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골프는 전세계 어디에서나 폭스바겐 판매의 주역이다. 한국 시장에서도 디젤 파워트레인을 앞세운 골프는 티구안, 파사트와 함께, 폭스바겐의 명실상부한 트로이카로 통했다. 하지만 디젤게이트라는 전대미문의 스캔들 이후, 폭스바겐의 판매량은 예년만 못하게 되었다. 핵심 전력인 티구안이 상품성을 다한 데다, 파사트 역시 부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한 달간 파사트와 티구안은 불과 1천여대도 팔지 못했지만, 골프만큼은 총 1,744대를 판매하며 폭스바겐코리아를 홀로 견인하고 있다.
폭스바겐 골프 1.4 TSI 모델은 과거에는 디젤 모델들의 인기에 밀려, 대체로 한정 모델에 가까운 형태로 판매되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모델 가짓수를 3종으로 늘리고, 주력이었던 2.0 TDI를 슬슬 밀어내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중이다. 시승한 골프 1.4 TSI는 내비게이션이 추가된 `프리미엄` 모델로, VAT 포함 가격은 3,490만원이다.
골프 1.4 TSI는 외견 상으로는 2.0 TDI 모델과 크게 구분이 가지는 않는다. 강조된 직선과 탄탄한 비례, 그리고 활시위 형태로 꺾인 두터운 C필러가 돋보이는, 7세대 골프의 전형적인 모양새다. 차이점이라고는 특정 휠의 적용 여부와 엠블럼 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시승차인 프리미엄 모델에는 17인치 싱가포르(Singapore) 알로이 휠과 225/45R17 규격의 타이어를 사용한다. 기본형 모델에는 16인치의 도버(Dover) 알로이 휠과 205/55R16 사이즈의 타이어가 적용된다.
실내 역시 일반적인 골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능적인 조형미에 충실하며, 깔끔하고 과장이 없는 담백함이 드러난다. 짙은 회색 톤의 실내에는 피아노 블랙 인테리어 장식으로 밋밋함을 지우기 위한 흔적이 보인다.
D컷 형태의 스티어링 휠은 대부분의 골프들에게서 볼 수 있는 그것이고, 깔끔하고 기능적인 계기판 역시 마찬가지. 내비게이션 기능이 포함된 시승차는 `Discover Pro` 시스템이 탑재되어 있으며, 내비게이션은 지니 맵을 사용하고 있다. 시스템은 한글화는 되어있지 않으나, MP3 파일 등에서 한글 폰트를 지원한다.
좌석은 비엔나 가죽으로 마감되어 있다. 앞좌석은 세미 버킷 형태의 스포츠 시트이며, 다이얼식으로 등받이의 각도를, 펌핑레버로 높이를 조절한다. 운전석과 조수석은 양쪽 모두 3단계의 열선 기능을 지원하며, 운전석 한정으로 레버식 허리 받침을 제공한다. 착석감은 무르지도, 딱딱하지도 않은, 적당한 단단함에 가깝다. 뒷좌석은 C세그먼트 해치백으로서는 부족하지 않은 착석감을 비롯하여, 성인 남성에게도 비교적 넉넉한 공간을 제공한다.
트렁크는 공간설계가 잘 되어 있어, 일반적인 준중형 세단이 딱히 부럽지 않은, 380리터의 기본 용량을 제공한다. 이는 동급의 해치백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의 트렁크 용량이다. 뒷좌석은 6:4 분할 접이 기능 외에도 중앙 스키쓰루 기능까지 지원한다. 선반은 필요하지 않을 때 트렁크 바닥 아래의 공간에 수납이 가능하다. 스페어 타이어는 제공되지 않는다.
골프 1.4 TSI는 최고출력 140마력/4,500~6,000rpm, 최대토크 25.5kg.m를 발휘하는 신형의 1.4리터 TSI 엔진을 심장으로 한다. 6세대 모델의 트윈 차저(터보 수퍼차저) 엔진에서 수퍼차저를 떼어내고, 터보차저를 최적화한 구성이라 볼 수 있다. 엔진과 짝을 이루는 변속기는 건식의 7단 DSG 더블클러치 변속기다.
골프 1.4 TSI의 가속 페달을 카펫 너머까지 밟아 차를 다그치면, 짤막한 터보 랙이 발생하면서 일순간 뜸을 들인다. 하지만 그 일순간의 뜸들임이 지나고 나면,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야무진 힘이 앞바퀴로 전달되면서 경쾌하게 전진을 시작한다. 조그마한 1.4리터 엔진에서 생성되는 140마력의 출력과 25.5kg.m의 토크는 C세그먼트 사이즈의 해치백에게는 충분하고도 남는 힘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7세대에 접어들면서 한층 가벼워진 몸무게 덕에, 경쾌한 느낌이 더욱 살아난다. 1단 출발 후 45km/h에서 2단으로, 2단 75km/h에서 3단으로 변속되어 100km/h를 돌파, 그대로 115km/h까지 가속하며 4단으로 변속된다. 0-100km/h 가속 시간은 8.4 초로, 2.0TDI의 8.6초보다 약간 더 빠르다. 운전을 즐기는 측면에서도, 일상적인 운행에서도 딱히 부족하지 않은 순발력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단 DSG의 반응 역시 빠르고 정확한 편이며 착실하게 동력을 앞바퀴로 전달한다. 고속 주행 중의 안정감도 무난한 편이다.
코너링 역시, 탄탄한 밑바탕을 지닌 골프의 실력을 유감 없이 발휘한다. 직결감이 좋은 스티어링 시스템 덕에 조타를 할 때마다 고개가 절도 있게 돌아가며, 탄탄한 하체와 저중심 설계가 돋보이는 섀시가 어울려, 시종일관 경쾌한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 여기에 전자식 차동기어 잠금장치와 크로스 디퍼렌셜 시스템 덕에 한층 정교한 핸들링을 자아낸다. 빠른 속도에서 번개같이 움직여주는 운동 성능은 아니지만, 해치백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경쾌함을 즐기기에는 한 점의 부족함도 없다.
물론, 골프 1.4 TSI의 동력 성능과 운동 성능은 전반적으로 GTI와 같은 짜릿함과는 거리가 있다. GTI와 같은 특별모델보다는 더 많은 소비자를 품을 수 있어야 하는 모델인 만큼, 일정한 선에서 절제가 되어 있다는 느낌에 더 가깝다. 일상적인 운행에서 나타나는 감각에서 선을 그었다는 느낌이 확실하게 든다. 기본적으로 디젤 엔진을 사용하는 골프에 비해 한층 정숙한 편이며, 승차감은 탄탄하되, 딱딱하지는 않다. C세그먼트 해치백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가장 무난한 정도의 정숙성과 승차감을 지니고 있는 차가 바로 골프 1.4 TSI라고 할 수 있다.
작은 배기량의 가솔린 엔진과 효율이 좋은 더블클러치 변속기, 그리고 상황에 따라 배기량을 가변 제어할 수 있는 기능에 힘입어, 연비는 준수한 편이다. 공인 연비는 도심 12.1km/l, 고속도로 15.6km/l, 복합 13.5km/l이다. 시승을 진행하며 트립컴퓨터로 기록한 구간 별 평균 연비는 공인 연비와는 다소 다르다. 출퇴근 길의 혼잡한 도심에서는 8.4km/l까지 떨어지고, 한산한 시간대에는 비교적 손쉽게 10.0km/l 이상의 평균 연비를 낼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공인 연비인 12.1km/l를 웃돌기도 한다. 고속도로에서 100km/h로 정속주행을 실시한 경우에는 평균 16.5km/l의 결과를 냈다.
폭스바겐 골프 1.4 TSI는 곳곳에서 소형차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덕목들을 충실하게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비록 판매량 면에서는 디젤 라인업에 미치지 못하지만, 직접 경험해 보면 디젤 모델만큼이나 매력적인 차임을 알 수 있다. 체구에 비해 넉넉한 공간과 충분한 편의성, 그리고 C세그먼트 해치백에게 기대할 수 있는 탄탄하고 경쾌한 주행 성능을 모두 가지고 있다. 또한, 3,090~3,490만원의 가격은 2.0 TDI 모델의 3,450~3,840만원보다 낮아, 매력을 더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디젤의 연비를 가지지는 못했으나, 디젤이 갖지 못하는 기민한 주행 감각과 준수한 균형감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이다. 고성능 해치백이라 할 수 있는 GTI나 R에는 비견할 수 없어도, 운전을 즐기는 측면에서 크게 부족함이 없다. 그러면서도, 일상에서는 한 점 부족함 없는 능력을 고스란히 발휘한다. `가볍게 운전을 즐길 수 있으면서도 일상을 방해하지 않는 해치백`. 골프 1.4 TSI를 한 마디로 줄인다면 그렇게 표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