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 역사 상 끔찍한 혼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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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역사 상 끔찍한 혼종들
  • 모토야
  • 승인 2023.12.1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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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은 혼자서도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두고 '멀티플레이어'라는 말로 추켜세우기도 하지만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팔방미인은 밥 굶는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만 파라"는 말이 존재하듯, 한 가지 일에 특출나게 뛰어나고, 전력으로 임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군사(軍史)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인류가 부족 단위로 흩어져 살 때에는 정예화된 소수의 전사집단이 힘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전쟁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소수의 싸움꾼보다는 체계적으로 운용되는 다수의 병력이 가진 힘이 커졌다. 가령 명나라의 척계광이 고안안 원앙진의 경우, 한 명의 왜구 전사를 상대하기 위해 서로 다른 무기를 보유한 10~12명이 힘을 합쳐 상대하는 개념이었으며, 척계광은 (다수의 시행착오는 있었지만)이를 잘 운용해 명나라 땅에서 조직화된 왜구를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무기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무기는 각자의 전장 환경에 따라 가용할 수 있는 최선의 형태와 기능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원래 두 가지 무기가 나눠서 했던 역할을 하나의 무기가 대체하는 경우도 있고, 그 역도 존재한다. 또한 각군에서 채용하는 군사 교리의 변화에 따라 무기의 역할이 서로 합쳐지고, 이것이 표준화되는 경우도 있다. 이 때 이런 무기체계는 뛰어난 범용성을 발휘하는 팔방미인이 된다. 그렇지만 충분한 연구와 고려 없이 무턱대고 무기체계의 통폐합을 시도하거나, 급박한 상황에서 급조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대체로 '끔찍한 혼종'으로 전락하고 만다. 세계의 무기체계들 중 비참한 결말을 맞은 끔찍한 혼종을 둘러본다.

항공모함과 전함의 혼종 - 항공전함
전함과 항공모함을 결합한 이 군함은 말로만 듣게 되면 실로 궁극적인 군함으로 보일 수 있다. 전함은 자체 무장만으로도 전략무기급으로 강력한데 여기서 항공력까지 동시에 투사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천하무적의 배가 될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현실은? "전함으로서는 반쪽 짜리, 항공모함으로서는 반쪽 이하"인 무기체계가 바로 항공전함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 황당한 개념을 실현시킨 군함이 있었으니, 바로 일제 해군의 이세급 전함이다. 이세급 전함은 일본의 부족한 기술력을 과무장으로 해결하려 든 설계 사상으로 인해 무려 6기의 14인치 2연장 주포탑을 구겨넣은 전함이다. 게다가 구식의 포곽식 부포 배치와 비좁은 공간으로 인해 전투효율이 매우 떨어졌고, 이전 함급인 후소급 전함과 함께 말석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다 년, 이세급 전함 휴우가의 5번 주포탑이 폭발하는 사고를 겪었는데, 이 때는 하필이면 미드웨이 해전에서의 졸전으로 인해 일본 해군의 항공전력이 궤멸되다시피한 상태였다. 이에 일본 해군은 턱없이 부족해진 항공모함 전력을 재건하려고 애를 썼는데, 그 과정에서 5번 주포탑이 날아가버린 휴우가가 먼저 급한대로 전함의 역할과 항모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세계에서 전무후무한 '항공전함'으로 개장된다. 본래 일본군은 오래된 후소급 전함과 이세급 전함을 모두 제대로 된 항공모함으로 개조하는 공사를 진행하려고 계획했으나 당시 일본군에게는 인력도, 자원도,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던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이들 전함은 궁여지책으로 이도저도 아닌 배로 급조된 것이다. 

이세급 전함의 항공전함 개장 작업은  사고로 5번 주포탑을 손실한 휴우가부터 실행했다. 함미에 배치된 5번 주포탑과 6번 주포탑을 완전히 철거하고 그 공간을 함재기 격납고와 항공기용 유류고를 설치했으며 가장 위쪽에는 비행갑판을 깔았다. 그러나 고작 70m밖에 되지 않는 비정상적으로 짧은 갑판으로 인해, 제대로 된 함재기를 띄우는 일은 고사하고 착수용 플로트(Float)를 장비한 수상기(水上機)나 겨우 탑재해 운용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했다. 게다가 탑재 가능한 함재기 수도 고작 22기 정도에 불과해, 경항공모함보다도 못한 운용 능력을 지녀, 사실 상 제대로 된 항공전을 펼칠 수 없었다. 심지어 탑재하기로 예정했던 D4Y 스이세이의 경우에는 수상기가 아니라서 바다에 불시착한 조종사만 데려온다거나, 가까운 아군 비행장에 착륙하는 식의 나사빠진 운용법을 내세웠다. 예산과 물자 부족에 시달리던 일본 해군은 기껏 항공기를 띄울수는 있게 개장을 했음에도 이세에 단 한 대의 함재기도 싣지 않았다. 이세급 전함들은 1945년 구레 해군 기지에서 공습을 받고 좌초되었다가 종전 이후인 1946년에 해체된다. 이 외에도 일본 해군은 이보다 더 작아서 사실 상 의미가 없는 수준인 항공순양함도 만들어 운용했다. 

항공모함과 잠수함의 혼종 - 잠수항모
'항공전함'이라는 끔찍한 혼종을 만들어 낸 일본 해군은 더 나아가 '잠수항모'라는 것도 만들어 냈다. 센토쿠급 잠수함 i-400이 그것이다. 잠수함에 항공기를 싣는 아이디어는 전간기때부터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에서도 연구를 하고 있기는 했는데 그 목적은 항공모함처럼 항공력을 투사하는 개념이 아닌, 포격시 표적획득을 위한 정찰기를 탑재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좁디좁은 잠수함에 공격용 항공기를 탑재할 수 있는 잠수항모를 직접 개발했다. '이호 제 400급 잠수함(이하 i-400급으로 통칭)'이라는 명칭을 부여받은 이 배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이 미해군의 수많은 수상함과 잠수함들이 드글대는 태평양을 뚫고 미국 본토를 은밀하게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무기체계를 구상한데서 시작되었다.

i-400급은 당대 일본의 잠수함들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례 없이 큰 잠수함이었다. 기준배수량만 3,500톤을 웃돌고 수중 배수량은 무려 6,500여톤에 달하는 초대형 잠수함으로, 당시의 대형 구축함과 비견되는 규모였으며, 오늘날 SLBM을 탑재한 대한민국의 도산안창호급보다도 규모가 큰 배다.  

i-400급에 탑재되는 함재기는 아예 전용으로 설계한 M6A 세이란(晴嵐)이다. 세이란은 당시 일본군 함재기들 답지 않게 날개가 익근(뿌리)까지 접혀들어가는 구조를 채택하고 갑판에서 수상 착수용 플로트를 달아 이함하여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극단적인 소형화를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i-400급에는 최대 3대의 세이란만 탑재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함재기 회수를 위해서는 잠수함이 장시간 부상하고 있어야 하므로, 대단히 위험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i-400급 잠수함은 초기에는 파나마 운하 파괴 작전을 위해 출동했다가 미군이 오키나와를 침공하면서 작전이 취소되었고, i-400급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일본으로 돌아오다 일본이 원자폭탄 공격을 받고 항복하면서 돌아오는 길에 미군에 나포되며 함생을 마치게 된다.

그것은 총이라 하기에는 너무 크고 무거웠다. - XM29 IAWS
지금까지 봐 왔던 혼종은 규모가 큰 군함이었지만 이번에는 개인화기인 '총'이다. 미 육군은 1980년대부터 M16 계열 소총이 노후화되었다고 판단하고 이를 대체하기 위한 사업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미래 보병체계와 연계하는 제식소총 도입 사업으로 OICW 사업을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XM29 IAWS다.

미래 보병 전투 체계의 다양한 첨단 장비와 연계하여 보병의 화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차세대 개인화기로 개발된 이 총기는 프로젝트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시제품이 만들어졌다. 그 중에서도 1999년에 만들어진 시제총기 XM29 IAWS는 5.56mm 돌격소총에 전용의 20mm 유탄발사기, 그리고 미래 보병 체계와의 연계를 이루는 핵심인 통합형 화기관제컴퓨터까지 설치되었다. 전용의 20mm 유탄발사기는 총기에 장착된 통합형 화기관제컴퓨터를 통해 신관 작동 시간을 조절할 수 있었고, 이 덕분에 정교한 타이밍에 신관을 작동시켜 공중에서 폭발시켜 살상력을 극대화하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이렇게 완성된 OICW 개인화기에는 큰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무게'였다.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당시의 컴퓨터 및 반도체 기술 등으로 인해 OICW 개인화기의 중량은 무려 빈 총 상태에서 6.8kg, 장전시 8.1kg가 넘었다.정 당 가격도 지나치게 올라간 것은 덤이다. 게다가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되자 장기 프로젝트로 기획된 이 계획은 더 이상 진정될 수 없었고, 프로젝트 규모도 점점 줄어들었다가 2018년이 되어서야 사업 종료를 맞았다.

하지만 이렇게 미군의 OICW가 실패한 프로젝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방산업계에서는 이 프로젝트가 '보병화력의 극대화'라는 현실성이 있다고 보았는지, XK11 복합소총의 개발에 나서게 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역시 실패. 지나치게 무거운 무게와 성능 미달, 비싼 가격으로 인해 결국 사업이 중단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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