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근 현대의 차 만들기는 정점을 향해 치솟고 있다. 허투루 프리미엄 브랜드로 도약을 외친 게 아니다. 플루이딕 스컬프처가 빚어낸 역동적 외관과 실내에서 느낄 수 있는 감성 품질은 과거의 현대차와 확고한 차이를 보인다. 대신 성큼 올라버린 가격만 좀 아쉬울 뿐이다. 그래도 그들의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아직 프리미엄 브랜드로 올라서진 못했지만 차 만드는 수준은 분명 발전했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현대차의 변화가 시작됐느냐고 묻는다면 이 차를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 현대차의 새로운 창세기전. 제네시스다.
제 네시스의 디자인은 플루이딕 스컬프처 컨셉트를 내놓기 전인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존 모델과 확연히 선을 그은 디자인은 최초로 내놓는 뒷바퀴 굴림방식 고급 세단에 현대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말해준다. 플루이딕 스컬프처가 득세한 지금은 클래식해보이지만, 선을 과감히 뻗어내 그린 디자인에 원숙미가 묻어난다. 최근 디자인에 살짝 변화를 줬다. 기존 모델과 단절된 수준의 변경은 아니었다. 헤드램프에 과감한 선을 넣어 특색을 더했다. 세련되게 나이 먹어가던 제네시스에 생뚱한 스포츠 감각을 더한 건 무리수였지만.
실 내는 원숙하지만 동시에 나이든 느낌도 있다. 버튼을 최소화하며 단순함을 살린 대시보드와 센터페시아의 분위기는 클래식에 가깝다. 다만 알루미늄 색으로 빛나는 대시보드 중앙의 조작부는 더 이상 고급스럽지 않다. 부드럽게 실내의 분위기와 녹아들지 못한다. 실내 컬러는 3종류 가운데 고를 수 있다. 검정과 갈색, 옅은 갈색 중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색이냐에 따라 분위기는 완전 달라진다. 다양한 취향에 부합하겠지만, 좋은 선택 또한 필요하다.
제 네시스에는 V6 3.3L와 3.8L 엔진을 얹는다. 300마력(6400rpm), 334마력(6400rpm)의 최고출력을 낸다. 더 큰 힘을 원한다면 제네시스 프라다를 골라야 한다. V8 5.0L 엔진을 얹고 430마력(6400rpm)을 낸다. 이 엔진은 북미 시장에서 팔리는 제네시스 R스펙과 같다. 변속기는 자동 8단이다. 기존의 6단으로도 충분하지만, 단수 늘어 나쁠 것은 없다. 8단으로 기어비를 촘촘히 나눠 힘을 한층 알뜰하게 쓴다. 하지만 기본 배기량이 있는 탓에 8단으로 쪼개도 연비의 한계는 있다. 복합연비는 3.3L 엔진이 9.6㎞/L, 3.8L 엔진이 9.3㎞/L, 5.0L 엔진이 8.2㎞/다.
제 네시스의 가격은 BH330이 4390만~5590만 원, BH380이 5240만~6470만 원, 제네시스 프라다(GP500)가 7718만 원이다. 수명을 늘리기 위한 부분변경을 거치며 가격이 올랐다. 2008년 처음 제네시스가 발표되었을 때 기본형 가격(4190만 원)보다 200만 원 정도 올랐다.
소 비자로써 가격 인상을 반기지 않는 입장이지만, 변화된 부분을 보면 납득할 수 있다. 성능을 높인 8단 자동 변속기와 후방카메라를 포함한 내비게이션을 더했다. 또한, 기존 모델의 기본형에서 고를 수 없었던 전후방 주차 보조 시스템까지 기본이다. 기존 모델에서는 전후방 주차 보조 시스템을 달기 위해 한 등급 높여야했다. 평소 현대의 등급과 선택사양 구성이 지나쳐 쓴 소리를 내왔지만, 기본형의 가치를 높인 이번 결정은 마음에 든다.
안 전장비는 꼼꼼히 챙겼다. 앞좌석과 뒷좌석 모두 사이드 에어백이 기본이다. 앞좌석 듀얼과 커튼까지 총 8개의 에어백을 단다. 전자식 액티브 헤드레스트와 차체자세제어장치를 달아 차체의 거동을 감시한다. 기본형부터 늘어난 편의 사양은 반갑다. 스마트키, 전후방 주차보조, 하이패스, 열선 시트, 크루즈 컨트롤, 후방 카메라, 내비게이션 등 편의사양이 충분해 기본형이어도 아쉽지 않다. 단, 통풍시트를 달고 싶다면 330만 원 더 비싼 위급 모델을 선택해야 한다.
상 품성 개선을 거친 제네시스는 만족스럽다. 하지만 시대가 지났고 훨씬 강한 경쟁자가 나타났다. 기아의 K9이다. 현대차의 가격 정책이 빚어낸 이외의 상황이다. 제네시스 기본형의 가격은 4390만 원, K9의 기본형은 5290만 원이다. 900만 원 차이다. 하지만 제네시스에 추가비용을 들여 편의장비를 늘리면 그 폭은 순식간에 줄어든다. 차라리 더 넓은 실내공간과 더 뛰어난 주행 감각을 제공하는 K9을 택하겠다. K9의 기본형 모델도 남부럽지 않을 편의장비를 갖추고 있다.
기 자는 K9의 기본형 모델을 추천한 적 있다. 차의 본질이 좋고 기본형으로도 아쉬움이 없는 충분한 장치를 갖췄으며, 가격 대 성능 비가 매우 뛰어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후발 주자인 만큼 엔진 성능은 같아도 주행성능과 감성품질 또한 우위에 있다. 제네시스에 편의장비를 더하는 것보다 K9 기본형이 매력적이다.
K9 의 강한 유혹을 이겨내고 제네시스에 빠져 어떤 모델을 고를까 고민한다면, 어떤 모델을 골라도 만족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극과 극인 두 가지의 선택을 예로 들고 싶다. 제네시스의 기본형 모델인 BH330 모던 등급과 최상급 모델인 제네시스 프라다. 4390만 원 대 7718만 원의 차이다. 가격 대 성능 비로 친다면 BH330 모던 등급을 택하겠다. K9의 기본형이 어른거리긴 한다. 하지만 예를 들어 제네시스를 고를 수밖에 없을 때가 있을 것이다. 직장 상사가 에쿠스를 탄다면 그 아랫급의 국산차를 택해야 하는 것이 사회생활. 이때라면 주저 없이 제네시스를 택할 것이고, 그중에서도 제네시스 프라다를 택할 것이다.
겉으론 쉽게 드러나지 않는 강한 성능과 숨겨진 고급스러움을 갖춰서다. 최근에는 SBS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주인공인 오수(조인성)가 극 중에서 제네시스 프라다를 타고 등장하기도 했다.
프 라다의 힘을 빌어 고급스럽게 꾸민 실내의 감각이 끌리기도 하지만, 주목할 것은 보닛을 채운 V8 엔진이다. 운전자 지향의 고급 세단에 스포츠카를 능가하는 강한 엔진을 얹은 구성이 맘에 든다. 물론 비싸긴 하다. 하지만 문을 열기 전까지는 쉬 드러나지 않는 고급스러움을 감추며 430마력의 힘을 도로에 흩뿌리며 달리고 싶다. 그래도 의구심이 남는다.
북 미 시장에서 제네시스 R스펙은 기본형이 4만7350달러다. 2012년 6월 18일 기준 1달러 1159원으로 5487만 원이다. 수많은 옵션과 프라다의 고급스러움을 더한다 하더라도 약 2200만 원의 차이를 납득하긴 어렵다. 하지만 제네시스 프라다를 고른 이유는 따로 있다. 스포츠카인 제네시스 쿠페보다 강한 출력으로 상사의 에쿠스를 몰래 앞질러 약속 장소에 언제나 먼저 도착한다. 시간은 금이라고 했다. 게다가 늘 먼저 도착해 준비하는 사원이란 칭호도 따라붙겠지.
글 안민희│사진 현대자동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