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자동차에 배터리가 없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오늘날의 자동차에는 엔진과 변속기의 작동에도 고도화된 전자장비가 관여하며, 등화나 공조 시스템, 계기반 등, 자동차의 기본적인 기능들마저 모두 전기장치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필요한 모든 전력은 배터리(2차전지)를 통해 공급받는다.
최초의 전지는 1800년,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볼타(Alessandro G. A. A. Volta, 1745~1827)가 개발했다. 그렇지만 상용화에 돌입하게 된 것은 1859년 프랑스의 과학자 가스통 플란테(Gaston Planté, 1834~1889)가 개발한 납 축전지가 최초다.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전기차가 먼저 등장하게 된 것도 이 납축전지의 개발과 보급이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19세기 말~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전기차를 제외한 대부분의 자동차(특히 증기기관과 내연기관)에는 배터리가 없었다. 심지어 가솔린 엔진의 점화를 위한 장치도 마그네토, 트렘블러 코일 등 자동차 제조사마다 서로 제각각의 것을 사용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자동차는 불을 밝히기 위해 가스등을 사용했고, 엔진 시동은 크랭크를 직접 돌려서 걸었으며, 경적 또한 기계식으로 된 것을 사용했다.
그렇다면 내연기관 자동차에 배터리가 실리게 된 시점은 언제일까? 그 시작은 내연기관 자동차에 별도의 시동모터가 달리기 시작한 1920년대 이후부터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1950년대까지 대다수의 내연기관 자동차들은 6V 전장 시스템에 기반한 배터리를 사용했고, 6V가 12V로 전환되면서 더욱 발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2011년도부터는 독일 자동차 제조사들을 중심으로 48V 전장계를 채용하고 이에 맞춘 배터리가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시점에 등장한 하이브리드 자동차부터는 기존과 다른 배터리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배출가스 문제가 화두가 된 현대에는 한 세기 이전의 기술이었던 전기차가 최신예 이차전지 및 전동기 기술로 새롭게 태어나면서 21세기 자동차 산업의 핵심으로 급부상했다. 그리고 현재 수많은 자동차 제조사들은 자동차에 적용하기 위한 더욱 고성능/고효율의 모터와 배터리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오늘날 자동차에 사용되는 배터리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자.
납축전지
가장 초기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납축전지는 1859년 고안되어 몇 차례의 대대적인 개량을 거쳐 지금도 자동차의 시동용 배터리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1970년대에 개발된 AGM(Absorbed Glass Mat)방식의 납축전지와 밸브 조절식 납 축전지(VRLA) 등의 현대적인 방식의 납축전지로 진화해 오늘날까지 널리 쓰이고 있다. 납축전지는 제조단가가 낮고, 구조가 단순하며, 고율방전 특성이 우수하다. 이 뿐만 아니라 메모리 효과(Memory Effect, 전지의 실제 용량이 줄어드는 현상)이 아주 적으며, 저온 및 고온에서도 방전 특성이 우수해 안정적인 전지로 취급받는다. 이 때문에 초창기 전기차의 전력공급원이기도 했고, 과거에도 이를 활용한 전기차들이 몇 종류 개발되기는 했다. 그러나 후술할 이차전지들에 비해 전력용량 대비 지나치게 크고 무겁다는 점이 단점으로 부각되어 전기차의 동력 공급용 배터리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니켈 수소 배터리
니켈 수소(Ni-MH, Nickel Metal Hydride)배터리는 양(+)극에 니켈, 음(-)극에 수소저장 합금, 그리고 전해질로 알카리 기반의 수용액을 사용하는 이차전지다. 이 배터리는 기본적으로 소형 전자제품용으로 널리 사용되었던 니켈 카드뮴(Ni-Cd) 배터리에서 카드뮴 전극을 수소저장합금으로 대체한 것이며, 니켈 카드뮴 배터리 대비 고용량화가 가능하고 이차전지의 메모리 효과도 훨씬 적은 편이다. 이 유형의 이차전지는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었으며, 자동차용으로는 하이브리드자동차의 대명사로 통하는 토요타 프리우스(Prius)가 지금도 사용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새로운 공법도 개발되어 안정성이 더 높아졌다고 한다. 그렇지만 후술할 리튬이온 배터리에 비해 에너지 밀도가 떨어져 전기차 전용의 배터리로는 사용되지 않는다.
리튬 이온 배터리
리튬 이온(Lithium-Ion Battery) 배터리는 방전과정에서 리튬이온이 음극에서 양극으로 이동하는 특성을 활용한 이차전지다. 충전시에는 리튬 이온이 양극에서 음극으로 다시 이동하여 제자리를 찾게되는 원리를 이용한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아주 높고, 메모리 효과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자가방전이 일어나는 정도도 매우 작아서 오늘날 이차 전지 산업의 주역으로 부상한 바 있다. 현재 전기차의 동력 공급용 배터리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액체 전해질을 사용하기 때문에 전해질의 누액 위험성이 있다.
리튬 폴리머 배터리
리튬 폴리머 배터리(Lithium Polymer Battery)는 액체를 전해질로 사용하는 이튬 이온 배터리와 달리, 고체로 된 폴리머(고분자 물질)를 전해질로 사용하는 이차전지다. 보다 정확하게는 리튬이온 폴리머 배터리라고 불리며, 약칭으로 리포(LiPo) 배터리라고도 불린다. 이 유형의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안정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것으로, 리튬 이온 배터리 대비 더욱 가벼운 중량을 가지며, 우수한 고온 성능과 더불어 이온 전도성이 우수한 고체 전해질을 사용하는 덕분에 액체 전해질을 사용하는 배터리에 비해 유연한 설계가 가능하고, 누액의 위험성을 크게 줄였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하지만 제조 단가가 굉장히 높은 편이고 폭발 위험성이 있다는 점이 큰 단점이다. 이 유형의 배터리는 차세대 배터리로서 2020년 이후에 출시된 대부분의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리튬 인산철 배터리
자동차 산업에서는 최근 들어 주목받기 시작한 유형의 배터리로, 리튬인산철(Lithium Iron Phosphate)을 사용하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한 갈래다. 줄여서 LFP 배터리라고도 부른다. 이 유형의 배터리는 고가 소재인 코발트와 니켈 등의 금속이 사용되지 않는 덕분에 단가절감에서 큰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위의 리튬이온이나 리튬폴리머 배터리에 비해 안정성 확보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며, 충방전 특성이 우수하다는 장점도 있다. 단, 이 유형의 배터리는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리튬이온 배터리나 리튬 폴리머 배터리에 비해 전도도가 낮고 자가방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기존의 리튬이온 배터리에 비해 월등한 가격 경쟁력으로 최근 크게 각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