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육면체나 원통. `카라반`하면 보통 가장 먼저 떠오르는 형상이다. 넓은 실내공간을 갖춘 덕에 편안함과 실용성을 느끼기에도 제격인 형태다. 다만 그런 형상이 모든 카라반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전 세계 캠퍼의 다양한 요구만큼 카라반은 다양한 형태로 변화한다. 개중에는 실용성과 편안함을 일부 내려놓은 대신 기하학적이면서도 독특한 외관 디자인으로 개성을 추구한 카라반도 있다. 이번에 소개할 카라반, `머젤러 멀티셀룰러 콘셉트(Mehrzeller multicellular concept) 카라반`도 그렇다. 오스트리아의 디자인/건축 회사 논스탠다드(Nonstandard)가 개성을 추구하는 캠퍼를 위해 개발한 콘셉트 카라반을 만나보자.
외관 디자인은 이제껏 소개했던 어떤 카라반보다 파격적이다. 불규칙한 너비의 면으로 외관을 둘러 이름처럼 멀티셀룰러(다세포)가 연상된다. 카라반에 대한 평가가 하나같이 `미래에서 온 카라반`인 이유가 이해가 된다. 얼굴을 다 다듬지 않은 각면 석고상도 떠오른다. 차체 곳곳과 후면에는 창문을 달아 채광을 담당하게 했다. 전장과 전폭, 전고(mm)는 각각 약 5,181 X 2,200 X 2,499다.
내부로 들어가면 흰색과 원목으로 꾸며진 실내가 사용자를 맞는다. 디자인이 디자인이니만큼 실내도 기하학적으로 꾸며졌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두 가지 주요 색상만을 활용해 간결하면서도 담백한 실내를 완성했다. 캠핑에 필요한 주요 장비도 갖췄다. 입구로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부엌은 냉장고와 싱크대를 비롯해 2개의 스토브, 식기 세척기, 커피 메이커 등으로 알차게 꾸며졌다. 안으로 들어가면 공간이 크게 위/아래로 나뉜 거실이 펼쳐진다. LED 조명과 테이블, 평면 TV가 사용자를 위해 마련됐다. 넓이는 약 11.9제곱미터다.
사실, 이 카라반의 진짜 놀라운 점은 따로 있다. 바로 이 디자인이 완성된 디자인이 아니라는 점. 구매를 희망하는 캠퍼는 제조사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카라반의 디자인부터 실내를 모두 새롭게 꾸밀 수 있다. 비스포크(맞춤제작)를 생각하면 쉽다. 사진으로 볼 수 있는 카라반은 수많은 디자인 중 하나의 예시에 불과하다. 미리 디자인된 외형을 선택하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 고객의 요구사항이 설계에 반영되면 제조사의 손을 거쳐 최종 디자인이 완성된다. 이 같은 제작방식은 카라반 제작 중에도 얼마든지 고객의 요구 사항을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제조사인 논스탠다드는 이러한 제작이 가능한 이유에 대해 대량 맞춤 생산 방식을 도입한 점을 꼽는다. 머젤러 멀티셀룰러 콘셉트 카라반은 2008년 독일의 뒤셀도르프 카라반 살롱과 오스트리아의 카라반 살롱에 전시되며 관람객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비록 공기 저항이나 채광에 필요한 창문 부족과 같은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양산화에 이르지는 못했으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콘셉트로 카라반의 미래에 또 다른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점은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