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자동차는 1980년대 중반까지 국내의 고급 승용차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신진자동차 시절에는 토요타의 동명의 세단을 라이센스 생산한 '크라운' 시리즈를, 직접적인 전신에 해당하는 지엠코리아와 그 후신인 새한자동차는 오펠 레코르트(Rekord)를 라이센스 생산한 '레코드 로얄' 시리즈를 흥행시켰다. 그리고 본격적인 대우자동차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오펠 레코르트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파생모델을 개발, 1980년대 국내 고급 승용차 시장을 석권하기에 이르렀다. 대우자동차에게 있어서 오펠 레코르트와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로얄 시리즈는 대우자동차 역사 상 가장 위대하고 영광스러웠던 세월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 영광스러웠던 세월은 1986년, 너무나도 강력했던 도전자의 등장으로 인해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그 도전자는 바로 현대자동차의 초대 ‘그랜저(Granduer)’다. 대한민국 현대자동차와 일본 미쓰비시자동차가 공동으로 개발한 전륜구동 고급세단 그랜저는 등장하자마자 당대 로얄 시리즈의 최고봉이었던 '로얄 살롱 슈퍼'를 압도하는 반응과 함께 고급 승용차 시장의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그랜저는 굳건한 위세를 자랑하고 있었던 대우 로얄 패밀리의 꼭대기부터 찍어 누르며 위협했다. 대우자동차는 경쟁력을 상실한 로얄 살롱 슈퍼를 단종시키고 대대적인 부분변경을 가한 '슈퍼 살롱'을 내놓았고, 잃어버린 ‘최고’의 지위를 되찾기 위해 3.0리터급 직렬 6기통 엔진을 얹은 최고급 승용차, ‘임페리얼(Imperial)’까지 내놓기에 이른다. 하지만 임페리얼은 국내 시장의 정서와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고, 엔진의 신뢰도가 낮아 크게 저평가되었다. 여기에 현대자동차가 3.0 싸이클론 V6 엔진을 탑재한 그랜저 3.0 리터 모델을 출시하면서 대우자동차의 로얄 패밀리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93년, 임페리얼이 단종되자, 대우자동차는 슈퍼 살롱의 후속차종인 브로엄에 3.0 모트로닉 엔진을 탑재한 버전을 플래그십 모델로 두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대우자동차도 절실히 알고 있었고,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 모델이 필요성 또한 절감하고 있었다. 그동안 자신들이 일궈 왔던 고급 승용차 시장을 고스란히 현대자동차에 빼앗기는 것을 좌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우자동차는 임페리얼이 단종된 지 1년 뒤인 1994년, 새로운 고급세단을 내놓으며 시장의 주목을 끌었다. 바로 아카디아(Arcadia)였다.
당대 최고가, 최상의 성능 자랑한 최고급 세단
대우 아카디아는 대우자동차가 일본 혼다기연공업(이하 혼다)의 플래그십 세단, 레전드(Legend)를 라이센스 생산한 모델이다. 혼다 레전드(現 아큐라 RLX)는 운전자 지향의 고급 준대형 세단으로 통하는 차종이며, 현대자동차의 그랜저 또한 같은 성향의 차종에 속했기에 직접적인 대결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우자동차가 라이센스한 혼다 레전드는 1990년도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2세대 모델로, 당대 기준에서 상당히 실험적인 설계들이 많았다.
차명인 아카디아(Arcadia)는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한 지명, ‘아르카디아(Arkadia)’에서 가져온 것이다. 아르카디아는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된 ‘낙원 전승’이 전해지는 곳이다. 자동차를 ‘낙원’에까지 비유했던 당시의 거창한 작명법이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대우 아카디아는 출시 초기에는 혼다에게서 레전드의 부품을 그대로 들여와 조립생산하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초도 생산분의 경우에는 스티어링 휠의 경적 패드가 혼다의 수출용 브랜드인 아큐라(Acura)의 로고가 새겨진 채로 출고되기도 하는 등, 국산차가 아리나 사실 상 수입차에 가까운 모양새였다. 물론 그 뒤로는 부품이 본격적으로 국산화되기 시작하면서 대우자동차의 로고가 새겨지게 되었고 그나마 ‘국산차’로서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대우 아카디아는 등장 당시에 국내에서 가장 큰 세단은 아니었다. 아카디아의 길이는 4,950mm, 폭은 1,810mm, 높이는 1.405mm로 당대에 경쟁하고 있었던 2세대 그랜저에 비해 폭은 동일하지만 길이가 30mm짧고, 높이는 40mm 낮았다. 하지만 외관 디자인만큼은 그랜저와 확실하게 차별화되는 포인트들이 존재했다. 이는 2세대 레전드의 실험적인 설계들이 그대로 적용된 것에서 기인하는 측면도 존재한다.
아카디아는 그랜저에 비해 훨씬 세련된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그랜저는 당시 국내 대형세단 소비층의 취향을 반영해, 차체 곳곳을 크롬 장식으로 두르고 투톤 컬러까지 입혀가며 화려하게 꾸민 데 반해, 지나치게 보수적인 스타일을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카디아는 그랜저에 비해 장식적인 요소들을 절제한 편이었지만 한층 낮게 깔린 차체와 더불어 후륜구동 세단에 가까운 차체 프로포션을 구현하여 상당히 스포티한 분위기를 냈다. 특히 2,910mm에 이르는 휠베이스가 압권이었는데, 이는 그랜저에 비해 165mm나 긴 것이었다. 심지어 후륜구동 차종이었던 포텐샤보다도 200mm나 차이가 났다. 이 때문에 아카디아를 처음 마주하게 되면 전륜구동임에도 후륜구동 세단에 근접한 비례미를 자랑했다.
아카디아는 당대 출시된 고급 세단 중 상당히 큰 배기량과 그에 걸맞은 고성능의 엔진을 가졌다. 아카디아의 엔진은 혼다의 3.2리터 SOHC 엔진으로, 220마력/5,500rpm의 최고출력과 29.2kg.m/4,500rpm의 성능을 냈다. 이 엔진은 혼다의 슈퍼카, NSX와 실린더 블록을 공유하는 엔진이기도 하며, SOHC 방식을 채용한 덕에 헤드의 크기 및 중량이 작아져, 엔진의 무게중심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게다가 특이하게도, 전륜구동이면서 엔진을 세로로 배치한 것이 특징인데, 심지어 이를 프론트 미드십에 가깝게 배치함으로써 전후 중량 배분까지 신경 썼다. 이 독특한 설계는 후륜구동 세단과 유사한 차체 비례의 비밀이기도 하다. 변속기는 자동 4단 변속기와 수동 5단 변속기가 마련되어 있었으나, 차급의 성격 상, 수동변속기로 출고되는 차량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아카디아의 엔진은 나중에 등장한 현대자동차 뉴 그랜저(2세대)의 3.5리터 싸이클론 엔진에 비해 근소하게 낮은 수치였고, 3.0리터 엔진에 비하면 월등히 강력한 성능이었다. 여기에 아카디아는 경쟁차종 대비 가장 가벼운 몸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1,580kg에 불과한 공차중량은 한 체급 아래의 중형 세단과 비견될 정도로 가벼운 것이었다. 충분히 강력한 엔진과 긴 휠베이스에서 오는 탁월한 주행 안정성, 그리고 경쟁 차종 대비 월등히 가벼운 무게까지 갖춘 아카디아는 주행 성능 면에서 당대의 국산 대형세단들을 압도할 수 있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아카디아는 대우자동차가 그랜저 타도를 위해 절치부심으로 준비했던 모델인만큼, 당대 최신예 사양들을 적극 도입했다. ABS와 운전석/조수석 듀얼에어백, 시트 벨트 프리텐셔너 등의 안전 사양은 물론, 운전석 시트 포지션 메모리 기능과 앞좌석 열선 시트, 버튼식 도어 개폐장치, 자동 에어컨 등의 편의장비를 갖췄다. 특히 조수석 에어백의 경우,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카디아에는 뼈 아픈 단점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가격’이었다. 물론, 이 급에서는 가격에 대한 저항이 상대적으로 적어지는 편이지만 국산 차종임에도 불구하고 수입차를 넘보는 가격을 자랑했다. 아카디아의 가격은 1994년, 디럭스(Deluxe)와 슈퍼(Super)의 두 가지 트림으로 출시되었는데, 디럭스 트림은 4,075만원, 슈퍼 모델은 4,330만원에 이르렀다. 여기에 슈퍼 트림 한정으로 적용 가능한 로얄 패키지(앞좌석 열선시트, CD체인저, 운전석 메모리 기능이 포함된 파워시트)를 더하면 자그마치 4,440만원에 달했다.
아카디아의 가격은 국산차로서 당대 최고점을 찍은 사례라고 할 수 있었다. 1994년 당시 뉴 그랜저 3.0 모델의 가격이 2,590~3,490만원이었고, 1992년 기준 기아 포텐샤 3.0 모델의 가격이 3,130만원이었다. 당시 중형세단 프린스의 최하위 트림 가격이 965만원 이었고 최상급 사양으로 구성해도 1,500만원 정도였다는 것을 보면, 이 차의 가격이 얼마나 높은 것이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아카디아는 후일 추가된 현대 뉴 그랜저 3.5 모델보다도 적은 숫자가 판매되었을 정도로 인기가 없었다.
대우자동차는 아카디아를 출시하면서 연 6천대의 판매계획을 수립했으나 지나치게 비싼 가격으로 인해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대우 아카디아의 생명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여기에 1997년 상반기, 기아자동차가 작정하고 내놓은 최고급 대형 세단 엔터프라이즈가 나타났고 그 해 하반기에는 메르세데스-벤츠의 기반 기술을 앞세워서 국내 최고급 세단 시장의 슈퍼스타로 떠 오른 쌍용 체어맨까지 등장하면서 아카디아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1997년 외환위기의 도래에 따라 국내의 수많은 대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쌍용자동차가 대우그룹의 산하로 넘어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대우자동차는 쌍용자동차를 인수하게 되면서 당대 최고로 잘 나가던 최고급 세단, ‘체어맨’을 손에 넣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아카디아에게 있어서 사형선고와 같았다.
대우자동차는 아카디아의 생산을 중지하고 1998년도부터 1천만원이 넘는 폭의 ‘재고 떨이’를 통해 아카디아를 손에서 털어 내버리고 만다. 그리고 1999년 12월, 마침내 대우자동차의 차종 리스트에서 완전히 지워지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여담으로 혼다의 국내 법인인 혼다코리아가 출범한 2003년, 대우자동차의 후신인 지엠대우는 아카디아와 관련한 메인터넌스 등 A/S 관련 업무를 혼다코리아에 이관했다. 아카디아는 사실 상 혼다의 2세대 레전드를 일부 부품만 국산화해서 그대로 조립 생산한 일종의 ‘뱃지엔지니어링’ 차종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