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차]포드 모델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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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했던차]포드 모델 T
  • 박병하
  • 승인 2024.01.17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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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자동차의 대중화를 이룩한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이른 바 '포디즘(Fordism)'으로 대표되는 '단일품종 대량생산'이라는 표준을 제시하며 20세기 초 산업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혁신들을 이뤄냈다. 특히 자동차의 역사는 더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다품종 소량생산에 의존하고 있었던 유럽의 자동차 공업과 대비되는, '대량생산'을 실현함으로써 획기적으로 가격을 낮춰, 유럽에서는 귀족이나 부유층의 전유물로 인식되었던 자동차를 대중에게 보급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 이렇게 미국이 매우 이른 시기에 자동차의 대중화를 이끌어낸 주역은 포드자동차(이하 포드)의 모델 T(Model T)다.

초기의 포드 자동차는 값비싼 자동차였다
1885년, 카를 벤츠(Karl Benz)의 페이턴트 모터바겐(Patent Motorwagen)이 세상에 등장한 이래 자동차의 시대가 막이 올랐다. 그렇지만 자동차는 처음부터 대중을 위한 운송 수단이 아니었다. 이 시기만 해도 자동차는 대중을 위한 것이 아닌, 귀족이나 부유층의 마차를 대체하는 '신개념' 운송수단 중 하나로 여겨질 뿐이었다. 게다가 당시 기술력의 한계와 더불어, 수제로 소량만 생산되었던 탓에 자동차의 가격은 비싸질 수 밖에 없었고, 그 신뢰도도 그다지 높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자동차 역사의 초창기에는 가솔린 자동차 뿐만 아니라 검증된 동력기관인 증기기관을 사용한 증기 자동차, 납축전지와 브러시드 모터로 구동하는 원시적인 전기차, 그리고 전통의 마차까지 서로 뒤엉켜 경쟁하고 있었다.

창업주인 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는 1903년, 포드자동차를 설립한 이래 최초의 '모델 A(Model A)'를 시작으로 B, C, F, K, N, R, S 등, 다양한 모델을 고안하고 생산했다. 모델 T의 등장 이전, 포드의 초기 모델들은 대부분이 대중 보다는 중산층 이상의 수요를 노린 고급 자동차였다. 1903년 등장한 모델 A는 시작가 750달러, 1904년에 등장한 모델C는 850달러였는데, 이는  모델 B는 2,000달러였다. 1900년대의 1달러를 오늘날 가치로 환산했을 때 모델 A는 대략 27,000 달러, 모델 C는 대략 31,000달러, 모델 B는 73,000달러에 해당했으니, 당시로서는 굉장히 값비싼 자동차였다. 특히 모델 C의 경우에는 '의사들의 자동차'로 불릴 정도로 고소득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헨리 포드는 자동차를 더 많은 사람에게 공급하기를 원했다. 그 때문에 포드는 제조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포드자동차의 모델 A와 C는 먼저 등장한 올즈모빌(Oldsmobile)의 커브드 대시(Curved Dash)에게 가격 면에서 크게 밀리고 있었다. 올즈모빌 커브드 대시의 경우에는 2인승 모델이 650달러에 불과해, 가격 면에서 상대가 되지 못했고, 생산량 면에서도 크게 밀렸다. 올즈모빌이 1901년부터 1907년까지 19,000여대의 커브드 대시를 생산했던 반면, 포드 모델 A는 1903년부터 1904년까지 1,750대, 모델 C는 1904년부터 1905년까지 1,000대 정도 밖에 생산하지 못했다. 심지어 포드 모델 A는 과열 및 변속기의 기능부전 등, 초기의 자동차들이 겪었던 문제들을 거의 그대로 안고 있었다. 

혁신을 위한 사상적 기반
그렇다면 올즈모빌은 어떤 방식을 취했길래 이렇게 많은 양의 자동차를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바로 오늘날 자동차업계의 상식으로 통하는 '생산라인(Production Line)' 개념을 실현했기 때문이다. 즉, 올즈모빌 커브드 대시는 미국을 넘어, 세계 최초로 생산라인을 통해 생산된 진정한 의미의 첫 번째 양산차였던 셈이다. 이러한 생산 방식의 혁신은 유럽보다도 훨씬 앞서 있었던 미국의 '산업공학(Industrial Engineering)'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생산라인 도입'이라는 혁신을 이룬 올즈모빌과 경쟁하기 위해, 포드 역시 생산라인 개념을 도입한 후속 차종들을 개발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A, B, C 이후에 등장한 F, K, N 모델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모델 N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대형화 파생모델인 모델 R과 고급화 2인승 로드스터 자동차인 모델 S까지, 다양한 자동차들을 개발해 생산했다. 하지만 경쟁자인 올즈모빌을 이기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1900년대 중후반까지 포드는 생산라인 체계로의 전환에는 성공했고, 생산량도 크게 늘었으나, 여전히 차량의 가격은 비쌌다. 즉, 포드가 꿈꾸었던 중산층을 타겟으로 한 저렴한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의 방식을 뛰어넘는 혁신이 필요했다. 

이렇게 해서 형성된, 이른 바 '포디즘(Fordism)'의 근간을 이루는 세 가지 주요 원칙이 등장하게 된다. 첫 번째는 '제품의 표준화'이고, 두 번재는 '조립 라인(Assembly Line) 채용', 그리고 세 번째는 '임금 인상'이다. 오늘날 포디즘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단일품종 대량생산'이라는 의미는 이 세 가지 원칙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원칙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중에서도 '제품의 표준화'는 현대 산업공학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원칙이다. 규격화된 부품을 기계를 이용해 대량으로 생산함으로써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다. 제품의 표준화는 유지보수와도 직결되는 부분이다. '조립 라인 채용'은 올즈모빌이 앞서서 도입했던 생산 라인 개념과는 다르다. 조립 라인이란, 최종 완성품이 생산될 떄까지 사전에 '반제품(혹은 모듈)' 형태로 만들어진 부품들을 순번에 맞춰 조립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생산 방식은 이후 컨베이어 벨트(Conveyor Belt) 시스템과 결합돼, 기존의 생산라인 개념보다 현저히 빠른 속도로 완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그리고 '임금의 인상'은 노동자에게 충분한 임금을 지불하여 자사가 생산한 제품을 언제든지 구매할 수 있는 '구매력'을 끌어 올리고자 했던 것이다. 

극단적인 단순화
이러한 사상을 기반으로, 포드는 새로운 차종, '모델 T'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포드는 모델 T를 기존에 생산하고 있었던 모든 모델들을 일거에 대체하는 '하나의 제품'으로 개발하고자 했다. 그동안 다양한 차종을 생산하면서 발생했던 비용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포드는 새로운 자동차를 설계하기 위해 유능한 엔지니어들과 함께 했다. 포드가 젊은 시절에 디트로이트 자동차 회사(Detroit Motor Company)부터 함께 일했던 클라이드 해럴드 윌스(Chlide Harold Wills, 1878~1940)를 시작으로, 헝가리 이민자 출신의 요제프 갈람(Joseph A. Galamb)과 유진 파르카스(Eugene Farkas)를 메인 엔지니어로 삼아 작업을 진행했다.

먼저 포드는 신형차에 탑재될 엔진부터 새로 설계했다. 모델 T에 최초로 적용되어 '모델 T 엔진(Model T Engine)'이라고 불리는 이 가솔린 엔진은 직렬 4기통 레이아웃에, 177입방인치(약 2.9리터)의 배기량을 가지며, 실린더 보어(내경)는 3와 3/4인치(약 95.25mm), 스트로크(행정 길이) 4인치(약 101.6mm)이며, 20마력의 최고출력을 낼 수 있었다. 냉각 시스템의 경우, 초도생산분에는 별도의 워터펌프를 사용했으나, 이후 워터펌프를 제거하고 한층 단순한 열 사이펀(Thermosyphon) 방식으로 교체했으며, 연료 공급 또한 별도의 연료 펌프 없이 중력을 이용해 공급하는 중력공급(Gravity-Feed) 방식을 사용했다.

이것도 모자라, 모델 T 엔진은 변속기마저 일체형으로 구성했다. 심지어 변속기는 엔진과 윤활유를 공유하는 방식을 취했다. 변속기는 유성기어를 사용하는 전진 2단, 후륜 1단의 수동변속기였다. 모델 T 엔진은 오늘날의 기준에서는 실로 터무니 없을 정도로 단순한 구조를 적용한 덕분에 간단하면서도 구조 자체도 튼튼하게 설계했다. 이 덕분에 의도치 않게 휘발유 뿐만 아니라 벤젠, 에탄올, 심지어 등유까지 연료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연료를 가리지 않았다. 

이 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부분에서도 혁신이 이루어졌다. 그 중 하나는 현대적인 형태에 가까운 자동차의 조종계통을 확립한 것이다. 그동안의 자동차들은 대개의 경우, 마차 시대의 전통을 따라, 마부의 위치였던 오른쪽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았고, 간혹 중앙에 위치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모델 T는 왼쪽에 운전석을 배치하고, 하단에 3개의 페달을 위치시켰으며, 운전석에 모든 조작계통을 집중시킨 구조를 취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구조를 취한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른손잡이이기 때문에 운전석이 왼쪽에 있어야 운전자가 각종 장치들을 조작하기 용이하다는 데 따른 것이다. 3개의 페달은 왼쪽부터 각각 클러치, 후진, 브레이크 페달이었는데, 이 구조는 오늘날 클러치, 브레이크, 가속 페달의 형태로 변형 및 발전하게 된다. 모델T가 취한 이러한 구조는 오늘날까지 오늘날까지 좌측통행을 고수하고 있는 영연방권 국가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표준으로 통하고 있다.

또한 철저하게 규격화/표준화된 설계를 취한 덕분에 몇 가지 부품만 바꿔주면 다양한 파생모델을 만들어내기에도 용이했다. 단일 품종으로 대량생산되는 자동차지만 규격화된 설계 덕분에 부품들을 교체하기 쉬웠고, 당시에서는 서드파티 애프터마켓 부품들까지 만들어질 정도였다. 이러한 덕분에 모델 T가 시판한지 5년이 지난 1913년, 오하이오 주 소재의 갤리온 전금속 차체 회사(Galion Allsteel Body Company)라는 곳에서 모델 T의 뒷좌석을 걷어 내고 그곳에 적재함을 설치한 개조 차량을 선보였는데, 이 차는 미국 최초의 픽업트럭으로 꼽히는 모델이다.

이 외에도 차체 색상은 검정색 하나로 통일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알려져 있는데, 이는 다소 틀린 주장이다. 의외로 초기형에 해당하는 1908년~1913년식 모델 T에는 검정색이 없었고, 회색과 녹색, 차란색, 빨간색 등의 4개 색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델 T는 기존의 모델과 같은 방식의 생산라인 체제로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모델 T의 차체 색상이 검정색으로 통일된 것은 당시의 염료 공급 상황의 변동과 더불어, 1910년대 이후 등장한 새로운 검정색 페인트가 낮은 가격과 도장 내구성, 빠른 건조 시간을 가진 페인트가 등장했다. 그리고 포드가 이를 사용할 것을 강권하면서 1914년도부터 "검정색은 모든 색상(Any color so long as it is Black) 정책"으로 불리는, 색상 통일이 이루어진다. 포드 모델 T가 우리가 알고 있는 단일품종 대량생산 체계가 잡히게 된 것은 본격적인 컨베이어 벨트 조립 라인을 갖춘 하이랜드파크 공장(Highland Park Ford Plant)으로 이전한 1910년 이후부터다.

자동차 대중화의 선봉장
이렇게 탄탄한 기반설계를 지니고 태어난 포드 모델 T는 1908년 등장했다. 이 때 당시까지만 해도 모델 T의 가격은 기본 780달러였는데, 이는 기존의 모델들에 비해 인상적인 가격은 아니었으며, 생산성 역시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모델 T는 아직 공장이 피켓애비뉴(Piquette Avenue)에 있었을 시절에는 생산 첫 해에 단 11대 밖에 생산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미 이 때부터 극도로 단순화/규격화된 설계 덕분에 노동자들의 작업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어, 1910년까지 약 12,000대를 생산해냈다.

하지만 1910년 이후 공장을 컨베이어벨트 조립라인을 갖춘 하이랜드파크 공장으로 이전하고 나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대량생산을 통해 극적인 가격 인하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초기의 포드 자동차를 생산하는 데에는 총 12.5시간이 소요되었는데, 하이랜드파크 공장으로 옮기고 각 부품들의 공급망이 구축된 1914년 이후에는 단 93분만에 하나씩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각의 포드 모델 T는 3분 간격으로 생산되어 공장에서 출고되었다.

이렇게 혁신적인 프로세스가 적용된 포드 모델 T는 가격도 극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포드는 대량생산 프로세스가 가동되기 시작한 이래 지속적으로 생산체계를 손보면서 효율을 극한으로 끌어올렸고, 대규모의 공급망 투자 덕분에 각종 고정 비용이 더 많은 차량에 분산되며 생산하면 할수록 가격이 떨어졌다.

1909년에 생산되었던 모델 T 중에서 기본형에 가까운 2인승 런어바웃(Runabout, 지붕과 도어가 없는 형태)의 가격은 825달러, 1910년에는 900달러까지 치솟았으나, 1911년도부터는 680달러로, 1912년에는 590달러, 1913년에는 525달러, 1914년에는 440달러로 불과 5년여만에 절반으로 떨어졌다. 1916년에는 345달러까지 떨어졌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었던 1917년~1919년까지는 500달러로 고정되어 있었다가 1925년에 이르면 260달러까지 떨어지게 된다.

이렇게 낮은 가격 덕분에 포드 모델 T는 자동차의 주요 소비층을 부유층에서 중산층으로 끌어 내리며, 자동차의 대중화를 빠른 속도로 가속화시키게 된다. 비록 단일 품종으로 생산된 모델이었기 때문에 선택의 폭은 한정되어 있었지만, 일정한 품질관리, 혁신적인 구조설계가 선사하는 높은 신뢰성, 당시 미국의 도로 환경을 철저하게 고려한 서스펜션 세팅, 그리고 당대 기준으로는 차원이 다른 접근성을 제공하며 미국의 자동차 보급의 선봉장이 되었다.

생산량도 어마어마했다. 1914년에는 미국 내의 모든 자동차 회사들의 총 생산량보다 포드 모델 T의 생산량이 더 많아질 지경에 이르렀고, 1천만번째 포드 모델 T가 출고된 순간에는 전 세계의 모든 자동차들 중 절반이 포드 모델 T였다. 이렇게 대성공을 거두자, 포드는 1917년도부터 1923년까지 미국 내에서 그 어떤 광고도 집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너무나 많은 숫자의 포드 모델 T가 미국의 도로를 활보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미국의 대중은 포드 모델 T를 자동차의 표준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25년 시점에서는 하루에 9,000~10,000대의 포드 모델 T가 공장에서 쏟아져 나와, 연간 생산량이 무려 2백만대에 달했다. 포드 모델 T는 단종되는 1927년까지 무려 1,500만대 이상이 생산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숫자가 생산된 만큼, 다양한 형태로 개조되어 활용되었다. 앞서 언급한 미국 최초의 픽업트럭을 시작으로, 소방차, 승합차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다. 또한 민간 뿐만 아니라 군에서도 많은 수가 사용되었는데, 병력수송용 차량 외에도 구급차량, 심지어는 장갑을 붙인 장갑차로도 개조되어 운용되었다.

20세기 자동차 산업의 전환점을 제시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은 포드 모델 T는 1999년, 20세기 최고의 자동차를 뽑는 '세기의 자동차(Car of the Century, COTC)' 대회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였다.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자동차'라는 이동성을 수많은 대중이 향유할 수 있게 한 일등공신이자, 미국 자동차 산업의 성장을 이끌고, 자동차 산업에 있어서 중대한 전환점을 제시한 포드 모델 T는 자동차 역사 상 가장 특별했던 차라고 불리워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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