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15세기 초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의 도래와 함께 건실한 해군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영국은 섬나라였고, 따라서 제해권의 중요성을 유럽 대륙의 그 어떤 나라보다도 절감하고 있었다. 바다의 중요성을 인식한 영국은 세계 최초로 독립되고 전문화된 해군을 육성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바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왕립 해군(Royal Navy)이다. 이렇게 건설된 왕립 해군은 영국을 지키는 든든한 방패이자, 전세계의 바다에 전개되어 영국이 세계의 패권을 쥘 수 있게 해 주는 동력으로 기능하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만드는 기반이 되어 주었다.
또한 영국은 이렇게 수 백 년간 전문화된 해군을 운용하면서 쌓아 온 경험을 기반으로 혁신적인 군함을 다수 설계하였다. 그 중의 하나가 지난 기사에서 집중하여 다루었던 현대적인 전함의 효시, 드레드노트(Dreadnought) 전함이다. 그리고 이번에 소개할 영국의 혁신적인 전함은 바로 1914년 취역한 퀸 엘리자베스급 (Queen Elizabeth Class) 전함이다. 함명인 퀸 엘리자베스는 지금의 엘리자베스 2세가 아닌, 엘리자베스 1세에게서 가져 온 것이다.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은 영국의 대표적인 ‘슈퍼-드레드노트급 전함(Super Dreadnought)’ 중 하나다.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은 말 그대로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뛰어 넘는 전함이라는 의미다. 드레드노트보다 더욱 큰 12인치(약 305mm)를 넘는 대구경 주포와 이에 상응하는 중장갑을 갖춘 전함을 일컫는다. 일본발 미디어에서는 ‘초노급(超弩級)’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영국은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건조 이래 열강들이 빠른 속도로 드레드노트급 전함들을 건조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었고, 따라서 이를 뛰어 넘는 대형함의 설계에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세계 최초의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인 오라이언(Orion)급과 그 후속함으로 등장한 것이 아이언 듀크(Iron Duke)급이었다. 그리고 아이언 듀크급 전함 이후에 모든 면에서 일대 혁신을 이룬 전함이 후속함으로서 등장하는데, 이것이 바로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이다.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은 드레드노트급 전함에 이어 전함의 설계에서 또 한 번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그것은 바로 ‘고속전함(Fast battleship)’이다. 고속전함은 발이 느린 기존의 전함에 고속력을 부여하는 개념으로, 전함이 가지는 고화력과 중장갑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고속을 실현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방어력을 희생하여 전함급 화력을 갖춘 주력함에 순양함급의 고속력을 부여한 함종인 순양전함(巡洋戰艦)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전함 진화의 최종 단계라 할 수 있다.
퀸 엘리자베스는 기준배수량(만재배수량에서 연료 무게를 뺀 것)은 33,110톤, 만재배수량(연료와 무장, 운용 인원을 모두 실었을 때의 무게)은 33,790톤의 거함이지만 2개의 증기터빈으로 구성된 기관부가 내뿜는 75,000마력의 출력으로 취역 당시 25노트(약 46.3km/h)의 고속을 자랑했다. 이 속도는 타국의 전함은 물론, 당시 영국이 보유하고 있었던 오라이언급 전함(21노트)이나 아이언 듀크(21.25노트)에 비해 월등히 빠른 것은 물론, 당대 미국의 최신예 전함이었던 펜실베이니아급(21노트)이나 독일 제국 해군의 신형함 바이에른급(21노트) 보다 월등했다.
화력 또한 앞선 두 함급에 비해 월등했다. 퀸 엘리자베스급의 주포는 15인치(약 381mm) 42구경장 함포다. 이는 당대 최대규모의 거포로, 당시 미국과 일본이 보유하고 있었던 전함들의 14인치(약 356mm)보다 한 단계 더 큰 구경을 자랑했다. 그리고 이 주포를 총 4기의 포탑에 2문씩 설치하여 총 8문으로 무장했다. 부무장으로는 16문의 6인치(152mm) 부포, 2문의 3인치(76mm)대공포, 그리고 총 4기의 21인치(533mm) 수선하(水線下) 어뢰 발사관이 장비되어 있었다.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은 방어력 면에서도 앞선 두 함급에 비해 월등했다. 비록 건조 및 취역 당시에는 유틀란트 해전의 전훈이 반영되지 못한 관계로 갑판 장갑은 3인치(약 76mm)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존재했지만 대응방어 개념에 충실하게 설계되어 전면전 상황에서 우수한 방어력을 기대할 수 있었다.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은 포탑 정면과 주 장갑대에 13인치(약 330mm)에 달하는 중장갑을 둘렀다.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들은 영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활동한 전함들 중 하나다. 1914년 취역한 이 전함들은 제 1차 세계대전부터 제 2차 세계대전까지 북해와 지중해, 대서양, 심지어 태평양까지 돌며 영국 해군의 ‘화력’을 담당했다. 또한 전간기(戰間期) 동안에는 전투력 유지를 위해 대대적인 개장 공사를 받았으며, 이 덕분에 해전의 양상이 변화한 제 2차세계대전의 시점에서도 활약할 수 있었다.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은 개장을 통해 몇 가지 구조적인 변화가 있었다. 첫 번째는 당시 넬슨급 전함을 위시한 영국의 신형 전함들에 공통적으로 적용되고 있었던 캐슬(Castle)형 함교의 도입이다. 캐슬형 함교는 후대 영국 전함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또한 기존 2개소가 설치되어 있었던 굴뚝을 1개소로 통합하고 수중저항을 유발하는 수선하 어뢰발사관을 제거했으며, 대공무장도 증설했다.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들은 본래 6척을 건조하기로 하였으나, 재정 문제와 더불어 두 차례에 이은 군축조약으로 인해 총 5척이 취역하여 활동하였다.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들은 오랫동안 운용되면서 1,2차 세계대전에서 모두 참전한 바 있다. 퀸 엘리자베스는 제 1차세계대전 당시 오스만제국의 해상봉쇄를 위한 다르다넬스 해협 봉쇄작전에 투입, 갈리폴리 전투에서 기함을 맡은 바 있으며, 전간기에는 지중해에 배속되어 스페인 내정 당시 공화파를 지원하는 등의 임무에 투입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지중해에서 이탈리아 해군과 싸우다가 피해를 입고 미국에서 수리를 받은 뒤, 영국의 동양함대에 배치되어 태평양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2번함 워스파이트(Warspite) 역시 양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했다. 그리고 왕립해군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무훈함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함명인 워스파이트는 전쟁을 제 1차 세계대전에서는 유틀란트 해전에 참가하여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의 위용과 효용성을 알렸다. 다만 이 때의 전투에서 키(방향타)에 손상을 입는 바람에 독일 제국 해군의 전함에서 발사한 포탄 약 15발에 피격되어 큰 피해를 입었다. 이 당시 손상된 키는 워스파이트의 함생(艦生) 내내 따라 다니는 고질병이 된다.
워스파이트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웨이와 지중해를 오가며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등 추축국 해군과 싸웠다. 특히 지중해에서는 이탈리아의 콘테 디 카보우르급 전함 줄리오 체사레(Giulio Cesare)를 무려 23km라는 장거리에서 명중시켜 큰 피해를 입혔다. 지중해를 거점으로 활동한 워스파이트는 독일과 이탈리아 해군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통했다. 워스파이트는 지중해에서 입은 피해에도 불구하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에까지 투입되었다가 1947년 공식적으로 퇴역했다. 양차대전을 모두 치른 역전의 용사, 워스파이트의 이름은 발리언트급 공격원잠의 2번함이 계승한 바 있다.
3번함 밸리언트(Valiant)는 제 1차세계대전 당시, 워스파이트 등과 함께 유틀란트 해전에 참가했고, 2차 대전 시기에는 퀸 엘리자베스와 함께 지중해 전선에서 활동했다. 지중해에서 이탈리아의 잠수 특공대에 의해 큰 피해를 입은 뒤에는 퀸 엘리자베스와 함께 1944년까지 태평양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4번함 버럼(Barham)은 제 1차 세계대전에서 다른 자매함들과 함께 유틀란트 해전에 참가, 300발이 넘는 포탄을 발사하며 위용을 과시했으나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1년, 지중해에서 활동하다 독일 유보트(U-331)의 어뢰 공격을 받아, 좌현 쪽으로 기울다가 폭침했다. 5번함 말라야(Malaya) 1차 대전 당시 자매함들과 함께 유틀란트 해전에 참가했고, 2차 대전 당시에는 수송선단 호위작전에 주로 참여했으며,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도 참가하는 등으로 활약했다. 말라야는 1948년에 퇴역 후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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