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강렬하게 빛난 제임스 딘, 그리고 포르쉐 550 스파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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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강렬하게 빛난 제임스 딘, 그리고 포르쉐 550 스파이더
  • 윤현수
  • 승인 2017.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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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서 제임스 딘은 자꾸만 엇나가려 드는 당시 미국 청소년들의 상을 극적으로 잘 표현했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냈던 제임스 딘에게 있어 `이유 없는 방황`은 사실 자신의 일대기를 투영하여 표현한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스물 넷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던 제임스 딘은 사실 법학도 출신이었다. 그러나 그에 전혀 뜻이 없었기에 연극 배우로 가닥을 잡게 된다. 그러나 주목 받기 어려운 무명 시절에는 영화 단역을 비롯하여 TV 드라마나 광고에서 보조 출연을 겸하는 자잘한 역할들만 전전했다. 그러다가 1954년 `The Immoralist`라는 작품에 출연하여 연극 부문 최우수 신인상과 남우조연상을 수상하여 무명의 설움을 털어냈다.



제임스 딘은 자동차를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가 소유한 최후의 애마로 이름을 널리 알렸던 포르쉐 550 스파이더는 물론, 그 이전에도 MG TD 로드스터와 포르쉐 스피드스터를 소유 했었다. 그는 스포츠카를 선호했다.



연극 세계에서 스크린으로 넘어온 그는 `에덴의 동쪽`에 출연했다. 그 작품은 제임스 딘을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해주었다. 이후 `이유 없는 반항`에도 출연하며 자신의 매력을 뽐냈다.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여성들은 제임스 딘의 오묘한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거기에 여성들뿐 아닌 그의 반항아 특유의 매력을 통해 남성들마저 제임스의 패션을 따라 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기를 몰고 다녔음에도 감성적 교류가 깊었던 어머니를 잃은 충격으로 마음이 닫혔던 제임스 딘은 이성에게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차갑게 얼어있던 마음을 녹인 사람은 이탈리아 출신의 `피어 안젤리`였다. 동료 배우였던 폴 뉴먼의 소개로 그녀를 만난 제임스 딘은 청초하기 그지없던, 그리고 어머니를 닮았던 피어 안젤리에게 빠져들었다.


서툴었으나 행복하기 그지없던 그들의 사랑은 그리 길지 못했다. 종교의 차이를 이유로 안젤리의 부모는 제임스를 반대했고, 이따금 솟아오르던 제임스의 성질머리도 사랑을 방해하는 데에 한 몫 했다. 청혼까지 주고 받던 그들은 결국 갈라서게 되었고, 안젤리는 다른 이와 연을 맺었다.



제임스 딘은 레이스도 사랑했다. 자신의 포르쉐 스피드스터로 자동차 레이스에 참여한 전적이 있었으며, 550 스파이더 구매 이후에도 여러 번 레이스에 참가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이렇게 레이스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던 터라, 그의 유작인 `자이언트` 촬영 당시에는 그의 레이스 참여를 금지하는 계약 조항도 있었다.



제작진들의 과잉보호라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이러한 조치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열렬히 사랑했던 피어 안젤리와의 결별 이후에 생겨난 우울증 증세로 제임스 딘의 운전은 더욱 거칠어져 가며 곡예주행을 일삼게 되었다. 탄탄대로를 걸었던 `배우로서의` 제임스 딘`과는 달리, `인간` 제임스 딘은 점차 황폐해져 갔다는 것이다.



사랑을 잃은 후에 제임스 딘이 구매했던 550 스파이더는 포르쉐의 최초 모델인 `356`을 기반으로 만들었다. 1953년 파리모터쇼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어, 1955년 본격적으로 출시되었다. 그 해 100대 한정으로 생산되었던 550스파이더는 포르쉐 최초로 DOHC 엔진을 얹은 모델로, 알루미늄 오픈 바디와 스페이스 프레임 섀시를 적용하여 경량화를 이룩했다. 개발 초기부터 로드스터로 기획되었던 터라 차체 강성 보강이 필수였고, 이와 같은 강성 보강을 위해 당시 포르쉐가 지닌 기술력을 총동원하여 제작한 자동차였다.



사실 이러한 신기술의 동원은 레이스를 위함이었다. 550은 본래 레이스 출전용으로 제작되었으나, 추후 일반 소비자들의 반응이 뜨거워지며 로드카로도 기획되었다. 그리하여 승용차로의 개선을 이뤄내며 판매되었던 것이다. 제작 대수가 많지 않았던 차량이지만 당대 톱스타의 길을 짧게나마 걸었던 제임스 딘은 스피드스터를 대신할 550 스파이더를 구매했다. 그리고 그 애마에 자신의 별명인 `Little Bastard`을 애칭으로 삼았다. 마치 자신을 투영하듯이 말이다.


550 스파이더는 레이스용 모델로 기획된 터라 굉장히 낮은 차체가 인상적이었다. 전고가 1미터를 살짝 넘는 컴팩트한 차체는 경량화 기술과 더불어 어느 구간에서든 뛰어난 움직임을 자아낼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훌륭한 성능에 강한 신뢰를 지녔던 것인지, 제임스 딘은 이전보다 운전습관이 흉폭하게 변했다.



제임스 딘은 우울증으로 하여금 쌓여있던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다. 그는 영화 `자이언트` 촬영을 마치고 당시 살리나스에서 열렸던 자동차 경주에 참가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러나 젊은 청년이 운전하는 포드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대형사고와 함께 그는 결국 숨을 거두었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인디애나주 페어마운트에 묻혔다.


제임스 딘은 또 다른 연인이었던 포르쉐 550 스파이더와 함께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그의 묘비가 세워진 이후, 유작이었던 `자이언트`를 통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사후에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건 제임스 딘이 최초였다.



사실 550 스파이더는 일반인들에게 크게 유명한 자동차는 아니었다. 그러나 제임스 딘의 교통사고 건으로 인해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사망하기 한 달 전, `과속을 자제하고 안전운전을 하자`는 공익 광고를 찍은 바 있다. 역사에 있어 `만약`이라는 단어는 무의미하지만, 제임스 딘이 자신이 이야기한 공익 광고 내용을 더욱 가슴 깊이 새겨두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의미 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그렇게 허무하게 가버리기엔 너무 젊었다. 그리고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짧고 굵게 가는 인생은 바로 제임스 딘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제임스 딘의 비극적 순간을 함께했던 550 스파이더는 현재까지 이름을 이어오는 박스터에게 소형 로드스터 자리를 물려주었다. 박스터는 550 스파이더가 단종된 지 40년 후에 출시된 차량이지만, 포르쉐의 양산형 로드스터 자리를 잇는 550 스파이더의 직속 후계자이다. 포르쉐는 그 40년 세월 동안 양산형 로드스터를 만든 적이 없다.



타의로 제임스의 곁을 떠났던 피어 안젤리는 허무하게 세상을 저버린 그를 그리워했다. 그리고 그녀가 본래 지녔던 밝고 쾌활했던 성격을 잃고 약물 중독에 시달리다 불혹이 되기 직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세상을 떠나기 전, 지인들에게 `나의 사랑은 포르쉐에서 죽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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