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집은 크게, 심장은 작게 - 초창기 준중형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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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집은 크게, 심장은 작게 - 초창기 준중형차들
  • 모토야
  • 승인 2023.01.0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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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준중형 세단은 가장 대중적인 세그먼트로 손꼽힌다. 특히 2010년대를 전후해 불어닥친 크로스오버 SUV의 범람으로 인해 2000년대까지 가장 대중적이었던 중형세단의 시장 점유율은 크게 떨어진 반면, 준중형 세단은 준대형 세단과 더불어 여전히 상위권에 속하는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소형세단이 멸종하고 경차마저 존립이 위태로움에도 불구하고 준중형차는 여전히 강하다.

준중형차는 소형차와 중형차 사이에 위치하는 적당한 체급의 차체에 소형차 세제 기준의 마지노선인 1.6리터 미만의 배기량을 갖는 차를 말한다. 이 때문에 준중형차는 소형차보다 훨씬 크고 넉넉한 공간을 가질 수 있으면서도 세제 상으로는 소형차와 동일하게 취급되기 때문에 적당한 가격에 범용성 높은 차를 구매하고자 하는 대중에게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초기의 준중형차는 지금의 준중형차와는 그 모습이 크게 달랐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준중형차는 중형세단의 차체에 소형차의 엔진을 탑재한 형태였다. 그리고 이러한 태생적인 한계로 인해, 초창기 국산 준중형차들은 "국산차는 성능이 뒤떨어진다"는 인식을 만든 요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지금이야 각종 과급기와 전자제어장치 등의 첨단 기술을 활용해 고작 1.5리터급의 배기량으로도 충분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당시는 엔진기술의 미비로 인해 1.5리터급 엔진으로는 충분한 성능을 얻을 수 없었다.

그래도 초창기 준중형차는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여기에는 '세제 상 소형차로 분류됨에도, 중형차를 몰 수 있다'는 점이 세일즈 포인트로 부각되었다는 점이 컸다. 이는 대한민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차급을 계급으로 인식하는 풍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덕분에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중형차 행세(?)를 할 수 있었던 준중형차는 저성능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쏠쏠하게 실적을 올렸다. 대한민국의 준중형차 역사를 써내려간 1세대들을 살펴본다.

현대자동차 스텔라
현대자동차의 스텔라는 86년도 아시.안 게임과 88년도 서울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전두환 정부가 추진한 택시의 중형화 정책 가속화로 인해 태어나게 되었다. 이 차는 기본적인 설계는 기존에 포드로부터 라이센스를 받아 생산했던 포드 코티나 Mk.V의 것을 바탕으로 하되, 자체개발한 차체와 미쓰비시자동차의 엔진을 조합해 완성되었다. 스타일링은 포니의 디자인을 맡았던 주지아로에 의뢰하여 만들어졌다.

현대 스텔라는 후륜구동 세단인 포드 코티나의 설계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전방엔진-후륜구동계를 갖추고 있었고, 여기에 비쓰비시제 1.4~1.6리터 새턴 엔진을 탑재했다. 1982년 당시 기준으로 높은 국산화율과 가격 경쟁력을 갖춰 시장에서 크게 선전했다. 스텔라는 출시 3개월 만에 1만대 이상의 계약을 따내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스텔라는 초기형부터 품질 불량에 시달렸다. 당시 1년 앞으로 다가온 포드 코티나의 라이센스 문제로 인해 양산화를 지나치게 서둘렀고, 밀려드는 주문량을 감당하지 못해 품질관리가 소홀해지는 악재가 겹쳐 현대차 역사 상 최초로 1만 5천대를 리콜하는 상활까지 벌어진 것이다. 이로 인해 시장에서 신뢰를 잃은 현대차는 1985년 신형 1.5리터 엔진을 탑재한 개량형을 내놓았으며, 저렴한 가격과 개선된 품질로 일허버린 신뢰를 회복해 나가며, 다시금 일어서게 되었다.

대우자동차 로얄 XQ
대우자동차의 로얄 XQ는 현대 스텔라와 더불어 한국 시장에서 ‘준중형차’라는 세그먼트를 형성하는 단초를 마련한 모델이다. 1983년 8월 출시된 ‘로얄 XQ’는 상대적으로 고가였던 로얄 시리즈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독자개발한 1.5리터 XQ엔진을 탑재한 차종이다. 즉, 고급 승용차인 로얄의 '염가판'이라고 할 수 있는 모델이었다. 1983년 처음 등장한 로얄 XQ는 차체는 로얄 시리즈와 비슷한 크기임에도 1.5리터 엔진을 품고 있어, ‘소형차 세금으로 중형차를 탈 수 있다’는 점을 적극 어필했다. 로얄 XQ는 1985년형 모델로 한차례 페이스리프트를 거쳤으며, 1987년까지 생산되었다.

하지만 로얄XQ는 1세대 준중형차의 대표적인 문제점들을 안고 있었던 모델이다. 특히 '낮은 성능'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지금의 기준에서 중형도 아닌, 준대형급에 가까웠던 로얄의 큰 차체를 감당하기에는 XQ엔진의 동력 성능이 너무 떨어졌기 때문이다. 85마력의 최고출력과 12.5kg.m의 최대토크를 내는 이 엔진은 훗날 자사의 소형 승용차 ‘맵시-나’에 실리게 되는 엔진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능 면에서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로얄 XQ는 상기한 ‘소형차 세금으로 중형차를 탈 수 있다’는 점을 메리트로 인식한 소비자들로부터 적지 않게 판매되었다. 심지어 1985년도에는 로얄 XQ를 구입하고는 더 고급 차종인 로얄 프린스로 외형을 개조하는 사례가 있다는 신문 기사가 올라오기도 했다. 이 외에도 대우자동차는 새한 때부터 생산하고 있었던 레코드 로얄 디젤에 로얄XQ의 프론트 디자인을 적용한 마이너 체인지 모델을 선보였다. 또한 87년도에는 개량 모델인 로얄 듀크(Royale Duke)도 출시되었다.

기아 캐피탈
캐피탈은 기본적으로 중형차 콩코드의 차체에 1.5리터급의 엔진을 탑재한, 전형적인 1세대 준중형차다. 외관 디자인은 콩코드의 것을 대폭 수정한 정도였다. 전면부와 후면부의 디자인에 큰 차이를 주면서도 도어 몰딩의 위치를 휠하우스의 중간 이상으로 올려 시각적으로 콩코드와의 차별화를 꾀했다. 전/후면부의 디자인은 직선 기조에 크롬 장식을 많이 썼던 콩코드와는 달리, 곡선적인 형상의 헤드램프 및 테일램프와 더불어 바디컬러 3분할형 라디에이터 그릴 등이 특징이다. 전반적으로 콩코드의 화려함을 다소 덜어 내되, 보다 젊은 감각을 중시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캐피탈은 1989년 3월 3일 사전계약을 실시한 이래 첫 출고 날짜인 25일까지 8천대에 가까운 계약을 올렸다. 이는 출시 시기 상, 내수경제가 상당한 호황을 누리고 있었고 그에 맞춰 고가의 내구재 판매가 증가하고 있었던 시기의 혜택을 입었다는 점도 작용했다. 캐피탈은 출시 3개월 만에 누적 판매 대수 1만대를 돌파하는 등, 첫 도전이었던 준중형차 시장에서 상당한 선전을 해냈다.

캐피탈은 콩코드가 그러하였듯이, 등장 당시부터 ‘성능’을 중시하는 이미지를 강조했다. 그리고 실제 성능 역시 경쟁사의 준중형차 대비 우수하여, 자연스럽게 캐피탈의 세일즈포인트가 되었다. 캐피탈의 초도 생산 모델은 마쓰다 1.5리터급의 B5 가솔린 SOHC 엔진을 싣고 있었는데, 이 엔진의 최고출력은 95마력/6,000rpm에, 최대토크는 14.2kg.m/3,500rpm이었다. 이는 85마력에 불과한 대우 XQ엔진은 물론, 스텔라 1.5의 92마력 보다도 높은 수치였다. 이 덕분에 캐피탈은 로얄XQ나 스텔라의 고민이었던 '성능 부족'에 대한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었고, 실제로 이러한 부분들이 큰 호평을 받아 준중형차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올랐고, 로얄XQ와 스텔라가 대대적인 모델 재편을 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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