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는 다양한 형태의 자동차를 만드는 수많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존재한다. 이들제조사들 중에는 `자동차만` 만드는 제조사들이 다수이기는하지만, 모든 자동차 제조사들이 자동차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공업은 기본적으로 중공업의 가장 큰 대분류 중 하나이며, 여기서 파생된 기술들은 다른 분야에도 활용할수 있는 여지가 많다.
現 스바루CI
그래서 규모가 큰 기업들 중에서는 자동차 제작을 본업으로 하되, 이를활용한 기타 육상용 중장비나 엔진, 혹은 대형 기업인 경우, 상당수가방위산업에도 손을 대고 있으며, 그 역도 존재한다. 또한, 자동차와는 별다른 연관성이 보이지 않는 분야에 손을 대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같은 울타리 안에 있기만 한 경우도 있지만, 지금은이름만 같을 뿐, 현재는 분사되어 각각 제 갈 길을 걷고 있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본 연속 기획에서는 자동차 기업이 벌인 다른 분야의 사업들을 다룬다. 이번회차에다루게 될 기업도 지난 GM 편에 이어, 전쟁과 관련이 있는기업이다. 이 기업의 이름은 스바루(Subaru). ‘동양의볼보’로 불릴 정도로 안전에 신경을 쓰고 독자적인 대칭형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으로 유명한 그 스바루다.
스바루의 뿌리, 나카지마 비행기
舊 후지중공업 CI
스바루는 본래 ‘후지중공업(富士重工業, FujiHeavy Industries Ltd.)’이라는 기업의 자동차 브랜드로 출발했다. 후지중공업은 1953년에 세워진 일본의 중공업 회사로, 자동차를 비롯하여 항공기와 각종 기계를 제작하는 기업이다. 현재는자사의 산업기기 부문을 정리하고 브랜드인 스바루의 인지도가 훨씬 더 높아진 것을 반영하여 지난 2017년도부터아예 회사 전체의 간판을 ‘스바루’로 고쳐 달았다.
舊 나카지마 비행기의 로고
후지중공업의 설립은 분명히 전쟁이 끝난 뒤인 1953년이다. 하지만 이들이 왜 전쟁에 얽혀 있느냐면 이들의 뿌리가 ‘나카지마비행기(中島飛行機)’이기 때문이다. 나카지마비행기는 미쓰비시(三菱, Mitsubishi) 중공업, 가와사키(川崎, Kawasaki)중공업, 신메이와(新明和, Shinmaywa)공업 등과 함께구 일본군에 각종 군용 항공기를 공급하며 일제에 부역한 전범기업이다.
舊 후지중공업 히가시후지(東富士) 사옥, 1953년 (사진출처: 스바루)
후지중공업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나카지마 비행기는 패전 후 일본에 주둔한 연합군 최고 사령부가 내린 비행기연구 금지명령으로 인하여 1945년에 회사 자체가 강제로 분해된 바 있다. 그러다 1953년 세워진 후지중공업이 흩어져버린 구 나카지마 비행기의계열사들을 다시 규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구 나카지마 비행기의 재건을 이루었다. 물론 지금의 스바루는염연히 전후에 세워졌으므로 전범기업이라 정의할 수 없다는 견해도 있지만 이들의 뿌리가 나카지마비행기라는 것은 분명하다.
나카지마 비행기는 주로 전투기와 폭격기를 생산하였다. 국내외 미디어등에서는 태평양 전쟁 시절 구 일본군의 전투기들을 무조건 ‘제로 전투기’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구 일본군은 의외로 적지 않은 종류의 항공기를 사용했다. 소위 말하는 ‘제로 전투기’는미쓰비시 중공업에서 개발/생산한 ‘0식 함상 전투기(零式艦上戦闘機)’로, 주로 항공모함에서 항공기를 운용하는 해군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진전투기다. 따라서 이 전투기는 해군만 사용했다. 육군 항공대에서주로 사용한 전투기는 따로 있었다.
Ki-43하야부사
Ki-84하야테
해군과 육군항공대가 서로 다른 기종을 사용하는 이유는 육군 항공대와 해군 항공대가 항공기에게 요구하는 사항이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현대의 미 해군과 공군이 서로 다른 전투기를 사용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일본 해군을 상징하는 전투기가 제로 전투기라면, 육군을 상징하는전투기는 나카지마 비행기가 개발한 ‘Ki-43 하야부사(육군1식 전투기, 이하 하야부사)’다. 당시 일본의 부족한 공업 능력과 더불어 항공 전술이 1차 대전 시절의 저속 선회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일본군의 요구에 따라 설계되는 바람에, 미군과의 실전에서는 제로 전투기와 마찬가지로 많은 수가 격추 당했다. 나카지마비행기는 이 전투기를 5,919대 생산하였으며, 일본의 괴뢰국이었던만주국 등에서도 일부 사용되었다.
스바루360(사진출처: 스바루)
전쟁이 끝나자 비행기 연구 금지명령이 떨어진 일본에서 나카지마 비행기는 사업을 전개해 나갈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회사가 강제로 여러 계열사로 분할된다. 이들 중에는비행기 외의 분야에 눈을 돌려 버스, 승용차, 이륜차 등의민간 사업으로 선회한 계열사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주축이 되어 세워진 회사가 후지중공업이고, 지금의 스바루라 할 수 있다.
자동차와 항공우주 산업을 동시에
후지중공업 T-7 연습기(사진출처: 항공자위대)
스바루는 후지중공업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동차 사업 외에 꾸준히 항공우주관련 사업을 또 하나의 본업으로서 진행해오고 있다. 설립 이후 5년여가 지난 1958년에는 전후 일본 최초로 자체 개발한 훈련기를 선보인 이래 지금도 소형의 연습용 항공기를 만들고 있다.
AH-1S(사진출처: 육상자위대)
AH-64DJ(사진출처: 육상자위대)
스바루-벨 412EPX(사진출처: 스바루)
스바루-벨 412EPX(사진출처: 스바루)
물론 스바루의 항공우주사업은 이런 소형 항공기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다. 스바루는보잉과 에어버스 등의 쟁쟁한 항공기 제작사들과의 협업을 통해 항공기용 동체나 날개를 제작하는 사업을 해 오고 있으며 군용 항공기의 면허생산까지수행하고 있다. 현재 일본 육상자위대에서 운용 중인 AH-64DJ의면허 생산을 담당한 회사가 바로 스바루다. 이 외에도 스바루는 항공기 뿐만 아니라 항공기의 조종 훈련에필요한 시뮬레이터나 무인 표적기 등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18년7월 17일에는 헬리콥터로 유명한 미국의 벨(Bell)사와 공동 개발한 신형 헬기, 스바루-벨 412EPX를 발표하기도 했다.
스바루EA190V(사진출처: 스바루)
이 외에도 스바루는 후지중공업 시절부터 산업기기에 부문에서도 사업을 진행해 왔다. 산업기기는 자동차, 항공우주 분야와 함께 스바루라는 기업을 이루는세 갈래의 큰 줄기 중 하나였다. 업계에서는 ‘로빈(Robin)’이라는 이름의 엔진 시리즈가 유명했다. 후지중공업의 엔진들은발전기, 건설기계 등 다양한 산업에서 요구하는 사양에 맞춰서 제작되며,지명도와 신뢰도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들은 비교적 최근까지만 해도 연간 100만대 가량의 산업용 기기를 공급해 왔다. 또한 이 외에도 쓰레기수집차량과 같은 환경 부문의 사업과 풍력발전 시스템 개발 등의 사업 역시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근 몇 년 전부터 산업기기 부문의 사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중국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시달리며 경쟁력을 상당 부분 잃고 실적이 부진하게 되면서 경영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에따라 스바루(당시 후지중공업)는 자동차에 역량을 더욱 집중하기위해 2016년 9월을 끝으로 산업기기 부문의 신규 개발을중단하고 사업을 정리했다. 자사의 근간을 이루는 사업 중 하나였음에도 꾸준히 양호한 실적을 내고 있었던 자동차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과감히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이다. 기업 전체의 이름을 스바루로 전환한 것도 자동차에 역량을 집중하기위한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산업기기 부문에서 일했던 경영자원은 자동차 사업에 투입시키고 해당 부문의연구진과 직원들은 자동차 부문으로 전환배치하여 앞으로도 자동차 사업에 더욱 무게를 싣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