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서구 열강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의 뒤편에는 인류가 처음으로 실용화하기 시작한 동력기관, 즉 '증기기관'이 있었다. 증기기관의 발명과 개량, 그리고 보급은 대량의 상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 되었고, 운송에 있어서도, 전근대적인 우마차와 범선을 차츰 대신해 내가면서 널리 사용되었다. 증기기관의 등장은 인류의 문명이 급속도로 진화 및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먼 과거에는 이 증기기관을 자동차에도 사용했었다. 1770년 등장한 인류 역사 상 최초의 자동차, 니콜라-조셉 퀴뇨(Nicolas-Joseph Cugnot, 1725~1804)의 자동차 역시 증기자동차였다. 통상 '증기기관'은 공장이나 선박에서 사용하는 대형의 증기기관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적어도 19세기 후반 쯤으로 접어들기 시작하면, 상당히 소형화된 형태의 증기기관들도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소형화된 증기기관들은 자동차에도 적용이 되었다.
증기기관을 탑재한 증기자동차는 내연기관 자동차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한 내연기관 자동차가 등장한 이후에도 증기자동차는 주류로 통했는데, 이는 초기 내연기관 자동차의 성능이 증기자동차에 못 미쳐, 경쟁력이 없었고, 증기자동차 대비 신뢰도를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증기자동차는 의외로 장점이 많았다. 내연기관 자동차나 초기 브러시드 모터를 사용하는 전기차 대비 소음이 적고 운행이 쾌적했다. 또한 초기 내연기관 자동차들보다 성능 면에서도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만사가 그렇듯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기관부가 지나치게 크고 무거우며, 증기기관차와 마찬가지로 항상 차내에 석탄과 물을 준비해 놓아야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증기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출발하기 한참 전에 보일러를 작동하여 물을 끓여야 하고, 보일러를 식히는 데에도 긴 시간을 요구한다. 즉, 시동을 걸고 정지시키는 과정이 상당히 번거로웠던 것이다.
이 때문에 증기자동차는 내연기관 자동차의 편의성이 대중에 어필하기 시작하고 난 이후부터 서서히 도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차대전을 거치면서 내연기관의 성능이 크게 향상되었던 1930년대를 전후하여 자취를 감추게 된다. 하지만 증기자동차의 역사는 초기 자동차 역사에서 자동차를 민간에 보급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세계의 역사에 기록된 증기자동차들을 둘러 본다.
라 망셀 증기자동차(La Mancelle, 1878)
퀴뇨의 증기자동차 이래, 약 100년 동안 증기자동차는 꾸준히 발전을 이루어 나갔다. 특히 프랑스의 아메데 볼레(Amédée-Ernest Bollée)가 개발한 양산 증기자동차 ‘라 망셀’은 선진적인 설계를 갖추고 상용화된 증기자동차로, 8년 늦게 등장한 페이턴트 모터바겐과 함께 현대적인 자동차 역사의 첫 단추를 꿴 자동차로 손꼽힌다. 라 망셀은 세계 최초의 양산 자동차로, 총 50대가 생산되었다고 전해진다. 라 망셀의 2기통 증기기관에서 생성된 동력은 추진축과 차동기어로 구현된 후륜구동 체계를 통해 뒷바퀴로 전달되었다. 앞바퀴에는 2개의 가로 판스프링을 적용한 ‘독립식 서스펜션’이라는 혁신적인 설계를 채용했다. 또한 조향장치로는 앞바퀴 양쪽의 랙에 각각 연결된 레버를 이용하는 방식을 취했다.
드 디옹-부통 라 마르퀴스(La Marquise, 1884)
1900~1905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동차를 생산한 프랑스의 드-디옹 부통(De Dion-Bouton)의 자동차 사업은 증기자동차로부터 출발했다. 보트나 자동차용의 소형 증기기관을 주로 생산하고 있었던 드 디옹-부통은 1880년대부터 실용적인 증기자동차의 개발에 몰두했다. 초기에는 증기기관을 전방에 설치하고 벨트로 앞바퀴를 구동하며, 뒷바퀴로 조향을 하는 방식이었다. 오늘날의 지게차와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여기서 더욱 개량을 가해 완성한 프로토타입이 바로 라 마르퀴스다. 라 마르퀴스는 전방에 각각 2마력의 성능을 내는 소형 증기기관을 2기 탑재하고 여기서 나온 동력을 체인을 통해 앞바퀴로 전달하도록 만들어졌다. 증기 생성을 위한 물탱크는 차량 뒤쪽에 탑재되었다. 조향은 뒷바퀴로 이루어졌는데 윤거가 앞바퀴에 비해 훨씬 작아서 거의 삼륜차에 가까운 비례를 가지고 있었다. 4명의 사람을 태울 수 있었는데, 앞좌석과 뒷좌석이 서로를 등지고 있는 구조였다. 시험용 차량으로 만들어진 라 마르퀴스는 파리에서 베르사유까지 평균속도 26km/h의 속력으로 달리며 그 위용을 과시했다.
스탠리 증기자동차(1898, 1912)
미국은 1890년대부터 실용적인 증기자동차들이 속속들이 개발되며 대중화되고 있었다. 특히 미국의 프란시스 스탠리(Francis Stanley, 1849~1918)와 프리랜 스탠리 형제(Freelan Stanley, 1849~1940)가 만든 증기자동차는 우수한 성능과 실용성으로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스탠리 형제는 1890년대 초 메사츠세츠에서 열린 세계 자동차 경주대회를 통해 유럽에서 온 증기자동차들을 접하면서 증기자동차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스탠리 형제의 증기기관은 증기기관 내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최소화한 구조를 통해 작은 크기에도 높은 출력을 낼 수 있었고 액체 연료라면 뭐든지 땔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유연함까지 갖췄다. 무겁고 지저분한 석탄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고 소음과 진동도 현저히 적었다. 조종 방식도 단순하여 운전하기가 쉬웠고 보일러 예열 시간도 빨라서 취급하기가 매우 용이했다. 스탠리는 1898년 처음 생산을 시작한 이 차량은 후에 로코모빌(Locomobile Company of America)이라는 기업에 넘겼다. 그리고 1910년대부터 스탠리의 상징과도 같은 독특한 디자인의 증기자동차를 제작하여 판매했다.
도블 증기자동차 모델 E(1922)
미국의 기계공학자 애브너 도블(Abner Doble, 1890~1961)이 세운 도블 증기자동차(Doble Steam Car, 이하 도블)는 20세기 초인 1909년부터 1931년까지 증기자동차를 생산하여,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증기자동차를 만들어 온 기업 중 하나였다. 특히 급속예열 보일러와 전기식 시동장치의 도입 등, 그들의 증기자동차는 미국에서 증기자동차가 가장 빛났던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들이 1920년대에 내놓은 모델 E(Model E)는 여러 면에서 가장 발달된 증기자동차 중 하나로 손꼽힌다. 도블 모델 E의 증기기관은 고유의 모노튜브형 보일러 설계와 당대의 철도기관차에 사용된 설계를 적용하여 우수한 동력성능을 발휘했다. 증기기관이 뒤쪽에 탑재되어 뒷바퀴에 직접 동력을 전달했고 압력의 조절만으로 속도조절이 가능했기 때문에 변속기가 필요 없었다. 또한 약간의 개조만 거치면 다양한 종류의 액체연료를 사용할 수 있었으며, 정숙하면서도 우수한 동력성능을 제공했다. 총 24대가 제작되었으며, 미국의 유명 방송인이자 자동차 애호가로 유명한 제이 레노()가 20번째 생산 차량을 소유하고 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