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브랜드 이야기, 르노 자동차
상태바
자동차 브랜드 이야기, 르노 자동차
  • 김상혁
  • 승인 2017.09.11 18: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프랑스의 자동차들은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는 고급 모델들이 중심이 되는 독일산 자동차들에 비해 취급이 좋지 못한 편이다. 하지만 프랑스는 자동차 분야에서 독일에 못지 않은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증기기관을 이용한 최초의 자동차(퀴뇨의 증기자동차)가 태어난 곳이 바로 프랑스다. 또한 독일의 자동차 산업이 흥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수많은 자동차 관련 기업들은 프랑스를 본거지로 삼았다.

그러나 자국 한복판에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벌어지며 프랑스는 밭갈이 되듯 뒤집어 엎어졌다. 이런 통에 대부분의 기업들은 프랑스를 떠났다. 물론, 그 이후에 살아남은 몇 남지 않은 프랑스의 자동차 기업들은 독특함과 합리성이라는 매력으로 오늘날 자동차 세계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본지에서 소개할 기업은 현재 프랑스의 자동차 산업을 이끌고 있는 주역 중 하나이자, 세계적인 규모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르노 자동차'다.

르노자동차의 창업자 루이 르노는 단추 공장의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단추 공장이 아닌, 자동차에 꿈과 야망이 있었던 루이 르노는 처음에는 ‘나만의 자동차’를 만들려고 했으나 1898년 형제인 마르셀 르노, 페르난드 르노를 끌어 들여, 자동차 제조사로 발걸음을 떼게 됐다.

르노 형제들의 자동차는 초기에 복제차 수준이었다. 하지만 1902년부터 독자적으로 엔진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그 이듬해 파리-빈 경주에서 자사 모델로 우승하며 본격적인 상승기류에 올라서게 된다. 특히 1905년 택시 타입 AG 출시를 통해 성공가도를 달리게 됐으며 1907년 루이 르노는 회사의 지분을 대부분 매입해 생산규모를 늘렸다.


1908년에 AG의 개량 모델 격인 AX 역시 큰 성공을 거두면서 파리와 런던 등 도심지의 상당수를 채워버렸다. 1913년 르노 자동차는 연간 1만 대 이상의 승, 상용차를 생산하는 제조사로 성장하며 유럽을 대표하는 자동차 메이커로 발돋움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로 르노 자동차는 방위산업체로 변신했다. 르노는 프랑스 육군이 사용할 화물차, 전차(戰車) 등을 제작 및 생산하며 자산은 늘렸다. 이 때 만들어진 르노의 대표작이 바로 '전차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노 FT-17'이다. 르노 FT-17은 1기의 360도 회전식 포탑 채용을 비롯하여 현대적인 전차의 구조를 확립한 걸작 전차다.


반면, 방위산업 분야에 사업 역량을 치중하게 되면서 르노는 승용차 부분에서 다른 기업에게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했다. 시트로엥은 지속적으로 스타일리시한 차종을 내놓았고 푸조 역시 6CV BP-1의 성공과 그랑프리 우승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사세를 확장해갔다.


하지만 멈출 것 같지 않던 르노자동차의 성장은 2차 세계대전과 함께 길고 긴 암흑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 당시 르노자동차는 4기통 모델인 주바카트로, 프리마카트로 등을 생산하고 있었다. 루이 르노는 전쟁이 금방 끝날 것으로 내다봤는데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직원들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공장을 돌리다가 결국 나치에게 점령당하며 군수물자를 생산하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연합군 폭격 대상으로 지목돼 몇 차례나 폭격을 받아야 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비극은 계속됐다. 루이 르노는 나치에 부역한 죄를 물어 감옥에 갇혔고 건강악화로 옥중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또한 르노 자동차는 레지스탕스 지도자 출신 샤를 드골에 의해 국영화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국영화 이래, 새로 개발한 대중용 승용차 '4CV'를 생산하게 되면서 르노는 회생하기 시작했다.


르노 4CV는 760cc 4기통 엔진을 얹었고 작지만 단단한 내구성으로 큰 성공을 거둔 자동차다. 1961년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약 100만 대 이상 생산됐었다. 가혹한 환경의 레이스에 출전해서도 우승을 거머쥐는 등 르노 자동차의 재기를 알린 모델이라 할 수 있었다. 이후 르노 도핀, R4, R5 등으로 연타를 날리며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1980년대 이르러서는 포뮬러 원에서 처음 우승 샴페인을 터트리는 등 모터 스포츠 분야도 화려하게 장식했다. 하지만 미국 시장에서의 실패와 민영화를 추진했던 조지 베스의 암살 등 항상 순탄치만은 않았다. 특히 1986년 조지 베스의 암살 사건은 르노 자동차의 내부 혼란과 판매량 감소로 이어져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결국 르노 자동차의 민영화는 각고의 노력 끝에 1996년이 되어서야 이뤄질 수 있었다.

1999년 르노는 닛산의 지분을 인수하며 르노-닛산 공동 협력체를 구축하며 공룡 자동차 제조사로 변모했다. 한편 국내 르노삼성자동차는 르노자동차가 한국삼성자동차를 인수하며 2000년에 출범했다. 최근에는 일본의 미쓰비시 자동차를 닛산의 이름으로 인수합병하고 중국 둥펑 모터스와 손을 잡는 등, 몸집 키우기와 함께 중국시장을 진출을 본격적으로 노리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