 사용했다. 또한 르노 25는 전륜구동임에도 후륜구동 자동차처럼 엔진을 세로로 배치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르노 25에 탑재된 엔진 중에서 2.5리터 V6 터보 엔진은 본래 스포츠카 알핀(Alpine)에 탑재되는 것을 개량한 것이었다. 이 엔진은 205마력의 최고출력과 29.6kg/m의 최대토크를 냈다. 주력 엔진 중 하나였던 PRV 2.7리터 V6 인젝션 엔진은 144마력의 최고출력과 22.4kg.m의 최대토크를 냈으며, 최고속도는 201km/h에 달했다. 

르노 25는 대한민국 수입차 시장 개방의 원년인 1988년, 쌍용자동차를 통해 처음으로 대한민국 땅을 밟게 되었다. 이 차는 정식으로 대한민국에 수입된 최초의 르노자동차로, 이후 25년이나 지난 2013년에 이르러서야 르노 캡처(르노삼성 QM3)가 그 뒤를 잇게 된다. 르노는 쌍용자동차와 함께 서울 강남에 '르노의 집'이라는 이름의 전시장을 오픈하고 르노 25의 V6 인젝션 모델을 선보였다. 당시 가격은 5,200만원이었다.

당시 르노는 한국 시장에서의 사업에 의욕적이었다고 전해진다. 르노는 협력사인 쌍용자동차에서 선발한 정비사들을 본사로 연수를 보내 교육을 진행, 쌍용자동차의 서비스 네트워크를 활용하고자 하였으며, 이듬해 르노 25의 4기통 모델까지 추가하는 등, 한국 시장 진출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하지만 한국시장에서의 성과는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그 이유로는 그 혁신적인 디자인과 가격 등을 들 수 있다. 르노 25의 외관 스타일은 해외에서는 상당히 선진적이면서도 프랑스 스타일의 멋을 간직한 디자인으로 통했다. 그러나 당시 철저하게 3박스 스타일의 보수적인 세단을 유독 선호하는 경향이 짙었던 대한민국에서는 전통적인 세단과는 너무나도 다른, 이질적인 디자인으로 비춰졌다. 가격은 이듬해 추가된 하위 트림 모델까지 포함하여 최소 3,700~5,200만원 사이였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높은 가격이었다.

르노 25는 출시 첫 해에 국내에서 겨우 7대, 그 이듬해에는 고작 6대만 판매하는 데 그쳤다. 그리고 르노는 1989년 12월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르노가 대한민국에 다시 진출하게 된 것은 약 10년 뒤인 2000년, 르노가 삼성자동차를 인수하고 지금의 '르노삼성자동차'를 출범시키면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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