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산 소형차, 소련의 국민차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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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산 소형차, 소련의 국민차가 되다
  • 박병하
  • 승인 2020.04.01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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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소련의 해체 이후 크게 줄어들기는 했지만, 현재도 러시아 연방(이하 러시아)의 영토는 그야말로 광활하다. 유럽의 동쪽 끝자락에서부터 베링해협까지 뻗어 있는 러시아의 영토는 면적을 기준으로 남한 영토의 170배 이상에 달한다. 우리는 대체로 러시아를 시베리아 지역 때문에 '추운 나라'라는 이미지로 인식하고 있지만, 러시아에는 사막도 있고, 초원 지대도 있으며, 유럽에 면한 서쪽 지역은 밀 농사에 적합한 비옥한 토지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점들을 모두 감안한다고 해도, 러시아는 자동차에게 매우 가혹한 지역 중 하나다. 러시아의 도로 사정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매우 열악하다. 도로교통망의 문제는 광대한 영토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들의 공통된 고민거리지만 러시아는 이 정도가 훨씬 심한 편에 속한다고 전해진다. 포장된 도로라고는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대도시 일대나 도심지역에 국한되어 있고, 도심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시작하면 포장도 제대로 안 된 도로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연교차가 매우 큰 내륙에서는 매해 찾아 오는 해빙기와 장마철 사이에 이 비포장도로들이 '늪'에 가깝게 변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를 '슬랴카트(Slyakot', Слякоть)'라고 한다. 이 슬랴카트는 러시아, 그리고 소련이 지역 간 교통망을 철도에 의존하게 만든 원인 중 하나로도 꼽힌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동차의 필요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러시아는 소련 시절부터 다양한 자동차를 만들어 공급하고자 했다. 물론 이는 주로 군대에서의 수요로 인한 것이었지만, 전쟁이 끝나고 난 이후, 소련의 성장과 더불어 자국의 인민들에게도 공급할 수 있는 값싸고 튼튼한 소형 승용차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1970년도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소형 승용차는 무려 2012년까지 42년에 걸쳐서 생산되며, '인민의 발'이 되어 주었다. 이 차의 이름은 '라다 쥐굴리(Lada Zhiguli, ВАЗ-2101 Жигули)'다.

라다 쥐굴리는 이탈리아 피아트(FIAT)의 걸작 소형 세단, '124'를 1970년, 구 소련의 '볼가 자동차 공장(Во́лжский Автомоби́льный Заво́д, VAZ)'에서 라이센스 생산한 모델이다. 볼가 자동차 공장은 오늘날 러시아의 대표 자동차 제조사 '아브토바즈(AvtoVAZ, АвтоВАЗ)'의 전신이며, 라다(Lada)는 아브토바즈의 수출용 브랜드다. 본 기사에서는 편의 상 '라다 쥐굴리'로 통칭한다.

라다 쥐굴리의 원판에 해당하는 피아트 124는 피아트 티포(Tipo)로부터 시작된 피아트의 명작 소형차 계보를 잇는 모델이다. 피아트 124는 세련된 디자인과 우수한 성능 및 실용성, 그리고 저렴한 가격으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리고 그 탁월한 제품력으로 인도, 스페인, 터키 등 여러 나라에서 라이센스 생산되었다. 이 차는 우리나라의 아시아자동차(現 기아자동차)에서도 라이센스 생산되었고, 심지어 공산진영이었던 소련에서도 라이센스 생산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탈리아는 이미 1949년도에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입한, 엄연히 서방 세계에 속하는 국가였고, 지금도 그렇다. 게다가 1960~70년대 당시는 냉전의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어 절정으로 가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서방 자본주의 진영인 이탈리아의 자동차가 공산주의 진영의 한복판이었던 소련에서 생산이 된 까닭에는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파시스트 정권 시절부터 의외로 긴밀한 관계였던 소련-이탈리아 관계, 그리고 1960년대 초부터 진행된 소련과 이탈리아 간의 산업 교류 활동에 있었다.

1960년대 당시 소련은 국가의 발전을 위해 이른 바 '철의 장막'을 걷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군사력과 직결되는 중화학공업 분야에 편중된 소련의 공업 구조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 이전부터 교류한 이력이 있었던 이탈리아의 산업계와 접촉을 시도하여 소련의 중심지인 모스크바에서 이탈리아 산업체와의 교류를 위한 산업전시회가 열렸다. 피아트 124가 소련에서 생산이 이루어진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1960년대 말에, 볼가 자동차 공장이 설립되어 '자본주의의 물'을 먹은 피아트 소형차가 생산되기 시작, 오늘날 러시아의 주요 자동차 기업의 밑거름이 된다.

초기형 라다 쥐굴리(VAZ-2101)의 외형은 피아트 124와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다른 점도 분명히 있다. 라다 쥐굴리는 피아트 124보다 훨씬 높은 최저지상고를 가지고 있고, 엔진의 동력전개 특성도 저회전에서 최대토크가 발생되도록 변경되어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슬랴카트 등, 소련의 혹독한 노면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대비책이다. 차명인 쥐굴리는 볼가(Volga) 강 근처에 위치한 쥐굴리 산맥에서 가져왔다. 공장이 위치한  볼가 강 근처의 지명을 차용한 무난한 작명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라다 쥐굴리는 소련 내수시장은 물론, 서방세계에 수출까지 되었다. 소련은 생산 개시 초기부터 이 차를 구 소련의 연방 국가들과 그 후신인 동구권 국가들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수출하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캐나다와 북유럽에도 수출을 진행했다. 물론 초기에는 서구권 시장으로의 출시는 보류되었다. 당시 유럽 시장에는 아직 피아트가 124를 판매하고 있었기 때문에 피아트와의 마찰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탈리아 피아트가 1974년도에 124를 단종시키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즉각 수출에 나서 유럽 시장에 진출하였다. 영국에서는 라다 리바(Lada Riva)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유럽 시장에 진출한 라다 쥐굴리는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수출 시장에서도 쏠쏠하게 실적을 올렸다.

라다 쥐굴리는 세계 각국에서 생산된 피아트 124의 라이센스 생산 모델들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생산된 차종이기도 하다. 1970년 출시되어 2012년까지 장장 42년에 걸쳐서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이토록 오랫동안 생산한 까닭에 현재까지 누적생산대수가 거의 2천 만대에 이른다고 전해진다. 라다 쥐굴리는 피아트 124의 기본 설계는 거의 손 대지 않은 채, 헤드램프나 인테리어 일부 등, 몇 년에 한 번씩 의장품을 조금씩 손보는 수준의 변화만을 겪었기 때문에 근본적인 변화는 없다시피했다. 이렇게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큰 변화 없이 계속 생산이 이어지는 바람에, 낙후된 러시아 자동차 산업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예로 거론되기도 한다.

라다 쥐굴리는 오늘날에도 러시아의 대표 차종으로 인식되는 차다. 워낙 오랜 세월 동안 생산된 데다, 원판부터 신뢰성과 내구성을 최우선으로 설계된 모델인 만큼, 수명이 길다는 점도 작용했다. 또한 가격이 다른 러시아제 차종에 비해 매우 저렴하다는 점과 러시아의 부실한 환경규제 또한 장수의 비결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러시아의 낙후된 자동차 산업 기반을 보여주는 근거로도 비춰지고 있지만, 적어도 동독의 트라반트(Trabant)와 함께 공산권을 상징하는 대표하는 자동차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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