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군이 슬슬 떠날 채비를 한다. 여전히 평균 기온이 한 자릿수를 기록하기는 해도, 지난달처럼 두꺼운 겉옷을 꽁꽁 싸맬 정도는 아니다.
지난 2월, 자동차 시장은 그 날씨만큼 추웠다. 설 연휴가 끼어있던 데다, 기본적으로 28일까지 밖에 없는 2월은 전통적인 비수기로 꼽혔다. 그래서 2월은 성적 하락이 눈에 띄었던 1월보다도 전반적인 판매량이 떨어졌다.
국내 완성차 업체 5개사의 2월 합산 판매량은 10만 5천 대가량에 불과했다. 11만 2,452대를 기록했던 2018년 1월보다 판매량이 7천 대 이상 줄었다. 연휴가 끼어있었음을 감안하면 하락폭이 생각보다 크진 않지만, 58개 모델 중 15개 모델만이 전월대비 판매량 증가를 보여 시장이 전반적인 하락세에 있었음을 얘기했다.
이러한 하락세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전장에선 어김없이 전쟁이 치러졌다. 지난 2월, 승리의 미소를 지은 자는 과연 누구였을까.
우선 대형차 시장에선 제네시스 G80이 큰 격차로 카테고리 1위를 차지했다. 24.5%의 큰 하락세를 보였음에도 단연 돋보이는 성적이었다. 제네시스 브랜드 플래그십 모델인 EQ900이 뒤를 잇긴 했으나, 세그먼트와 가격대가 상이하여 볼륨은 세 배 이상 차이가 나고 있다. 경쟁 모델인 수입 중/대형 신 모델 출현도 EQ900의 판매 부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굳이 들춰볼 필요도 없이, 준대형차 시장은 그랜저가 장악했다. 그러면서 그랜저는 국내 완성차 업체 5개사의 합산 판매 차트에서 또다시 1위 자리를 지켰다. 전월 대비 6.4%의 판매량 감소를 보이긴 했어도 8,894대는 승용차 시장에선 가히 압도적인 성적이었다. 참고로 승용차 시장 2위인 쏘렌토가 5,853대였다. 사실상 이 시장에선 K7과 그랜저 양자 구도를 형성하고 있긴 하나, 둘의 격차는 약 6천 대에 달하고 있다.
별다를 바 없었던 대형차 시장에 비해 중형차 시장은 제법 형세가 재미있게 흘러가는 중이다. 한때 쉐보레 말리부나 르노삼성 SM6와 같은 신흥 세력들의 등장으로 시장 4위까지 떨어지며 초대 모델의 명성에 먹칠을 했던 기아차 K5가 페이스리프트로 체면치레를 한 것.
최근 경쟁 모델들의 실적 부진과 함께 순위를 꾸준히 끌어올리던 K5는 올해 초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큰 폭의 성적 향상을 이뤄냈다. 시장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신차효과를 통해 35.9%의 판매량 상승으로 순위를 8 계단이나 상승시켰다.
그럼에도 쏘나타가 5,079대를 기록하며 시장 1위를 유지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으나, 두 모델의 격차가 1천 200대가량으로 줄어들었고, TOP 10 리스트에 K5가 이름을 올린 것도 굉장히 오랜만에 맛보는 쾌거다. 순위를 역전시키는 것은 어려울 수 있어도, 2위 자리 정착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보인다.
그렇다면 준중형 시장은 어땠을까? 한국GM이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군산 공장 폐쇄와 더불어 해당 공장에서 생산하던 크루즈의 생산 중단 및 단종을 알리며 현대기아차 듀오의 시장 지배력에는 청신호가 생겼다. 일단 2월까지는 현대차 아반떼가 5,807대를 기록하며 왕좌를 놓치지 않았으나, 3월 이후부턴 또다시'K 시리즈'의 반란이 시작된다.
스마트스트림 엔진과 'IVT' 변속기를 그룹 최초로 장착하고 등장한 차세대 K3의 상품성과 소비자 반응이 상당히 좋기 때문. 신형 K3가 2월 중순에 출시된 관계로 아직 제대로 된 신차 효과가 발휘되진 않았으나 이미 K3도 K5와 마찬가지로 성적을 끌어올리고 있다. 전월대비 23.7%의 판매 상승을 보인 K3는 아반떼와의 격차를 살짝 줄였다.
그럼에도 코드네임 'AD'로 개발된 아반떼의 네임밸류와 더불어 소비자들이 꾸준히 쌓아올린 평판은 여전히 드높아 K3가 아반떼를 꺾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환골탈태의 변화로 K3가 아반떼와 더불어 든든한 양강 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은 기정사실로 보인다.
신차들의 속출로 활발했던 중형차 / 준중형차 시장에 비해 소형차 시장은 이제 '경쟁'이란 단어가 의미를 잃어버렸다. 엑센트가 꿋꿋이 시장 1위 자리를 지켜나가곤 있지만, 이미 폐허가 된 곳에서 승기를 잡았다고 해서 기쁠 리는 없다. 엑센트는 427대를 기록했고, 프라이드가 떠난 시장에서 아베오가 95대를 기록하며 승자와 패자도 없는 처참한 광경을 만들어냈다.
'국민 경차'를 표방했던 기아차 모닝은 그 타이틀을 확고히 했다. 숙명의 라이벌인 쉐보레 스파크가 28.3%의 큰 감소폭을 보일 때, 모닝은 되려 판매량을 1.6% 끌어올린 것이다. 둘의 격차는 2,100대 이상으로 벌어졌고, 지난해 말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며 판매량을 끌어올렸던 레이와 불과 두 대 차이로 2위 자리를 지키긴 했다. 그러나 모기업의 상황이 말이 아닌지라, 2위 자리를 지키는 것도 이제는 벅차다.
한편, 지난해, 난리도 아니었던 소형 SUV 시장은 어느덧 서열 정리가 이뤄지고 있는 모습이다. 현대차 코나는 파업을 이겨내고 굳건히 1위 자리를 지켰으며, 쌍용차 티볼리는 2위로 밀려나긴 했어도 여전히 브랜드의 주역임을 보여줬다. 아울러, 이른바 '가성비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며 중저가 시장 공략에 성공한 기아차 스토닉도 4-5위와의 격차를 살짝 벌리며 3위 자리에 정착했다.
올해 가장 뜨거울 것으로 예상되는 중형 SUV 시장에서는 굵직한 신차의 등장으로 폭풍전야의 고요가 흐르고 있다. 일단 쏘렌토가 5,853대의 준수한 성적으로 왕좌를 지키긴 했으나, 싼타페는 이미 40%의 판매 증가 폭을 보였다. 그리고 신형 싼타페가 2주간의 사전계약 기간 동안 1만 4천 대가량이 계약되었음을 감안하면, 3월에는 쏘렌토가 왕좌에서 내려올 가능성이 상당히 커 보인다.
1위 모델들의 입지가 확고한 와중에, 깻잎 한 장차이의 경쟁 구도도 여럿 보였다. 투싼 / 스포티지 형제는 각각 2,766대 / 2,699대로 아주 유사한 판매량 수치를 기록하며 치열한 승부를 보였고, G4 렉스턴은 가까스로 대형 SUV 시장에서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긴 했으나 경쟁 모델인 모하비와의 격차는 불과 92대였다. 데뷔 1년이 채 되지 않은 모델임을 감안하면 모하비의 저력이 대단한 셈이다.
한편 쌍용차는 전월 대비 판매량이 7.9% 하락하긴 했어도 티볼리의 준수한 활약과 더불어 킬러 타이틀인 '렉스턴 스포츠'의 등장으로 지난 9월 국산차 업계 3위를 기록한지 5개월 만에 3위 자리를 탈환했다. 이는 내외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의 한국지엠이 부진한 이유가 크다. 그러나 체계적인 라인업 정리로 브랜드 가치를 향상시키며 판매 감소폭을 최소화한 쌍용차 자신들의 능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