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중형 SUV, 그 영욕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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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중형 SUV, 그 영욕의 역사
  • 모토야
  • 승인 2022.05.1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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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가 최근 신개발 중형 SUV 모델, 토레스(Torres, 프로젝트명 J100)의 차명을 공개하고 티저 이미지와 영상을 공개했다. 쌍용차의 새로운 디자인 비전 및 철학인 ‘Powered by Toughness’를 바탕으로 디자인한 첫 작품임과 동시에, 최근 위기에 봉착한 쌍용자동차가 준비하고 있는 회심의 카드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한 가지의 의미를 부여한다면, 카이런의 단종 이래 10년 내내 공석이었던 중형 SUV의 자리를 드디어 채우게 될 모델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쌍용자동차의 중형 SUV는 비록 그 가짓수는 적을 수 있지만 카이런의 단종 이전까지 쌍용자동차의 허리를 담당하고 있었던 핵심 제품군이다. 일부 모델은 대한민국의 SUV 역사에서 큰 족적을 남기기도 했지만 카이런과 같이 흑역사로 기록되기도 했다. 영욕의 역사를 보낸 쌍용자동차의 중형 SUV들을 돌아본다.

대한민국 최초의 현대적인 유틸리티 차량 - 코란도 훼미리
1980년대, 민수용 지프를 기반으로 한 코란도와 그 가지치기 모델들로 제품 포트폴리오를 꾸리고 있었던 거화자동차는 기존의 지프 기반 모델들로는 더 이상의 시장 확대가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태생이 군용차량이었던 탓에 투박한 외관과 부족한 편의장비, 그리고 뒤떨어지는 승차감과 주행성능 등으로 인해, 상품성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거화자동차는 그동안 대한민국에 없었던 '신개념' 차종을 개발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신개념 차종이란, 바로 ‘승용차형 지프’였다. 이는 승용 세단의 세련된 외관과 편의성, 그리고 지프형 차량의 실용성을 양립한 현대적인 유틸리티 차량(SUV)의 개념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1982년, 거화자동차는 이 선진적인 컨셉트의 차량을 개발하는 데 전격 착수했고 1984년도에 KR-600이라는 이름의 컨셉트카를 내놓는다.

이 차는 당시 거화에 파워트레인을 공급하고 있었던 일본 이스즈(Isuzu)社가 생산하고 있었던 SUV, '빅혼(Bighorn)/트루퍼(Trooper)'의 섀시를 바탕으로 한, 스킨체인지에 가까운 형태의 모델이었다. 차명인 코란도훼미리는 가족을 뜻하는 영단어 ‘Family’에서 가져왔으며, “기존 코란도와는 완전히 다른, 지프의 장점을 살리면서 승용차의 안락함과 거주성을 극대화한다”는 컨셉트를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자칫 이 프로젝트는 좌초될 수도 있었다. 당시 거화그룹의 김창원 회장이 ‘원정도박 파문’을 일으키며 검찰에 구속, 재계 서열 2~3위를 다투던 거화그룹이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당시 동아자동차 사장을 지내고 있었던 故하동환 前한원그룹 명예회장이 거화자동차를 인수했는데, 하동환 사장은 당시 250억원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이 차량의 개발을 적극 지원했다. KR-600의 선진성과 잠재력을 알아 본 것이다. 하지만 동아자동차 역시 거화자동차의 인수에 들어간 자금과 더불어 막대한 개발비를 부담하다가 사세가 기울게 되었고, 1986년 쌍용그룹에 인수, 오늘날의 쌍용자동차가 된다.

쌍용그룹이 동아자동차를 인수했을 당시, 코란도훼미리는 이미 개발이 완료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였다. 하지만 쌍용자동차는 코란도훼미리를 시장에 투입할 수 없었다. 이 당시는 대한민국의 자동차 산업을 망가뜨린 주범, ‘자동차공업 통합조치’가 아직 발효 중인 시기였고, 그 때문에 쌍용자동차가 내놓을 '승용차형 지프'는 신군부의 눈에는 승용차 시장에 진출하려는 ‘꼼수’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코란도훼미리는 자동차공업 통합조치가 해제된 1988년 11월에 이르러서야 겨우 출시할 수 있었다. 

코란도훼미리는 당시 ‘3저(저유가, 저달러, 저금리) 호황’으로 성장한 중산층 가정에서 크게 주목했으며, 여가 활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한 점, 그리고 당시의 ‘마이카 붐’ 등에 힘입어 이상적인 ‘가족용 자동차’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출고는 동년 12월부터 시작되었으며, 출시 첫 날인 11월 21일 하루에만 278대를 계약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리고 1인당 국민 소득이 4천 달러를 넘어서기 시작한 1989년도부터 인기리에 판매되기 시작했다. 당시를 기준으로 출고 대기기간이 3~4개월에 달했을 정도였다. 이 당시 언론에서는 이와 같은 형태의 자동차를 ‘패밀리차’ 혹은 ‘다목적차’ 등으로 불렀는데, 이 시기를 전후하여 국내에서는 SUV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기 시작했고 그 선봉에는 바로 코란도훼미리가 있었던 것이다. 코란도훼미리는 1988년부터 무쏘가 등장한 이후인 1996년까지 판매가 이루어졌다.

플래그십 SUV로 시작해 쌍용의 허리가 되다 - 무쏘
쌍용자동차는 거화시절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줄곧 골머리를 앓게 한 문제가 있다. 바로 '파워트레인'이었다. 자동차를 만드는 기술은 있지만, 엔진 기술은 없었던 당시, 쌍용자동차는 거화/동아자동차 시절까지만 해도 일본 이스즈와 후지중공업(現 스바루(Subaru)의 전신)과의 기술제휴를 통해 파워트레인을 수급하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쌍용그룹의 김석원 회장이 "일본 기업과는 기술제휴를 맺지 않는다"며 하루 아침에 엔진 공급선이 끊기게 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총수의 의지로 인해 좋은 관계를 구축하고 있었던 제휴사를 한순간에 내쫓게 된 쌍용자동차는 새로운 제휴사를 찾는 데 사력을 다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와의 기술제휴를 극적으로 성사시키게 된다. 이에 힘입어 쌍용자동차가 야심차게 준비한 차가 바로 무쏘(Musso)다.

1990년 프로젝트명 FJ(Future Jeep)로 개발을 시작한 무쏘는 ‘승용 감각을 극대화한 SUV’를 목표로 개발되었다. 디자인은 영국 왕립 예술 대학의 캔 그린리 교수가 맡았고, 엔진은 메르세데스-벤츠로부터 도입한 2.9리터 OM602 계열의 디젤 엔진을 적용했다. 개발비는 총 3,200억원이 투입되었다. 1993년에 출시가 이루어진 무쏘는 그동안 국내 완성차 업계에없었던 ‘고급 SUV’라는 카테고리를 개척하기에 이른다. 이는 쌍용자동차의 제휴선인 메르세데스-벤츠의 후광을 입은 효과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에서 메르세데스-벤츠는 최고급 승용차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었고, 쌍용자동차 역시 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했다.

무쏘는 그 시작은 플래그십 SUV였지만, 8년 뒤인 2001년부터는 쌍용자동차의 허리를 담당하는 중형급의 SUV로서 포지셔닝이 바뀌게 된다. "대한민국 1%"를 표방하며 나타난 새로운 플래그십 SUV인 렉스턴(Rexton, Y200)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본래 쌍용자동차는 렉스턴을 무쏘의 후속 차종으로 개발했지만, 렉스턴이 출시되고 나서도 무쏘가 꾸준히 인기를 누리자, 두 모델을 병행생산하기로 한 것에서 기인했다.

이 때 당시만 해도 무쏘는 출시 8년차에 이른 모델이었음에도 시대를 앞선 디자인과 더불어 메르세데스-벤츠의 이름이 전달하는 신뢰, 그리고 뛰어난 성능과 다양한 편의장비 등, 상품성 특면에서 여전히 경쟁사의 SUV들에 비해 뒤지지 않았던 점도 작용했다. 이렇게 중형 SUV로 자리를 바꾸게 된 무쏘는 계속 생산이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기막힌 파생모델까지 추가되며 그 생명력이 이어졌다. 바로 SUT(Sports Utility Truck)형 모델인 무쏘 스포츠가 등장한 것이다.

무쏘 스포츠는 무쏘의 차체 뒤쪽을 픽업트럭 스타일의 적재함으로 변경한 모델로, 당시 픽업트럭 모델이 전멸한 지 오래되었던 국내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내며 무쏘의 인기에 다시금 불을 지폈다. 이렇게 상품으로서의 생명력을 유지한 무쏘는 2005년에 단종을 맞았다. 플래그십 모델로서 최초 출시된 이래 장장 12년만의 일이었다. 파생모델인 무쏘 스포츠는 2006년에 단종을 맞았다. 지금도 무쏘의 이름은 G4 렉스턴 기반의 SUT/픽업트럭 모델인 렉스턴 스포츠의 수출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쌍용자동차의 흑역사로 남다 - 카이런
대한민국 최초의 현대적인 유틸리티 차량인 '코란도 훼미리'로 시작하여 대한민국 SUV의 신기원을 연 것으로 평가되며 오랫동안 인기를 누려왔던 '무쏘'의 뒤를 잇게 된 차종은 다름아닌 '카이런(Kyron)'이다. 쌍용 카이런은 2005년, 무쏘의 단종과 함께 출시된 중형 SUV 모델로, 中상하이자동차(SAIC) 산하에 있었던 시기에 등장한 로디우스(Rodius), 액티언(Actyon)과 함께 쌍용자동차의 가장 암울했던 시절을 대표하는 모델이다.

카이런은 모든 면에서 선대에게 부끄러운 차였다. 외관 디자인은 실로 파격적인 모습이었는데, 이는 무쏘나 렉스턴이 보여주었던 좋은 의미의 파격이 아닌, 실로 나쁜 의미의 파격이었다. 초기 카이런의 디자인은 상상 이상으로 조잡하고 일관성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이로 인해 못생긴 차로는 동시대에 등장했던 로디우스, 액티언 등과 엮여 두고두고 비난받게 된다.

이 당시 쌍용자동차는 연구개발 역량이 이미 한계에 달한 상황이었던 데다, 만성적인 자금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카이런의 개발에 들어간 비용은 250억원 정도로, 일반적인 신차 개발비용의 1/10 수준에 해당하는 비용이었다. 게다가 워낙 적은 비용으로 개발을 진행해야 했던 탓에, 디자인의 완성도는 고사하고, 차량 자체의 완성도가 크게 떨어졌다.

2년 만에 등장한 후기형에서는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받았던 외관 디자인은 상당부분 일신하는 데 성공했지만 여전히 동급의 중형 SUV에 비해 뒤떨어지는 상품구성으로 인해 더 이상의 호응을 얻지는 못했으며, 2011년 단종을 맞았다. 그리고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쌍용자동차의 중형 SUV의 자리는 여전히 공석인 상태다.

10여년 만의 중형 SUV 토레스, 어떻게 나올까?
쌍용차는 최근 신형 SUV 모델 토레스의 외관 디자인 렌더링을 추가 공개했다. 프로젝트명 J100으로 개발되고 있는 토레스는 쌍용자동차의 새로운 디자인 언어를 반영한 디자인과 더불어, 도심형 크로스오버로 넘쳐나고 있는 작금의 SUV 시장에 '정통파 SUV'를 추구한다.

쌍용자동차가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강인하고 터프한 디자인에 웅장함을 더한 토레스는 아웃도어 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기능과 공간 활용성을 갖추고 있어 캠핑 및 차박 등 레저 활동에 모자람이 없다"며, "대한민국 유일의 SUV 전문 메이커인 쌍용차가 토레스를 통해 도심형 SUV와 확연히 차별화된 정통 SUV 영역을 개척해 나갈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새롭게 출시될 SUV 토레스는 전통적인 바디-온-프레임(Body-on-Frame), 혹은 유니바디 구조를 사용한 SUV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쌍용자동차의 토레스는 오는 6월 사전계약과 함께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며, 쌍용자동차는 향후 시장상황을 고려하여 출시 일정을 정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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