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전세계의 자동차 산업에서 전통적인 승용 세단을 밀어내고 대세를 넘어 상식이 된 장르가 있다. 바로 SUV다. SUV는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ports Utility Vehicle)의 줄인 것으로, 여행 및 레저활동에서의 활용을 염두에 둔 다목적 차량을 의미한다. SUV는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장르로, 1930년대, 픽업트럭의 적재함에 지붕을 씌우고 좌석을 넣은 형태로 만들어진 쉐보레 서버번 캐리올(Chevrolet Suburban Carryall), 1940년대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전세계를 누비며 기동력을 증명한 지프(Jeep) 등으로 출발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SUV는 대한민국의 자동차 산업에서도 아주 중요하다.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의 첫 페이지에는 SUV 차량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도로 등 인프라가 부실했던 당시의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차량들은 한 편으로는 시민의 발이 되어주었고, 한 편으로는 각종 산업 현장에서 든든한 파트너가 되어주기도 했다.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 초기의 SUV들을 살펴본다
국제차량제작 시-바ㄹ
서두에서 언급한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의 첫 페이지에 씌여진 차는 바로 1955년 등장한 국제차량제작 시-바ㄹ이다. 국제차량제작의 시발(始發)은 ‘첫 출발’, 혹은 ‘어떠한 일이 처음으로 시작되는 것’을 이르는 말로,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첫 출발을 기록한 자동차에게 그 어떤 것 보다도 어울리는 이름이다. 국제차량제작은 본래 광복 후 미군으로부터 불하(拂下)받은 군용 차량의 정비와 폐차 처리 등을 업으로 삼았던 ‘국제공업사’를 모체로 하는 기업이었다. 다라서 기본 구조는 폐차된 지프를 기반으로 하고, 차체는 드럼통을 자르고 펴서 만들어졌으며, 엔진은 원본 지프의 부품을 주물로 복제해다 만들었다. 기술적으로는 조잡하게 만들어진 ‘영운기’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한국전쟁의 화마가 지나 간 이후, 황폐해졌던 국내 환경에서 시-발의 존재 가치는 상당히 컸다.
쌍마자동차회사 합승택시
시-바ㄹ의 심장을 제작한 주역이었던 통칭 '엔진 도사' 김영삼 엔지니어가 1956년 회사를 떠나 쌍마자동차회사를 세우고 만든 차다. 이 차량 역시 군용 지프 부품을 재생해서 만든 영운기와 크게 다를 것이 없던 물건이었지만, 이 차는 한국판 윌리스 지프 스테이션 왜건에 해당하는 9~11인승 패밀리 왜건형 SUV 모델이었다. 김영삼 엔지니어는 이 차를 다인승 승합차로 판매하고자 했다. 이 차의 시제품은 이기붕 부통령이 직접 타보고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차량의 생산이 시작되자, 당시 자동차가 태부족이었던 당시 국내에서 버스를 대신할 수 있는 교통수단으로서 톡톡히 활약했다. 하지만 이 차가 생산되고 판매되면서 대금 중 상당수가 이기붕과 이정재의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알게 된 김영삼 엔지니어가 회사를 떠나면서 이 차의 생산도 멈추고 말았다고 한다.
신진지프자동차공업 신진지프
대한민국에서 가장 장수하고 있는 브랜드이자, 국산 SUV의 이른 바 '근본'으로 통하는 쌍용자동차의 코란도(Korando)의 조상은 1969년도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신진지프자동차공업의 신진지프였다. 신진지프는 미국 카이저 인더스트리(Kaiser Industries Corporation)로부터 'CJ-5(Civilian Jeep)'의 라이센스를 받아 생산한 차로, 폐차량들의 부속들을 긁어모아 재생한 형태의 시-바ㄹ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진정한 완성차로서 대한민국 첫 번째 SUV라 할 만한 모델이다. 이 차는 1969년 신진자동차 부평공장(현 GM 한국사업장)에서 생산되었지만 후에 아메리칸 모터스 컴퍼니(AMC)와 합작으로 '신진지프 자동차'를 별도로 설립, 부산 진구 주례동에서 생산하며 신진자동차측에서 분리된다. AMC의 3.8리터 엔진을 탑재한 이 일련의 지프 및 그 파생형 모델들은 픽업츠럭형부터 12인승 미니버스 모델까지 다양한 차종으로 만들어졌으며 후일 등장할 코란도의 직계 조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