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와 전투기를 동시에 찍어낸 '자동차 회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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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와 전투기를 동시에 찍어낸 '자동차 회사'가 있다?
  • 박병하
  • 승인 2020.03.11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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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전시 경제체제로 전환하여 국가의 모든 산업 역량을 군수산업에 총동원했다. 이 당시 미국의 제조업계는 중공업과 경공업을 막론하고 너도나도 군수산업에 뛰어 들어 미군의 물량을 뒷받침했다. 그 중에서도 자동차 제조사의 경우에는 정말 온갖 것을 다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가장 극단적인 예가 바로 '제너럴 모터스(이하 GM)'다.

GM은 1910년 창립 이래 미국 내 크고 작은 자동차 기업들을 흡수/합병하여 몸집을 키워 왔다. 이러한 인수합병은 비단 미국 내 기업에 국한되지 않았다. 전간기(戰間期, 제 1차 세계대전과 제 2차 세계대전 사이를 가리키는 말)인 1929년에 인수한 독일 오펠(Opel)이 그 예다. 그리고 GM이 인수합병한 기업들 중에는 자동차 기업이 아닌 곳도 있었다. 이 당시 인수된 기업들 가운데에는 변속기 전문제조사 '앨리슨 트랜스미션'도 있었다.

이렇게 어찌 보면 문어발 식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었던 GM에게 있어, 제 2차세계대전의 발발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온갖 종류의 중공업 회사를 사들여 몸집을 불린 GM은 미군이 요구하는 다양한 장비를 엄청난 양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 1951년 발간된 미 의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기업들에 총 1,75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는데, GM은 그 중 7.9%에 달하는 138억 달러에 달하는 액수의 계약을 가져갔다. 전쟁 내내 미국 내 기업들 중 나랏돈을 가장 많이 가져간 기업이 된 것이다. 두 번째로 많은 액수의 계약을 가져간 곳은 항공기 제조사 커티스-라이트(Curtiss-Wright)사(약 71억달러, 4.1%)였고, 3위가 포드자동차(약 51억 달러, 3.0%)였다.

GM이 만들어 낸 물품은 육해공을 가리지 않았다. 1945년 GM의 연간 보고서의 내용을 보면, GM이 전쟁 내내 얼마나 많은 물자를 '찍어'냈는 지 알 수 있다. 먼저 육상장비부터 살펴 보면, GM은 무려 85만 4천대에 달하는 트럭 및 수륙양용 차량을 생산해 냈다. 이들 차량은 수많은 미군의 발이 되어주었음은 물론, 미군의 효율적인 군수지원체계를 이루는 데 일조했다. 이들 중 439,839대의 트럭을 쉐보레와 GMC 트럭 부문이 생산해냈다. 

이 뿐만 아니라 GM은 3만 8천대의 전차(Tank)와 구축전차(Tank Destroyer), 그리고 장갑차를 생산했다. 그 중 '캐딜락'은 경전차(Light Tank)를 주로 생산했다. 캐딜락은 총 6,550대의 M5 스튜어트 경전차(M5A1 포함)를 생산했다. 그리고 그 후속작이자 대전 중 최고의 경전차로 손꼽히는 M24 채피 역시 4,731대나 생산했다. 중형급 이상의 전차는 GM 산하의 '피셔 차체 부문(Fisher Body Division)'에서 맡았는데, 여기서는 무려 1만 1,358대의 M4 셔먼 전차가 쏟아져 나왔고, 5,368대의 M-10 울버린 구축전차가 만들어졌다. 

GM은 바다에서 사용된 장비 및 물자 역시 엄청난 규모로 공급했다. 그 중 가장 많은 것은 함선에 사용될 발전기를 비롯한 선박용 디젤엔진이 주류였다. 이들 디젤엔진은 19만 8천기가 만들어져 미 해군의 각종 군함에 사용되었다. 또한 군함에 사용될 3~5인치(약 76~127mm)급의 각종 소구경 함포와 포좌를 공급했다. 

GM은 하늘에서 사용되는 장비들도 만들었다. GM은 전시생산체제 하에 20만기 이상의 항공기용 엔진과 30만개 가량의 항공기용 자이로스코프(Aircraft Gyroscopes), 그리고 1만 3천기의 함상용 전투기 및 뇌격기를 생산했다. 이 당시 GM이 직접 생산을 전담한 함상용 전술기는 그루먼(Grumman, 現 노스롭 그루먼) 사의 F4F 와일드캣 함상 전투기와 TBF(M) 어벤저 뇌격기(雷擊機)가 있다. GM이 생산한 와일드캣과 어벤저는 미국의 수송선단을 호위하는 소형의 호위항공모함에 주로 탑재되었다.

GM이 F4F 와일드캣과 TBF(M) 어벤저를 생산하게 된 데에는 원 제작사인 그루먼이 와일드 캣의 후속 기종인 'F6F 헬캣(Hellcat)'의 생산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기존의 와일드 캣과 어벤저는 호위항공모함 등에서 꾸준히 요구하는 물량이 있었는데, 신형기 헬캣의 주문이 폭주하는 바람에 더 이상 두 기종의 생산 라인 유지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와일드 캣과 어벤저는 원 제작사인 그루먼의 생산량보다 GM의 생산량이 훨씬 많은 기체가 되었다. 또한 GM에서 생산된 와일드 캣 중에는 개량형에 해당하는 FM-2도 포함되어 있었고, GM이 생산한 어벤저는 TBF가 아닌, TBM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이 외에도 GM은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3억 6천만개에 달하는 베어링과 1억 1,956만 2,000개의 포탄, 3,918만 1,000개의 약협(탄피), 1,111만 1천개의 퓨즈, 그리고 각종 장비들에 필요한 382만 6천 개의 전기 모터를 생산했다.

GM은 장비 외에도 무기까지 만들어 공급했다. GM은 전쟁 내내 도합 190만정에 달하는 기관총 및 기관단총을 생산했는데, 그 중 상당수는 전투기에 탑재되는 30구경 및 50구경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이 차지했다. 기관단총으로는 일명 '구리스 건'으로 잘 알려진 M3 기관단총을 생산했다. 이 외에도 GM은 314만 2천 정의 M1/M2 카빈 소총, 그리고 19만문의 화포를 생산했다. 

GM은 당시 자동차 생산을 본업으로 하는 기업이면서도, 전투기와 전차, 심지어 그 전투기와 전차에서 사용할 무기까지 만들어 공급할 수 있는, 그야말로 '괴물 같은' 기업이었다. GM은 1947년, 항공관련 사업에서는 모두 손을 떼었다. 하지만 수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지상장비 관련 부문은 남겨 놓아, 1950년 ‘GM 디펜스(GM Defence)’를 따로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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