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시절부터 국가주도로 성장해 온 러시아의 자동차산업은 질적인 측면에서 서방세계에 비해 떨어지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소련 시절부터 다양한 종류의 자동차를 개발하며 자기 나름대로의 체계를 구축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동구권은 물론, 서방 세계에 수출까지 하면서 외화를 쏠쏠하게 벌어다 주었고, 이는 오늘날 러시아 연방까지 이어져, 국가의 주요 산업으로서 자리매김했다.
소련, 그리고 러시아에서 만들어지는 자동차들은 서구권의 차들에 비해 대체로 투박하지만, 실용적인 측면에서는 빠지지 않는 차들을 주로 만들어 왔다. 물론, 지난 기사에서 다루었던 마러시아 B2의 사례와 같이, 스포츠카도 분명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러시아 자동차 산업의 주류는 소형 승용차 및 SUV 형태의 차량들이다. 특히 SUV형태의 차량은 옛부터 러시아에서 인기가 좋은 차종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는 러시아의 도로 환경이 서구권에 비해 열악하다는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러시아는 여러모로 자동차에게 가혹한 땅이다. 러시아는 세단형 승용차조차 지상고가 무척 높게 만들어질 정도로 노면 환경이 좋지 못하다. 포장된 도로는 도심지 일부에 국한되어 있고 조금만 멀리 나가도 포장된 구간을 찾기 어렵다고 한다. 게다가 해마다 봄철의 해빙기(解氷期)만 되면, 전국에 깔린 수많은 비포장도로가 '늪'에 가까운 진창으로 변한다. 이는 대륙성 기후의 엄청난 연교차로 인한 것이다. 이렇게 열악한 도로환경을 가지고 있는 러시아에서 SUV의 인기가 높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러시아 자동차시장에서 가장 큰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아브토바즈(АвтоВАЗ, AvtoVAZ)는 프랑스 르노와 손잡고 라다(Lada)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국 시장에서의 리더십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지난 기사에서 다루었던 라다 그란타(Lada Granta, ВАЗ-2190 Ла́да Гра́нта)는 저렴한 가격과 가격 대비 뛰어난 구성으로 인기를 얻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2016년 등장한 이번 기사의 주인공, '엑스레이(Xray)'는 라다 그란타와 더불어 라다 브랜드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현대화된 스타일과 구성 갖춘 러시안 크로스오버
라다 엑스레이는 아브토바즈게 개발한 현대적인 스타일의 소형 크로스오버 SUV 모델이다. 2015년 처음 등장한 이 소형의 크로스오버는 현재 아브토바즈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가장 새로운 설계와 디자인을 가진 양산차다. 이 차는 라다 그란타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르노와의 기술협력을 통해 개발에 돌입했다. 차명인 엑스레이는 크로스오버(X-Over)와 레크리에이션(Recreation), 활동(Activity), 젊음(Youth)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라다 엑스레이는 루마니아가 본산인 르노 그룹의 저가형 브랜드, '다치아(Dacia)'의 소형차 '산데로(Sandero)'에 사용된 르노/다치아 B0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되었다. 이 플랫폼은 동사의 SUV 모델 더스터(Duster)의 설계 기반이기도 하다.
라다 엑스레이의 외관 디자인은 2012년 등장한 동명의 컨셉트카를 기초로 한다. 라다 엑스레이 컨셉트의 외관 디자인은 차명에서 유래한, 'X'자 형상을 이루는 전면부 디자인과 더불어 전후 휀더를 도드라지게 만드는 특유의 과감한 엣지와 볼륨감이 특징이며, 그동안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SUV들과는 다른, 현대적인 도심 지향의 크로스오버를 표방했다.
이를 바탕으로 디자인된 양산형 라다 엑스레이의 외관은 기존의 러시아산 SUV들과 확실한 차이를 보여준다. 군용차량에 가까울 정도로 투박한 외관과는 전혀 다른, 글로벌 시장에서도 내놓을 수 있을 만한, 현대적이고 세련된 감각이 돋보인다. 엑스레이의 외관 디자인은 현재 라다 브랜드의 패밀리룩을 만드는 기준점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에 라다 브랜드의 다른 양산차들에도 엑스레이의 디자인 요소들이 하나둘씩 반영되고 있다. 라다 엑스레이는 길이 4,165mm, 폭 1,764mm, 높이 1,570mm의 크기를 가지며, 휠베이스는 2,592mm다.
엑스레이의 외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컨셉트카에서도 제시되었었던 X자 형상을 이루는 전면부를 들 수 있다. 헤드램프와 범퍼 하단 공기흡입구를 라디에이터 그릴을 중심으로 묶어낸 이 형상은 차의 인상을 강하게 잡아줌과 동시에 스포티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헤드램프의 베젤을 모두 블랙으로 처리한 점도 이와 같은 형상을 더욱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보인다. 헤드램프 하단부터 시작해 라디에이터 그릴에서 크게 꺾이면서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형상의 크롬 라인은 수평향의 기조를 강조하는 요소다.
측면은 3도어를 채용한 컨셉트카의 날렵한 실루엣과는 거리가 있지만, 소형의 크로스오버 SUV로서 공간확보에 중점을 둔 형상을 띄고 있다. 전반적으로 덩치를 부풀린 소형 해치백에 가까운 외형을 갖는다. 뒷모습 역시 전형적인 소형 크로스오버들과 비슷한 형상을 취하고 있다. 테일램프는 수직형으로 디자인되었던 컨셉트카와 달리, 수평형에 가깝게 빚어져 있다.
라다 엑스레이는 기본형과 '크로스'의 두 가지 형태로 생산된다. 기본형은 전체적으로 매끈한, 승용 MPV와도 유사한 느낌을 주며, 크로스 모델은 SUV로서의 감각을 보다 강조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라다 엑스레이 크로스 모델은 차체 하단의 블랙 몰딩패널과 더불어 차체 후방 하단에 마련한 메탈 스키드플레이트, 상부 루프랙, 그리고 전용의 전면부 디자인을 적용하여 한층 강인하고 스타일리시한 느낌이다. 라다 엑스레이 크로스는 길이 4,171mm, 폭 1,810mm, 높이 1,645mm의 크기를 가지며, 휠베이스는 일반형과 동일하다.
실내는 전반적으로 포드의 피에스타 내지는 쉐보레 크루즈 등을 닮은 느낌이다. 실내는 현존하는 해외의 소형 크로스오버들과 비교하면 짐짓 투박해 보이기는 하지만, 에어컨, 오디오, 터치스크린 패널 등, 나름대로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다. 계기반은 3서클 타입을 사용하고 있고, 포드의 양산차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스티어링 휠은 3스포크 타입을 사용하고 있다. 내부 공간 역시 동급의 소형 크로스오버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라다 엑스레이는 차종에 따라 1.6리터 및 1.8리터 가솔린 엔진을 사용한다. 1.6리터 엔진은 106마력/5,800rpm의 최고출력과 15.1kg.m의 최대토크를 내며, 변속기는 5단 수동변속기를 사용한다. 1.8리터 엔진은 122마력/5,900rpm의 최고출력과 17.3kg.m의 최대토크를 내며, 변속기는 5단 수동, 혹은 5단 자동화수동변속기(AMT)를 적용한다. 엑스레이 크로스 모델의 경우에는 1.6리터 엔진이 113마력/5,500rpm의 출력을 내며, 변속기는 전용의 자동변속기를 사용한다. 구동방식은 모두 전륜구동만 사용한다.
라다 그란타와 더불어 러시아에서 가장 현대적인 방식으로 설계되고 생산되는 소형 크로스오버 모델, 엑스레이의 가격은 544,410루블(한화 약 958만원)부터 시작하며, 엑스레이 크로스 모델의 가격은 670,410루블(한화 약 1,179만원)부터 시작한다. 이는 국산 소형 크로스오버 모델들의 가격에 비하면 거의 절반 혹은 그 이하 수준에 불과한 가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