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차]기아 오피러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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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했던차]기아 오피러스 이야기
  • 박병하
  • 승인 2023.02.16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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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는 사업 초기에 마쓰다 K360 계열 삼륜차를 시작으로 중소형 상용차를 중심으로 자동차 사업을 꾸려왔다. 또한 기아가 최초로 생산하기 시작한 사륜자동차 역시 준중형급 화물차 모델인 복사(Boxer)였다. 기아가 최초의 승용차 모델인 브리사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973년도의 일이었다. 

기아는 1970년대 후반부터 고급 승용차를 갖고자 했다. 1978년 상공부의 6기통 자동차 생산 제한 조치가 해제됨과 더불어 노후화된 관용차량 교체수요가 발생하면서 고급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태생적으로 중소형 상용차로부터 출발해 승용차로 사업을 시작했던 현대나 GMK(現 한국지엠)에 밀리던 인지도를 극복하고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었다.

이에 기아는 푸조 604, 머큐리 세이블, 포텐샤, 그리고 엔터프라이즈 등에 이르는 일련의 대형세단 라인업을 유지하며 현대자동차와 대우자동차 등의 경쟁자에 맞서 왔다. 하지만 1997년 외환 위기로 인해 국내의 대기업들이 줄도산을 맞는 가운데, 기아 또한 모회사인 기아그룹의 경영악화로 인해 과거에 가장 큰 경쟁상대였던 현대자동차에 인수합병되는 신세를 맞게 되었다. 

현대자동차에 인수될 당시, 기아는 절치부심으로 준비했던 기함 엔터프라이즈를 가지고 있었다. 엔터프라이즈는 출시 당시에는 국산차 최대의 크기와 최고의 호화로움을 갖춘 최고급 세단으로 주목을 받았으나, 97년 외환위기와 그로 인한 모회사의 부도, 그리고 '벤츠 기술'을 등에 업은 쌍용자동차의 체어맨의 등장으로 앞길에 먹구름이 자욱하게 낀 상태였다. 게다가 1999년에는 현대자동차에서 '초대형 세단'을 표방한 에쿠스를 내놓으며 엔터프라이즈는 시장에서 존재감을 잃었고, 결국 2002년, 새롭게 제정된 배출가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단종을 맞고 만다.

이렇게 엔터프라이즈가 단종을 맞게 되자, 기아자동차의 플래그십 세단은 한동안 공백 상태에 놓이게 된다. 또한 합병 이전에 준비하고 있었던 프로젝트명 'SJ'라는 이름의 고급 세단 개발 계획마저 백지화되었다. 현대자동차가 기아차를 인수하게 되면서 일본 마쓰다와의 제휴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 당시 현대자동차는 다이너스티의 후속차종으로 프로젝트명 'GH'를 새롭게 개발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만 해도 다이너스티는 이미 구식화된데다 그랜저 XG는 기존 그랜저 대비 한 체급 낮아지면서 갭이 커졌기에, 이를 빠르게 메워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대자동차는 기존의 다이너스티를 유지하는 대신, 자사가 개발하고 있었던 프로젝트명 GH를 기아에 넘겨주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차가 바로 오피러스다. 

'남의 집 자식', 기아의 맏형이 되다
2003년 등장한 오피러스는 출신 성분부터 기아자동차와는 전혀 달랐다. 상술한 바와 같이, 현대자동차에서 개발하고 있었던 차종을 기아가 넘겨 받은 것이었기에 기존 기아차와의 연결고리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오피러스는 그랜저 XG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된 전륜구동 대형세단이다. 당시에는 차량의 체급 때문에 다이너스티의 오래된 미쓰비시 데보네어(뉴 그랜저) 플랫폼을 바탕으로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그랜저 XG의 것을 활용했다고 한다. 이 차는 여러 부분에서 현대자동차의 흔적들이 많이 드러나는데, 대표적인 요소로는 초기형의 센터페시아 디자인, 다이너스티와 같이 독립된 4등식 헤드램프, 그리고 준대형급 이상부터 후륜구동을 사용해 왔던 기아의 모델들과 달리, 전륜구동을 사용한다는 점 등이다. 차명인 오피러스(Opirus)는 라틴어로 황금의 땅(Ophir Rus)를 의미한다고 하며, 기아의 설명으로는 '의견 주도층(Opinion Leader Of Us)'을 의미한다고 한다.

오피러스는 첫 등장 당시부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특유의 외관 디자인이 큰 화제가 되었다. 1986년 그랜저의 등장 이래 그동안 직선적이고 권위적인 디자인이 주류를 이뤄왔던 그동안의 국산 고급세단과는 여러모로 다른 시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오피러스의 외관은 처음 출시했을 때에는 국내 자동차 관련 미디어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상당히 부정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재규어를 어설프게 따라한 것 같다"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반응은 물론, 그 특유의 라디에이터 그릴을 두고 "생선 뼈" 내지는 "매미 같다"는 등으로 조롱 섞인 반응도 나왔다. 전체적으로 조화롭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은 디자인은 오피러스에게 있어서 두고두고 단점으로 꼽혔다. 이 뿐만 아니라 현대차의 대형세단인 에쿠스와 다이너스티와 비교되면서 그 사이에 끼어 있는 듯한 애매한 포지셔닝으로도 말이 많았다. 이로 인해 초기형 오피러스는 신차임에도 판매량이 신통치 못했다.

파워트레인은 그랜저 XG와 다이너스티에 모두 사용했던 3.5리터 V6 시그마 엔진을 시작으로, 3.0 V6 시그마 엔진을 주력으로 삼았다. 그 외에는 그랜저 XG에 사용했던 2.7리터 델타 엔진도 고를 수 있었다. 이 뿐만 아니라 2005년부터는 에쿠스부터 적용하기 시작한 신형 엔진인 3.8 V6 람다 엔진이 추가되었다. 변속기는 자동 5단 변속기를 사용했다.

대대적인 변화로 초기의 악평을 떨쳐내다
하지만 2006년도의 페이스리프트를 전후하여, 오피러스는 일대 변신을 꾀하게 된다. 제원 상 변경된 부분은 전장이 20mm 더 길어진 것 외에는 없지만, 외관 디자인, 특히 전면과 후면의 디자인에 큰 변화를 주어, 초기형과 크게 달라진 인상을 갖게 되었다. 2006년 출시된 뉴 오피러스는 초기형의 기조를 잘 살리면서도 한층 완성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으며 좋은 반응을 얻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초기형 오피러스에 씌워진 '비호감' 이미지에서 슬슬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인테리어 또한 대대적으로 변화가 이루어지면서, 더욱 차별화된 제품 구성을 지니게 되었다.

여기에 설계 기반 또한 달라졌다. 뉴 오피러스부터는 신설계인 그랜저 TG의 플랫폼으로 변경하게 되면서 기존 오피러스 대비 거의 다른 차가 되었다. 새로운 설계 기반이 적용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파워트레인을 채용한 것 뿐만 아니라 섀시 면에서도 큰 진보가 이루어졌다. 특히 알루미늄과 마그네슘 합금 소재를 대폭 적용해 130kg에 달하는 경량화를 달성, 주행 성능과 질감도 대폭 향상되었다. 파워트레인은 그랜저 TG에 사용된 2.7리터 뮤 엔진과 3.3/3.8람다 V6 엔진을 적용해 동력성능과 연비 면에서도 개선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달라진 오피러스는 2008년 출시한 현대자동차의 초대 제네시스(BH)와 더불어,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기 시작했다. 현대 제네시스가 후륜구동 기반의 새로운 고급 승용차를 찾는 소비자에게 어필했다면, 오피러스는 전륜구동 기반의 전통적인 고급세단을 요구하는 소비자에게 어필하며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렇게 대대적인 진보를 이루며 재평가를 얻은 기아 오피러스는 2009년 또 한 번의 변화를 맞게 된다. '오피러스 프리미엄'이라는 이름으로 변화를 맞은 오피러스는 당시 기아의 새로운 디자인 요소로 적용되기 시작한 호랑이 그릴을 적용했고 전반적으로 깔끔하게 현대적인 감각으로 다듬어진 외관을 가졌다. 또한 당시 고급차종을 중심으로 도입되고 있었던 LED 등화류를 적용해 한결 세련된 외관을 갖게 되었다.

여기에 파워트레인에도 변화가 생겼다. 엔진 자체는 2.7리터 뮤 엔진과 3.3/3.8람다 V6 엔진으로 동일하지만 전반적으로 최고출력과 최대토크가 향상되었으며, 변속기 역시 신개발 자동 6단 변속기를 채용하여 더욱 향상된 동력성능을 제공했다. 이 뿐만 아니라 뒷좌석 통풍시트, 크루즈컨트롤, 버튼시동 스마트키 등이 적용되며 상품성도 업그레이드되었다.

이렇게 9년 동안 기아의 플래그십 자리를 지켜 온 오피러스는 2012년 단종되었다. 그리고 오피러스는 근본부터 완전히 새롭게 개발된 후륜구동 대형 세단 K9에게 자리를 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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