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콜렉터가 60년대 후반 생산된 낡았지만 역사적인 F1 싱글 시터를 가져왔을 때, 복구 작업은 불가능해 보였다. 당시의 엔진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마라넬로의 클래시케(Classiche) 복원가들은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하는 이 특별한 도전을 받아들였다."
페라리 클래시케 부서는 불가능한 도전을 가능하게 만드는 곳이다. 오랜 기간 모든 타입의 엔진과 차량 관련 작업을 해 온 사람들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들은 빈티지 자동차의 '포트 녹스(Fort Knox, 1918년 설립된 켄터키의 군사기지)’격인 아카이브에 소중히 보관된 오리지널 도면들을 충실히 쫓는다. 클래시케 부서의 최근 공적은 1960년대 후반의 싱글 시터가 다시 도로 위를 달리게 만든 것이었다.
이르모 코스탄티니(Irmo Costantini)는 엔진 조립부서의 리더이자 현재 오피시나 클래시케의 수장이다. ‘보석 세공사’로 불리는 루이지 무시(Luigi Musi)는 만셀(Mansell) 시대에 F1에서 일한 후 클래시케의 수석 엔진 제작자가 되었으며, 스테파노 타시(Stefano Tassi)는 엔진 정비사로 활동한다. 이러한 ‘빨간색(페라리를 상징)의 마법사’들이 들인 노력 덕분에 312의 12기통 엔진은 새 생명을 되찾게 되었다.
이 차량은 평범한 싱글 시터가 아니었다. 섀시 넘버 0007의 1967년산 '312 F1'는 1967년 후반과 1968년 초반에 크리스 아몬(ChrisAmon)이 운전했던 차량이다. 그 후 1968년 골드 컵과 US 그랑프리에서 데렉 벨(Derek Bell)이 운전대를 잡았다. 1968년엔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리어윙을 장착한 최초의 F1 레이스카로 역사를 쓴 차량이기도 하다.
이러한 혁신은 레이싱 팀의 수장인 마우로 포르기에리(Mauro Forghieri)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로부터 시작했다. 전설적인 인물, 포르기에리는 첫 볼트부터 마지막 볼트까지 F1 차량을 전체적으로 디자인하고 제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312 F1의 현 소유자인 프랑스인 콜렉터는 역사적인 자동차 레이스 기간 중 차량이 그를 오도가도 못하게 만들 정도로 고장이 난 후, 마라넬로를 처음으로 방문했다.
마라넬로의 클래시케 부서는 이러한 중요성을 가진 차량을 인수하자마자 오리지널 도면을 찾아내기 시작했고, 결함을 포함해 원래 형태로 엔진을 복원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들은 안정성과 실용성을 높이기 위해 크랭크케이스만 마그네슘에서 알루미늄으로 바꾸기로 했다. 엔진 구성은 오리지널 도면에서 가져와 적용했으며, 헤드는 체크 후 복원됐다. 실제로는, 공장에 도착한 엔진 실린더 헤드만 살려낼 수 있었다.
크랭크케이스와 다른 부품은 주조 공장에서 제작됐다. 3D 모델이 완성되고 나서, 원래 차량이 제작된 시대의 동료들이 가졌던 프로페셔널리즘에 찬사를 보내게 됐다. “3D로 생각한 것을 2D로 그려낸, 당대 디자이너들의 훌륭한 기술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라고 클래시케 엔지니어들이 말한다. 완성 모델이 재현됐다. 후속 가공을 위한 오버레이가 있는 러프 모델, 코어(주형 안에 설치하는 다른 틀) 및 플라스크 없는 주형은 모두 주물 시뮬레이션과 실제 주물로 다시 만들어졌다.
엔진은 비범했고, 거의 움푹 파여 있어서 주물 작업이 필요했다. "실제로 오일관과 냉각수관이 실린더 위쪽에 붙어있는 독특한 엔진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통합되어 있었고 오일통도 없었죠" 중력 주조로 제작된 복잡한 엔진이었기 때문에 완벽한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오일 회로와 냉각수 회로를 분리하는 두 개의 주물이 필요했다. 하지만 페라리의 주조 노하우 덕에 단 세 달 만에 원 공급자가 특별히 제작한 부싱으로 엔진을 완성할 수 있었다.
레이싱 부서 사람들의 열정 덕분에 오리지널 엔진과 최대한 비슷한 엔진이 만들어졌다.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다. 그리고 60° V12, 2989.56cc의 이 자동차는 지나칠 수 없는 사운드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