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날개를 잃는다는 것은 마치 새의 날개죽지가 부러진 것과도 같다. 물론 새는 걸어다닐수라도 있지만 비행기가 날개를 잃는다는 것은 본연의 가치를 완전히 잃고 그 생명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전투기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이 비운의 비행기의 이름은 바로 F-104 스타파이터다.
F-104 스타파이터는 냉전이 한창이었던 시기였던 1961년에 개발된 2세대 전투기다. 록히드(現 록히드 마틴의 전신)에서 개발한 이 가늘고 길다란 형상의 제트전투기는 세계 최초로 실용 등급으로 마하 2의 속도를 낼 수 있었던 초음속 전투기다. 이 전투기는 빠른 속도를 중요시한 요격기(邀擊機, Interceptor)로서 개발된 기종으로, 빠른 속도와 600km급 행동반경, 전천후로 활용할 수 있는 성능을 가진 기종이었다. 이 기체는 인류가 만든 가장 빠른 유인항공기인 SR-71 블랙버드 정찰기를 제작한 스컹크 웍스의 주도로 개발되었다.
F-104는 최대한 저렴한 가격으로 높은 고속성능을 낼 수 있는 요격기를 목표로 개발되었다. 이 때문에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 날개의 크기와 두께를 최소한도까지 줄이는 것은 물론, 동체를 되도록 가늘고 길게 설계하고 대추력의 단발엔진을 적용했다. 이 덕분에 멀리서 보면 마치 다트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이 덕분에 당대에 가장 빠른 전투기로 태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고속성능만을 중시하여 만들어진 탓에, 문제점도 적지 않았다. 한계까지 줄여 놓은 주 날개는 고속 비행시에는 유리했지만 전체적인 비행 안정성이 매우 나빴다. 이 때문에 조금만 속도를 줄이거나 해도 실속(失速, Stall) 현상에 빠지기 쉬웠다. 특히 기체가 좌우 방향으로 빙빙도는 수평 스핀에 빠지기 쉬웠다는 점이 이 전투기의 평가를 크게 떨어뜨렸다.
F-104 스타파이터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전투기지만 정작 미국에서는 단 180대만 공급되었다. 이 당시 미국은 이른 바 '센추리 시리즈'로 불리는 F-100, F-102, F-106 등의 기체를 이미 대량 채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가격이 저렴하고 대량 생산에 유리했던 구조를 지니고 있었고, 레이더와 미사일을 탑재 가능한 덕분에 우방국에 공급하기 위한 전투기로는 알맞았다. 이 때문에 F-104는 서독을 비롯한 자유진영의 최우방국에 우선적으로 공급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F-104의 생산 라인을 어떻게든 유지하기 위한 록히드 사의 치열한 로비작업도 한 몫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F-104는 2,500대가 넘는 물량이 생산되었다.
하지만 F-104는 신뢰도가 낮아, 비전투손실률이 상당히 높은 전투기였다. 물론, 이 당시의 제트 전투기들은 공통적으로 신뢰성이 부족하여 비전투손실률이 높은 편이었지만 F-104의 경우에는 서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대량으로 도입해 사용되었던 만큼, 신뢰성 부족이 더욱 부각되는 측면이 있었다. 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 불안한 전투기는 이 기종을 사용하고 있었던 주요국가들이 늘어나는 비전투손실과 기체 노후화로 새로운 전투기를 속속들이 도입하게 되면서 2004년 이후로 전량 퇴역한 지 오래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날개를 잃고 지상에 묶여있던 수많은 F-104들 중 하나는 지상에서의 속도기록을 위한 '자동차'로서 새로운 삶을 얻게 된다. 비록 날개는 잘려나갔지만 공기역학적으로 우수한 동체 형상과 강력한 엔진을 품고 있으므로, 이러한 속도기록에 도전하기에 안성맞춤인 플랫폼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자동차는 미국의 어느 폐차장에 방치되어 있었던 F-104를 약 2만 5천 달러를 주고 사들여, 개조 작업을 거쳐, '노스 아메리칸 이글(North American Eagle)'이라는 이름의 자동차로 새 삶을 살게 된다.
노스 아메리칸 이글은 미국에 위치한 보네빌의 소금사막을 왕복, 최고속도 709km/h, 평균 632km/h의 속도를 기록했다. 이 차로 이 기록을 낸 운전자는 제시 콤스(Jessy Combs)라는 여성 방송인이었는데, 이 덕분에 그녀는 사륜자동차를 타고 세계에서 가장 빨리 달린 여성으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2019년,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기 위한 시험 주행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해 차량이 대파되어 다시 달릴 수 있을 지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