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제조사 현대자동차는 사업 초기에는 승용차의 제작부터 출발했다. 창업 초기에는 미국 포드와의 기술 제휴를 통해 유럽 포드의 코티나(Cortina)를 생산하기 시작해서 1975년 독자 모델 포니가 탄생하기까지, 현대자동차 역사의 초기는 승용차들이 채워 나갔다. 그리고 산업의 중흥기를 맞은 70년대 이후부터 상용차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은 경쟁적으로 상용차 시장에 뛰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7년, 포니의 성공으로 고무 받은 현대자동차는 자사 최초의 독자개발 소형 상용차, HD1000을 내놓게 된다.
HD1000은 현대 포터의 1세대에 해당하는 모델로, 이 라인업의 트럭과 밴 모델이 ‘포터’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현대자동차 HD1000은 비록 지금의 기준에서는 완성도가 상당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적재중량 1톤급의 소형 상용차가 사실 상 없다시피 했던 당시에는 크게 각광 받았다.
하지만 이렇게 발굴해 낸 틈새시장을 성공적으로 공략해 가고 있었던 현대자동차에게 크나 큰 악재가 닥쳤다. 바로 신군부 정권의 ‘자동차공업 통합조치’ 때문이다.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로 인해 현대자동차는 오로지 승용차와 대형 버스 및 화물차만을 생산해야 했다. 그리고 현대자동차가 먼저 개척한 소형 상용차 시장은 이 조치로 인해 승용차를 생산할 수 없게 된 기아자동차가 봉고(Bongo)를 통해 가져가는 형국이 되었다.
현대자동차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먼저 일궈 놓은 ‘판’을 기아자동차가 접수하는 것을 보면서 속이 꽤나 쓰렸을 터다. 그로부터 6년여가 지난 1986년, 자동차공업 통합조치가 해제되면서 현대자동차는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소형 상용차 모델을 내놓았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포터의 역사가 시작된다.
제휴에는 제휴로 맞선다?
현대자동차는 일본 미쓰비시자동차(이하 미쓰비시)와의 제휴관계가 유명하다. 1980년대를 전후로 공고해지기 시작한 양사의 관계, 그리고 자동차공업 통합조치가 해제된 1986년도부터 새로운 소형 상용차를 등장시키며 시장의 주목을 끌었다. 바로 HD1000 트럭의 후속 모델, ‘포터’를 내놓은 것이다.
현대자동차 포터는 독자개발 모델인 HD1000 포터와는 여러가지로 달랐다. 새로운 포터는 독자개발 대신, 이미 검증된 미쓰비시의 소형 상용차를 라이센스 생산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일본 자동차 업계의 경우, 1960년대를 전후하여 자동차 산업이 빠르게 발달해 왔기에 기존에 개발했던 HD1000 등 대비 우수한 수준의 완성도를 기대할 수 있었다. 일본은 예나 지금이나 소형 상용차 시장의 경쟁이 매우 치열하며, 대한민국을 제외한 아시아권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미쓰비시와의 제휴를 통해 델리카 트럭 2세대 모델을 차세대 포터로 라이센스 생산하고자 했다. 미쓰비시의 2세대 델리카는 1979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모델로, 당시 기아자동차가 판매하고 있었던 봉고와 동시대를 살고 있었던 모델이었다. 그런데 기아자동차의 봉고 또한 일본 마쓰다(Mazda)에서 생산하는 동명의 상용차를 라이센스 생산한 모델이다. 즉, 두 모델은 고향을 떠나 대한해협 건너 한국에서도 경쟁하게 된 것이다.
화려한 부활
현대 포터는 출시 초기, 실내 레이아웃의 방향만 빼면 미쓰비시 델리카 2세대 모델의 기본 구성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이 당시의 초기형 포터는 변속 레버가 지금과 같은 플로어 마운트 타입이 아닌, 컬럼 마운트 타입이었고 도어에 별도로 데칼을 입힌 것이 특징적이다.
외관 역시 다소 예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상당히 직선적인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각그랜저’와 마찬가지 맥락에서 ‘각포터’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차체 타입은 기본인 1열 3인승 구성의 싱글캡과 2열 6인승의 더블캡 모델이 존재했고, 이후 싱글캡의 뒤쪽 공간을 늘린 ‘슈퍼캡(Super cab)’ 모델이 추가되었다. 이 슈퍼캡 모델인 원본 델리카에는 없는 사양으로, 오로지 현대 포터에서만 이 구성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슈퍼캡 모델은 기본 싱글캡에 비해 뒤쪽에 여분의 공간이 존재 했으므로, 좀 더 편안한 운전자세를 취할 수 있음은 물론, 운전 중간에 차를 멈추고 등받이를 약간 눕혀 휴식을 취하거나, 공구상자 등과 같은 잡다한 물건들을 수납할 수 있는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어 큰 인기를 끌었다.
1986년 처음 출시된 2세대 포터는 기본형 모델을 기준으로 4,605mm의 전장과 1690mm의 전폭, 그리고 1,890mm의 높이를 가졌다. 전폭이 1,690mm인 이유는 당시 일본의 자동차 세제 상 소형으로 분류되는 마지노선이었기 때문이다. 엔진은 미쓰비시의 아스트론(Astron) 2.5리터 직렬4기통 디젤 엔진을 사용했다. 80마력/4,200rpm의 최고출력과 14.9kg.m/2,500rpm의 최대토크를 내는 이 엔진은 훗날 현대자동차가 자체 개량한 ‘T 엔진’을 거쳐, 오늘날 그랜드스타렉스와 포터II 등에 사용되는 ‘A 엔진’의 설계 기반으로 활용된다. 변속기는 5단 수동변속기로, 초도 생산분에서는 컬럼 마운트 타입을 사용하다가 후에 플로어 마운트 타입으로 변경된다.
현대 포터는 출시 후 6년 만인 1993년, 한 차례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다. 캡의 디자인 일부와 적재함의 설계, 대시보드 등이 변경되었다. 캡의 디자인은 기존의 포터에 비해 유선형의 디테일을 추가한 점이 눈에 띈다. 헤드램프는 원형 램프와 유선형 스타일의 베젤을 적용하였고 라디에이터 그릴을 없애 한층 매끈한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때부터 동급 최초로 차동제한장치(Limited Slip Differential, LSD)를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대시보드는 그레이스에 사용된 것과 동일한 것을 적용했으며, 쏘나타의 것과 동일한 3스포크 스티어링 휠, 그리고 승용차에 사용했던 ETR 오디오 등이 적용되었다. 엔진은 초기형에서 사용하던 미쓰비시 아스트론 엔진을 그래도 사용했으나, 1994년도부터 자체적으로 개량한 T 엔진이 추가되었다.
새롭게 태어난 포터는 80년대 1톤급 소형 상용차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던 봉고의 뒤를 맹추격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당시 기아자동차 또한 1987년, 기존의 봉고를 대대적으로 페이스리프트한 ‘파워 봉고’를 내놓고 1989년도부터 마쓰다의 신형 봉고를 기반으로 하는 풀 체인지 모델, ‘와이드 봉고’를 내놓으며 대응하며 팽팽한 경쟁을 이어 갔다.
2세대 포터는 지금의 4세대 포터 다음으로 오랫동안 판매된 모델이다. 1986년 처음 출시되어 최종적으로 단종을 맞은 것이 1997년이므로 장장 11년간 판매된 셈이다. 그리고 1997년도에는 새로운 설계와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뉴 포터’가 등장, 1톤 화물차 시장의 판도를 바꾸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