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옆이 아니라 '앞뒤'로 붙은 자동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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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옆이 아니라 '앞뒤'로 붙은 자동차가 있다?!
  • 모토야
  • 승인 2020.10.05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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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절대다수는 차체의 측면에 도어를 설치한다. 이는 마차 시절부터 전해져 내려온 유구한 전통이기도 하지만 자동차의 기계적인 특성과 교통법규 등의 운용 환경에 가장 최적화된 위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유럽에 끔찍한 피해를 남겼던 제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1950년대에는, 도어가 앞에 붙어 있거나, 심지어 전투기 캐노피처럼 열리는 형태의 자동차들이 다수 등장했다. 이른 바 '버블카(Bubble Car)'의 새대가 도래한 것이다. 

버블카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0년대 말기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버블카는 극단적으로 작은 차체에 문이 없이 캐노피까지 도입한 극단적으로 간소한 구성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버블카’라는 이름은 캐노피를 닮은 특유의 상부구조로 인해 차가 마치 비누방울이 얹혀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것이다. 이는 전 유럽이 전후의 빈곤에 시달려야 했던 1940~50년대의 경제상황으로 인해, 생산성과 낮은 제조단가에 극단적으로 매달려야 했던 데 따른 것이다.

이 때문에 전후 유럽에서 하나둘씩 등장한 버블카들은 오토바이 수준의 기계 구조 위에 자동차와 비슷한 겉껍질을 씌우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이 당시 등장했던 버블카들은 당시 자동차의 생산단가를 높이는 주된 원인이었던 측면의 도어를 삭제하고, 하나의 캐노피형에 가까운 구조를 적용한 점이 큰 특징으로 꼽힌다.

이러한 가운데 1950년대 후반, 서독의 한 모터사이클 제조사에서는 당대의 버블카와 구분되는 특이한 구조를 채용한 버블카를 내놓았다. 췬다프(Zündapp)의 버블카, 야누스(Janus)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췬다프는 통일 전 서독에 존재했던 모터사이클 제조사로, 1917년에 세워져, 1984년까지 존속한 기업이다. 이 회사는 모터사이클 제조사로 시작하여, 전쟁 중에는 폭탄용 기폭장치나 재봉틀 등도 생산했으며, 페르디난트 포르쉐와 신형 자동차 개발에 협력하기도 했다.

이들은 1940~50년대 버블카의 준동을 지켜보면서 자신들의 생산기반으로도 충분히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하에, 자신들만의 버블카 개발에 뛰어 들었다. 이들이 내놓은 버블카는 독특함이 넘치는 버블카들 가운데서도 상당히 특이한 구조를 채용했다. 그것은 바로 앞뒤로 붙은 캐노피였다. 이 아이디어는 전간기에 협력하고 있었던 항공기 제작사 도르니에 비행기공장(Dornier Flugzeugwerke)의 기술자였던 클로드 도르니어(Claude Dornier)의 아이디어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췬다프와 도르니에는 이 아이디어를 실증하기 위해 도르니에 델타 프로토타입(Dornier Delta Prototype)을 제작했다. 이 차량은 차량의 앞뒤에 캐노피형 도어를 하나씩 달아, 4인승 구조를 실현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뒷좌석과 앞좌석이 개별적으로 승하차할 수 있는 2개의 캐노피 도어로 인해 앞좌석과 뒷좌석은 서로를 등지고 있는 구조를 취하고 있었다. 이러한 방식은 기존의 버블카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을 양산화시킨 것이 바로 췬다프의 야누스(Janus)다.

췬다프 야누스는 차체의 앞뒤가 대칭형에 가까운 디자인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당대의 다른 버블카들과는 달리, 차체의 실루엣이 통상적인 4도어 세단형 자동차와 유사하다는 점도 특징이다. 그리고 이렇게 대칭형을 이루면서 앞뒤에 캐노피 도어가 모두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스 신화의 '야누스'가 앞뒤로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점에서, 참으로 이름값 하는 디자인이라 할 수 있었다.

기계적인 구조 역시 독특했다. 엔진은 자사의 모터사이클에 사용했던 14마력의 최고출력을 내는 245cc 2행정 단기통 엔진을 사용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엔진의 위치였다. 췬다프 야누스의 엔진은 '미드십(Midship)'으로 배치되어 있다. 하지만 이 미드십은 앞쪽으로 쏠려 있는 프론트 미드십도, 뒤쪽에 쏠려 있는 리어미드십도 아니다. 대칭을 이루고 있는 차체구조의 '정중앙'에 엔진을 탑재한 것이다. 구동방식은 후륜구동을 사용했는데, 이는 그야말로 이론 상 완벽에 가까운 '미드십 후륜구동(MR)'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이렇게 정중앙에 엔진을 배치한 덕분에, 췬다프 야누스는 이론 상 완벽에 가까운 무게중심을 구현할 수 있었다. 여기에 전륜에는 항공기의 랜딩기어에 사용되는 리딩 암(Leading Arm, 트레일링 암 방식과 유사) 방식의 서스펜션을, 후륜에는 스윙 액슬(Swing Axle) 방식의 서스펜션으로 '4륜 독립식 서스펜션'을 적용해, 승차감 또한 당대의 버블카를 압도했다. 

대칭을 이루고 있는 차체 구조는 또 다른 이점도 가져왔다. 바로 뒷좌석에 성인이 무리 없이 탑승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용 이동수단에 가까웠던 당대의 버블카와는 달리, 가족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준 것이었다. 당대 버블카 중 가장 유명한 이소 이세타(Iso Isetta)의 경우, 뒷좌석에는 어린이나 돼야 겨우 승차할 수 있었으며, 메서슈미트 KR175(Messerschmitt KR175) 같은 경우에는 아예 전투기 같은 복좌형 구조로 인해 2인승이 한계였다는 점을 보면, 이 컨셉트가 얼마나 획기적인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렇게 독특한 컨셉트로 개발된 야누스는 상당히 주목을 받았다. 버블카를 저렴한 개인용 이동수단에 한정짓지 않고 가족용 이동수단의 영역까지 끌어 올렸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둘 수 있었다. 하지만 췬다프의 야누스는 상업적으로는 그리 성공하지 못했다. 먼저, 가격이 너무 비쌌다. 기계적으로는 당대의 그 어떤 버블카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지만, 이는 당시의 빈곤한 경제 사정을 배경으로 태어난 버블카라는 장르의 특성을 간과했던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게다가 1950년대 후반들어 서유럽의 경제가 점차 나아지기 시작하면서, 버블카의 인기도 시들해지기 시작했다는 점도 야누스의 상업적 실패에 큰 영향을 주었다. 경제사정이 나아지자 소비자들은 궁색한 버블카 대신, 제대로 '문짝'이 갖춰진 일반 자동차에 더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야누스는 버블카와 일반자동차 사이에 낀 어중간한 포지셔닝이 되어버린 것이다. 앞뒤로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신기한 버블카 췬다프 야누스는 1957년 생산 첫 해에 1,731대, 이듬해인 1958년도에 6,902대를 생산한 것으로 프로젝트가 종료되었고, 야누스를 생산하던 공장은 오늘날의 보쉬(Bosch)에 인수되었다. 췬다프 야누스는 픽사(Pixar)에서 제작한 카2(Cars 2)에 등장하는 'Z교수'의 모티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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