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없어진 자동차 기업들 - 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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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없어진 자동차 기업들 - 하편
  • 모토야
  • 승인 2024.03.08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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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프랑스의 산업에서 떠올리는 것들은 주로 패션 쪽의 명품 브랜드와 와인 등, 사치재들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산업에서 사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다름 아닌 '중화학공업'이다. 특히 수출구조 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다름아닌 항공/우주(4.38%, 2022년 OEC 기준) 분야이며, 그 다음은 의약품(4.29%), 그리고 그 다음 가는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자동차(3.5%)'다.

한편 프랑스의 자동차 산업은 프랑스계 기업들이 대부분 진출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이나 영국, 미국 등에 비해 인지도가 다소 낮은 편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자동차 산업은 앞서 언급한 두 국가에 비해 규모는 물론, 역사적인 면에서도 전혀 뒤지지 않으며, 오히려 자동차 역사의 초기에는 이들 못지 않은 기술혁신을 주도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프랑스의 자동차 산업은 항공우주 산업과 함께, 국가의 중요한 전략 산업 중 하나다. 프랑스는 세계 11위의 자동차 생산국이며, EU 내에서는 독일과 스페인 다음으로 많은 자동차를 생산한다. 모터스포츠 분야에서는 단일 이벤트 기준으로 포뮬러 1을 넘어서는 르망24시 레이스를 비롯해, 포뮬러 1의 주관 단체인 국제 자동차연맹(Federation Internationale de l'Automobile, FIA)의 본부도 프랑스 파리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의 자동차 산업은 그 오래된 역사 만큼이나 다양한 제조사들이 존재했다. 특히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전세계의 최고급 자동차 다수는 영국도, 독일도 아닌 프랑스에서 만들어졌다. 심지어 스페인에 적을 두고 있었던 최고급 자동차 제조사 이스파노-수이사(Hispano-Suiza)도 고급 자동차 생산 시설만큼은 프랑스에 두었을 정도이며, 지금도 남아 있는 세계 최고급 하이퍼카 제조사 부가티(Bugatti)도 프랑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수많은 기술혁신을 주도하며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다만 제 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사치재로서의 자동차 보다는 대중을 위한 이동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중시했던 프랑스 정부의 자동차산업 개편 정책으로 인해 고급 자동차 브랜드는 대부분 사라지고, 지금과 같이 대중 브랜드가 주류를 이루는 구조로 변화하게 되었다. 1백년을 훌쩍 넘는 프랑스 자동차 산업의 역사에 등장했던 제조사들을 돌아본다.

탈보(Talbot, 1903~1995)
영국의 귀족 찰스 셰트윈드-탈보(Charles H. J. Chetwynd-Talbot, 1860~1921)와 프랑스의 사업가 귀스타브 아돌프 클레망 바야르(Gustave Adolphe Clément-Bayard 1855~1928)가 설립한 이 자동차 회사는 본래 영국과 프랑스에 각기 분할된 사업체로 존재했다가 후일 프랑스측의 회사가 지배권을 갖는 프랑스의 기업이 되었다. 이 회사는 프랑스의 클레망-바야르가 생산한 부품을 영국의 탈보에서 조립생산하는 방식으로 자동차 사업을 진행했고, 1910년대에는 고급 자동차에 못지 않은 성능과 품질의 자동차를 더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하는 전략으로 사업을 확장시켜 나갔다.

특히 이들이 1935년부터 내놓은 탈보-라고(Talbot-Lago) 브랜드의 자동차는 미려한 디자인과 강력한 성능의 투어링카로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물론, 지금도 클래식카 경매 현장에서 매우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 그리고 1930년대 후반부터는 르망24시 레이스에 출전해 우승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리고, 기술력 또한 증명했다. 

하지만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이 회사는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자동차 생산이 중단되면서 탈보는 경영난에 허덕이게 되었고, 1950년대에 영국서 두 번째로 큰 자동차기업이었던 루츠 그룹(Rootes Group)에 인수되어 루츠-탈보(Rootes-Talbot)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영국 자동차 산업의 추락과 맞물려, 1970년대에는 크라이슬러 그룹에, 1978년도에는 푸조에 인수되는 등, 이리저리 팔려 다니는 수난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탈보는 그저 모회사의 배지 엔지니어링 차량을 팔기 위한 브랜드로 전락했고, 1994년 피아트 두카토의 배지 엔지니어링 모델인 탈보 익스프레스가 단종되며 브랜드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탈보의 상표권은 여전히 스텔란티스 그룹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뮤아(SOMUA, Société d'outillage mécanique et d'usinage d'artillerie, 1914~1955)
이 기업은 자동차보다는 방위산업체로 더 잘 알려진 기업이다. 회사의 이름부터 '기계공구 및 화포가공 회사'를 줄인 것으로 제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프랑스군에서 사용하는 각종 기계와 대포를 생산했으며, 제 1차 세계대전기 프랑스 최초의 전차(Tank)인 쉬네데르 CA1(Schneider CA1)의 개발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르노 FT 전차의 생산을 맡았으며, 전간기에는 제 2차 세계대전 시기에 프랑스군이 사용했던 MCG 하프트랙(후륜에 무한궤도를 장착한 수송용 차량)과 S35 전차를 직접 생산했다.

이렇게 화포제작과 중장비 제작으로 시작한 소뮤아였지만 전간기인 1930년대부터는 자동차 수요의 증가에 따라 본격적으로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제 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나치 독일의 프랑스 점령으로 인해 소뮤아는 더 이상의 차량생산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전쟁 막바지인 1944년 스웨덴 기업으로부터 라이센스를 얻어 트럭을 소량 생산한 경험을 통해 전쟁 이후에는 민간용의 트럭과 버스, 그리고 철도차량 부문에 집중했다. 하지만 전후 프랑스의 자동차산업 현대화 정책과 시장 상황의 변동으로 인해 소뮤아의 민간용 상용차 부문은 1955년 라틸(LATIL, 現르노 트럭)에 합병되며 자동차 산업에서 물러났다.

생카(SIMCA, Société Industrielle de Mécanique et Carrosserie Automobile, 1934~1987)
전간기인 1934년 설립된 생카는 이탈리아 피아트(FIAT)의 프랑스 지사인 SAFAF(Société Anonyme Française des Automobiles Fiat, 1926년 설립)를 전신으로 태어난 기업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생카는 창업 초기 생카-피아트(SIMCA-FIAT)라는 이름으로 기업활동을 했으며, SAFAF 시절과 마찬가지로 피아트의 자동차들을 위탁생산하는 기업으로 활동하며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자동차 제조사로 성장했다. 

생카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게 점령되는 와중에도 심각할 정도의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전쟁 중 나치독일을 위해 트럭을 생산했던 르노 공장이 연거푸 폭격을 얻어맞고, 푸조는 스스로 공장을 폭파시키는 등, 프랑스의 자동차 산업이 큰 피해를 입는 와중에도 생카는 큰 피해를 입지 않고 꾸준히 자동차를 생산했다. 여기에는 창업주인 앙리 피고치(Henri Pigozzi, 1898~1964)가 피아트를 소유한 아녤리(Agnelli) 가문과 친분이 있었고, 피아트가 무솔리니의 비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그리고 1944년,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가 프랑스에서 밀려나 프랑스가 해방을 맞으면서 생카는 포드의 프랑스 법인이 인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생카는 피아트와의 관계가 끊어졌고, 이후 1958년에는 탈보(TALBOT)를 인수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리고 1960년대, 유럽 사업을 넓히려고 했던 크라이슬러의 계획으로 크라이슬러의 산하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 시기를 즈음하여 등장한 전륜구동 승용차 '생카 1100'을 히트시키면서 크게 도약했다. 1967년 등장한 생카 1100은 오늘날 유럽 승용차 시장의 상식인 '전륜구동 해치백' 형태를 완성한 선진적인 구성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생카는 1974년에 이 차의 고성능 모델인 생카 1100TI를 내놓으며, 폭스바겐 골프 GTI보다 훨씬 앞선 '핫해치'의 개념까지 제시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생카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동안 자율적인 경영을 보장해주었던 모회사 크라이슬러가 태도를 바꿔 생카의 경영에 직접 개입하기 시작한 데다,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인해 경영난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에 크라이슬러는 생카와 그 산하에 있었던 탈보, 그리고 모든 생산 공장까지 PSA 그룹에 헐값에 넘기고 만다. 그리고 1987년 마지막 양산차인 생카 호라이즌이 단종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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