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을 지나고 있는 현재에도 상당한 수의 자동차 마니아들이 80~90년대로 대표되는 일본 스포츠카의 황금기를 추억하곤 한다. 과감한 디자인과 성능을 보여주었던 닛산 300ZX(Z32) 페어레이디, 로터리 엔진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마쯔다 RX-7(FD), 전설의 레이서 `아일톤 세나(Aryton Senna)`가 제작에 참여한 혼다의 슈퍼카 NSX,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로드스터 마쯔다 MX-5에 이르기까지.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기의 자동차 시장은 개성 넘치는 일본 자동차들로 가득했다.
일본 스포츠카의 황금기에 등장했던 일본제 스포츠카들 중 혼다 NSX, 닛산 스카이라인 GT-R과 함께 최고의 차로 거론되는 차 중 하나가 바로 `토요타 수프라(Toyota Supra)` 다. 토요타 수프라는 막강한 성능으로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엄청난 인기는 물론, 영화, TV, 게임 등에서 단골 손님으로 출연한 일본 스포츠카 계의 `슈퍼스타`라 할 수 있다. 1978년 `토요타 셀리카(Toyota Celica)`의 변종모델에 불과했던 토요타 수프라가 4세대에 이르러 슈퍼카 킬러가 되기까지, 그 역사를 되짚어 보자.
`수프라`라는 이름이 처음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1978년의 일이다. 그러나 수프라의 역사가 시작부터 화려함으로 점철된 것은 아니었다. 당시의 수프라는 별도의 모델이 아닌, 당시 판매되던 토요타 셀리카의 패스트 백 버전에 불과했기 때문. 이 당시 대중은 수프라라는 이름보다는 `셀리카 수프라` 또는 `셀리카 XX`라고 불렸다.
하지만 셀리카 수프라의 경쟁 상대는 명확했다. 토요타는 당시 대중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닛산 페어레이디 Z(Nissan Fairlady Z)`를 노리고 셀리카 수프라를 내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셀리카 수프라는 셀리카와 차별점을 두었다. 사실 상 이름만 공유하고 있을 뿐, 전혀 다른 차라고 해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셀리카 수프라는 셀리카보다 5.1인치가 더 긴 차체와 함께 토요타의 전설적인 스포츠카 `토요타 2000GT`에서 사용된 5M 6기통 엔진을 사용해서 자신의 핏줄을 분명히 했다. 이외에도 전륜 구동이었던 셀리카와는 달리, 수프라는 후륜구동을 채용하여 편안한 장거리 주행을 위한 GT 성향의 FR 스포츠카로 기획되었다. 외장에도 신경을 썼다. 외관 각부를 크롬으로 장식하고, 전체적으로 셀리카에 비해 디자인을 매끈하게 다듬었다. 1세대 셀리카 수프라는 셀리카에 비해 고급스러움을 지향했기 때문에 특이한 판매 전략도 사용했다. 영국에서 토요타 셀리카 수프라의 한 달 판매량을 100대로 제한함으로써 그 희소성을 유지한 것이 그 예이다.
1981년 출시된 2세대 셀리카 수프라는 GT였던 1세대에 비해 더욱 날렵한 모습이 강조된 점이 특징이다. 직선적인 디자인과 함께 리트렉터블 헤드램프가 적용되었다. 또한 고급 쿠페를 지향했던 1세대에 비해 운동성능을 향상한 스포츠카로서의 면모에 더 집중했다. 덕분에 1세대 셀리카 수프라가 모터스포츠에 남긴 기록이 1979년 US 그랑프리의 `페이스카(Pace Car)`로 한 번 참전했던 것이 전부인 반면, 2세대는 투어링 카 레이싱계의 역사인 `윈스턴 퍼시(Winston Percy)`와 함께 다양한 기록을 세웠다. 이 때부터 대중은 셀리카 수프라를 스포츠카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1986년 출시된 3세대 수프라는 셀리카와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린다. 3세대부터 수프라는 독자 플랫폼으로 제작되며, 셀리카의 이름을 벗어버리기에 이른다. 3세대 수프라의 디자인은 2세대에 비해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프런트 범퍼가 공기역학을 고려한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차체 길이는 기존의 셀리카 수프라에 비해 약간 짧아졌고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을 채용함으로써 스포츠카이면서도 GT의 성격을 지닌 차로 탄생하였다.
당대의 최첨단 기술 역시 대거 채용되었다. 수프라에는 4종의 6기통 엔진이 사용되었으며 특히 3리터 배기량의 7M-GTE 터보 엔진은 3.0GT Turbo 모델에 장착되어 266마력의 힘을 자랑했다. 여기에 ABS는 물론이고 `TEMS(Toyota Electronic Modulated Suspension)`으로 불리는 전자제어 서스펜션을 장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7M-GE 엔진 모델 한정으로 `ACIS(Acoustic Control Induction System)`라는 장비를 탑재할 수 있었다. 이 장치는 공기를 압축하여 흡기 파이프에 주입시켜 출력 상승을 도모하는 장비로, 일종의 부스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장치들과 뛰어난 성능에도 불구하고 3세대 토요타 수프라는 모터스포츠에서 큰 두각을 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라이벌이었던 닛산의 GT-R(R32)이 2.6리터의 배기량을 가진 엔진을 채용했지만, 토요타 수프라는 3.0리터의 배기량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배기량에 따라 차량의 중량 제한이 엄격한 서킷에서는 직접적으로 경쟁 구도를 이끌어 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규정이 느슨한 드래그 레이스나 힐클라임 등의 다른 방면에서는 토요타 수프라가 마음껏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93년 시카고 모터쇼의 토요타 부스에서 수프라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4세대 수프라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과감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차체는 알브레히트 괴르츠가 디자인한 역작, 토요타 2000GT에서 차용한 것이다. 길고 낮은 보닛과 함께 테일램프에 이르기까지, 4세대 수프라의 외관 곳곳에는 전설적인 토요타 2000GT의 오마주로 가득하다. 트렁크 리드에 설치된 거대한 리어 스포일러는 4세대 수프라의 성능을 암시했다.
4세대 수프라의 최상위 모델인 터보 모델의 3.0리터 2JZ-GE 엔진은 시퀀셜 방식의 트윈 터보가 장착되었다. 두 개의 터빈이 토요타 수프라의 터보 랙을 줄일 뿐만 아니라 차례로 토크를 내뿜어, 단 4.6초 만에 토요타 수프라를 정지에서 시속 60마일(약 96km/h)의 속도에 올려놓았다. 당시 토요타 수프라의 가속력은 압도적이었다. 4세대 수프라는 경량화에도 적극적이었다. 경량 소재를 사용한 것은 물론이고, 차량 실내의 카펫 소재 역시 속이 텅 빈 섬유를 썼을 정도였다. 이로 인해 토요타 수프라는 전 세대에 비해 최소 91킬로그램이상의 경량화를 달성했고, 또한 모터스포츠 역사상 가장 성공한 토요타 모델로 남게 되었다.
4세대 토요타 수프라의 인기는 모터스포츠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일본 자동차 제조사들의 스포츠카 경쟁은 일본의 버블 경제와 맞물려 여느 때 보다 화려하고, 과감해졌다. 미츠비시에서 내놓은 `이클립스(Eclipse)`와 `3000GT`, 닛산의 `300ZX(페어레이디 Z)`와 `GT-R(R32)` 그리고 혼다가 전설적인 F-1 레이서 아일톤 세나와 함께 만든 `NSX`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본 스포츠카가 저마다의 특색을 가지고 있었다. 이 끝없는 경쟁에서 단연 눈에 띄었던 자동차는 토요타 수프라였다. 튜너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토요타 수프라는 다양한 개조를 통해 1,000마력이 넘는 출력을 자랑하기도 했고, 2008년 `Gas Motorsport`는 무려 2069 마력(PS)의 수프라 엔진을 선보이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또한, 수프라는 다양한 매체에서 다뤄지기도 했다. 일본 스포츠카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수프라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이외에도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Fast & Furious 시리즈)`로 우리에게 친숙한, 그러나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인해 작고한 영화배우 `폴 워커(Paul Walker)`가 평소에 즐겨 탔던 모델 역시 토요타 수프라였다. 일본 경제의 버블은 진작에 꺼졌지만, 토요타 수프라 4세대는 1993년부터 2002년까지 10년 동안 자동차 업계의 관심이 그칠 줄 몰랐다.
그리고 마침내 5세대 토요타 수프라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토요타 FT1`의 컨셉과 함께 언급된 이름은 토요타 수프라였다. 아주 미래적인 토요타 FT1 컨셉을 보면서 사람들은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스포츠카이자 편안한 GT카이기도 했던 기존의 수프라에 비해 지나치게 튀는 외관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다름 아닌 BMW Z4 로드스터의 후속인 `BMW Z5(예정)`의 개발과 신형 토요타 수프라가 함께 개발될 것이란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다양한 스파이샷들에서 비춰진 모습에서는 4세대 토요타 수프라의 낮고 긴 보닛 모습과 함께 토요타 2000GT를 닮은 테일램프도 확인할 수 있었다. 90년대 일본 스포츠카를 회상하던 많은 사람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쏟아지는 가운데, 새로운 토요타 수프라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