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쓰인 첫 번째 자동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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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쓰인 첫 번째 자동차는?
  • 모토야
  • 승인 2021.09.2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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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전쟁사에서 '수레'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요소로 기능해 왔다. 기원 전 20세기쯤부터 나타난 '전차(戰車, Chariot)'는 기마술이 발달되지 못했던 문명권을 중심으로 널리 사용되었으며, 이 외에도 수 많은 수레들이 전쟁에 필요한 인력과 물자를 나르는 데 이용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수레는 진화를 거듭해 오면서, 자동차의 시대인 오늘날에도 세계 각지의 전장에서 뛰고 있다.

 

그런데 의외로 군대에서는 자동차라는 혁신적인 이동수단이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그다지 큰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군대라는 집단 자체가 보수적인 성향을 띄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기존에 마차와 철도 등으로 짜여져 있었던 병참 체계에 변화를 주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후, 자동차는 군대의 물자와 병력을 수송하는 체계에 빠르게 편입되기 시작했다. 자동차는 제 1차 세계대전부터 철도가 닿지 않는 전장에 물자와 병력을 빠르게 수송할 수 있는 수송체계임을 증명하며, 전장의 일선에 그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열강의 군대에 자동차를 유용한 수송수단으로서 각인 시킨 자동차 중 하나는 르노의 타입 AG 택시다.

1914년 프랑스 파리의 북동부에 위치한 '마른(Marne)' 강 일대에서 총 2차례에 걸쳐 일어난 마른 전투(Battle of the Marne)는 이른 바 '마른 강의 기적(Le miracle de la Marne)'이라고도 불리운다. 

이 당시 프랑스는 파리 코앞까지 진격해 온 독일군을 막아내야 했다. 이에 각지에서 닥치는 대로 병력을 징집해 전선으로 내보내야 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당시 전장이었던 마른 강 유역에는 철도가 연결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신속한 병력 증원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파리가 함락될 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 프랑스 정부는 파리 시내의 모든 택시들에 징발령을 내리고, 그렇게 모은 택시들을 총동원해 병력을 급파한다는 기발한 작전을 폈다. 물론 여기에는 택시 뿐만 아니라, 우유배달 차량, 트럭 등, 파리 시내에 있던 모든 자동차들을 박박 긁어 모았다.

이렇게 동원된 자동차들은 파리에서 불과 40km 떨어진 마른 강 방어선을 쉴 새 없이 오가며 5개 대대 규모에 해당하는 약 6천명의 병력을 이동시켰다. 이 뿐만 아니라, 가는 길에는 병력과 물자를 실어 나르는 한 편, 돌아오는 길에는 부상병과 실종된 민간인들을  안전한 후방으로 귀환 및 송환시키는 일을 겸했다. 이 당시 파리 앵발리드에 모인 600여대의 택시를 운전하던 택시 기사들은 나라의 명운이 걸린 상황에서 2일분 요금의 1/4만 받기로 하고, 적극적으로 프랑스군을 도왔다.

이 덕분에 제 1차 마른 강 전투 당시, 마른 강 전선의 프랑스군은 택시들의 활약으로 병력 손실을 빠르게 회복하며 독일군을 사생결단으로 막아 섰다. 덕분에 파죽지세와 같았던 독일군의 진격은 저지되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당초 단기결전으로 기획된 슐리펜 계획이 완전히 틀어져버리면서 독일군은 승기를 완전히 놓치게 되었으며, 프랑스는 이를 가리켜 '마른 강의 기적(Le miracle de la Marne)'이라고 부르게 된다.

독일군이 파죽지세로 벨기에를 뚫고 파리 코 앞까지 쇄도해 온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프랑스의 병력 증원을 도왔던 자동차들 중 가장 많은 것은 바로 600여대의 택시들이었다. 이 택시들 중 대다수는 르노에서 만들어진 타입 AG(Type AG) 모델로, 1905년부터 1910년도까지 생산된 차량이다.

이 차량은 동사의 타입 Y의 개량형으로 만들어진 차량으로, 4도어 세단의 차체 스타일과 전방엔진-후륜구동(Front Engine, Rear Wheel Drive, FR) 레이아웃으로 설계되었다. 길이는 3.7m, 폭은 1.6m, 높이는 2.2m의 크기를 가졌다. 엔진은 초기형에는 8마력의 최고출력을 내는 1,060cc 2기통 엔진을, 중/후기형인 AG1형에는 , 9마력의 최고출력을 내는 1,250cc 2기통 엔진을 사용했다. 

이 택시들은 1905년, 프랑스의 운송회사로부터 1,500대의 주문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1907년까지 3,000대 이상이 생산되었다. 그리고 영국과 미국, 아르헨티나 등에도 수출되고 있었을 정도로 잘 팔린 모델이었다. 이 당시 동원되었던 택시들은 현재도 일부가 프랑스 각지의 박물관에 남아 있다. 그리고 제 1차 마른 강 전투에서 자동차의 유용함을 깨달은 프랑스군은 프랑스 전역의 화물차량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한 편, 유럽의 그 어떤 군대보다도 빠르게 자동차를 병참에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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