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대표 자동차 제조사이자, 국내에도 르노코리아를 통해 활동하고 있는 르노. 르노는 1899년 창립한, 역사가 오래된 기업이며,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큰 자동차기업이기도 하다.
르노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합리적인 가격의 대중적인 소형차를 잘 만드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르노의 소형 해치백 승용차들은 유럽의 승용차 시장에서 항상 상위권을 차지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A세그먼트에는 스마트와 플랫폼을 공유하는 르노 트윙고, B세그먼트에는 최강자 르노 클리오가 있으며, C세그먼트에는 폭스바겐 골프와 정면대결을 벌이는 르노 메간 등이 있다. 이 외에는 MPV로도 유명하다. 특히 한 때에는 유럽형 MPV의 정수로도 통했던 에스파스(Espace)를 시작으로 다양한 종류의 MPV를 개발해 성공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르노에게는 또 다른 얼굴이 있다. 바로 모터스포츠에 대한 열정이다. 특히 르노는 온로드 모터스포츠의 정점으로 여겨지는 포뮬러 원(이하 F1)은 물론, WRC, 르망 24시 등 온갖 종류의 모터스포츠에 참가하는 것은 물론, 그 경험을 토대로 한 고성능 차량들을 '르노 스포츠(Renault Sports, R.S.)'의 이름으로 만들어 일반에 판매하기도 한다. 이 뿐만 아니라 이들은 자신들의 열정을 현실에 구현하기도 한다. 열정을 넘어, '광기'마저 느껴지는 그들의 작품들을 살펴보자.
르노 5 터보(1980)
이 차는 길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전륜구동 해치백 소형차인 르노 5를 당장 WRC로 내보낼 수 있을 정도의 튜닝을 거쳐 완성한 차다. 즉, "도로 주행이 가능한 랠리카" 그 자체였다. 괴이할 정도로 떡 벌어진 리어 펜더와 그 곳에 뚫려있는 벤트들은 이 차가 정상적인 전륜구동 해치백의 범주에서 벗어난 물건임을 암시한다. 이 차의 엔진은 보닛 아래가 아닌, 바로 차체 뒤쪽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르노 5에 탑재된 엔진은 1.4리터 4기통 터보 엔진이다. 이 배기량에, 이 레이아웃의 엔진이라면 전륜구동 소형차인 르노 5의 보닛 아래 못 들어갈 이유가 없을텐데 구태여 왜 이런 기형적인 배치를 하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그 엔진의 정체에 있다.
이 엔진의 정체는 스포츠카 알핀 A110에 사용되었던 클레옹-퐁테(Cléon-Fonte) 터보 엔진으로, 알핀의 후방엔진 후륜구동계응 유용하기 위해 그대로 차체 뒤쪽에 달아버린 것이다. 비정상적으로 불어난 리어펜더는 엔진의 힘을 감당하기 위한 것이고, 벤트는 억지로 뒤쪽에 달아 놓은 엔진을 냉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 엔진의 최고출력은 160마력으로 배기량 1리터 당 100마력을 상회하는 초고성능 엔진을 1980년에 완성한 것이었다. 이후에는 그룹B 사양에 맞춰 배기량을 1.6리터로 늘리고 출력을 대폭 올린 버전도 등장했는데, 그 중에서도 최강 버전인 맥시 터보는 무려 350마력에 달하는 힘을 뿜어냈다.
르노 에스파스 F1(1995)
앞서 언급했듯이, 르노는 소형 해치백 외에도 MPV인 에스파스가 유명했다. 그리고 르노는 르노 5에 행했던 것과 같은 맥락의 '기행'을 또 한 번 저지르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에스파스 F1이다. 이 차는 비록 양산되지 않는 원-오프 모델 내지는 쇼카에 가까운 차였는데, 르노는 이 MPV에 F1 경주차의 심장을 이식(!)하는 기행을 벌였다.
이 차의 기반은 1991년부터 시판되기 시작한 에스파스의 2세대 모델이다. 르노는 이 차에 탑재되었던 거의 모든 것을 싹 걷어내고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만든 것에 가까웠다. 섀시부터 F1 경주차에 사용되는 경량 카본파이버 섀시로 변경했으며, 차체에는 전용의 와이드 바디킷과 경주차 부럽지 않은 대형의 리어윙을 설치했다. 그리고 이 차에 르노의 F1 경주차에 사용되었던 3.5리터 르노 RS5 V10 엔진을 심었다. 이 엔진은 F1 경주차용 엔진 그대로였으므로, 당시 규정과 동일한 최고출력 800마력의 성능을 발휘했다. 심지어 엔진은 보닛 아래가 아닌, 휠베이스의 정중앙에 설치했으며, 투명 덮개를 씌워 실내에서 엔진의 실린더 헤드를 직접 볼 수 있었다.
이 뿐만 아니라 르노는 이 차의 7인승 좌석을 몽땅 들어내고 그 자리에 4개의 카본파이버 버킷시트를 설치했으며, 인테리어 구조물도 전부 초경량 카본파이버로 대체했다. 공차중량은 단 1,300kg이며, 강력한 성능을 통제하기 위해 고가의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를 적용했다. 이 차는 사실 상 F1 경주차와 동일한 섀시와 파워트레인을 사용했으며, 0-100km/h 가속시간은 불과 2.8초, 0-200km/h 가속에 단 6.8초 밖에 걸리지 않는 흉악한 성능을 자랑했다.
사실 이 차는 르노가 아닌, 르노 에스파스를 위탁생산하는 자동차 제조사 마트라(Matra)의 주도로 만들어진 차다. 이 차는 에스파스의 탄생 10주년과 르노의 F1 진출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한 차량인 것이다. 이 차는 아일톤 세나의 라이벌이자, 당대 최고의 드라이버 중 하나로 손꼽히는 알랭 프로스트를 시작으로 프랭크 윌리엄스, 데이비드 쿨사드 등의 드라이버들이 주행을 선보였다.
르노 클리오 V6 르노 스포트(1999)
앞서 등장한 르노 5 터보 이후 십수년 만에 르노가 또 한 번 해치백을 가지고 기행을 벌였다. 그 대상은 B세그먼트 해치백인 르노 클리오였고, 그 방식은 앞서 등장한 르노 5 터보와 같이, "강력한 엔진을 뒤에다 싣는다"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십 수년 먼저 등장한 선배 보다 더욱 "미쳐있었다".
르노 클리오 V6 르노스포트는 클리오의 뒷좌석을 들어내고, 그 자리에 무려 2.9리터 배기량의 V6 터보 엔진을 구겨넣어 완성한 차다. 이 차에 탑재된 엔진은 르노가 PSA그룹과 공동으로 개발한 ES/L 계열의 V6 터보 엔진으로, 클리오의 비좁은 보닛에 담기에는 너무 크고 무거운 엔진이었다. 이에 르노는 르노 5 터보와 같은 방식으로 이 크고 강력한 엔진을 탑재한 것이다.
또한 르노 5 터보와 마찬가지로, 차량의 밸런스와 성능을 위해 전용의 와이드 바디킷과 광폭 타이어를 적용했다. 클리오 V6 르노 스포트의 엔진은 사양 및 트림에 따라 최소 230마력, 최대 281마력의 괴력을 두툼해진 뒷바퀴로 전달했으며, 변속기는 6단 수동 변속기를 적용했다. 르노 클리오 V6 르노 스포트는 핫해치의 규격을 벗어나 버린, 광기 어린 성능과 주행 경험으로, 운전자로 하여금 진정으로 화끈한 맛을 선사하는 몇 안되는 자동차 중 하나로 통한다.
르노 트위지 F1(2013)
르노 트위지는 도심의 소상공인의 업무와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을 위해 만들어졌던 초소형 전기차다. 하지만 르노의 광기는 이 조그마한 퍼스널 모빌리티에게까지 미치게 되었다. 이들은 트위지가 갖는, 전기차로서의 정체성은 지켜주었지만, 다른 그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먼저 바퀴부터가 범상치 않다. 트위지 F1에는 오픈휠 레이싱카에 사용될 법한, 초광폭의 슬릭(Sleek) 타이어와 전용 휠이 적용되어 있다. 그리고 바퀴 주변으로는 역시 F1 경주차의 것을 연상케 하는 다양한 에어로파츠들이 둘러져 있다. 게다가 뒤쪽에는 거대한 리어윙까지 달고 있다. 그리고 트위지의 상징이었던 시저도어는 아예 떼어버렸다.
르노의 기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이, 전기차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더더욱 강력한 성능을 내기 위해 F1 경주차에 사용되는 '운동에너지 회수 시스템(Kinetic Energy Recovery System, KERS)'을 우겨 넣었다. 이 KERS의 존재 덕분에 르노 트위지 F1은 기본 출력은 시판차량과 동일한 17마력이지만 13초의 제한된 시간동안 무려 97마력으로 출력이 퀀텀 점프를 한다. 이 덕분에 르노 트위지 F1은 0-100km/h 가속 시간 6초, 최고속도 106km/h의 성능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