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산 길이나 시골 길을 달리다 보면 핏자국이 흥건한 도로를 만나곤 한다. 때로는 핏자국뿐 아니라 동물 사체가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달려오는 자동차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충돌해 죽음을 맞이한 야생 동물들이다. 야생 동물 출몰이 빈번한 시골길이 아니라도 길 고양이와 강아지들로 인해 도심에서도 종종 발생하는 ‘로드킬’사고다.
로드킬 사고는 야생 동물의 안타까운 죽음뿐 아니라 운전자 안전도 위협한다. 가령 급작스러운 감속이나 스티어링 휠 조작으로 제어가 불가능한 상태에 빠진다. 그로 인해 가드레일, 주변 차량 등과 충돌해 2차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 도로를 이탈해 전복사고까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고라니나 멧돼지는 무게가 적지 않다. 경차나 소형차는 경우에 따라 상상 이상의 충돌 피해를 입는다.
로드킬로 인해 발생하는 또 다른 피해로 차체 손상을 들 수 있다. 가볍게는 약간의 긁힘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헤드라이트, 범퍼 등이 파손되고 섀시가 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사고 원인이 되는 대상이 야생 동물이라는 점이다. 말 못하는 짐승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노릇. 실제 2010년경 로드킬 사고로 피해를 입은 운전자가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하지만 모든 도로에서 야생 동물이 튀어나올 가능성이 있고, 한국도로공사는 지속적인 로드킬 예방 캠페인을 시행해온 점이 인정돼 한국도로공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로드킬 사고는 사람과 야생 동물 모두에게 피해를 안기는 사고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생태 육교, 도로를 만들고 야생 동물 주요 출몰지역 표지판을 세우는 등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드킬 사고 발생은 크게 줄지 않고 있다. 고속도로의 경우 지난 2015년 2,545건, 2016년 2,247건, 2017년 1,884건으로 다소 줄어들었다. 반면 국도는 2015년 9,563건, 2016년 12,867건, 2017년 15,436건으로 늘었다.
고속도로나 일반 국도는 사람이 운전하며 달리는 도로이기 전에 야생동물이 살아가던 터전이었다. 살아가던 터전이 둘로, 셋으로 쪼개졌고 영역이 분리된 것이다. 또한 야생 동물에 따라 각각의 서식 영역이 있었을 터, 야생 동물의 영역은 곧 행동반경으로 습성에 따라 이동하며 도로를 건널 수 밖에 없는 셈이다. 특히 먹이가 부족한 경우 죽음을 불사하는 것은 동물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야생 동물의 습성과 본능을 감안하지 않은 상태에서 생태 육교 및 도로는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가령 깜깜한 어둠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생태도로는 야생 동물이 지나가지 않는다. 또한 생뚱맞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생태 육교는 해당 지역에 서식하는 야생 동물의 행동반경과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야생 동물이 도로를 가로지르며 사고가 발생하고 죽은 사체를 먹기 위해 또 다른 야생 동물이 도로에 들어오며 로드킬이 끊이지 않는 것.
로드킬은 국가를 막론하고 발생하는 사고다. 해외 역시 로드킬 예방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펼친다. 보편적 방법인 생태 육교를 많이 활용하는데 네덜란드, 미국, 캐나다, 벨기에 등의 생태 육교는 야생 동물이 생태 육교로 도로를 건너도록 이동 경로에 가이드라인을 구축해놨다. 또한 입, 출구를 넓게 만들어 야생 동물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했다. 심지어 나무와 나무 사이에도 생태 통로를 만들었다. 나무를 타고 이동하는 다람쥐 등이 건널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사슴의 출몰이 잦은 지역은 사슴이 걷기 어려워하는 지점에 디어 가드(Deer guard)를 만들어 유도하고, 스프레이를 울타리에 뿌리기도 하며 습성에 따른 로드킬 예방 활동을 시행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지난해 7월 당진시가 로드킬 빈번 지역을 지정하고 운전자에게 안내 멘트를 송출하는 ‘로드킬 지킴이’ 시스템을 도입했다. 여기에 야생 동물이 싫어하는 초음파나 저주파를 내보내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방법이다. 또한 환경 시민단체 녹색연합은 로드킬 발생 신고, 대처 방법, 발생 구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굿 로드’를 선보인 적도 있다.
이처럼 국내에서도 단순 예방 활동이 아닌 야생 동물의 습성, 생태 환경, 도로 여건 등을 감안해 로드킬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에 따라 최근 환경부와 국토부는 동물 찻길 사고(로드킬) 조사 및 관리 지침’을 제정, 5월 28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히며 로드킬 사고 예방 기반 다지기에 나섰다. 야생 동물별 특성과 도로 유형, 지역별 데이터를 구축한다는 것으로 이는 곧 전문적인 로드킬 사고 예방 시스템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전문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로드킬 사고를 예방한다면 분명 사고 발생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사고 예방은 운전자의 주의다. 도로에서 야생 동물을 만났다는 것에 그저 ‘운이 없었다.’, ‘액땜했다.’가 아니라 사람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생명체로 인식해 규정 속도를 지키며 언제든 야생 동물이 튀어나올 수 있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로드킬로 인해 사람과 동물 모두 피해자가 생기지만 가해자는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