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급기를 이용한 '엔진 다운사이징'은 이제 대세를 넘어 상식에 가깝게 자리잡히고 있다. 배기량을 줄이는 대신, 과급기를 이용해 동력성능을 벌충하는 개념의 엔진 다운사이징은 배출가스 규제가 날로 엄격해져 가는 작금의 자동차 산업계에서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잡아 가는 과정에 있다. 배기량은 배출가스의 양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요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제 여러 자동차 제조사들은 큰 배기량을 더 이상 자랑으로 여기지는 않는 듯하다.
배기량은 과거에는 성능의 한 척도로 여겨지기도 했다. 왕복엔진에서 말하는 배기량이란, 엔진의 모든 피스톤이 실린더에서 1행정을 마쳤을 때 배출되는 공기와 혼합 가스의 부피를 합친 것이다. 도식화하자면 '실린더 단면적 X 행정 길이 X 총 실린더 개수'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엔진의 실린더 용적이 약 500cc이고, 이 실린더가 총 6기 배치되어 있다면 그 엔진의 배기량은 약 3.0리터 정도라고 보면 된다.
자동차에게 있어서 배기량은 한 때는 성능의 지표 중 하나로 기능하기도 했다. 이론 상으로 배기량이 큰 엔진은 작은 엔진에 비해 같은 회전 수에서 시간 당 더 많은 연료와 산소를 사용한다. 즉, 배기량이 큰 엔진은 기본적으로 배기량이 작은 엔진에 비해 더 높은 출력과 더 큰 토크를 발생시킬 수 있다. 최근에는 자동차용 엔진에 사용되는 과급기 기술의 발달로 '배기량=고성능'을 의미하던 시대는 지났지만, 여전히 고급 차종들은 큰 배기량의 엔진을 사용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가장 배기량이 큰 엔진을 사용한 양산차와 가장 작은 배기량의 엔진을 사용한 양산차는 어떤 차종일까? 현행의 양산차 중 가장 큰 배기량의 엔진을 탑재한 차종은 하이퍼카로 유명한 부가티의 시론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분야의 최고는 단연 8.4리터 바이퍼 V10 엔진을 품었던 SRT 바이퍼(SRT Viper)였다. 하지만 바이퍼가 단종된 이후 "최대 배기량을 가진 양산차"의 타이틀은 부가티 시론(Bugatti Chiron)이 차지하고 있다.
부가티 시론의 엔진은 두 개의 V8 엔진을 병렬로 연결한 W형 16기통 구조를 사용하고 있는 엔진이다. 7,996cc에 달하는 배기량을 자랑하는 이 엔진은 무려 1,500마력에 달하는 최고출력을 자랑한다. 최대토크는 163.2kg/m에 달한다. 8.0리터의 막대한 배기량도 모자라 쿼드터보를 적용하여 배기량 1리터 당 187.5마력의 출력을 뽑아내는 괴물 수준의 고성능 엔진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만들어진 양산차 중 가장 큰 배기량을 가졌던 차는 어떤 차일까? 세계에서 가장 큰 배기량을 가진 양산차는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도 전인 1912년, 피어스-애로우(Pierce-Arrow)라는 미국의 제조사에서 만들어진 '모델 66(Model 66)'이다. 피어스-애로우는 1872년에 세워진 자동차 제조사로, 미국 최초의 대통령 의전용 자동차를 만든 제조사로 유명하다. 피어스-에로우의 자동차에 탑재된 엔진의 배기량은 무려 13,519cc(약 13.5리터)에 달한다. 심지어 실린더 배치는 직렬 6기통으로, 실린더 하나의 배기량이 우리나라의 중형~준대형 세단급에 해당하는 2,253cc에 이른다. 최고출력은 140마력/1,800rpm으로, 배기량 1리터 당 10마력을 간신히 넘는 수준의 저출력이지만, 이 차는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전에 만들어졌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이 엔진은 초기에는 11.7리터의 배기량을 가졌지만, 후기형에서 13.5리터로 증가한 것이다.
그렇다면 역으로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양산차들 중에서 가장 작은 배기량의 심장을 품고 있는 차는 어떤 차일까? 답은 꽤나 뻔하기는 하지만 일본의 경차들이다. 왜 경차'들'이냐면, 현재 일본에서 생산되는 경차는 모두 배기량이 658cc이기 때문이다. 이는 '배기량 660cc 미만'이라는 일본의 경차 규격에 맞추기 위한 것으로, 현재 일본에서 경차를 생산하고 있는 스즈키와 다이하쓰, 혼다의 경차들은 모두 직렬 3기통 레이아웃의 658cc 엔진을 사용하고 있다. 최고출력은 대체로 50마력 언저리에서 최대 64마력인데, 최대치가 64마력인 이유는 일본의 경차 출력 규제 상한선이 64마력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전에는 이보다 더 작은 엔진을 사용하는 사륜자동차가 있었다. 바로 인도 최대의 자동차 제조사 타타자동차(Tata Motors)에서 만들어진 '나노(Nano)'가 그 주인공. 타타 나노는 일본 경차보다도 작은 도심형 초소형 자동차로, 오토바이에 근접한 가격대로 구입할 수 있는 사륜자동차였다. 타타 나노의 배기량은 624cc로, 그 빡빡한 일본 경차보다도 작은 배기량의 엔진을 사용했다. 이 엔진은 33마력에 불과한 최고출력을 냈는데, 이는 나노에게 있어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극한의 원가절감을 통해 몸무게가 600kg 밖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8년도에 판매 부진으로 인해 단종을 맞았다.
자동차 역사 상 가장 작은 배기량의 엔진을 탑재한 차종은 352cc의 2기통 엔진을 탑재한 혼다 'N360'을 들 수 있다. 이 차 역시 일본의 경차로, 경차 규제가 더욱 빡빡했던 60년대에 만들어진 차종이다. 이 당시 일본 경차는 배기량이 360cc를 초과하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이 당시 혼다를 제외한 다른 회사는 356cc의 3기통 엔진을 사용했다.
범위를 사륜자동차에만 국한하지 않는다면, 영국 맨 섬(Isle of Man)에서 만들어진 필 P50(Peel P50)이 가장 작은 배기량의 엔진을 얹은 차라고 할 수 있다. P50의 50cc 단기통 엔진은 본래 원동기장치자전거(MOPAD, 모패드)에 사용되었던 공랭식 단기통 엔진으로, 4.2마력의 최고출력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