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핫한 세그먼트로 떠오른 것은 바로 '더 작은 SUV'를 표방한 소형 크로스오버다. 대한민국 소형 크로스오버의 역사는 2013년, 국내 최초의 소형 크로스오버인 쉐보레 트랙스(Chevrolet TRAX)가 그 시초다. 하지만 쉐보레 트랙스는 ‘더 작은 SUV’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현실에 구현해냈음에도, 시장에서의 반응은 싸늘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내수 시장 출시가 확정되면서 하나 둘씩 드러난 정보들은 트랙스를 기다리고 있었던 예비 소비자들의 기대에 전혀 맞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같은 해 하반기, 르노삼성자동차는 'QM3'라는 이름의 소형 크로스오버를 공개했고, 사전계약에서부터 돌풍을 일으켰다. 차체 크기는 트랙스에 비해 작은 데다, 가격은 트랙스에 비해 다소 높았음에도, 르노 자동차의 훌륭한 디젤엔진 기술로 일궈낸 최강급 연비와 뛰어난 주행성능, 한층 세련된 디자인 등으로 호평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차는 프랑스 르노자동차의 캡처(Captur)를 수입해, 간단한 현지화를 거친 모델이다.
그리고 QM3의 등장 후 7년여가 지난 2020년 하반기, QM3의 직계 후손이라 할 수 있는 르노 캡처의 2세대 모델이 르노삼성 자동차를 통해 정식을 대한민국 땅을 밟았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숫제 르노 브랜드 차종으로 판매되고 있기도 하다. QM3의 직계 후손, 르노 캡처를 시승하며 그 매력을 하나하나 짚어본다. VAT 포함 차량 기본가격은 2,575~2,870만원.
Design
2세대 르노 캡처는 르노 탈리스만 이래로 시작된 르노자동차의 새로운 디자인 언어가 꽤나 극적으로 반영되어 있는 외관을 갖추고 있다. 르노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내세우고 있는 C자형 LED 주간상시등과 더불어, 르노 로장주 엠블럼을 중심으로 좌우로 길게 뻗어 나가는 라디에이터 그릴, 그리고 전반적으로 역 V자형을 그리는 범퍼 하부의 디자인이 어우러져, 아주 역동적인 인상의 마스크를 만든다.
측면에서는 르노삼성 QM3의 것을 계승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역동적인 분위기를 가감없이 드러내는 유기적인 굴곡들을 시작으로, 해치백에 가까운 프로파일을 가진 QM3의 날렵한 실루엣이 눈에 띈다. 그리고 여기에 벨트라인을 이용해 루프 상하부를 분리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플로팅 루프스타일을 연출하고 있다는 점도 QM3와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다.
뒷모습에서는 르노의 C자형 주간상시등을 형상화한 테일램프와 더불어, 전면부의 역동적인 감각을 그대로 잇는 과감한 디테일이 특징이다. 범퍼 하부에는 큼지막한 디퓨저와 화려한 크롬 장식을 더해 멋을 부렸고, 테일램프의 형상을 좌우로 길게 하여 시각적으로 차를 넓고 안정되어 보이게 한다. 전반적으로 기존의 QM3에 비해 한층 역동적이고 남성적인 이미지로 거듭났을 뿐만 아니라 차급이 한 단계 상승된 것만 같은 고급스러워진 분위기가 도드라진다.
Interior
실내에서는 기존의 QM3와 비교했을 때, 외관의 변화를 뛰어 넘는 수준의 변혁이 이루어졌다. 현행 르노의 소형~준중형급 차종에 적용되고 있는 것과 거의 동일한 기조의 대시보드 디자인을 사용하고 있으며, 내장재의 품질도 현격히 상승했다. 과거 짐짓 장난감스러운 분위기로도 비춰졌었던 QM3와 비교하면, 숫제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느껴질 정도다.
스티어링 휠은 현행의 XM3 등, 신차종에 적용되고 있는 것과 동일한 것을 사용한다. 그립감도 우수하고, 버튼 조작도 편리하다. 사양에 따라서는 패들시프트가 적용되며, 스티어링 컬럼에는 별도의 오디오 리모컨이 마련된다. 돌출형으로 설계된 중앙의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는 높은 해상도와 향상된 작동성을 경험할 수 있으며, S-링크를 대체한, 새롭게 개발된 신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덕에 한층 편리한 사용이 가능하다. 계기판 역시 사양에 따라 풀 LCD 화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러모로 선대에 해당하는 QM3와는 아득히 멀어졌다.
하지만 단 한가지 QM3의 것을 계승한 것이 보인다. 바로, 서랍식으로 여닫히는 구조의 글로브박스다. QM3의 서랍형 글로브박스는 동래의 자동차용 글로브박스를 아득히 능가하는 용량과 편의성으로 주목을 끈 바 있다. 그리고 현행 르노 캡처의 글로브박스 역시, 그러한 이점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전방위로 수납공간이 넉넉하게 마련되어 있는 편이어서 주머니 속 잡동사니들을 가져다 놓는 데 일말의 불편함이 없다.
Space
운전석은 세미버킷형에 가깝게 디자인 되어 있으며, 신체를 비교적 타탄하게 지지해 주는 착좌감을 지니고 있다. 소형 SUV의 좌석으로서 전반적으로 좋은 만듦새를 가지고 있으며, 과거의 QM3처럼 다이얼식이 아닌, 전동조절 기능까지 제공한다. 조수석은 수동 레버로 조정한다. 단, 르노 계열 자동차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높다란 시트 포지션이 조금 마음에 걸린다. 이는 여성 운전자들은 선호하게 될 만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남성운전자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리는 요소다. 운전석과 조수석은 양쪽 모두 2단계의 열선 기능을 제공한다.
뒷좌석 역시 과거 QM3에 비해 한층 여유로워졌다. 다만, 앞좌석 이상으로 드높은 시트포지션과 리클라이닝 기능의 부재로 인해 실질적인 공간은 여전히 동급의 국산 차종에 비해 크게 뛰어나지는 않은 편이다. 이는 뒷좌석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유럽산의 소형 크로스오버들에서 흔히 나타나는 특징이지만 뒷좌석 공간에 신경을 많이 쓰는 국내에서는 감점사유가 될 수 있다.
트렁크 용량은 우수한 수준이다. 르노 캡처는 총 536리터에 달하는 트렁크 용량을 자랑한다. 트렁크 바닥은 높이를 조절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뒷좌석을 접었을 때에는 비록 성인이 누울 만한 길이까지 나오지는 않지만, 많은 양의 짐을 실을 때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Engine & Towing
국내에서 판매되는 르노 캡처는 1.3리터(1,332cc) TCe260 엔진과 7단 EDC 듀얼클러치 변속기 조합을 사용한다. 1.5 dCi 디젤엔진을 사용했던 QM3와는 완전히 다르다. 비록 공인연비는 복합 기준 13.5~13.0km/l지만, 가솔린 엔진으로서 비교적 우수한 효율을 선보인다. 최고출력은 152마력/5,200rpm, 최대토크는 26.0kg.m/2,250~3,000rpm으로, 배기량에 비해 고출력의 엔진이다. 구동방식은 전륜구동을 사용한다.
르노 캡처는 동급의 소형 크로스오버 중에서는 크게 부족하지 않은 557~1,200kg 수준의 최대견인중량을 갖는다. 이는 소형의 카고 트레일러나 소형 카라반 정도는 충분히 견인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차급이 차급인 만큼, 견인할 수 있는 중량과 크기가 제한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Impression
르노 캡처는 디젤 엔진을 사용했던 시절의 QM3와 비교한다면, 격세지감이 들 정도로 월등한 정숙성을 자랑한다. 아이들링이나 저회전 영역에서는 엔진 자체의 소음과 진동이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은 편. 물론, 3,000rpm 이상의 회전수로 넘어가는 순간, 소음과 지동이 눈에 띄게 증가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소형급의 체급 내에서 충분히 용인할 만한 수준이다. 승차감은 상당히 탄탄한 편이지만, 허리를 괴롭히는 수준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승차감과 안정감 사이에서 타협점을 잘 찾은 듯 하다. 뒤쪽이 가볍게 통통 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운전석을 통해 전달되는 충격도 크지 않고, 뒷바퀴 역시 노면을 잘 붙들어 매어 주기 때문에 안정감이 무너지는 일은 좀체 없다.
가속력은 우수하다. 조그만 차체에 150마력 가량의 출력을 내는 터보 엔진을 싣고 있는데다, 변속기는 극강의 효율을 자랑하는 듀얼 클러치 변속기를 사용한다. 그리고 이 모든 요소들이 시너지 효과를 내어, 르노 캡처는 동급에서 체감 상 가장 팔팔한 동력성능을 선보인다. 게다가 조종성능은 선대인 QM3 보다 더욱 직관적이고 정교해졌다. 그 덕분에 차를 다루기가 무척 쉬운 편이다. 타면 탈수록 소형 크로스오버라기 보다는 본토 유럽산의 소형 해치백에 올라 탄 기분을 안겨준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초대 QM3의 것을 계승 및 발전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적인 운행 영역은 물론, 기분 전환을 위한 주행에서도 두루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르노 캡처는 유럽 출신 크로스오버의 다소 전형에 가까운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었다.
Verdict
국내의 소형 크로스오버 시장이 무서운 성장세를 거듭하면서, 이제는 준중형 세단을 제치고 '생애 첫 차'의 영역까지 밀고 들어 온 지금, 이 세그먼트에는 수많은 경쟁자들이 존재한다. 현재 르노 캡처를 포함해 시장에서 소형 크로스오버임을 표방하는 차종은 국산차만 무려 10종에 달할 지경이다. 이렇게 강력하고도 수많은 경쟁자들로 우글거리는 시장에서 르노 캡처는 국내 시장의 취향과는 다소 벗어나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가장 인기 좋은 소형 크로스오버인 기아 셀토스를 예를 들면, 주행 성능 보다는 화려한 외관, 넉넉한 트렁크와 뒷좌석, 그리고 다양한 편의장비를 제공한다. 하지만 르노 캡처는 이와는 다소 상반된 구성이다.
과거에 기자는 QM3를 두고 "연비 하나로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의 르노 캡처는 "모든 단점이 용서가 된다"고 말하고 싶을 만큼 인상적인 변화상을 선보였다. 진정으로 나만을 위한 소형 크로스오버를 찾는다면, 르노 캡처는 꽤나 훌륭한 답안이 될 수 있다. 자신만의 개성이 확고하면서도 과거 QM3에 비해 실로 격세지감을 들게 할 정도로 고급스러워진 감각을 지니고 있으며, 주행성능 역시 훌륭하다. 둔하고 굼뜬 크로스오버가 아닌, 해치백에 훨씬 가까운 영민한 몸놀림과 똘똘한 엔진 등으로 주행을 즐기는 맛이 있다. 확고한 개성을 중시하고, 달리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르노 캡처는 꼭 한 번 경험해봐야 할 소형 크로스오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