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GT 장인’ – 페라리의 GT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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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GT 장인’ – 페라리의 GT들
  • 박병하
  • 승인 2019.09.1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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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페라리는 초고성능의 스포츠카를 제작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매체에 드러나는 페라리들은 주로 대중의 이목을 쉽게 끌 수 있는 슈퍼카들이 많은 편이다. 따라서 페라리의 로드카들은 대체로 스포츠카 내지는 슈퍼카들이 대중에게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하지만 페라리의 전공은 스포츠카 뿐만이 아니다. 페라리는 스포츠카 외에도 ‘복수 전공’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전문화된 분야가 있으며, 이 복수 전공은 스포츠카 못지 않게 페라리의 힘줄이 되어 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GT(Gran Turismo)’다.

페라리가 1947년, 처음으로 제작한 양산차는 스포츠카인 ‘125S’, 그리고 1948년 공개한 ‘166MM’이다. 하지만 이들 차종은 레이스카를 양산화에 가깝게 변형한 것에 불과했으며, 진정한 의미의 일반도로주행용 로드카라고 말하기는 다소 어려웠다. 페라리가 F1 참가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만들기 시작한 차는 바로 1948년 등장한 ‘GT’ 모델인 166인테르(166 Inter)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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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는 페라리가 창사 초기부터 7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만들어 왔고, 앞으로도 꾸준히 만들 차종이며, 지금까지 만들어진 차종의 숫자도 다양하다. ‘페라리 타도’를 목표로 자동차 사업을 시작한 그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조차 사랑했던 차가 바로 페라리의 GT들이었다. 페라리의 복수 전공이자 실질적인 힘줄로 기능해 왔던 GT 성향의 모델들을 모았다.

166 인테르(1948)

166인테르는 1948년, 페라리가 본격적으로 일반도로용으로 개발한 최초의 양산 로드카다. 166 인테르는 페라리 로드카 역사의 시금석을 닦은 자동차로, 레이스카의 기골과 심장을 물려 받은 뛰어난 성능과 유려한 디자인, 안락한 승차감으로 이탈리아는 물론, 해외에서도 크게 주목을 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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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인테르는 본판부터 경주용 자동차였던 125 S와 166MM(밀레 밀리아)를 기반으로 승차감을 개선하기 위한 부드러운 설정의 서스펜션과 카로체리아에서 제작한 고급스러운 차체를 얹어 완성했다. 내부 구조는 장거리 여행에도 충분한 수준을 확보했으며, 트렁크 공간도 부족하지 않았다. 166 인테르의 심장은 125S와 166MM의 심장으로도 쓰였던 2.0 V12엔진을 일밙도로 주행환경에 맞게 개량한 사양이었다. 140마력의 최고출력을 내는 엔진 덕분에 166 인테르는 최대 170km/h의 속도로 질주할 수 있었다.

250 GTE(1960)

60년대 등장한 페라리의 ‘250 시리즈’는 경주차로도, GT로도 모두 빼어난 성능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차들로, 역대 페라리들의 걸작 중 걸작으로 손꼽힌다. ‘250 GTE’는 페라리가 처음으로 만들어 낸 2+2인승 양산형 GT 모델이다. 페라리 250 시리즈의 우수한 기본 설계와 함께 GT에게 요구되는 우아하고 매혹적인 외관, 그리고 페라리의 걸작 250GTO에게서 물려 받은 콜롬보 계열의 티포 128E 엔진을 240마력으로 디튠한 사양의 티포(Tipo) 125V 3.0 V12 엔진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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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GTE의 외관은 카로체리아 피닌파리나가 맡았다. 피닌파리나의 손길로 완성된 250GTE는 역슬렌트 형상을 이루는 전면부와 간결하고도 시원스럽게 뻗은 사이드 라인, 그리고 단정하게 맞물려 떨어지는 루프라인 등, GT에게 요구되는 우아함을 완벽에 가깝게 갖췄다. 실내는 최고급 가죽으로 마무리되어 차의 격조를 한껏 높여주었다. 그리고 여기에 티포 125V 엔진이 선사하는 강력한 동력성능과 페라리의 정교한 섀시 기술이 맞물려 뛰어난 성능을 발휘했다. 250 GTE는 1960~1963년까지의 3년여 동안 무려 1,000대를 판매한 베스트셀러 차종으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페라리의 든든한 기반이 되어 주었다.

365 GTB/4 “데이토나”(1968)

1968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데뷔한 페라리 365 GTB/4는 페라리의 또 다른 명작 GT다. 이 차는 페라리 로드카의 플래그십에 해당하는 모델로, 실질적인 전작에 해당하는 275 GTB와는 다른 2+2 좌석 구조, 그리고 리트랙터블 헤드램프 등, 당시의 기준으로 매우 현대적인 디자인을 가졌다. 차명인 365는 각 실린더의 배기량을 의미하고 GT는 ‘그란투리스모’를, B는 이탈리아어로 쿠페를 의미하는 ‘베를리네타(Berlinetta)’를, 그리고 ‘4’는 캠샤프트의 갯수(즉, DOHC)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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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에는 ‘데이토나’라는 애칭이 붙어 있다. 그 이유는 1967년, 페라리의 프로토타입 330P4와 412P가 미국에서 벌어진 데이토나 24시 레이스에서 1-2-3 피니시를 따내며 1966년 르망24시 레이스에서 포드 GT40에 당한 굴욕을 시원하게 되갚아 준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365 GTB/4의 성능 역시 당대 최상을 자랑했다. 6개의 웨버 카뷰레터를 사용한 4,4리터(4,390cc) V12 엔진은 352마력/7,500rpm이라는 괴물같은 성능을 자랑했으며, 이 덕분에 0-60mph(약 96km/h)을 단 5.4초에 끝내고 최고 280km/h의 속도로 달릴 수 있었다. 운동성능 역시 훌륭하여 후술할 550 마라넬로의 등장 이전까지 가장 우수한 성능의 FR(앞엔진 뒷바퀴굴림) 모델로 남았다.

456(1992)

페라리 456은 1992년 출시된 페라리의 2+2 GT 모델로, 이전까지와는 다른, ‘차세대 페라리’를 주창하며 등장했다. 456은 엔진부터 섀시, 드라이브트레인, 차체 설계 등 모든 면에서 완전히 새로운 페라리 로드카로 태어났다. 부드러운 느낌을 주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이 살아 있는 외관 디자인은 피닌파리나의 작품이며, 리트랙터블 헤드램프를 비롯해 많은 요소를 365GTB/4 데이토나에게서 차용했다. 차명인 456은 이전까지의 페라리의 전통대로, 각 실린더 당 배기량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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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456은 상당한 덩치를 자랑했다. 길이만 4,730mm에 폭은 1,920mm에 달했다. 이 큰 차체를 이끄는 엔진은 총배기량 5.5리터(5,473cc)의 V12 엔진으로, 442마력/6,200rpm의 최고출력과 56kg.m/4,500rpm의 최대토크를 낼 수 있었다. 이는 선대 모델에 해당하는 412는 물론, 2시터 미드십 스포츠카 모델인 512TR 테스타로사의 성능마저 넘어 서는 수준이었다. 이 뿐만 아니라 앞좌석 양쪽 모두에 에어백을 적용하는 등, 충돌안전성에도 신경을 썼다. 후기형에 이르러서는 4단 자동변속기를 추가한 456GTA가 추가되었고, 1998년에는 ‘456M’이라는 이름으로 마이너체인지가 진행되어 2003년까지 생산되었다.

612 스칼리에티(2004)

페라리 612 스칼리에티(Scaglietti)는 456M의 후속 차종으로서 개발된 2+2 GT 모델이다. 차명은 실린더 당 배기량으로 짓던 페라리의 전통과는 다르게, ‘6리터’의 배기량과 ‘12기통’ 레이아웃을 의미하는 612, 그리고 250 시리즈 이래 역대 페라리의 수많은 차들을 손수 빚어 왔던 장인, 세르지오 스칼리에티(Sergio Scaglietti, 1920~2011)의 이름을 빌렸다. 612 스칼리에티는 456M을 뛰어 넘는 4,902mm의 전장과 1,957mm의 전폭을 가진 대형 쿠페로 만들어졌는데, 이 덕분에 역대 페라리들 중 가장 뛰어난 거주성을 자랑하게 되었다. 단 공차중량은 1,840kg에 달해, 당대에 가장 무거웠던 페라리이기도 하다. 물론 대형화에 따른 중량의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알루미늄 소재를 적극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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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 스칼리에티의 엔진은 575M에 사용된 5.8리터(5,748cc) 배기량의 티포 133 V12 엔진으로, 540마력/7,250rpm의 최고출력과 60.0kg.m/5,250rpm의 최대토크를 발휘했다. 장비중량으로 2톤 남짓의 612에게는 충분한 성능을 제공했다. 변속기는 6단 수동변속기를 기본으로 F1 6단 자동화수동변속기를 마련했다. 막강한 파워트레인 덕분에 314km/h의 속도로 내달릴 수 있으면서도 여유 있는 2+2 실내를 확보한 스칼리에티는 훌륭한 GT로 남았다.

FF(2011)

페라리 FF는 역대 페라리들 가운데서도 매우 독특한 컨셉트의 모델로, 전통적인 쿠페형 GT라기보다는 ‘슈팅브레이크(Shootingbreak)’ 컨셉트에 가까운 모델이다. 하지만 그동안 만들어 왔던 2+2 구조의 대형 GT 모델의 계보를 잇는 차종이기도 하다. 실질적으로 612 스칼리에티의 후속 차종으로 봐도 무방하다. 또한 이 차는 페라리 창사 이래 최초로 상시사륜구동 시스템을 적용한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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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FF는 왜건에 가까운 슈팅브레이크 컨셉트를 지향한 차체 디자인 덕분에 차량의 크기는 612에 비해 크게 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612보다 한층 여유로운 실내공간과 트렁크 공간을 확보하여 4명의 성인에게 충분한 수준의 거주성을 제공하는, ‘가장 실용적인 페라리’이기도 하다. 엔진은 역대 페라리 모델들 중 가장 큰 배기량을 가진 6.3리터(6,262cc) V12 엔진을 사용하고 변속기는 마네티노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를 조합했다. 게다가 슈팅브레이크형 차체와 상시사륜구동 시스템까지 적용했음에도 불구하고, FF의 공차중량은 612보다 더욱 줄어 든 1,790kg에 불과했다. FF는 3.7초에 0-100km/h 가속을 마무리할 수 있고 최고속도 335km/h에 달하는 뛰어난 주행 성능을 발휘했다. 페라리 2+2 모델 계보의 새로운 형태를 제안한 FF는 2016년, 같은 컨셉트를 계승한 GTC4 루쏘(Lusso)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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