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자의 서러움, 그랜저가 원망스러운 K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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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의 서러움, 그랜저가 원망스러운 K7
  • 김상혁
  • 승인 2018.04.06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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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자를 바라보며 무기력, 열등감을 느끼는 현상을 ‘살리에리 증후군’이라고 한다.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를 시기했다고 알려진 살리에리처럼 말이다. 국내 준대형 시장에서 모차르트처럼 월등한 1인자 ‘그랜저’로 인해 살리에리 증후군을 겪는 2인자가 있다. 준대형 세단 양대 산맥이라 불리지만 1인자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K7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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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7은 2018년 3월 3,309대를 판매했다. 1월과 2월 각각 3,348대, 3,015대를 판매했고 2017년 판매량 평균 3,882대로 나름대로 큰 기복 없이 꾸준함을 유지하고 있다. K7이 준수한 성적을 이어가지만 주목받기는 어렵다. 그랜저의 성적표가 너무 뛰어나기 때문. 그랜저는 3월 10,598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1월과 2월 각각 9,601대 8,984대를 판매했다. K7보다 두 배 이상 차이 나는 성적표다.

K7이 그랜저를 단숨에 넘어서는 것은 당연히 무리가 있다. 그랜저는 현대자동차의 플래그십 세단으로 현대자동차의 역량이 집중된 모델이다. 또한 1986년에 출시된 후 꾸준히 국내 대표 모델로 자리를 지켰다.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부유층의 자동차라는 이미지까지 입혀지면서 대중적인 지지층을 형성했다.

하나의 모델이 오랜 시간 역사와 전통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만큼 소비자 기대치를 충족시켜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세대 변경이나 페이스 리프트 시에도 기본적인 기대감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랜저는 소비자 만족도를 충족시킨 역사와 전통을 지닌 모델이다. 반면 K7은 이제 겨우 2세대에 접어든 풋내기다.

초대 K7은 2009년 출시됐다. 출시 당시 K7도 많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2006년에 기아자동차 디자인 총괄로 영입된 피터 슈라이어가 손댔다는 점, 피는 달라도 그랜저와 한 지붕 아래서 탄생한 준대형 세단이라는 점 등 때문이다. 또한 기아자동차 K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모델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기아자동차의 K 시리즈 포문을 연 K7은 준대형 세단이 가지고 있는 중년 이미지를 벗어던졌다. 2009년 ‘KND-5 콘셉트’를 토대로 젊은 층을 노렸다. 당시 경쟁 모델이었던 그랜저 TG나 SM7은 중후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크고 넓어 보이도록 했다. 그로 인해 큰 특색 없이 밋밋하게 느껴쪘다. 하지만 K7은 전면부를 날카롭게 꾸몄고 헤드램프도 굴곡을 주면서 밋밋함을 벗어났다. 여기에 LED 가이드 램프를 두툼하게 적용해 강한 인상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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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7의 측면을 보면 벨트라인은 헤드램프와 이어져 있고 캐릭터 라인은 리어램프와 수평을 이루고 있다. 이를 통해 속도감 있는 모습을 보이고자 한 것이다. 또한 K7은 2.4, 2.7, 3.0, 3.3, 3.5리터 엔진 라인업으로 시장에 진입했다. 특히 3.5리터 모델은 각종 매체 및 소비자에게 준수한 성능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K7은 출시 초기 준대형 세단 시장 1위를 잠시 동안 차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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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7은 2세대로 접어들며 라디에이터 그릴을 보다 역동적인 모습으로 꾸미고 두툼하게 적용했던 가이드 램프는 Z 형상으로 바꿨다. 리어램프 역시 Z 형상을 입혔고 측면은 사이드 스커트는 얇게 다듬었다. 여기에 캐릭터 라인도 살포시 그어 넣었다. 그로 인해 준대형 세단에서 스포티함을 강조하는 모델로 이미지를 굳혔다.

그럼에도 K7은 그랜저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아니 명함조차 내밀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 그랜저가 화려한 외출에 나섰기 때문이다. 출시만으로도 관심을 끌어모으는 그랜저가 디자인 및 승차감, 소비자 만족도까지 두루 갖추면서 K7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시기에 같은 포지션에서 경쟁하는, 그것도 철옹성 같은 1인자 자리를 지키는 존재와 함께라니 당연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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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형제간에도 잘난 형을 바라보는 동생의 마음은 언제나 쓰라리다. 준대형 시장에서 굳건한 그랜저, 그리고 유일한 대항마로 부각되는 모델이 K7다. 더구나 브랜드는 달라도 결국 현대자동차 그룹이라는 한 지붕 아래 있다.

K7 입장에서 보면 억울함을 토로할지도 모른다. 형은 먼저 태어났을 뿐, 동생 역시 못난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랜저 IG가 기존보다 전장과 전폭을 늘리긴 했지만 수치상으로는 K7이 우세하다. K7의 전장은 4,970mm로 그랜저 4,930mm보다 길다. 전폭 역시 K7은 1,870mm로 그랜저 1,865mm보다 넓다. 휠베이스 역시 K7이 2,855mm로 그랜저 2,845mm보다 크다. 크기와 공간이 중요한 준대형 시장에서 수치상으론 대등하다고 할만 하다.

이는 성능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2.4 가솔린 모델 기준으로 최고 출력 190마력, 최대 토크 24.6kg• m로 동일하다. 2.2 디젤 엔진 역시 최고출력 202마력, 최대토크 45.0kg• m로 두 모델이 똑같다. 심지어 연비조차 복합 연비 11.2 km/ℓ, 도심 9.8 km/ℓ, 고속도로 13.6 km/ℓ로 같다. 단편적으로 보이는 부분에서는 그랜저 앞에서 초라해질 이유가 없는 셈.

준대형 시장은 그간 그랜저가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중후함을 꾸준히 입히며 ‘준대형=그랜저’가 하나의 공식처럼 느껴질 정도다. 반면 K7은 준대형이 역동적이고 스포티할 수도 있다는 이미지를 추구하며 다른 노선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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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그랜저를 고급세단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제네시스, EQ900에 프리미엄 이미지를 넘겼음에도 말이다. 그러다 보니 같은 세그먼트, 비슷한 조건과 큰 차이가 없는 가격이라면 그랜저로 마음이 기울게 되는 것이다. K7으로썬 여러모로 그랜저가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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