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이 일본 자동차 업계에 남긴 것, 3대 스포츠카 - 닛산 스카이라인 GT-R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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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이 일본 자동차 업계에 남긴 것, 3대 스포츠카 - 닛산 스카이라인 GT-R 편
  • 모토야
  • 승인 2022.01.12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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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부동산 붐으로부터 시작된 일본의 거품경제가 1990년대 들어 붕괴하면서 일본은 이른 바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잃어버린 20년', '잃어버린 30년'이라고 일컬어지는 초장기 경기 침체를 넘어, 디플레이션(물가와 소득이 동시에 떨어지는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거품경제가 극에 달해 일시적으로 엄청난 현금을 갖게 되었던 일본의 자동차 업계는 이 돈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참가하는데만 해도 어마어마한 비용이 드는 전세계의 모터스포츠 무대에 거침없이 뛰어 들었고, 1960년대 일본 자동차 산업의 중흥기부터 지속적으로 키워오고 있었던 자국 내의 모터스포츠 기반도 한층 단단하게 다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뿐만 아니라 투자 비용 대비 시장성이 지극히 낮은 고성능 스포츠카의 개발에도 아낌없이 돈을 쏟아 부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차들이, 오늘날에도 JDM(일본 내수차량)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일본의 3대 스포츠카들이다. 자동차에 대해 관심이 있으면서도 특히 2000년대 만화 '이니셜D' 시리즈나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초기 시리즈를 보고 자라 왔던 세대라면 적어도 한 번쯤은 눈에 들어 왔을 법한 그 차들이기도 하다. 이번 기사에서는 한때 고질라(Godzilla)라고도 불렸던, 닛산자동차(이하 닛산)의 스포츠카, 스카이라인 GT-R(Skyline GT-R)에 대하여 살펴본다.

닛산의 스카이라인 GT-R은 본래는 '다른 집 자식'이었다.  '프린스자동차(プリンス自動車工業株式会社)'라는 소규모의 자동차 제작사가 개발한 차종으로, 당시로서는 성능을 중시하는 스포티한 성향을 가진 세단 모델이었다. 하지만 1966년도에 프린스자동차의 경영이 악화되어 닛산에 흡수 합병되면서 스카이라인은 닛산의 문중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스카이라인은 당시 내수나 수출이나 저가형 차종이 중심이었던 닛산의 라인업에서 당시 성능을 중시하는 고급 제품군이 없다시피했던 닛산에게 큰 보탬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1968년 10월에 열린 도쿄모터쇼에서 닛산은 스카이라인의 고성능 모델을 선보이게 되었는데, 이 차가 바로 '스카이라인 2000 GT-R(Skyline 2000 GT-R, KPGC10)'이었다. 닛산의 첫 고성능 스포츠카였던 스카이라인 2000 GT-R은 2.0리터 직렬 6기통 엔진으로 160마력의 최고출력과 17.0kg.m의 최대토크를 발휘, 당시 일본의 시판차종로서는 상당한 수준의 성능을 자랑했다. 1세대 스카리아린 GT-R은 특유의 상자곽 같은 모양새로 인해 '하코스카(ハコスカ)'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여기서 '하코'는 일본어로 '상자'를, '스카'는 스카이라인을 줄인 것이다. 

스카이라인은 프린스자동차 시절부터 모터스포츠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1964년 스즈카 서킷에서 열린 일본 그랑프리에서 당시 최강으로 통했던 포르쉐 904 카레라 GTS를 턱밑까지 뒤쫓으며 일순간 추월하기까지 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당시 일본 모터스포츠 판에서 최강으로 통했던 포르쉐를 위협했던 이 사건으로 인해 스카이라인은 일본 자동차 업계에서 주목받는 존재가 되기 시작했고, 닛산이 프린스자동차를 인수한 후에도 스카이라인을 지속적으로 투입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닛산은 이 스카이라인 2000 GT-R을 자국 내 모터스포츠에 투입시켜 쟁쟁한 경쟁자들과 달리며 끊임없이 진화시켰다. 

1972년 도쿄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인 두 번째 스카이라인 2000 GT-R(KPGC110)은 이와 같은 모터스포츠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층 진화하였다. 2세대 스카이라인 GT-R은 신형의 섀시코드 C110 스카이라인을 기반으로 개발되었으며, 이 덕분에 외관의 경우에는 상자곽 같았던 선대의 디자인에서 벗어나, 공기역학적으로 우수한 패스트백형 루프를 갖게 되었다. 이 때 당시의 스카이라인 GT-R은 당시의 기본형 스카이라인의 광고로 인해 '켄메리 스카이라인'이라 불리게 되면서 자연스레 '켄메리 GT-R'이라는 별칭을 갖게 됐다.

엔진과 트랜스미션은 하코스카에 사용되었던 S20형 직렬 6기통 엔진과 5단 수동변속기를 사용하였지만, 성능은 더욱 개선하여 보다 뛰어난 주행성능을 자랑했다. 아울러 섀시 설계 또한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어 레이스카의 기반으로서 더욱 탄탄한 기본기를 가질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2대 스카이라인 2000 GT-R은 너무나도 좋지 못한 시기에 태어났다. 2세대 스카이라인 GT-R이 막 시판에 돌입하고 있었던 1973년도에 하필이면 1차 석유파동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전세계의 자동차 연비 및 배출가스 관련 규제가 전례 없이 강화되면서 2세대 스카이라인 GT-R은 단 200대조차 생산하지 못한 채 단종되고 말았으며, 세계의 자동차 업계 전반에서 연료소모가 많은 대배기량, 고성능 차량의 판매량이 뚝 떨어지고, 경제성 위주의 소형 승용차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20년 가까이 그 명맥이 끊기고 말았다. 다행히 스카이라인 자체의 맥은 끊기지 않고 계속 이어지면서 후대의 GT-R들에 설계 기반을 제공하게 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일본에 거품경제가 도래하면서 일본의 자동차 업계는 넘치는 현금을 쏟아 부으며 고성능차 개발에 혈안이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닛산은 과거 하코스카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새로운 스카이라인 GT-R을 절치부심으로 준비하게 된다. 그리고 1989년, 일본을 넘어, 세계적으로 스카이라인 GT-R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3세대 스카이라인 GT-R이 탄생했다.

3세대 스카이라인 GT-R(이하 BNR32)은 이전 세대까지의 스카이라인 GT-R과는 여러 면에서 다른 차로 거듭났다.  1대인 하코스카와 2대인 켄메리 GT-R은 모두 후륜구동을 사용했지만, 이 BNR32부터는 닛산 사륜구동 기술력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아테사 E-TS(ATTESA E-TS) 상시사륜구동 시스템을 적용했다. BNR32의 아테사 E-TS는 전자식 토크 분배(Electronic Torque Split) 기술이 적용된 고성능 차량 전용의 사륜구동 시스템으로, 차량의 움직임을 초당 10회 감지하며 최적의 구동력을 전자식으로 배분하는 혁신적인 기술이 적용되었다. 

그리고 엔진은 그 유명한 'RB26DETT(이하 RB26)' 직렬 6기통 트윈 터보 엔진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BNR32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RB26엔진은 전자식 연료분사 시스템과 트윈터보를 적용하고 있으며, 캠샤프트 듀레이션이 흡기 240도, 배기 236도인, 당대 일본 자동차 업계에서 손꼽히는 고회전 지향의 터보엔진이다. 물론 시판 사양은 일본의 시판차량 출력 규제로 인해 280마력의 최고출력을 갖지만, 본래 이 엔진은 모터스포츠 출전을 위해 600마력의 최고출력에 대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엔진이다. 최대토크는 40.0kg.m이다.

하지만 BNR32에는 큰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차체 앞쪽으로 쏠린 무게 배분이었다. BNR32의 전후 무게배분은 60:40에 달했는데, 이는 아테사 E-TS의 도움으로 이를 극복하고, 상당히 안정적인 트랙션을 자랑하게 되었다.

이렇게 이전세대와는 차원이 다른 하드웨어로 무장하게 된 BNR32는 전일본 투어링카 챔피언십에서 당시 최강이었던 포드 시에라 RS500을 큰 폭으로 제치고 폴 포지션을 따내고, 폴 투 윈으로 경기를 마무리하는 화려한 데뷔전을 치렀다. 그리고 닛산은 90년 JTC에서 첫 승리를 기록한 이래, 1993년까지 총 29전 29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기에 이른다. 심지어 호주 투어링카 레이스에 출전해 상위권을 휩쓰는가 하면, 스파-프랑코샹 24시간 내구레이스에서도 포드 시에라 RS500, BMW M3 등을 찍어 누르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뉘르부르크링 서킷에서 당시 일본의 양산차로서는 가장 빠른 8분 20초의 기록을 내기도 했다.

20년에 가까운 침묵을 깨고, '전설'로 기록되기 시작한 스카이라인 GT-R은 1995년, 4세대로 또 한 번 진화하게 된다. 4세대 스카이라인 GT-R(이하 BCNR33)은 당시 세단형 스카이라인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되었는데, 이로 인해 차체가 BNR32에 비해 상당히 커졌고, 더욱 향상된 직진 안정성을 보였다.

엔진은 BNR32의 RB26 엔진을 그대로 사용했고, 구동시스템 역시 아테사 E-TS를 이어 받았으며, 능동형 차동제한장치(LSD) 등, 한층 고도화된 전자장비가 적용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BNR32가 지적받았던 전후 무게 배분을 55:45까지 조정하는데 성공했다. 여기에 후륜 조향 시스템까지 적용된 BCNR33은 뉘르부르크링 서킷에서 BNR32가 세웠던 8분 20초를 무려 21초나 앞당긴 7분 59초로 주파하면서 8분대의 벽을 깨뜨리는 데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BCNR33은 역대 스카이라인 GT-R 가운데 '흑역사'로 평가된다. 세단의 차체와 휠베이스를 거의 그대로 사용하면서 직진 안정성의 향상과 더불어 개발비용을 절감한 것 까지는 좋았지만, 이로 인해 차량의 기동성능이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닛산이 시판차량과는 전혀 다르게 튜닝을 해 놓은 '시승 전용 차량'을 미디어에 제공한 사실이 발각되면서 두고두고 비난 받게 된다. 이와는 별개로, 지금은 작고한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서 주인공 '브라이언 오코너'를 맡은 배우 故 폴 워커가 소유했던 스카이라인 GT-R이 이 차종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1999년, 이 스카이라인 GT-R의 최종진화형, 5세대 스카이라인 GT-R(GF-BNR34, 이하 BNR34)이 등장했다. BNR34는 새로운 플랫폼의 적용과 더불어, 더 작은 차체와 더 짧아진 휠베이스로, BCNR33의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기동성능을 크게 보완하는 한 편, 공기역학적으로도 더욱 우수한 특성을 갖도록 차체 하부 거의 전체를 덮는 언더커버와 리어 디퓨저 등을 적용하였으며, 더욱 강건한 차체구조를 갖게 되었다. 

엔진은 BNR32때부터 사용했던 RB26 엔진의 개선품을 적용했으며, 스카이라인 GT-R의 핵심인 아테사 E-TS 또한 아테사 E-TS Pro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했다. 아울러 더욱 정교해진 능동형 LSD를 적용해 주행성능을 한층 더 끌어 올렸다. BNR34는 성능을 더욱 끌어 올린 V.Spec 버전도 만들어졌는데, 이 V.Spec GT-R은 영국 시장에 약 80대 가량이 수출되었다. 영국 사양의 V.Spec GT-R은 3개소에 오일쿨러를 추가하는 한 편, ECU 매핑을 재조정하고 전용으로 세팅한 능동형 LSD를 적용했다.

하지만 BNR34는 켄메리 GT-R과 더불어 가장 단명한 GT-R이기도 하다. 2002년, 배기가스 규제를 충족하지 못하게 되면서 생산이 종료되어버린 것이다. 이 당시는 전례 없이 강화된 배출가스 규제로 인해, 일본의 대표 스포츠카들이 줄줄이 단종을 맞는 시기이기도 했다. 따라서 스카이라인 GT-R 가운데 BNR34는 중고차 가격이 굉장히 높은 편이다. 이 차는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 뿐만 아니라 여러 JDM과 관련된 미디어 매체에서 단골로 출연하는 차량이었다.

이렇게 닛산 스카이라인 GT-R은 완전히 사라지나 싶었으나 5년 뒤인 2007년, '닛산 GT-R'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하게 된다. 일본의 3대 스포츠카 중에 가장 먼저 부활한 차량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차는 본래 중형세단인 스카이라인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차가 아닌, 전용 플랫폼을 사용하는 독자적인 초고성능 스포츠카로서 만들어졌다. 물론 엔진은 당시의 스카이라인(구 인피니티 G35/37)이 사용하던 V6 엔진의 설계를 기반으로 했고, 구동장치 역시 아테사 E-TS에 기반하고 있지만, 그동안의 스카이라인 GT-R과는 차원이 다른 성능을 자랑했다. 비록 스카이라인 GT-R의 골수팬들은 이 차를 '적통'으로 인정해주지는 않지만, GT-R의 이름을 이어 받은, 세계의 슈퍼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고성능 스포츠카로 인식하고 있다. 닛산 GT-R은 등장 이래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를 거치며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생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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