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1`. 언뜻 보면 중요한 역사 연도를 표현한 네 자리 숫자로 보일 수도 있다. 사실 이 숫자는 지난 한 해 동안 판매되었던 i40의 판매량 수치다.
국민차로 여겨지는 아반떼, 쏘나타가 각각 한해 동안 9만 3천대, 8만 2천대 가량을 판매했음을 고려하면 안쓰러울 만큼 초라한 수치이다. 보다 최신 자료를 들여다보면 더욱 초라해진다. 2017년 1월 기준, 한국에서 i40는 단 8대만이 팔렸다. 찬란한 탄생을 알린 시절과는 전혀 다른 나날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는 왜건의 성지라 일컬어지는 유럽 시장을 겨냥하여 i40를 개발했다. 소비자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은 기아 씨드(Cee`d)의 전례를 통해 i40 역시 한국 시장에서 출시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펼치기도 했다. 그런 예상들과는 달리, 현대차는 `유러피언 왜건`이라며 i40를 당당히 한국 시장에 내놓았다.
한국의 자동차 시장은 국산 왜건에 호의적이지 않다. 그 동안 국산 왜건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생계형 짐차´라는 부정적 인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더 비싼 돈을 주고 짐차 같은 모양새의 왜건을 구매하려 들지 않았다. 그 예로 아반떼 투어링을 들 수 있다. 기아 크레도스를 바탕으로 만든 `파크타운`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무수한 실패로 인해 ´왜건의 무덤´이라는 표현이 익숙해진 것이다. 이러한 국내 자동차 시장의 역사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현대차는 i40의 출시를 강행한 것이다.현대차는 i40를 출시하면서 `프리미엄 신중형`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기존의 중형 모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역설한 것이다. 또한 ´프리미엄 중형시장´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것이라며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실제 i40는 가치가 뛰어났다. 흔히 알고 있는 ´짐차´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디자인 철학인 플루이딕 스컬프처로 꾸며낸 차량의 안팎은 화사했고 유럽 시장의 취향에 접근하기 위한 섀시 설정의 완성도도 제법 높았다. 더불어 유럽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설계한 내부 실용성도 우수했다.
소비자들의 시장 반응도 좋을 듯 했다. 그러나 실제 반응은 사뭇 달랐다. 가격이라는 요소를 제외하고 바라본 탓이었다. 합리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이들에게 쏘나타보다 조금 작은 차가 되려 비싸다는 사실은 쉽게 용납되지 않았다.
출시 직후 판매량은 약 500대. 신차 효과를 듬뿍 받을 수 있는 출시 초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처참한 성적표였다. 이듬해 분위기 반전을 위해 세단 버전인 `i40 설룬` 마저 투입했으나 연간판매량이 예상치로 잡았던 2만대의 절반 수준에 그치게 되었다.
오랜 기간의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절치부심하여 3년 만에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출시 했다. 새로운 얼굴은 물론, 변속기와 엔진까지 갈아치웠다.
그러나 이번에는 출시 시점이 문제였다. 경쟁자로 꼽히는 쏘나타는 풀체인지를 통해 월등한 상품성 강화를 이뤘고, 이윽고 K5마저 풀체인지를 통해 경쟁력을 바짝 높였다. 따라서 분위기 반전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중형차 시장의 수준이 높아지자 여전히 소비자의 반응은 차가웠다. 경쟁자들의 발걸음이 더욱 빨랐다는 것이다.
이토록 차갑기 만한 시장의 반응은 결국 월간 판매량 한자릿수에 다다랐다. i40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현대차의 야망은 사실상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난 셈이나 마찬가지다.
상품의 질은 기본이 되었다. 상품만 좋으면 성공한다는 말은 옛이야기가 되었다. 자동차 시장에선 기본적인 제품력은 물론 마케팅과 가격 정책 같은 부가적 요소들까지 완벽하게 결합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음이 여러 사례들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더군다나 i40의 사례는 자동차 시장이 우리가 생각하던 것, 그 이상으로 냉혹하다는 사실을 방증하기도 했다.
현대차가 `PYL`로 묶고자 했던 i30, i40의 전례를 보면 이 주장은 더욱 명확해진다. 단조로운 국산차 라인업에 활기를 더해주었던 PYL은 판매량이라는 벽 앞에 무릎을 꿇어야했다.
국산 왜건의 새 역사를 기대하게 만들었던 i40는 과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까?, 연이은 성적 부진을 보여주는 현대차의 결단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