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알차게 거듭난 패밀리 SUV의 정석 - 혼다 파일럿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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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알차게 거듭난 패밀리 SUV의 정석 - 혼다 파일럿 시승기
  • 박병하
  • 승인 2024.01.08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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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기연공업(이하 혼다)의 대형 SUV 모델 파일럿(Pilot)의 신형 모델을 발표했다. 혼다 파일럿은 혼다가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는, 해외시장 전용의 대형의 SUV 모델로, 북미 현지에서는 3열 중형급 SUV로 분류된다. 8년만의 풀 모델 체인지를 맞은 파일럿은 4세대에 해당하며, 새로워진 디자인과 더불어 더욱 견고해진 차체구조와 강화된 오프로드 주행성능, 그리고 한층 스마트한 능동안전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국내 시장에는 2023년부터 엘리트 단일트림으로 판매가 시작되었다. VAT 포함 차량 기본 가격은 6,940만원이다.

4세대 혼다 파일럿의 외관은 날렵한 스타일을 취했던 선대에 비해 SUV다운 강인함과 견고함을 강조한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2세대 파일럿을 연상케하는 각지고 듬직한 느낌에 혼다의 최신 디자인 언어를 반영한 모습이다. 덕분에 한층 세련되면서도 SUV만의 멋이 살아 있으며, 호불호도 거의 갈리지 않을 듯 하다. 이 뿐만 아니라 차체의 크기도 기존 대비 전장, 전고, 휠 베이스가 모두 증가해 한층 커진 차체 크기가 압권이며, 후륜구동차량을 연상시키는 역동적인 비율을 실현하고 있다.

전면부는 라디에이터 그릴의 양쪽에 날개 형상으로 일체화되어 있는 헤드램프를 통해 시각적으로 차량을 훨씬 커 보이게 만들어주고 있다. 라디에이터 그릴 상단에서부터 헤드램프 안쪽까지 파고드는 형태의 크롬 장식에서는 3세대 파일럿의 흔적을 엿볼 수 있으며, 한층 남성적인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 전면 하단에는 굵직한 형태로 돌출된 범퍼와 더불어 양끝단에 자리한 측면 공기흡입구, 그리고 하단의 큼지막한 공기흡입구 등으로 기존의 3세대 파일럿 대비 더욱 강인한 마스크를 완성하고 있다. 

측면에서는 더욱 단순하면서도 은은한 볼륨감을 주는 형상이 눈에 띈다. 여기에 2세대와 같이 직선적인 실루엣과 더불어 쿼터글라스가 분리된 형태로 회귀한 것도 특징이다. 이러한 덕분에 보다 정통파 SUV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캐릭터라인 또한 수평향을 이루고 있으며, 은은한 볼륨감을 강조하여 더욱 단단해보이는 느낌을 주고 있다. 차체 크기는 길이 5,090mm, 폭 1,995mm, 높이 1,805mm이며, 휠베이스는 2,890mm다. 이는 기존 3세대 모델 대비 135mm나 길어지고, 높이는 30mm 더 높아졌다. 휠베이스는 70mm 더 길어졌다.

뒷모습에서는 후방의 가니시를 연결하여 일체화된 형태를 취하는 수평 기조의 테일램프와 더불어 더욱 단정하고 정돈된 스타일을 보인다. 조금은 심심한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깔끔하고 단정하게 마무리된 뒷모습이 정갈해 보인다. 

인테리어는 대대로 실용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선대들의 경향을 따르는 듯 하면서도 근래의 트렌드에 따른 구성을 취하고 있다. 혼다의 새로운 디자인 언어에 따라, 극단적인 수평향의 기조를 취하고 있는 대시보드 디자인과 함께 돌출형의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를 적용하고 있다. 공조장치 패널은 분리되어 있고, 계기판은 여전히 매립되어 있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바짝 치켜 올라온 플로어 콘솔과 오디세이에도 적용된 바 있었던 버튼식 변속장치가 도입된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파일럿은 대시보드와 도어패널 플로어콘솔 등 곳곳에 크고작은 수납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도어 패널의 포켓은 2단 선반 구조로 되어 있어, 자잘한 물건들을 수납하기 좋으며, 각 2구의 보틀홀더를 마련하고 있다. 센터페시아 하단부에도 크고작은 수납공간이 있어, 자잘한 물건들을 넣어두기 좋다. 다양한 수납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은 SUV의 본질적 가치에 충실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국내에 수입되는 혼다 파일럿은 8인승 좌석을 제공한다. 먼저 1열 좌석은 전반적으로 넉넉한 사이즈의 시트를 적용하고 있으며, 듬직하게 신체를 지지해주면서도 편안한 착좌감이 마음에 든다. 운전석은 8방향 전동조절 기능과 전동식 요추지지대, 그리고 2개의 메모리 기능가지 제공한다. 조수석 또한 전동조절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1열 좌석에는 3단계의 열선과 통풍 기능을 제공한다.

기본적으로 벤치형으로 구성되어 있는 2열 좌석 역시 편안한 착좌감을 제공한다. 여기에 수동 레버식 리클라이닝 기능과 슬라이딩 레일(좌/우측)을 제공하며, 3열 좌석으로 손쉽게 접근하기 위한 전동식 이지 엑세스 기능을 제공한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좌석의 등받이가 앞으로 완전히 젖혀지면서 전방을 향해 부드럽게 슬라이딩한다. 2열 좌석 내의 공간은 길어진 차체 크기와 휠베이스를 살려, 덩치 큰 성인 남성에게도 여유로운 거주성을 제공한다. 헤드룸도 충분히 확보되어 있기에 더욱 만족스럽다.

이 외에도 2열 좌석에는 앞좌석 시트 등받이에 마련된 상/하단 포켓, 넉넉한 도어패널측 수납공간과 더불어 뒷좌석 공조장치 패널, 3단 열선 기능, USB Type-A 충전단자 2개, 측면 수동식 선셰이드를 제공한다. 가운데 좌석을 완전히 접게 되면, 콘솔트레이와 컵홀더를 겸하는 팔걸이로 사용할 수 있다. 등받이의 트레이는 각티슈 1개가 들어갈 정도로 넉넉한 크기로 설계되어 있다.

이 뿐만 아니라 2열의 가운데 좌석은 필요시 떼어내어 2열 좌석을 2개의 독립식 좌석으로도 변신, 더욱 여유로운 거주성과 3열 좌석으로 의 접근성을 제공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떼어낸 가운데 부분 좌석은 트렁크룸 하단의 수납함에 쏙 들어가게 제작되어, 떼어낸 좌석이 처치곤란이 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이 역시 SUV의 본질적 가치인 '실용성'을 중시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3열 좌석은 동급의 준대형급 SUV들에 비해 상당히 여유가 있는 편이다. 2열좌석을 뒤쪽으로 최대한 슬라이딩 한 상태에서도 다리 공간에 여유가 있는 편이며, 2열 좌석 승차자가 약간만 양보해준다면 일반적인 소형세단에 근접한 수준의 거주성을 경험할 수 있다. 6:4비율로 접히는 벤치형 좌석을 적용하고 있으며, 시트의 구성도 옹색하지 않아서 더 마음에 든다.

그러나 SUV로서의 실용성이 빛을 발휘하는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트렁크다. 혼다 파일럿은 시리즈 대대로 동급에서 최상급에 해당하는 내부 적재 공간을 제공해왔으며, 신형인 4세대 또한 동급에서 최고 수준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3열좌석을 모두 펼쳤을 때의 기본 용량만 해도 527리터에, 3열좌석을 모두 접으면 1,373리터, 2열좌석까지 모두 접으면 2,464리터에 달하는, 미니밴 부럽지 않은 내부 적재 공간을 제공한다.

트렁크룸 하단은 넉넉한 용량을 갖춰 다양한 짐을 수납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2열 좌석의 가운데 부분을 탈거했을 때 쏙 들어가는 정도의 공간을 자랑한다. 여기에 트렁크룸 바닥에 해당하는 패널은 양면이 서로 다른 소재로 이루어져 있다. 한 쪽은 직물로, 한쪽은 단단한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져 있다.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져 있는 부분을 위로 두고 사용하면 젖어 있거나 진흙 등에 오염된 레저장비를 실었을 때, 냄새가 배거나 손상되는 현상을 막을 수 있어, 유용하다.

4세대로 거듭난 혼다 파일럿은 자사의 고급 브랜드인 아큐라(Acura) 모델들에 사용하는 풀 알루미늄 구조의 3.5리터 V6 DOHC i-VTEC 엔진을 사용한다. 최고출력은 289마력/6,100rpm, 최대토크는 36.2kg.m/5,000rpm이며, 혼다 자체개발의 자동 10단 변속기와 상시사륜구동 시스템으로 파워트레인을 구성한다.

4세대로 거듭난 혼다 파일럿은 정숙성과 연비에 강점이 있는 SOHC(Single OverHead Cam) 엔진을 버리고 DOHC(Dual OverHead Cam)로 갈아탔음에도, 여전히 준수한 정숙성을 제공한다. DOHC는 SOHC 대비 더욱 높은 힘을 낼 수 있지만, 그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음과 진동이 더 강하다는 것이 이론 상의 이야기지만, 발전된 기술력으로 완성된 새 엔진은 대단히 정숙하고 부드러운 회전질감을 제공한다. 

이 뿐만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더욱 강건해진 기골과 더불어 소음저감을 위한 설계도 충실히 이루어져 있어, 아이들링은 물론, 운행시의 정숙성 역시 뛰어나다. 물론 회전수를 의도적으로 끄집어 올리지만 않는다면 실내는 항상 정숙함을 유지한다. 이는 패밀리카로서 사용되는 SUV로서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포인트다. 여기에 외부에서 유입되는 소음도 상당히 적은 편이다.

승차감은 기존 대비 한층 향상된 느낌이다. 특히 안정감의 측면에서 확실하게 진일보했다는 느낌을 준다. 혼다 파일럿은 시리즈 대대로 동사의 미니밴 모델, 오딧세이와 필적하는 준수한 승차감을 제공해왔는데, 이번 4세대 파일럿은 오히려 현행의 오딧세이를 능가하는 승차감을 가졌다고 평가하고 싶을 정도다. 무게중심이 높고 세단 대비 월등히 무거운 준대형급의 SUV임에도 상당히 안정적인 느낌의 승차감을 제공한다. 여기에 시리즈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편안한 질감은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 역시, 패밀리카로서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포인트다. 

업그레이드된 파워트레인을 장비한 4세대 파일럿은 가속력 면에서도 더욱 향상된 경험을 제공한다. 넉넉한 배기량에서 오는 묵직하고 튼실한 동력이 효율적인 자동 10단 변속기와 만나 충실한 가속력과 순발력을 제공한다. 동력성능 면에서 충실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속주행시의 안정감도 여전히 준수하다.

주행질감 면에서도 한층 진화했다는 느낌을 준다. 혼다의 완전히 새로워진 글로벌 프레임(G-Frame)을 기반으로 개발된 4세대 파일럿의 섀시는 한층 강건하고 무게중심도 더 낮은 느낌을 준다. 이렇게 단단해진 기골 외에도 낮은 시트포지션과 적절한 스티어링 휠 응답성 및 페달 응답성을 실현해 더 직관적인 주행의 경험을 제공한다. 또한 파일럿의 상시사륜구동 시스템은 다양한 노면상황을 감지해 후륜에 최대 70%의 동력을 보낼 수 있으며, 심지어 좌/우 한쪽으로 구동력을 편향시킬 수 있는 트루 토크 벡터링(True Torque Vectoring) 기술가지 적용되어 오프로드는 물론, 온로드에서도 뛰어난 주행성능을 경험할 수 있다. 여전히 편안한 주행질감을 제공하지만 성향은 확실히 더 스포티해진 덕분에 항시 기분 좋은 운전의 경험을 제공한다.

아울러 신형 파일럿은 최신의 혼다센싱(Honda SENSING)이 적용되어 있다. 새로운 혼다센싱은 90도 시야각의 광각 카메라와 120도 광각 레이더를 새롭게 탑재해 자동 감응식 정속 주행 장치(ACC), 차선 유지 보조 시스템(LKAS), 추돌 경감 제동 시스템(CMBS), 도로 이탈 경감 시스템(RDM), 후측방 경보 시스템(BSI) 기능이 업그레이드되었다. 여기에 트래픽 잼 어시스트(TJA: Traffic Jam Assist) 기능과 속 브레이크 컨트롤(LSBC: Low Speed Braking Control)도 적용하고 있다. 새로운 혼다 센싱은 기존 시스템 대비 더욱 정교해진 제어가 돋보인다.

혼다 파일럿은 눈으로 보이는 부분만 보자면, 국내 시장에서 힘을 쓰기 어려울 수 있다. 특히 일본계 브랜드 특유의 '보수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탓에, '올드한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혼다의 미국향(向) 모델은 다른 일본계 브랜드에 비해서 그 보수성이 더더욱 짙게 드러나는 편인데 혼다 파일럿은 그 정점에 있는 모델이기 때문이다.

물론 파일럿은 4세대 들어 디자인 면에서 큰 변화를 주긴 했지만, 국내 시장에서 선호하는 화려한 감각은 부족하다. 인테리어에서도 버튼식 변속장치를 제외하면,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다른 브랜드들에 비해 대단히 보수적이고 검증된 구조만을 따르고 있다. 필요한 것만 쏙쏙 골라 담아 놓은 구성은 분명히 실용적이고 편리하지만 감각적인 부분을 중시하는 국내 시장에서는 아무래도 매력도가 떨어져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용성'이야말로 SUV의 가장 본질적인 가치로 여기는 입장에서, 4세대 혼다 파일럿은 대단히 잘 만들어진 패밀리카임에 틀림없다. 혼다 파일럿은 시리즈 대대로 화려한 외관이나 휘황찬란한 편의장치들보다는 SUV로서 가져야 할 필수요소들에 집중해 왔으며, 이번 4세대 파일럿 역시 그러하다. 여유로운 실내 공간과 다양하게 마련된 수납공간, 도심형 소프트로더 기준으로 충실한 사륜구동 성능과 일상생활에서의 편안하고 여유로운 주행질감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을 뿐더러, 어떤 면에서는 경쟁자들을 충분히 능가한다.

특히 주행질감과 같이, '눈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은 이전 세대에서 느꼈었던 아쉬운 부분들을 대부분 해소했다고 봐도 될 정도로 레벨업이 이루어졌다고 본다. 승용 세단에 한층 더 가까워진 주드럽고 안정감 있는 주행감각과 크로스오버 SUV로서 충분한 수준의 노면 적응력을 가지고 있어 더욱 만족스럽다. 대배기량 가솔린 엔진을 사용한다는 점이 대중성 면에서 다소 걸리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뛰어난 성능의 10단 자동 변속기가 보완해주는 부분들이 많다.

철저하게 실용성과 주행의 경험을 중시한 구성으로 만들어진 4세대 파일럿은 그동안 경험했던 SUV들 가운데 손에 꼽을 만큼 인상적인 경험을 안겨 주었다. 특히,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가장들에게는 정말이지 이 만한 차도 흔치 않다. 특히 근래 들어 SUV들이 세단의 화려함을 취하려 들면서 실용성이라는 본질적인 가치를 조금식 배제해가고 있는 오늘날 자동차 시장에서 혼다 파일럿은 그야말로 '정석'에 수렴하는 SUV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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