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전시 경제체제로 전환하여 국가의 모든 산업 역량을 군수산업에 총동원했다. 이 당시 미국의 제조업계는 중공업과 경공업을 막론하고 너도나도 군수산업에 뛰어 들어 미군의 물량을 뒷받침했다. 그 중에서도 자동차 제조사의 경우에는 정말 온갖 것을 다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가장 극단적인 예가 바로 '제너럴 모터스(이하 G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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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은 1910년 창립 이래 미국 내 크고 작은 자동차 기업들을 흡수/합병하여 몸집을 키워 왔다. 이러한 인수합병은 비단 미국 내 기업에 국한되지 않았다. 전간기(戰間期, 제 1차 세계대전과 제 2차 세계대전 사이를 가리키는 말)인 1929년에 인수한 독일 오펠(Opel)이 그 예다. 그리고 GM이 인수합병한 기업들 중에는 자동차 기업이 아닌 곳도 있었다. 이 당시 인수된 기업들 가운데에는 변속기 전문제조사 '앨리슨 트랜스미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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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어찌 보면 문어발 식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었던 GM에게 있어, 제 2차세계대전의 발발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온갖 종류의 중공업 회사를 사들여 몸집을 불린 GM은 미군이 요구하는 다양한 장비를 엄청난 양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 1951년 발간된 미 의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기업들에 총 1,75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는데, GM은 그 중 7.9%에 달하는 138억 달러에 달하는 액수의 계약을 가져갔다. 전쟁 내내 미국 내 기업들 중 나랏돈을 가장 많이 가져간 기업이 된 것이다. 두 번째로 많은 액수의 계약을 가져간 곳은 항공기 제조사 커티스-라이트(Curtiss-Wright)사(약 71억달러, 4.1%)였고, 3위가 포드자동차(약 51억 달러, 3.0%)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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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이 만들어 낸 물품은 육해공을 가리지 않았다. 1945년 GM의 연간 보고서의 내용을 보면, GM이 전쟁 내내 얼마나 많은 물자를 '찍어'냈는 지 알 수 있다. 먼저 육상장비부터 살펴 보면, GM은 무려 85만 4천대에 달하는 트럭 및 수륙양용 차량을 생산해 냈다. 이들 차량은 수많은 미군의 발이 되어주었음은 물론, 미군의 효율적인 군수지원체계를 이루는 데 일조했다. 이들 중 439,839대의 트럭을 쉐보레와 GMC 트럭 부문이 생산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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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뿐만 아니라 GM은 3만 8천대의 전차(Tank)와 구축전차(Tank Destroyer), 그리고 장갑차를 생산했다. 그 중 '캐딜락'은 경전차(Light Tank)를 주로 생산했다. 캐딜락은 총 6,550대의 M5 스튜어트 경전차(M5A1 포함)를 생산했다. 그리고 그 후속작이자 대전 중 최고의 경전차로 손꼽히는 M24 채피 역시 4,731대나 생산했다. 중형급 이상의 전차는 GM 산하의 '피셔 차체 부문(Fisher Body Division)'에서 맡았는데, 여기서는 무려 1만 1,358대의 M4 셔먼 전차가 쏟아져 나왔고, 5,368대의 M-10 울버린 구축전차가 만들어졌다.
GM은 바다에서 사용된 장비 및 물자 역시 엄청난 규모로 공급했다. 그 중 가장 많은 것은 함선에 사용될 발전기를 비롯한 선박용 디젤엔진이 주류였다. 이들 디젤엔진은 19만 8천기가 만들어져 미 해군의 각종 군함에 사용되었다. 또한 군함에 사용될 3~5인치(약 76~127mm)급의 각종 소구경 함포와 포좌를 공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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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은 하늘에서 사용되는 장비들도 만들었다. GM은 전시생산체제 하에 20만기 이상의 항공기용 엔진과 30만개 가량의 항공기용 자이로스코프(Aircraft Gyroscopes), 그리고 1만 3천기의 함상용 전투기 및 뇌격기를 생산했다. 이 당시 GM이 직접 생산을 전담한 함상용 전술기는 그루먼(Grumman, 現 노스롭 그루먼) 사의 F4F 와일드캣 함상 전투기와 TBF(M) 어벤저 뇌격기(雷擊機)가 있다. GM이 생산한 와일드캣과 어벤저는 미국의 수송선단을 호위하는 소형의 호위항공모함에 주로 탑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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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이 F4F 와일드캣과 TBF(M) 어벤저를 생산하게 된 데에는 원 제작사인 그루먼이 와일드 캣의 후속 기종인 'F6F 헬캣(Hellcat)'의 생산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기존의 와일드 캣과 어벤저는 호위항공모함 등에서 꾸준히 요구하는 물량이 있었는데, 신형기 헬캣의 주문이 폭주하는 바람에 더 이상 두 기종의 생산 라인 유지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와일드 캣과 어벤저는 원 제작사인 그루먼의 생산량보다 GM의 생산량이 훨씬 많은 기체가 되었다. 또한 GM에서 생산된 와일드 캣 중에는 개량형에 해당하는 FM-2도 포함되어 있었고, GM이 생산한 어벤저는 TBF가 아닌, TBM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이 외에도 GM은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3억 6천만개에 달하는 베어링과 1억 1,956만 2,000개의 포탄, 3,918만 1,000개의 약협(탄피), 1,111만 1천개의 퓨즈, 그리고 각종 장비들에 필요한 382만 6천 개의 전기 모터를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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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은 장비 외에도 무기까지 만들어 공급했다. GM은 전쟁 내내 도합 190만정에 달하는 기관총 및 기관단총을 생산했는데, 그 중 상당수는 전투기에 탑재되는 30구경 및 50구경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이 차지했다. 기관단총으로는 일명 '구리스 건'으로 잘 알려진 M3 기관단총을 생산했다. 이 외에도 GM은 314만 2천 정의 M1/M2 카빈 소총, 그리고 19만문의 화포를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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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은 당시 자동차 생산을 본업으로 하는 기업이면서도, 전투기와 전차, 심지어 그 전투기와 전차에서 사용할 무기까지 만들어 공급할 수 있는, 그야말로 '괴물 같은' 기업이었다. GM은 1947년, 항공관련 사업에서는 모두 손을 떼었다. 하지만 수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지상장비 관련 부문은 남겨 놓아, 1950년 ‘GM 디펜스(GM Defence)’를 따로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