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속으로 가라앉은 군함 이야기 - 추축국 편
상태바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군함 이야기 - 추축국 편
  • 모토야
  • 승인 2023.11.08 17: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 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세계 각국의 바다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대서양에서는 잠수함인 유보트가와 이를 잡기 위한 사투가, 태평양에서는 항공전력을 앞세운 항공모함 세력이 대두하면서 해전의 패러다임마저 바뀌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수많은 배들이 침몰했으며, 그 중 일부는 유달리 안타깝고 씁쓸한 최후를 맞기도 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격침됐던 군함들을 짧게 다뤄본다.

영국의 분노를 온 몸으로 받아내다 - 비스마르크급 전함
앞선 기사에서 다루었던, 영국 해군의 상징 '후드'를 단 한 번의 럭키샷으로 터뜨려버린 전함 비스마르크는 당시 나치 독일에서 건조한 최신예 전함이었다. 특히 비스마르크급에 속하는 전함들은 그 어마어마한 크기에서 오는 위용과 더불어 마치 독일식 성채를 보는 것과 같은 중후한 외관, 그리고 드라마틱한 함생으로 인해 지금도 다양한 매체에서 다뤄지고 있다.

비스마르크급 전함(Bismarck-class Battleship)은 베르사유 조약의 붕괴 이후 독일의 재무장 과정에서 해군의 재건을 목표로 한 Z계획의 일환으로 건조가 시작되었으며, 1936년 기공되어 1939년에 진수, 1940년에 취역했다. 독일의 이 전함은 만재배수량 50,300톤에 달하는 거함으로, 아이오와급 전함과 야마토급 전함이 나타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전함이었다. 무장은  총 8문의 38cm(15인치) SK C/34 함포와 더불어 다층식 방어구조로 무장했다. 게다가 이렇게 크고 무거운 군함임에도 총합 15만 마력(기록에 따라 16만마력)에 달하는 기관부 출력으로 30.1노트(약 55.6km/h)에 달하는 고속을 낼 수 있었다.

비스마르크급 전함, 그 중 네임쉽인 비스마르크는 후드를 격침시키고 프린스 오브 웨일즈를 물러가게 했지만, 그 사이 영국 해군에서는 오직 비스마르크를 사냥하기 위해 전함 2척과 항공모함 1척을 중심으로 하는 특무함대를 꾸려서 출격했다. 그리고 그 때, 영국 항공모함 아크 로열(HMS Ark Royal)에서 출격한 소드피쉬 뇌격기 편대가 비스마르크에게 어뢰를 투하하며 비스마르크의 발을 묶어버렸다. 뇌격기가 투하한 어뢰 중 1발이 비스마르크의 방향타를 직격한 것이다. 방향전환이 되지 않아 그 자리에서 빙빙 돌게 된 비스마르크는 영국 해군의 분노 어린 집중공격을 온 몸으로 두들겨맞고 그 자리에 수장되었다.

한 편, 비스마르크의 유일한 자매함인 티르피츠(Tirpitz)는 하필이면 비스마르크가 격침된 그 해인 1941년에 취역했다. 티르피츠는 노르웨이로 이동해 연합군의 신경을 긁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영국 해군은 티르피츠를 잡기 위해 여러 차례 공격 작전을 감행했다. 하지만 티르피츠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무려 2년을 버텼다. 그렇지만 수당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영국 해군은 1944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지진폭탄(Earthquake bomb)' 톨보이(Tall boy)의 공격에 배가 뒤집어지며 처참한 최후를 맞았다.

병영부조리로 인해 폭침한 군함 - 무츠
일제 해군의 전함 무츠(Mutsu)는 나가토급 전함의 2번함이다. 1920년에 건조된 나가토급 전함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16인치(정확히는 16.1인치, 41cm)구경의 주포와 전함으로서는 상당히 빠른 26노트의 속도, 두터운 장갑을 지녔다. 그리고 무츠는 이러한 나가토의 스펙을 그대로 공유하는 자매함인 만큼, 일제 해군의 가장 강력한 전함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세계 최대의 전함인 야마토급 전함이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민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과 달리, 무츠는 당시 일본 내에서 나가토와 더불어 일본 해군을 대표하는 얼굴이기도 했다. 

무츠는 사실 탄생부터 요행으로 태어났다. 워싱턴 군축조약 체결 당시, 이미 취역한 나가토와 달리, 무츠는 아직 의장공사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영국과 미국측 대표단은 무츠를 폐기하라고 압박했다. 그러나 일본은 무츠의 함내의 군 병원을 선제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하며, 이미 취역했다고 양국 대표단에 둘러대는 꼼수를 썼다. 그리하여 미국과 영국은 무츠의 보유를 인정하는 대신, 16인치 함포를 운용하는 동급함 2척을 더 보유(미국 기존 1척+2척(콜로라도급), 영국 2척(넬슨급) 추가)하는 것으로 합의하는 조건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가상적국에게 동급의 군함을 2척이나 더 내어주면서까지 요행히 보유하게 된 전함 무츠는 태평양전쟁 당시 제대로 써먹지도 못한 채 항구에서 폭침하는 허망한 최후를 맞았다. 히로시마에 정박해 있던 무츠는 오후 12시 10분 경에 갑작스러운 폭발로 인해 침몰했는데, 이로 인해 승조원 약 1,500명 중 353명만 생존했다. 무츠의 허망한 최후에는 여러 설이 제기되었는데, 가장 유력한 것은 일본군 내의 극심한 영내 부조리와 악습으로 인해 견디다 못한 근무자의 고의, 혹은 실수로 탄약고가 유폭되어 폭침했다는 설이다. 만약 연합군 측이 무츠를 비밀공작이나 군사작전 등으로 격침시켰다면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했겠지만 연합군 측에서는 전혀 그러한 사실을 찾을 수 없었고, 일본군 측에서도 3번 포탑에서 폭발 흔적이 발견되자 군부에서 급하게 수사를 종결시켰다는 정황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군의 자침행위로 인해 최중요 전략자산인 전함을 날려먹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군의 위신이 추락할 것을 우려한 군부 측에서 의도적으로 막았다는 것이다. 히로시마 앞바다에 침몰한 무츠의 잔해는 방사능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되는 정밀기계를 제작하는 자재로 아직까지도 쓰이고 있다.

세계 최단명 항공모함 - 시나노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등장한 세계 최대의 항공모함은 엄청난 물량의 미국도 아니고, 돈에 쪼들리던 영국도 아닌, 일본에서 등장했다. 바로 1944년 취역한 시나노(Shinano)다. 이 거대 항공모함은 세계 최대의 전함으로 유명한 야마토급 전함의 3번함을 항공모함으로 개조한 것이다. 기준배수량만 62,000톤에, 만재배수량이 무려 71,890톤에 달하는 이 무지막지한 항공모함은 한참 뒤인 1955년 미군의 포레스탈급 항공모함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세계 최대의 항공모함 타이틀을 유지했다.

하지만 이 세계 최대의 항공모함에게는 치명적인 오점이 있다. 바로 취역한 지 단 열흘만에, 첫 항해 시작 후 단 17시간만에 격침당한 세계 최단명 항공모함이라는 것이다. 이 거대한 항공모함을 격침시킨 배는 수중배수량 기준으로도 시나노의 1/30에 불과한 '아처피쉬(USS Archerfish)'라는 잠수함이다. 당시 시나노는 엄청난 항공모함 손실을 메우기 위해 공사가 대단히 급하게 진행되어 곳곳에 부실시공이 있었던 데다, 사실은 아직도 미완성이었던 상태였다. 게다가 아처피쉬가 발사한 어뢰는 개전 초기의 문제점들을 대부분 개선한 어뢰로, 시나노를 정확하게 타격했다. 시나노의 이 불명예스러운 기록은 반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아끼다가 무의미하게 소모된 세계 최대의 전함 - 야마토
항공모함 시나노의 바탕이 된 야마토급 전함은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등장 이래 열강의 건함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은 '거함거포주의'의 정수다. 기준 배수량(만재 배수량에서 연료와 보일러용수를 뺀 배수량)만 6만 5,027톤에, 만재배수량은 7만 1,659톤에 달하는 이 거대 전함은 세계 최대 구경을 자랑하는 18.1인치, 정확히는 '46cm'에 달하는 45구경장 함포 9문으로 무장해, 스펙 상으로는 상대할 수 있는 배가 없었다.

하지만 일본군은 이 거대 전함을 기껏 만들고 나서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한 번의 출항에서 발생하는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한데다, 일본군 수뇌부가 최후의 '함대결전'을 위해 전력을 보존한다는 명분으로 후방에 꽁꽁 숨겼던 탓이었다. 이 때문에 야마토는 취역후 대부분의 시간을 그저 장교들을 위한 거대한 해상 호텔처럼 쓰였고, 그 때문에 1번함 야마토는 '야마토 호텔'로, 2번함 무사시는 '무사시 여관'이라며 전쟁 내내 일본군 내에서조차 조롱거리였다.

야마토급 전함은 그 거대한 몸집과 주포로 제대로 된 전과를 올리지도 못했다. 1번함 야마토는 오키나와로 상륙해 오는 미군을 막기 위한 작전에 투입되어 무의미하게 소모되었으며, 2번함 무사시 또한 시부얀 해전에서 미끼 역할로 소모되었다. 야마토는 마지막 작전에서 100기가 넘는 미군 항공기의 공격을 받았는데, 미군 항공대는 배의 좌측에 집중적으로 공격을 가하여 선체가 기울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기울어진 야마토는 급기야 주포 탄약고에 있던 탄약들이 선저로 쏟아지면서 충돌했고, 이는 탄약고 유폭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함내에 실었던 무려 1천여발의 포탄들이 한꺼번에 유폭되면서 버섯구름을 일으키며 폭침했다. 2번함 무사시 또한 미 해군의 함재기들에게 수 십 발의 항공 폭탄과 어뢰를 얻어맞고 격침되었다.

이렇게 거대한 전함을 고작 자살공격 임무로 소모해버린 이유는 어처구니 없게도, 해군이 "열심히 싸웠다"는 변명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일본은 이미 패전을 목전에 두고 있었고, 해군이 지닌 최강의 전력인 야마토가 종전까지 살아 남았다면, "저런 전력을 아껴두고 있었으니 제대로 싸우지 않은 것"이라고 공격 당할까봐 일부러 소모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본은 야마토를 건조하기 위해 국가 예산의 1%를 쏟아 부었는데, 이렇게 어렵게 확보한 전력을 자신들의 체면치레를 위해 소모했으니, 일본군이 얼마나 무능하고 광기에 사로 잡힌 집단이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