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차]기아 포텐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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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했던차]기아 포텐샤
  • 박병하
  • 승인 2019.01.23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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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제네시스(BH)의등장 이전까지, 국내 완성차 업계에서 후륜구동 승용차는 80년대후반~9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인기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가86년에 출시한 그랜저, 88년에 출시한 2세대 쏘나타의 등장 이래, 국내 승용차 시장에서는 차종과 차급을불문하고 전륜구동의 인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전륜구동은 후륜구동에 비해 연비와 실내공간 확보, 그리고 눈길 주행 등에서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대중승용차 시장에서 전륜구동은 상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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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00년대초반까지만 해도 소수이기는 하지만, 국내 승용차 시장에서 후륜구동 승용차가 완전히 멸종한 것은 아니었다. 1997년 등장한 쌍용자동차 체어맨은 무려 20년이나 장수했으며, 그보다 한 발 앞서 등장한 기아자동차 엔터프라이즈 또한 2002년까지살아 남았다. 하지만 기아자동차에는 엔터프라이즈 외에도 또 하나의 후륜구동 승용차가 있었다. 엔터프라이즈보다 훨씬 이른 1992년에 등장한 이 차는 기아자동차의플래그십 세단으로 출발하여 엔터프라이즈의 등장 이후에는 오너 드리븐 성향의 준대형 고급 세단으로 2002년까지생명을 이어갔다. 이 차의 이름은 바로 ‘포텐샤(Potentia)’다.

플래그십 세단으로 출발하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기아자동차는 현대자동차나 대우자동차와는달리, 독자적인 고급 세단 모델이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승용차 라인업도 양사에 비해 빈약했다. 이는 1980년대있었던 국내 자동차 산업의 암흑기이자, 자동차 산업의 생태계를 망쳐 놓았던 전두환 정권의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로 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기아자동차는 브리사(Brisa)를 비롯하여 그동안 생산하고있었던 승용차들을 모조리 단종시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는 프랑스 푸조(Peugeot)로부터 라이센스를 받아 생산하고 있었던 고급 세단 ‘푸조 604’도 있었다.

기아자동차는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로 인해 80년대의 상당한 시간을 중/소형 상용차만 생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승합차 ‘봉고’가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게 되면서 한 시름 놓기는 했지만, 그동안 승용차 관련 기술력은 현대와 대우 양사에비해 너무 멀어지고 말았다.

물론, 90년대당시 기아자동차에게 고급 세단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 당시 기아자동차는 소형차 ‘프라이드(Pride)’의 개발로 연을 맺게 된 미국 포드자동차의 고급승용차인 머큐리 세이블(Mercury Sable)을 OEM(주문자생산) 방식으로 수입하여 기아 엠블럼을 붙여 판매하고 있었다. 기아자동차를통해 들여 온 머큐리 세이블은 수입차가 사치품에 가깝게 인식되고 있었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판매량을 늘려 나가며 국내 수입차 시장의확대에 공헌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만족할 기아자동차가 아니었다. 기아자동차는 자동차공업 통합조치의 해제와 함께 부랴부랴 승용차 라인업의 재건을 도모하고 있었고, 이 과정에서 중형 세단 콩코드(Concord)와 준중형 세단 캐피탈(Capital) 등의 신모델을 내놓았다. 소형차는 프라이드, 준중형은 캐피탈, 중형은 콩코드가 각각 포지셔닝된 가운데, 기아자동차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대형 세단을 누구보다도 원하고 있었다. 이때문에 개발에 착수하게 된 고급 세단이 바로 포텐샤였던 것이다.

기아 포텐샤는 기아자동차가 1992년에 내놓은 후륜구동 고급 세단으로, 기아자동차는 포텐샤를당시 판매 중이었던 중형 세단 콩코드보다 더 윗급에 포지셔닝하여 현대자동차 그랜저에 대항하는 플래그십 세단으로 내세웠다. 차명인 포텐샤(Potentia)는 가능성을 뜻하는 포텐셜(Potential)에서 ‘l’이 탈락된 것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자동차를 의미한다. 포텐샤의 가장 큰 특징은 당시 기아자동차 라인업 내에서 유일하게 후륜구동계를 사용하고있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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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텐샤의 후륜구동계는 수많은 기아자동차 모델들의 설계기반을 제공한 일본 마쓰다와의 기술제휴를 통해 확보할 수 있었다. 포텐샤는 1986년 등장한 마쓰다의 내수시장용 최고급 세단, 루체(Luce, Mazda 929)의 5세대 모델을 기반으로 개발되었다. 마쓰다의 5세대 루체는 예나 지금이나 뒷좌석의 안락함보다 운전자가느끼는 주행질감에 무게를 두고 있었던 마쓰다의 설계 사상이 듬뿍 들어간 차였으며, 포텐샤 역시 이와같은 성격을 상당 부분 물려 받아, 국산 (준)대형 세단 중에서도 상당히 균형 잡힌 운동성능을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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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 디자인은 마쓰다 루체의 것과 거의 흡사했다. 센티아의 출시 이전까지 마쓰다의 플래그십 역할을 맡았던 루체의 직선적이고 권위적인 스타일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기아자동차만의 디테일로 마무리했다. 보닛에는 최고급 승용차의 전유물로통한 후드 탑 엠블럼을 부착했다. 포텐샤의 황금색 후드 탑 엠블럼은 이후 엔터프라이즈에서도 유사하게나타난다.

엔진은 출시 초기에는 2.2리터 직렬 4기통 가솔린 엔진과 3.0리터 V6 가솔린 엔진이 준비되었다. 포텐샤의 2.2리터 가솔린 엔진은120마력/3,600rpm의 최고출력과 19.0kg.m/4,000rpm의최대토크를 냈으며, 3.0리터 V6 엔진은 200마력/6,000rpm의 최고출력과 26.5kg.m/4,500rpm의 최대토크를 냈다. 포텐샤의 3.0리터 엔진의 성능은 그랜저의 싸이클론 V6 SOHC 엔진의 성능을월등히 앞섰다. 1994년에는 동급 최고 수준의 성능을 내는 2.0리터가솔린 엔진을 추가했다. 포텐샤에 사용된 2.0리터 엔진은동급에서 가장 우수한 139마력/6,000rpm의 최고출력과 18.5kg.m/4,500rpm의 최대토크를 자랑했다.

또한, 차의크기에 구애받는 경향이 컸던 당시의 소비자 성향을 감안하여 크기 면에서도 조금이라도 더 큰 크기를 확보하는데 노력했다. 포텐샤는 길이 4,925mm, 폭1,725mm, 높이 1,430mm로 경쟁상대인 그랜저에 비해 폭과 높이는 동일했지만 길이는 60mm 더 길었다. 하지만 같은 해 하반기에 2세대 뉴 그랜저가 등장하면서 크기 면에서의 우위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또한, 현대자동차가 더욱 커진 크기의 다이너스티를 내놓고 대우자동차 역시 신형 대형세단 아카디아를 내놓으면서 고작몇 년만에 동급에서 가장 작은 차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또한, 후륜구동플랫폼을 이용한 관계로 동급에서 뒷좌석 공간이 가장 좁은 차가 되는 이중고를 겪어야만 했다.

플래그십에서 오너드리븐 고급 세단으로

포텐샤가 대형세단으로서의 가치를 잃어가고 있었던 무렵, 기아자동차는 1997년, 사활을걸고 준비한 최고급 세단, 엔터프라이즈(Enterprise)를전격 출격시켰다. 기아 엔터프라이즈는 마쓰다가 루체의 후속모델로서 개발한 신형 대형차, 센티아(Sentia)의 2세대모델을 바탕으로 개발되었기에, 5미터를 넘는 거체와 각종 첨단 사양으로 무장하여 포텐샤를 밀어내고 기아자동차의플래그십 자리를 꿰어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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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아자동차는 포텐샤를 버리지 못했다. 다른 제조사에 비해 승용차 시장으로의 진입이 늦었고 모델 라인업도 상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기아자동차는 포텐샤를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기아자동차는 포텐샤를 대형세단 엔터프라이즈와 중형세단 크레도스의 사이에 위치한오너드리븐 지향의 준대형 고급세단으로 포지셔닝을 바꿨다. 이는 포텐샤에게 있어 그야말로 체급과 성격에딱 맞는 포지셔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외관 디자인 또한 새롭게 가다듬었다. 전면과 후면 모두 기함인 엔터프라이즈를 닮은 스타일로 대대적인 변경을 가했다.다소 과도하게 보이기도 했던 크롬 장식들을 크게 줄이고 엔터프라이즈에 적용된 간결한 스타일링이 적용되어 보다 탄탄하고 도전적인 이미지를가지게 되었다. 다만, 고급세단을 상징하는 후드 탑 엠블럼은그대로 남겨 두었다. 엔진 라인업 역시 대폭 정리되었다. 기존에사용했던 2.2리터 4기통 가솔린 엔진과 V6 3.0 엔진을 정리하고 2.0리터 가솔린 엔진과 2.5리터 가솔린 엔진의 2종으로 축소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텐샤가 가지고 있었던부족한 점들을 완전히 지워낼 수는 없었다. 포텐샤의 가장 큰 특징인 후륜구동은 이 시점에서 확실하게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1997년에 닥친 경제위기로 말미암아 이전부터 ‘연비가 나쁘다’는 인식이 있었던 후륜구동 승용차는 쌍용 체어맨을 제외하면거의 퇴출되는 분위기였다. 또한 기반 설계는 80년대에 머무른데다 1992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당시로서도 상당히 노후한차종이었기에, 격변하는 경쟁자들에 비해 상품성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1998년, 희대의히트작인 ‘그랜저 XG’가 등장하면서 포텐샤의 경쟁력은 이미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퇴색하고 말았다. 기아자동차 최후의 후륜구동 준대형 세단 포텐샤는 2002년, 엔터프라이즈와 함께 단종의 수순을 밟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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