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대표 자동차 기업, 세아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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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대표 자동차 기업, 세아트 이야기
  • 박병하
  • 승인 2023.09.05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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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현재 유럽연합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경제규모를 지니고 있다. 스페인은 오랫동안 농업국가였고, 거대한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었던 제국주의 시절에도 식민지에서 오는 부를 통해 유지되었던 국가였고, 이 때문에 지금도 농업국가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스페인은 현재 유럽 내에서도 손꼽히는 산업국가 중 하나다. 스페인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고 난 이후인 1950년대부터 70년대에 걸쳐 가히 '기적'이라 불릴 만한 빠른 산업화와 압축성장을 통해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의 산업이 고루 발달한 선진국형 경제구조를 가진 국가로 거듭났다.

여기에 의외의 사실을 하나 더 붙이자면, 현재 스페인의 최대 수출품목은 다름 아닌 '자동차'다. 자동차는 2021년 기준으로 스페인의 전체 수출에서 9.28%를 차지하고 있으며, 자동차 부품 관련 분야도 3%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스페인은 독일이나 프랑스 등 자동차 산업 선진국들의 대표적인 해외 생산 거점으로 통하고 있으며, 현재 알려진 것만 해도 르노, 포드(유럽 포드), PSA(푸조-시트로엥), 폭스바겐 등이 스페인에서 승용차를 생산하고 있으며, 메르세데스-벤츠와 이베코도 이곳에 상용차 생산 거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스페인의 자동차 산업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먼저 자체 자본과 기술력이 부족해 많은 부분을 외국의 자본과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과거 대한민국도 가지고 있었던 한계점이었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자동차 산업이 글로벌 기업들과 직접 경쟁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한 것과는 대비되는 부분이다.

물론 스페인도 20세기 초, 이스파노-수이사(Hispano-Suiza)와 같은 걸출한 자동차 기업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 기업은 자동차만 제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항공기, 무기 등 다방면에 손을 뻗고 있었던 기업이었으며, 2차대전의 전초전이라 불리는 스페인 내전과 함께 세 조각으로 쪼개졌다. 그리고 여기서 현재 스페인 유일의 자체 자동차 기업인 세아트(SEAT S. A.)가 탄생하게 된다.

1940년, 이스파노-수이사로부터 독립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세아트의 역사는 스페인 최초의 자동차 제조사인 이스파노-수이사의 자동차 사업부문에서 시작된다. 이스파노-수이사는 1904년, 스위스 출신의 공학자인 마크 비르키트(Marc Birkigt)와 스페인의 자본가인 다미안 마테우(Damián Mateu)를 위시한 스페인 자본가 그룹의 자금 투자를 통해 설립된 기업이다.

이스파노-수이사는 마크 비르키트의 뛰어난 기술력과 다미안 마테우의 자금력을 통해 20세기 초 당시에 부가티, 롤스로이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최고급/고성능 자동차 제조사로 통했다(심지어 창업은 이 두 회사보다도 빨랐다). 이스파노-수이사는 제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잠시 자동차 사업을 중단하고 항공기 엔진 생산에 주력했다가 종전후 자동차 사업으로 복귀했는데, 몇 년의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선도하는 뛰어난 성능과 아름다운 외관으로 유럽의 왕실과 부호들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통했다.

하지만 영광의 세월은 이 때까지였다. 제 2차 세계대전의 예고편에 해당했던 '스페인 내전'이 발발했고, 내전 종식 이후에는 제 2차 세계대전까지 벌어지면서 회사가 3개로 쪼개지게 된 것이다. 먼저, 회사에 막대한 이익과 명성을 가져다 주었던 프랑스 지역에 위치한 최고급 자동차 공장을 프랑스 정부가 강제로 국유화해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렇지만 이 공장은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파괴된다. 이 공장은 2차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겨우 재건되었는데, 이 공장은 자동차 공장에서 항공기 엔진 및 터빈 관련 공장으로 전환하게 되었고, 이를 훗날 프랑스의 항공기 엔진 제조사 스네크마(SNECMA, 現 사프란 그룹)社와 인수하게 된다.

여기에 스페인 내전 이후 수립된 프랑코 정권이 나치 독일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는 중립노선을 취하면서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는 바람에 전시경제를 통한 재건조차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2차대전이 종결된 이후에도 무역제재와 전후 유럽 전역의 경기 침체로 인해 회사의 경영은 더욱 어려워지게 된다. 이로 인해 이스파노-수이사는 자동차 부문과 항공기 부문(Hispano Aviacion)으로 쪼개지게 된다.

여기서 스페인에 남아 있던 자동차 부문은 스페인 국영 은행과 함께 '이베리안 투어링 카 연합(Sociedad Ibérica de Automóviles de Turism, 이하 S.I.A.T)'이라는 합작 회사로 거듭나게 된다. 그리고 1950년, S.I.A.T는 프랑코 정권 하에서 정부의 산업 진흥기관과 은행 7개소, 그리고 같은 파시즘 국가였던 이탈리아의 피아트(FIAT)가 출자하는 스페인의 국책 자동차 회사인 스페인 승용 자동차 회사(Sociedad Española de Automóviles de Turismo)로 거듭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세아트(SEAT S.A.)의 시작이다.

피아트와의 협력으로 성장
세아트는 초기에는 피아트의 기술지원을 통해 운영되었다. 세아트의 공장에서 만들어진 첫 차는 1953년 공개한 중형세단 '세아트 1400'이다. 이 차는 동형의 피아트 중형세단을 변허 생산한 것으로, 독자모델은 아니었다. 세아트 1400은 초기에는 이탈리아 파이트에서 부품을 가져와서 조립 생산하는 CKD(Complete Knock Down) 방식으로 생산되었지만 1954년도부터 국산화를 시작해 이후에는 국산화율이 93%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이 차는 단종되는 1963년도까지 총 82,894대가 생산되어 세아트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었다.

1963년 발표한 소형 승용차 세아트 600은 1955년에 만들어진 피아트 600을 변허 생산한 모델로, 저렴한 가격과 작고 취급하기 좋은 차체, 실용성 덕분에 날개돋힌 듯 팔려나가며 스페인의 자동차 보급에 크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호황에도 기여했다. 또한 1975년도에는 나바라 주 팜플로나에 터를 잡고 있었던 아우시(Authi)를 인수, 규모를 더욱 키웠다. 이렇게 세아트의 창립 초기 역사는 대체로 피아트의 양산차들을 면허생산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스페인을 대표하는 승용 자동차 제조사로서 완전히 자리잡게 된다. 

세아트는 1980년을 전후하여 큰 변화의 시기를 맞는다. 1970년대 석유파동과 스페인이 GM을 상대로 취하고 있었던 보호주의적 정책이 종료됨에 따라, 세아트와의 협력에서 더이상 이익을 보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서 세아트와의 협력관계를 재고하게 된 것이다. 이에 1980년대초부터 세아트의 대주주인 스페인 정부와 피아트 사이에 자금 조달 및 지배권에 관한 광범위한 논의를 전개한 끝에, 결국 세아트와의 협력관계를 종료했다.

홀로서기, 그리고 폭스바겐
피아트와의 관계가 청산된 이후 세아트는 1982년, 첫 독자모델인 세아트 론다(SEAT Ronda)를 출시하게 되었다. 세아트 론다는 C세그먼트급에 해당하는 해치백 모델이다. 그렇지만 이 모델은 출시와 동시에 분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차량의 디자인부터 기계적인 부분까지 피아트가 출시할 예정이었던 리트모(FIAT Ritmo) 부분변경 모델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이유로 피아트가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 사건은 결국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국제상공회의소(ICC)에 위치한 국제 중재 재판소까지 가서야 겨우 마무리가 되었다. 

그런데 이 때 피아트가 떠난 빈 자리를 지켜보고 있었던 거대 자동차 기업이 있었다. 그 곳은 바로 현재 세아트의 모회사인 독일 폭스바겐AG다. 이 당시 폭스바겐AG는 자사의 사업을 더욱 확장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당시 스페인 정부는 토요타, 미쓰비시, 닛산 등과 협상을 진행 중이었지만, 최종적으로 폭스바겐이 세아트와 함께하는 것으로 협의를 보고, 세아트의 기술 협력사가 된다. 그리고 1984년, 오늘의 세아트를 만든 기념비적인 양산차 모델인 이비자(SEAT Ibiza)가 태어나게 된다.

1984년, 파리 모터쇼에서 공개된 세아트의 1세대 이비자는 세아트의 홀로서기를 시도했던 시절을 상징하는 모델이다. 기술적으로는 기존의 세아트 론다를 설계 기반으로 하되, 이탈디자인 주지아로와 독일 카르만, 포르쉐 등의 협력으로 디자인을 크게 손보고, 새로운 엔진과 변속기를 적용하는 등, 대대적으로 개수하는 방향으로 개발한 모델이었다.

1세대 세아트 이비자는 비록 여전히 외부 기술 의존도가 여전히 크기는 하지만 세아트로서는 기존의 양산차에 비해서는 충분히 독자 모델로 봐줄 수 있는 모델이었다. 이 차는 現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가 세자 시절에 소유하던 모델이기도 하다. 세아트는 이 차를 "독일의 기술력과 이탈리아 디자인의 융합"이라고 홍보했다. 세아트 이비자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기념하는 세리에 올림피카(Serie Olimpica)를 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세아트의 홀로서기는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폭스바겐AG가 1986년 6월 18일, 세아트의 지분을 51%까지 차지했고, 동년 12월 23일에는 지분을 75%까지 늘리게 되며 세아트의 완전한 대주주가 된 것이다. 이 때 이후로 세아트는 폭스바겐의 자회사화되었으며, 1990년도에는 나머지 25%의 지분마저 폭스바겐이 사들이면서 완전한 자회사로 인수합병된다. 그리고 이 이후로 세아트는 같은 설계 기반의 폭스바겐 차종 대비 저렴하면서도 적당한 품질과 성능을 가진 대중지향적인 브랜드로 변화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세아트는 폭스바겐의 완전한 자회사로 거듭났으며, 유럽에서는 여전히 스타일리시한 디자인과 준수한 성능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대중 친화적인 브랜드로 통하고 있다. 여기에 2018년도에는 자체고성능 브랜드였던 쿠프라(Cupra)를 별개 브랜드로 독립시켜 운영하고 있다. 또한 쿠프라를 통해 고성능 전기차 개발과 모터스포츠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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