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는 다양한 형태의 자동차를 만드는 수많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존재한다. 이들제조사들 중에는 `자동차만` 만드는 제조사들이 다수이기는하지만, 모든 자동차 제조사들이 자동차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공업은 기본적으로 중공업의 가장 큰 대분류 중 하나이며, 여기서 파생된 기술들은 다른 분야에도 활용할수 있는 여지가 많다.
그래서 규모가 큰 기업들 중에서는 자동차 제작을 본업으로 하되, 이를활용한 기타 육상용 중장비나 엔진, 혹은 대형 기업인 경우, 상당수가방위산업에도 손을 대고 있으며, 그 역도 존재한다. 또한, 자동차와는 별다른 연관성이 보이지 않는 분야에 손을 대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같은 울타리 안에 있기만 한 경우도 있지만, 지금은이름만 같을 뿐, 현재는 분사되어 각각 제 갈 길을 걷고 있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지난 사브 편과 이어지는 본 연속 기획에서는 자동차 기업이 벌인 다른 분야의 사업들을 다룬다. 이번회차에 다루게 될 기업은 미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임과 동시에 제 2차세계대전 동안 미국이 보여준 압도적인 공업력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축이었다. 그 분야 또한 실로 광법위하여군용 자동차는 물론, 전투기를 비롯한 전술항공기에, 심지어는각종 개인용 소화기(小火器)만들어 납품했다. 이 기업은 우리에게도 매우 잘 알려진 자동차 기업이기도 한 제너럴 모터스(GeneralMotors, 이하 GM)다.
전시생산체제 아래 별걸 다 만든 자동차회사
GM은 창립 이래 여러 자동차 기업들을 흡수/합병하는 방식으로 성장을 일궈 나가고 있었다. 심지어 전간기(戰間期, 제 1차 세계대전과 제 2차 세계대전 사이를 가리키는 말)인 1929년에는 독일에 있는 오펠(Opel)까지 사들이며 세를 키웠다. 다수의 자동차 기업들을 하나하나 합병하는 방식으로 성장한 GM은막대한 규모의 생산 설비를 갖게 되었고 이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우수한 생산 역량을 이루는 밑거름이되었다. 그리고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하면서 전시생산체제로전환하자, 그 역량은 다음과 같은 결과로 나타났다.
1945년의 GM 연례보고에서는 2차대전 당시 GM이 생산한 병기 및 군수물자의수의 막대함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르면 GM은 2차대전 기간 동안 119,562,000개의 포탄(Shells), 39,181,000개의 탄약통(Cartridge Cases),206,000기의 항공기 엔진(Aircraft Engine), 13,000기의 함상전투기(艦上戰鬪機, Naval Fighters)와 뇌격기(雷擊機, Torpedo Bombers), 97,000개의 항공기 프로펠러(AircraftPropellers), 301,000개의 항공기용 자이로스코프(Aircraft Gyroscopes),38,000대의 전차 및 대전차 자주포(Tanks and Tank Destroyer),854,000대의 트럭(Trucks), 190,000문의 대포(Cannon), 1,900,000정의 기관총과 기관단총(Machine Gunsand Sub-Machine Guns), 3,142,000정의 소총(Carbines),3,826,000개의 전기 모터, 11,111,000개의 퓨즈, 360,000,000개의 볼 베어링과 롤러 베어링(Ball andRoller Bearings), 그리고 198,000기의 디젤엔진(Diesel Engines)을 생산했다.
이 당시 GM 산하의 기업들은 그야말로 별의 별 것을 다 만들고 있었다. 당시부터 GM 산하에 있었던 뷰익(Buick)은74,198개의 프랫 & 휘트니(Pratt & Whitney, 이하 P&W)社의 트윈 와스프(Twin Wasp, R-1830 과 R-2000 포함)엔진을 생산해냈다. P&W의 트윈 와스프 엔진은 태평양전쟁초기, 미국의 항공전력의 주축이었던 전투기, 그루먼 F4F 와일드캣을 비롯하여 다수의 항공기에 채용된 엔진이다. 이 외에도뷰익에서는 2,507대의 M18 헬캣 대전차 자주포를 생산했으며, 약 2만대 가량의 M4 셔먼전차의 구동계를 조립했다.
캐딜락(Cadillac)에서는 총 6,550대의M5 스튜어트(Stuart) 경전차를 생산했다. 이는 초기형인 M5(1,824대)와후기형인 M5A1(4,726대)를 모두 포함한다. 또한 M8 3인치 곡사박격포를 위한 M5 스튜어트 경전차 차체를 1,778대 생산했다. 이 외에도 M5 스튜어트 경전차의 후계 차량인 M24 채피도 일부 물량이 캐딜락에서 생산되었다.
올즈모빌과 폰티악에서는 2차대전의 베스트셀러 대공포들을 생산했다. 오리콘(Oerlikon)제 20mm대공기관포와 40mm 보포스(Bofors) 대공포가그것이다. 스위스의 오리콘社에서 개발한 오리콘 20mm 기관포는 미국과영국의 연합국은 물론, 독일과 일본 등 추축국에서도 라이센스 생산된 베스트셀러 대공기관포다. 40mm 보포스 대공포는 스웨덴 보포스社에서 개발된 대공포로 미 해군의 수많은 함정(艦艇)에서 주력 대공포로 사용되었다. 뇌격기에 탑재되는 항공어뢰도 생산하였다. 뷰익과 올즈모빌, 그리고 폰티악의 세 브랜드의 조립 부문은 하나로통합되어 엔진에 필요한 각종 부품들을 두루 생산하였다.
GM의 자체 브랜드인 쉐보레에서는 439,893대에달하는 군용 트럭과 2,583대의 승용차를 생산하여 납품했다. 또한3,844대의 M6 스태그하운드 중형 장갑차량도 쉐보레의공장에서 생산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17개소에 달하는 쉐보레공장에서 60,766대의 P&W R-2800 더블와스프(Double Wasp) 엔진이 생산되었다. P&W R-2800더블 와스프 엔진은 P&W의 걸작 엔진으로, 당대최고 수준의 성능과 신뢰성을 보여준 전장의 명품이었다. 이 엔진을 탑재한 전투기 중 하나가 바로 당대최강의 전투기 중 하나로 유명한 F4U 콜세어(Vought F4UCorsair)다. 이 외에도 쉐보레 공장에서는2,000개의 90mm 대공포를 위한 포신과 약실 등이 만들어졌다.
GM의 부품사업을 맡고 있는 델코(당시 Delco, 現 AC Delco)에서도 수많은 양의 각종 물품을 생산하였다. 당시 델코의 기기사업부(Delco Appliance Division)에서는지상군용 장비나 항공기에 필요한 다수의 소형 전기 모터를 생산하여 납품하였고 브레이크 사업부(DelcoBrake Division)에서는 유압식 브레이크를, 통신 사업부(Delco Radio Division)에서는 對 레이더용 장비(레이더 재머 등)와 IFF(Identification, Friend or Foe, 피아식별장치)를 생산했으며 전차를 위한 통신장비와 항공기용 통신장비, 그리고 쌍방향야전용 무전기 등을 생산하였다. 트럭 등, 군용 자동차를위한 각종 전자장비 역시 델코에서 생산했다.
GM은 수송기나 폭격기에 사용될 엔진은 물론, 전투기용 엔진까지 생산하여 납품했다. 그리고 아예 자체적으로 완성품단계의 항공기까지 생산했다. 상기 나열한 항목 중 ‘함상전투기및 뇌격기’가 그것이다. GM에서 생산된 함상전투기들은 그루먼(Grumman)社 기체들의 라이센스 생산품이었으며, GM에서 생산된 기체들은 후에 별도의 코드네임을부여 받았다.
GM이 생산한 함상전투기의 대표주자는 ‘F4F 와일드캣(F4F Wildcat)’이다. F4F 와일드캣은 태평양전쟁 개전 초기, 일제의 ‘제로 전투기(A6M, 0식 함상전투기)’에 맞선 미 해군의 주력 함상전투기로 활약했다. GM이 생산한 와일드캣의생산대수는 원제조사인 그루먼의 제작분에 비해 두 배에 가까운 66%에 달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그루먼이 신형기 ‘F6F 헬캣(F6F Hellcat)’의 개발을 완료되어 양산이 시작된 것으로부터 비롯됐다.당시 미해군은 신형기를 누구보다도 절실히 필요로 했기에 그루먼에 대량의 헬캣을 주문하는 바람에 그루먼이 와일드캣을 병행 생산하기 어려워졌기때문이다. 따라서 와일드캣은 헬캣의 양산이 개시된 이후에는 전량 GM에서생산되었다.
GM의 와일드캣 중에서는 호위항공모함(Escort Carrier, 상선의 호위를 위한 소형 항공모함)에탑재될 용도로 만들어진 FM-1과 FM-2이 존재한다. 이들 기체는 본래 주익 양쪽에 각각 3정씩 총 6정이었던 와일드캣의 기총을 4정으로 줄이고 대잠초계 및 근접항공지원임무에 적합하게 개량된 버전이다. 이렇게 7,800여기가생산된 와일드캣 중 총 5,837(FM-1 1,060기, FM-24,777기)기가 GM에서 생산되었다.
GM은 와일드캣 전투기 이외에도 뇌격기인 TBF 어벤저(TBF(M) Avenger)도 생산하였다. TBF 어벤저는 그루먼 최초의 뇌격기로, 태평양에서 수많은 일제의군함들을 격침시키며 이름에 걸맞게 진주만의 ‘복수’를 이뤘다. 그 중에는 세계 최대의 전함인 야마토급 전함 2척도 포함되어 있다. TBF 어벤저 역시 와일드캣의 경우와 같이, GM의 생산분이 원제조사인그루먼의 생산분보다 더 많다. TBF 어벤저는 약 9,800기가생산되었는데, 이들 중 7,546기가 GM에서 생산되었다. GM에서 생산된 어벤저에는 TBF 대신 TBM이라는 이름이 부여되어 있다.
이 밖에도 GM에서는 수많은 양의 탄약을 생산하였으며, 총기류도 다수 생산했다. 그 중에서는 세기를 아우르는 걸작 중 하나인M2 중기관총과 브라우닝 M1919 경기관총도 포함되어 있다. GM이 만든 총기는 이 뿐만이 아니다. 한때 국내산 반공영화에 단골로출연했던 총기 중 하나인 ‘M3 기관단총(통칭 그리스 건, SMG)’ 역시 GM에서 만들어졌다. 이 총은 단순하고 튼튼하며 값싸게 만들어진 염가형 기관단총으로, GM 차량의헤드램프나 신호등을 만드는 등화 사업부(Guide Lamp Division)에서 만들어졌다. 이 총은 총 682,163정(M3,M3A1 포함)이 생산되었다.
GM이 만든 무기류 중에는 괴상한 생김새와 더불어 무기로서의 가치조차의심스러운 물건도 있었다. 그것이 바로 FP45 리버레이터다. 이 괴이쩍은 총기는 본래 2차대전중 추축국이 점령하고 있었던 지역의레지스탕스와 같은 저항군들에 원조해 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나치게 작고 저렴한 설계를 추구한나머지, 무기로서의 기능이 빵점에 가까웠다. 장전 시간이생산 시간보다 오래 걸렸던 것으로 유명하며, 총열은 지나치게 짧고 강선도 없어서 명중을 전혀 기대할수 없었다. 생산 당시 2달러에 불과했던 그야말로 싸구려의끝판왕급 무기였다.
전시 생산 체제 하에서의 GM은 그야말로 별의 별 물건을 다 만들었다. 그리고 2차대전이 끝난 1950년, GM은 아예 방위산업을 전담하는 ‘GM 디펜스(GM Defence)’를 따로 설립하여 운영하기에 이른다. GM 디펜스는별의 별 것을 다 만들었던 2차대전중과는 달리, 지상군을위한 차량들을 주로 제작하였다. 그 중 대표적인 차량으로는 스위스 MOWAG에서개발한 장륜장갑차, 피라냐(Piranha) 시리즈를 바탕으로한 LAV-III(Light Armored Vehicle)와 스트라이커(Stryker) 장갑차가 있다. GM 디펜스는 이후 2003년까지 유지되다가 미국의 대표 방산업체인 제너럴 다이나믹스(GeneralDynamics)에 합병, 동사의 지상군 체계 부문으로 재편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