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차]현대자동차 포터 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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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했던차]현대자동차 포터 상편
  • 박병하
  • 승인 2019.12.27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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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제조사 현대자동차는 사업 초기에는 승용차의 제작부터 출발했다. 창업 초기에는 미국 포드와의 기술 제휴를 통해 유럽 포드의 코티나(Cortina)를 생산하기 시작해서 1975년 독자 모델 포니가 탄생하기까지, 현대자동차 역사의 초기는 승용차들이 채워 나갔다. 그리고 산업의 중흥기를 맞은 70년대 이후부터 상용차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은 경쟁적으로 상용차 시장에 뛰어 들기 시작했다.

최초의 고유모델 소형 상용차, ‘HD1000’으로부터 시작하다
1970년 이후로 국내 상용차 시장은 작게는 1톤급 내외의 소형부터 대형 차종에 이르는 다양한 종류의 상용차가 잇달아 출시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소형 상용차 시장을 틀어 쥐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포터 또한 이 시기에 태어났다.

포터는 통칭 ‘HD1000’이라고 불리는 소형 상용차 제품군의 트럭 버전으로 그 역사를 시작했다. 현대자동차가 1977년 출시한 HD1000은 당시 국내 시장에서는 상당히 혁신적인 차종이었다. 오늘날까지 캡오버형(1박스) 상용차의 대명사로 통하는 기아 봉고가 등장한 것이 80년도의 일이니 그보다 3년 빠른 것이다. HD1000은 트럭과 미니버스, 그리고 밴 등의 세 가지 형태로 일거에 출시가 이루어졌다.

현대 HD1000은 당시 슬슬 늘어나기 시작한 중/소형 상용차 수요를 잡기 위해 기획된 모델이었다. 현대자동차가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차량은 포드 트랜짓(Tranjit)의 하부설계를 기반으로 현대자동차에서 거의 독자 개발한 수준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항간에는 이 차량이 미쓰비시의 소형 상용차, 델리카(Delica)의 라이센스 생산품이라고 잘못 알려진 경우가 있는데, 델리카의 라이센스 생산품은 2세대 포터와 1세대 그레이스다.

HD1000의 트럭 버전으로 시작한 포터는 포니의 헤드램프를 붙인 것만 같은 외형이 특징이다. 특히 벨트라인이 높고 창이 작다는 점에서는 50~60년대의 유럽산 상용차를 약간 닮아 있기도 하다. 초창기 포터는 싱글캡 모델을 기본으로 더블캡 모델도 마련되어 있었으며, 밴(유개화물차) 모델 역시 ‘포터 밴’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엔진은 약 55마력의 최고출력을 내는 영국 퍼킨스(Perkins)의 1.8리터급 디젤엔진을 라이센스 생산하여 탑재했다고 전해진다.

HD1000은 당시 1톤급에 해당하는 소형 상용차가 많지 않았던 대한민국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소형 상용차가 부족했던 시장의 수요가 몰리면서 HD1000은 1980년, 밴 모델과 미니버스를 포함하여 누적 판매량 3만대에 이르는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포터, 그리고 HD1000은 1980년도에 돌연 단종되고 만다.

이는 1980년, 신군부 정권의 국보위가 내린 ‘자동차공업 통합조치’ 때문이다.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는 명목 상, 자동차산업에 대한 국가 주도의 ‘구조조정’안으로, 60~70년대를 전후한 자동차 업계의 과잉투자와 가동률 저하를 바로잡겠다는 명분으로 내린 것이었다. 이 조치는 두 번의 조정을 거쳐 1982년에 시행되었으며, 1989년에 최종 해제되었다.

이 조치의 내용에 따르면, 현대자동차와 새한자동차(지엠코리아, 한국지엠)는 승용차만 생산한다는 것과 기아자동차는 5톤 미만 소형 상용차만 생산하도록 했다. 초기에는 현대차가 대우 산하인 새한자동차를 합병하고, 그 대신 대우에게 현대양행(현 두산중공업)을 넘길 것을 요구했으며 기아산업에는 이륜차 사업부를 대림산업에 넘기고 승용차의 생산에서 손을 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는 업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몇 차례의 조정을 거친 뒤,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라는 이름으로 1982년부터 본격적인 발동에 들어간다.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는 현대자동차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자동차 기업들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날벼락과 같았다. 막대한 자금을 들여 준비한 제품 라인업을 통째로 정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당시 가장 위기에 몰렸던 회사 중 하나는 승용 라인업이 통째로 날아간 기아자동차였지만, 현대자동차 역시 큰 손해를 안아야 했다.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는 국내 자동차 제조사 간의 시장 경쟁 구도를 무너뜨리고 국내 자동차 산업의 질적 수준을 크게 후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여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사의 ‘암흑기’로 일컬어진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기아자동차가 생존을 위해 내놓은 ‘봉고(Bongo)’를 빅히트 시키는 광경을 두 눈 뜨고 지켜봐야만 했다. 현대자동차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먼저 일궈 놓은 ‘판’을 기아자동차가 접수하는 것을 보면서 속이 꽤나 쓰렸을 터다.

그로부터 6년여가 지난 1986년, 자동차공업 통합조치가 해제되면서 현대자동차는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소형 상용차 모델을 내놓았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포터의 역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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